아침, 비가 내리는

어떤 시인은 헤비메탈 같은 비가 내린다고 했다. 그런 비가 내리는 소릴 잠결에 들었다. 빗방울이 유리 창문에 부딪는 소리. 옥탑방에선 이런 소리가 유난히 잘 들린다. 하지만 잠결이었고, 빗소리인지 선풍기가 돌아가는 소리인지 헷갈렸다. 선풍이가 덜덜 거리며 돌아가는 소리와 유리창에 부딪는 빗방울 소리. 소리 향연. 잠결에 소리의 흐름을 느끼다, 알람으로 설정한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의 라디오. 비가 내리는 이른 새벽의 라디오.

그래, 나도 한땐 라디오 DJ를 하고 싶었지. 라디오를 좋아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도 한땐 라디오 DJ를 해보고 싶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라디오 DJ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좋아하는 음악 틀고, 곡 설명 하고. 지금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안다. 그리고 공중파 라디오만이 유일한 채널이 아니란 것도 안다. 더구나 내가 하고 싶은 라디오는 말없이 음악만 나오는 거였다.

성시완은 1980년대 초반 라디오 DJ를 하며, 단 두 곡만 튼 적이 있다고 했다. 단 두 곡이라니. 요즘 같으면 못 할 것도 없다. 광고도 들어야지, 게스트와 얘기도 나눠야지. 실제 한 두 곡의 노래만 나오는 라디오 방송도 적지 않고. 하지만 새벽 1시부터 2시까지 하는 라디오에서 두 곡이라니. 아, 물론 신해철이라면 노래를 한 곡도 안 틀거나, 노래만 트는 날도 종종 있다고 하는데. 성시완의 경우엔 두 곡만 틀었는데, 단지 곡이 좀 길었다고 한다. Pink Floyd의 “Echoes”와 Led Zeppelin의 “Dazes and Confused”. 앞의 곡은 23분 38초, 뒤의 곡은 28분 35초. 지금으로선 하기 힘든 일이지만, 참 근사한 일이다. 곡 설명 조금하고 곡을 트니, 한 시간이 다 갔다는 얘기. 하지만 이보다 더 근사한 일은, 핑크 플로이드가 해체했을 당시(실제 해체한 건 아니니, 멤버가 탈퇴한 걸 의미하는 듯), 이를 기념하여 39일 동안 “핑크 플로이드” 특집 방송을 했다고 한다. 정말 근사한 일이다. 핑크 플로이드의 팬인지 여부를 떠나, 이런 기획을 하고 기획을 밀고 갈 수 있는 저력 하나는 정말 대단 하다. 팬이기까지 했다면, 하루하루가 설렜을 테고.

여름날 아침인데, 유난히 어두웠다. 날씨가 많이 궂고, 비가 내리는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옥탑방은 이래서 좋다. 이사를 갈까 말까 고민 중이다.

8 thoughts on “아침, 비가 내리는

  1. ‘말없는 라디오’가 생각나네요. 말 많은 라디오가 싫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던..^^ 그러게요, 비가 참 많이 내리고 있어요. 나무가 바람과 빗물에 흔들리는 것도 보이고.. 어둡고 조용한 오후에요.

    1. 와, 이름 괜찮은데요? 말 없는 라디오라니.. 흐흐.
      참, 여이연은 어떤 거 들어요?

  2. 오! 성시완의 그 방송 정말 혁명이네요!
    성시완 음반 전시회 한다는데; 그거 가봐야 하는데.. *발동동*

  3. 클래식 FM 듣다 보면 막 30~40분짜리 곡 통째로 틀어주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그거 들을 때면 진행자 참 편하겠다는 생각을 해요;

    1. 오오오!!! 그럼 그 시간은 그냥 딴 짓 하면서 놀 수 있는 거잖아요. 정말 괜찮은데요. 크크크

  4. 대학 가면 시간 많아서 라디오 진짜 많이 들을 줄 알았는데, 중고등학교 이후로 지금까지 다시는 그렇게 들을 일이 없더라고요;; 뭔가 좀 아쉽긴 해요 =_=

    1. 전 자취 시작하던 초기엔 좀 들었는데, 들을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역시나 뭔가 탈출구가 필요해야 라디오를 듣는 걸까요. 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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