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힘에 대한 ‘순진한’ 기대

신문이나 각종 매체에선 미디어 세대라고 종이에 활자화된 글 보다는 이미지에 더 익숙한 세대라고 하지만, 루인은 미디어/이미지 보다는 문자가 더 익숙하고 친밀하다. 그래서 아직도 글의 힘을 믿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금에 와선 환상이나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해도 낭만에 가까운 일이란 건 알지만.

글을 쓰며, 혹은 활자화 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몸앓이를 하며 가지는 바람 중엔, 이런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다. 굳이 루인의 글이 아니라도 한 편의 글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다른 사람은 여러 의미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타인을 말하기도 하고 이반queer이 아닌 사람들, 비이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 ‘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 등, 다른 위치positioning를 가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시에 피해 경험자부터 가해자까지 한 편의 글을 통해 아픔으로 자신을 변화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다면-글에 그런 힘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순진한’ 바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바람을 말하면 어떤 사람은 이 시대에 아직도 그런 꿈을 꾸느냐고, 시대에 뒤쳐져도 너무 뒤쳐진다고 말하겠지만,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바란다. 꿈을 그리는 사람은 결국 그 꿈과 닮게 된다고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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