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존 콜라핀토, 빈둥빈둥, 안중근의 (찌질한) 남성성과 김어준-남성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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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라핀토의 [타고난 성, 만들어진 성]은 젠더 이론을 공부하거나, 성차, 성별 관련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으시길. 상당히 논쟁적이고 문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중요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ㄱ. 젠더라는 개념을 만드는데 있어 의학의 역할을 짐작할 수 있고, ㄴ. 미국의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간성 운동 및 이론에 중요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ㄷ.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식하고 인간으로 해석하는데 젠더와 성기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된 책 중에서 이런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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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이틀은 카페에서 보내고 싶었지만 비가 와서 집에 있었다. 덕분에 냥이와 빈둥빈둥. 캬악. ㅠㅠ
지금 비가 그쳐서 뭔가 먹으러 나가야 하는데, 아직 씻지도 않아서 나갈 수가 없다. 집에서 버티기엔 먹을 게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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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은 또한 자신에게 공손하게 대하지 않는 기생들을 때리던 “사내다운” 습성을 낭만적으로 회고하기도 했다. 기생들과의 관계를 즐기면서도 그들에게 훌륭한 남자와 결혼하고 “도덕의 길”을 따르라고 훈계함으로써 자신의 유교적 “체면”을 유지하려 한 것이다.
-박노자. [씩씩한 남자 만들기] 68-69쪽.

100년 전 남성성이 지금의 남성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건 무얼 의미할까?

어제, 토요일 아침. 라디오 상담코너. 내용은 남편이 장인장모보다 자기 부모에게 용돈을 더 많이 주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상담자는 세 가지 조언을 했다. 남편이 아직 유아기에서 못 벗어났고 철이 없다. 근본적으로 아내를 동등한 동반자로 안 보는 거다. 그리고 진행자가 급히 수습하느라 말을 다 못 했지만, 이런 남편과 계속 사는 건 말리고 싶다. 꽤나 정확한 분석이며, 안중근에게도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상담자는 김어준이었다. 김어준이라 할 수 있는 말이다. 상담자가 소위 여성으로 통하는 이라면, 방송에서 하기 힘든 말이다.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뒷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악플과 인신공격이 뒤따르기 때문이다(군대를 비판한 EBS 강사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듯). 이런 비판조차, 적어도 방송에선 ‘남성’에게만 허용된다. 라디오를 들으며 시원했지만, 많이 씁쓸했다.

10 thoughts on “잡담: 존 콜라핀토, 빈둥빈둥, 안중근의 (찌질한) 남성성과 김어준-남성연대

  1. 안녕하세요.
    여기에 댓글은 처음 써보네요.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를 빌려서 읽었는데,
    루인님께서 겪으셨던 경험과 느낌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지금껏 다른 ftm과 이질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위안을 얻은 느낌이에요.^^

    트랜스젠더는 자신의 육체와 ‘죽고 싶을 만큼’의 갈등을 경험한다는 서사에 견주어 “남성이라는 몸”과 그렇게까지 갈등한 것은 아니란 점(갈등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에서 언론 등을 통해 얘기하는 “트랜스젠더 서사”에 정확하게 일치하지도 않는다.

    트랜스젠더는 “하리수”같거나 아주 어릴때부터 여성으로 느낀다고 하는데, 그런 경험은 ‘없었다’

    이 지점에서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하기 힘들었는데, 아니라고 하기엔 트랜스젠더인 것 같고, 이라고 하기엔 ‘가짜’같고 뭔가 ‘부족’하다는 강박이 있었다.

    이부분들이 특히 공감이 가더라고요.

    사실 요즘 제가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라서요.

    제가 트랜스남성/ftm 이란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불과 2년 밖에 안됐습니다.
    mtf의 경우는 ‘하리수’라고 하는 대표적인 경우가 있어 가능하구나 라고 생각했지만
    반대의 경우는 안된다고 생각했죠.

    그동안 남자가 아닌 여자로 살아야 된다는 것이 이따금씩 못마땅하고,
    가슴이라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
    치마라든지 몸매가 훤히드러나는 옷을 끔찍히 싫어했다는 것.
    자신을 특별히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
    (물론 그렇다고 남자라고 생각했냐하면 드문드문 그런 적 빼고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취미라든지 관심사라든지 취향이라든지 보통의 여자애들과는 달라서
    ‘나는 도대체 뭐지?’ 라고 생각했던것은 있었지만

    보통 ftm들이 말하는 ‘서서 소변을 봤다’ 혹은 ‘왜 난 서서 소변을 볼수 없는가?’ 에 대한 기억이 저에겐 없어서
    뭔가 나는 가짜같기도 하고,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엔 이따금씩 몸에대한 싫은 느낌을 겪어서

    도대체 난 남자인걸까 여자인걸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또 ftm커뮤니티에서 드러나는 남성성때문에 적응이 안되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던 것에 대한 고민도..)

    그러다 오늘 이책을 읽게 됐구요.^^

    확실히 우리나라는 성적소수자가 살기엔 힘든 나라인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책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고 또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책을 세상에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아.. 댓글 고마워요.
      저도, 글에선 마구마구 적었지만, 이렇게 비슷한 경험, 감정을 느끼는 분들과 공유할 수 있을 때마다 힘을 받는답니다. 글은 그렇게 썼지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는 것도 아니고 늘 망설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더 고마워요. 🙂
      사실 그 책, 많이 부끄러워서 잊혀지길 바라는 책이었는데.. 이렇게 얘기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다 싶기도 해요. 하하. ;;
      암튼 언젠간 다양한 경험을 좀 더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며, 늘 건강하세요! 행복하시고요. 헤헤.

  2. 안녕하세요.
    또 놀러왔습니다.^^

    책은 정말 잘봤습니다.

    저로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생각하셔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한편으론 그렇게 성/성별정체성을 둘러싼 용어들로 자신을 규정하면서
    나는 XX가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부분에 대해선 씁쓸하기도 했어요.
    소수자들 사이에서도 선을 긋는 건가 싶어서요.

    어쨌거나..;;

    좋은 책을 볼수 있어서 행운이었어요.
    특히나 학교 도서관에서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어요.

    예전에 저랑 동갑인 FTM인 녀석이
    아무리 ‘트랜스젠더’에 관한 책을 기부하려고 해도
    너무 수위가 높은 게 아니냐 라고 하면서
    번번히 거절당했다는 얘길 했거든요.

    비록.. 성적소수자로서 살기엔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루인님을 비롯한 활동가분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놀러와도 돼죠? ^^

    1. 놀러 오신다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이 블로그가 어찌된 일인지, 황당한 이유로 트래픽초과 되는 일이 있긴 하지만요..ㅠ_ㅠ

      그리고 책 잘 읽으셨다고 해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괜한 작업을 한 걸까 싶다가도 이렇게 칭찬해주시면 갑자기 힘이 난다는.. 에헤헤. ;;;

      근데 트랜스젠더 관련 책을 거부하는 학교라니요.. ㅠ_ㅠ
      그렇다면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http://queerarchive.org/ )으로…
      굽신굽신.. 흐흐.

      늘 건강하세요. 🙂

  3. 지난번에 닉네임을 뭘로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네요. 트렌스젠더인 친구를 두고 그를 이해하는 데에 루인님 글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댓글을 남겼었어요. 포스팅의 어떤 문장도 빌려갔고요. 그후로도 자주 왔었는데 매번 눈팅(!)만 했네요, 흑. 소식 하나! 이제 그친구는 자기를 이해해주는 애인을 만났어요. 다음 주에 소개까지 받기로 했지요. 오늘은 치사하게 그냥 가지않고 댓글 달아서 이 소식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저 책 읽어봐야겠네요*.*!

    1. 와아! 정말 반가운 댓글과 소식이에요!
      (댓글을 남겨 주셔서 기쁘고, 소식도 반갑고요. 흐흐.)
      애인을 소개시켜준다니 왠지 비공개 님이 부럽기도 해요. 헤헤. 🙂

      참.. 저 책은.. 얼마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읽으셔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
      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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