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기: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 어떤 계기로 어떻게 확신?

가끔 이메일로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 받거나, 간단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답장을 보내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아울러 이메일을 보낸 분만 읽기엔 아쉽기도 하고요. 제가 쓴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동안 들인 품이 아깝달까요. 하하 ;; 그래서 앞으로는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이곳에 올릴까 합니다. 올리는 주기는 없습니다. 이메일이 오면 그때마다 정리해서 올릴 수도 있고 귀찮으면 한두 번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
이 글 혹은 이 시리즈의 독자는 이제 처음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 이슈나 퀴어 이슈에 관심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니 내용은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내용이 단순하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어쩌겠어요. 😛 이 시리즈(?)에 실릴 글의 상당 부분은 다른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집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으니 꼭 함께 읽으시길 바랍니다. 🙂
기본 용어는 KSCRC사전을 참고하세요. 🙂 출판물로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에 실린 용어정리가 있고, 다른 여러 단체에서 발간한 다양한 자료집도 있습니다.
모든 관련 기록물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www.queerarchive.org)을 참고하세요. 🙂
+무려 2010년 1월 초 대충 기획하고, 단 두 번 쓰고 잊었다가 연말에 기억나서 또 쓰는 연재(?)입니다. 크크크. 사실 며칠 전 서면인터뷰가 있어서…;;; 재활용이라는..;;; 크. 앞으로 몇 번 나눠 쓸 예정입니다만… 귀찮으면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크.;;
질문: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 어떤 계기로 고민하고, 어떻게 인식/확신했나요?
답변:
글쎄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아요. 계기를 모르겠다고 해서, 트랜스젠더란 저의 범주가 자연스러웠다는 뜻은 아니고요. 매우 어릴 때부터 저의 몸이 낯설었다거나, 주변 사람이 저를 남자/여자로 대하는 것이 싫었다는 식의 계기를 만들려면 어떻게든 만들 수 있겠지요. 계기라는 게, 애당초 현재 상황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니까요. 그러니 뭐든 말할 수도 있겠지요.
물론 ‘잘’ 만들어야 합니다. 질문을 한 사람이 바라는 그런 계기, 이 사회에서 통용하는 계기를 만들어야죠. 나의 ‘계기’가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mtf라면, 어릴 때부터 엄마 화장품을 사용하고 치마 입는 걸 좋아했다는 식의 계기를 만들어야죠. 어릴 땐 집이 가난해서 밥도 간신히 먹었고요, 십대 어느 시절부터 갑자기 채식을 시작했어요,라는 식의 역사와 계기를 말하면 상대방은 아마 벙찐 표정을 지을 테죠. 그것이 내게 아무리 중요한 계기/역사라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는 내용이 아니라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계기’를 묻는다면 ‘어떤 계기’를 듣고 싶은지 다시 물을 필요가 있겠네요. 🙂
(*쓰고보니 여성주의/페미니즘에서 말하는 인터뷰 방법론이네요..;; )
그럼 지금 정체성을 어떻게 확신했느냐고요? 전 확신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어요? 범주라는 것이, 정체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확신할 수 있던가요? 거의 매일, 매순간 다시 고민하고 갈등합니다. 전 제가 트랜스젠더라고 확신한 적 없습니다. 저를 트랜스젠더라고 소개하면서, 매 순간 확인하고 다시 검토할 뿐이지요.
역으로,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이 만약 이성애-비트랜스라면, 이를 언제 어떻게 확신했을까요? 그리고 이 확신은 얼마나 굳건할까요? 아울러 자신을 이성애-비트랜스라고 고민한 계기는 무엇일까요? 이 진부한 되묻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정체성을 고민한 계기”와 같은 류의 질문은 언제나 특정 범주에 속하는 사람에게만 향합니다. 이성애자나 비트랜스에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지요. 이성애-비트랜스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규범으로 여기니까요. 그리고 이런 태도에서 동성애/양성애/트랜스젠더/인터섹스(간성)와 같은 이들을 향한 혐오와 공포가 발생합니다. 너무 심한가요? ^^;; 아무려나 만약 자신이 이성애-비트랜스인데 비이성애자/트랜스가 정체성을 고민한 어떤 계기나 과정이 궁금하다면, 이성애-비트랜스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 어떤 계기를 먼저 떠올리면 됩니다. 일단은 여기서 시작하면 되고요. 🙂
그러고 나면 트랜스젠더/동성애자/양성애자에게 건네는 질문에서 기준으로 삼고 있는 지점, 질문이 문제 삼지 않고 당연하게 여기는 지점을 고민하면 좋겠죠. 어렵진 않아요. 익숙하지 않을 뿐이죠. 이제 시작인 걸요. 🙂

2 thoughts on “묻고 답하기: 자신의 정체성을 언제 어떤 계기로 어떻게 확신?

  1. 정체성을 고민한 계기나 어떤 과정이 궁금하다면 자기 자신의 비트랜스-이성애 정체성을 고민한 계기를 떠올리라는 말을 저렇게 ….. 날이 서지 않게 써놓으시다니요 ㅠㅠ 저는 저 말만 들으면 날이 서버려서 항상 ‘왜 ㅡㅡ 그걸 왜묻는데 ㅡㅡ 아진짜 ㅡㅡ’ 이렇게 되는데 ㅠㅠ 감탄하고갑니다 –

    1. 글로 썼으니까 날이 서지 않은 거 뿐이에요…;;
      오프라인이었다면 부들부들… 하하.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순간적으로 울컥하지 않기 정말 힘들잖아요..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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