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을 만나며

종종 어떤 문제에 대해 루인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모르는’ 루인을 만나면, 두려워진다. 이 이슈에 어떻게 접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건, 고민 없음, 아직도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듣지 못하고 있음이며 기존의 언어에 익숙함/안주함을 만나는 찰라 이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이 시작지점이다. 두려우니 덮어둘 것인가, 이 두려움을 앎으로 바꿀 것인가.

아직도 두려움 앞에서 아는 체 하며, 루인의 무지를 회피하고 싶음이 있지만(많지만) 이 두려움이 삶을 엮어가는 힘이란 걸 ‘안다.’ 이 힘으로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듣고 새로운 루인을 만난다.

그러니, 두렵지만, 매 순간, 두려움을 만나길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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