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된 음악/노래

#…오래되었지만 선명한 기억, 하나

2002년 가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휴학 혹은 자퇴를 고민하고 있었다. 대학이란 곳에 회의했고 실망으로 몸을 채웠다. 그해 봄학기부터 학교를 다니기가 편했던 것은 아니었다. 겉돌았고 생활은 학교 보다는 알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었다. 학교는, 그냥 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가을학기가 되었고 하루하루가 버거웠다. 어떤 수업도 재미가 없었고 그만 다니고 싶음이 온 몸을 타고 돌았다. 자퇴하자, 자퇴하자, 그렇게 몸이 하는 말을 듣길 한 달여, 결국 휴학을 선택했다.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다. 자퇴를 계획했지만 우선은 휴학하고 알바를 하며 살기로 했다. 고졸이라 말했고 재수생이냐고 묻는 사람에겐 고개를 도리 저으며 강하게 부정했다.

(무엇이 힘들었을까. 2001년부터 2003년까지가 삼재였음은 나중에 알았다. 삼재가 아니어도 그 시절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되는 일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랬기에 학교가 문제였는지 우울증이 문제였는지는 애매하다. 그 모두였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에 직면할 용기가 없어 학교를 탓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학교생활이 너무도 힘들었고 싫었다는 것이다.)

휴학은, 이성애혈연가족 몰래 했다. 혈연가족에겐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행세하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루 열 시간의 아르바이트. 이른 새벽엔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 어두운 玄牝에서 눈을 뜨고 오전을 머물다 한 시간 걸리는 곳으로 12시까지 갔다. 열 시간을 일하고 다시 한 시간 걸려 玄牝으로 돌아왔다. 잠들고 알바 하는 삶. 그 시절 내내 들었던 유일하다시피한 음악은 Muse였다. 당시 두 장의 앨범이 나온 상태였기에 가는 길에 1집을 들으면 돌아오는 길엔 2집을 듣는 식으로 살았다. 가끔은 Beth Gibbons의 목소리에 위로 받았다.

Keith Jarrett을 만난 건, 그 즈음인 것 같다. 하지만 가을에 만난 Keith Jarrett은 그냥 그랬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알게 되어 앨범을 샀지만 뭐랄까, 좋지만 그냥 좋다는 느낌 이상의 무엇이 없었다.

12월이었을까,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간이라고 기억한다. 추웠고 그날은 눈비가 내리고 있었다. 눈인지 비인지 헷갈렸다. 검은 아스팔트의 어느 부분엔 눈이 쌓여있고 어느 부분은 비에 젖어 얼어가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다녔기에 옷이 젖어갔다. 검게 물든 아스팔트에 비친 모습을 보며 가뭄이던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 갔다. 그때 듣고 있던 음악이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였다. 혹자의 말처럼, 죽음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쓴 글이 몇 있다.

[#M_ Wimp… | 2003.01.19 |
어둠을 구성하는 물질….
그 정체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물질.
주변의 무엇과도 반응하지 않는 물질.

종일 방 안 가득한 어둑함에 중화되어

자꾸만 눈물이 흐르고 있다.

그 뿐이다._M#]
[#M_ Keith Jarrett – Koln Concert (Jan 24, 1975) | 2004.11.06 |
이 곡을 기억해

그해 눈이 비처럼 내리던 날
옷은 머리는 눈에 젖어가고 있었지
아스팔트 검은 거리는 녹아가는 눈에 젖어 있었고

걷고 있었어
10시간에 가까운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던 길
그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검은 거리에 비치는 모습에 낯설었어
무언가를 울컥 토해낼 것만 같았지만
텅 빈 속은 공허하게 울릴 뿐이었고

온 몸은 젖어 가는데 추위도 느끼지 못하고 걷던 12월의 늦은 밤..
어떤 이는 이 곡을 듣고 죽음을 생각했다고 해
그래, 알아.

루인 역시 그랬어
한 없이 어두운 방으로 돌아가던 길에
더 이상 추락할 수 없을 것만 같은데도 자꾸만 추락하기만 했던 그때

루인 역시 그랬어
눈이 비처럼 내리고 내 딛는 걸음마다 질퍽거리는 절망이 묻어날 때
루인도 같은 생각을 했어_M#]

#…그리고

어떤 계절에 들어야만 몸이 아픈 음악이 있다. 그 계절이 되면 저도 모르게 반복해서 듣고 있는 음악이 있다.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가 그렇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 추운 날, 마른 나무가 창백하게 눈부신 날. 그런 계절에 들어야 비로소 음 하나하나가 시리게 몸에 사무친다.

Sigur Ros를 처음 접한 시기가 언제였을까. 2002년 가을 혹은 겨울, 그 즈음이었겠지. 처음 들었을 땐 너무 좋았다. 그래서 앨범을 샀고 어떤 날은 너무 좋았지만 어떤 날은 지루해서 끝까지 듣지 않고 다른 앨범으로 바꾸곤 했다. 왜 그랬을까. 오랫동안 그 이유를 몰랐다.

어제, 애드키드님의 블로그에서 Sigur Ros에 대한 글을 읽고, 아, 그랬구나, 했다. 몰랐다. Sigur Ros가 좋았던 시간이 추운 겨울이었다는 것을.

종일 애드키드님이 선물해주신 음악을 들으며,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렸다. 서늘하게 푸른 빛. 여러 해 전, 눈을 감았다가 조심스레 뜨면 푸른빛이 감돌며 눈부신 겨울 공기가 펼쳐지는 광경을 본 후, 겨울을 좋아하게 되었다. 겨울이란 그런 계절이다. 서늘하게 시리지만 그래서 묘하게 감싸주는 무언가가 있는 계절. 눈을 감고 걷다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흐르는 눈물이 서늘하게 식어서 울음의 감정이 눈물이 흐른 흔적을 따라 차가운 기억으로 남는.

Sigur Ros의 “Hoppipolla”을 종일 반복해서 들으며, 아직 녹지 않고 푸르게 빛나는 눈 위에 눕고 싶었다.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 이후, 겨울이면 떠오를 또 한 곡의 음악과 만났다.

[#M_ + | – | #Keith Jarrett의 [The Koln Concert] 앨범 중 한 곡을 올려요. 가장 좋아하는 곡은 첫 번째 곡이지만 너무 길어 마지막 곡으로. Keith Jarrett – 04-Koln, January 24, 1975, Part IIC_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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