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보리, 두 고양이의 적응기

ㄱ.
보리는 어째서 사료 한 알갱이로 축구를 하다가 와구와구 먹는 걸 좋아하는 걸까? 처음엔 뭐하는 걸까 싶어서 중간에 중단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며칠 두고보니 사료 한 알갱이로 잠깐 놀다가 열심히 먹는 걸 봐선 그냥 이런 것 자체를 좋아하는 듯하다.
그러고 보면 아깽이 시절엔 모든 것이 장난감이지. 모든 것이. 매우 위험한 것도 일단 장난감으로 다루지.
ㄴ.
바람은 은근히 보리와 놀아주고 있다. 첨엔 싸움에 가깝다고 봤는데, 좀 더 살펴보니 어떤 순간엔 놀고 있다. 자려고 이불을 펴면 매트리스를 덥고 그래서 이불과 매트리스 사이에 숨기 좋은 공간이 생긴다. 보리가 이 공간에 숨으면 바람이 보리를 찾으러 가고 보리가 튀어 나오면 바람이 후다닥 도망가는 놀이를 반복한다. 물론 놀이가 과열되거나 보리가 과하게 바람에게 붙으면 바람이 좀 싫어한다. 아직은 거리를 두고 있지만, 은근 슬쩍 놀기도 하니 조금은 더 안심하고 있다.
물론 보리도 3개월령을 넘기고 덩치도 조금은 더 커지면서, 둘이 싸우는 정도가 더 심해진 문제도 있지만.. -_-;
ㄷ.
E의 말에 따르면 바람의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졌다고 한다. 보리가 오기 전 바람이 E를 대하는 표정과 지금 바람이 E를 대할 때의 표정을 비교하면 훨씬 부드럽다고. 그 말을 듣고 바람의 얼굴을 보면 정말 그렇다. 처음부터 바람 외에 다른 고양이가 있었다면 사람이 올 때 바람이 숨지 않았을 거란 뜻은 아니다. 여전히 사람을 경계했을 것이다. 바람이 E를 비교적 자주 만나면서 나 아닌 다른 존재에게 경계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는데 바로 이런 시기에 보리가 왔다. 다른 사람과 달리 보리와는 어떻게든 더 많이 부대껴야 했고 이것이 어떤 식의 경계를 허문 듯하다. 예상하지 못 했지만 때가 좋았나보다.
ㄹ.
보리가 바람에게 덤비면 바람은 적당히 봐주면서 피해준다. 물론 종종 화도 내지만. 하지만 이를 통해 기고만장하고 겁없는 녀석인 보리는 다른 것에도 겁이 없다. 이를 테면 내가 청소할 때 청소대를 밀어도 피할 생각을 안 하고 버틴다. 이 녀석!
ㅁ.
주말이라 계속 집에서 수업준비를 했는데, 바람도 보리도 안정을 찾았다. 바람은 내가 있는 곳 근처에서 잠들거나 뒹굴었다. 보리는 책상 위에서 자거나 내 다리 위에서 늘어지게 잤다. 잠을 늘어지게 많이 잤다는 뜻이 아니라 몸을 늘어지게 펼치고 잤다. 사진을 찍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자체 검열을 했기에 공개는 못하고. 크크크.
바람이 발라당 드러누워서 자는 걸 좋아한다면, 보리는 발라당 눕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 듯하다. 대신 옆으로 길게 늘어뜨린 모습으로 자는 걸 좋아한다. 베개가 있으면 더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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