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조사를 생각한다.

사무실 내규를 정하며 경조사 규정을 같이 논의했었다. 퀴어에게 경조사는 그 의미가 다르니 가족 중심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의 경조사에 경조사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논의. 부모 조사는 보통의 회사와 달리 좀 더 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논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했다. 이렇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도 현실은 어렵다. 경조사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관계도 있다.

10년도 더 전, 당시 친했던 사람의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다녀왔고 그냥 지나간다 싶었다. 그 며칠 뒤, 친했던 사람의 파트너(역시 친했다)를 만나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파트너도 장례식장에 갔지만 그저 식사 자리 한 곳을 차지하고 몇 시간 동안 음식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음식을 오래 오래 천천히 먹었다고 했다. 어느 쪽의 부모에게도 밝히지 않은 사이. 그래서 장례식장에는 친구로 갈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였고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위로해주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저 장례식장을 한 번 찾아가 오래 머물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내게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슬픔. 그런데 나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다른 모두에게 말해도 내게 소중한 바로 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슬픔. 어떤 쓸쓸함.

그리고 나는 장례식장을 아예 찾을 수 없는 관계를 고민한다. 파트너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장에 머물고 있는데, 그곳을 찾을 수도 없고 존재 자체를 드러낼 수도 없는 관계.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지만 계속해서 물을 수 없고 그저 계속 걱정만 할 뿐이다. 위로의 메시지도 한계가 있고, 상황을 모르니 보낼 수 있는 말,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같은 말 뿐이라 더 이상 말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소중한데 존재할 수 없음. 이 상황이 나도 파트너도 모두가 속상한데 또 이것을 지키는 것이 현재의 최선이다. 그래서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는 상황.


태양이 뜨겁다.
하루 종일 해는 지지 않고 소금꽃이 핀다.

2020/06/19 15:50 2020/06/1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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