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사무실을 쉬어서 집에서 원고를 쓰다 주전부리가 필요해서 잠시 밖으로 나갔다. 주전부리로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 샐러드가 먹고 싶었다. ㄱ가게는 샐러드가 괜찮은데 지역화폐가 안 되고, ㄴ가게는 지역화폐로 결제할 수 있는데 내가 먹을 마땅한 샐러드가 없다. 어떡하지...

20대 후반이었나 30대 초반이었나...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지인이 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했던 말을 오래 기억한다. 30살이 되고 나면 안정감이 생긴다고. 20대까지의 불안한 상태가 30대가 되고 나면 좀 안정감이 생긴다고 했다. 그래서 나이드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래. 나이가 들면 정말 안정감이 생기고 더이상 불안하고 괴로워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길 바란다. 하지만 좋아하는 시인은 나이 들어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어떤 시인은 나이가 들어서도 약에 기대에 살고 있다. 나는 시인이 아니지만, 내 삶도 그리 안정적이지는 않다.

산책을 하며, 불시에 자동차가 나를 덮쳐 비명횡사하는 바람을 간절히 품었다. 밤에 잠들려고 누으면 이대로 숨이 멎어 내일이 없길 바란다. 이대로 깨어나지 않기를. 비명횡사하여 그냥 이 세상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고 바라다 붉은 꽃을 피운다.

근래 들어 밤에 잠들지 못하고 있다. 머리 속이 시끄럽다. 너무 시끄럽다. 매일 똑같은 강박적인 생각으로 머리 속이 너무 시끄러워서 새벽 5시가 넘어서야 간신히 지쳐 잠든다. 너무 시끄러워 소리도 치지만 머리 속 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제발.. 시끄럽지 않기를... 제발 좀 그냥 조용하기를... 바라고 바라다가 붉은 꽃을 피운다. 붉은 꽃이 필 때 그제야 간신히 요란한 소리는 조금 잠잠하다. 그래봐야 다시 또 머리 속은 시끄럽다. 잠을 잘 수가 없다.

마땅한 샐러드를 찾지 못해 그냥 편의점에 갔다.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주전부리를 골랐다. 방부제 많은 음식이 몸에 축적되면 불안도, 고통도 썩지 않고 방부되는 것일까.


2020/12/29 21:26 2020/12/2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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