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죽지 않고도 살 수도 있는 미래가 있다고, 그런 가능성도 우리에게는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때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크고 어려운 결정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살아서 10년, 50년이 지나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계속 살아가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모색할 수 있는 미래 중 하나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02
몇 년 전, 어느 특강 자리에서 수강생 한 명이 내가 뱅글을 너무 덕지덕지 착용하고 있다며 무지개 뱅글을 왜 그렇게 많이 착용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뱅글을 다섯 개 정도는 착용하고 있다. 가방에는 다양한 뱃지가 붙어 있고 겨울이면 겉옷에도 뱃지를 착용한다. 내가 퀴어라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앞에 가는 사람의 가방에 퀴어 굿즈가 달려 있을 때, 누군가가 퀴어 관련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있을 때,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 아는 사람에게 소문 내고 싶은 마음.

누군가 내가 착용한 퀴어 굿즈를 보고, 종일 우울했던 하루에 다만 10초라도 기분이 좋아지기를, 그래서 행여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 생각을 다만 10분이라도 미룰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10년이, 30년이 지나서도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요즘은 이런 간절함으로 굿즈를 더 악착같이 착용하고 있다.


03
김비 작가님의 연극 물고기로 죽다를 보고나서, 오드리 로드의 책을 읽다가 어째서인지 이런 고민이 든다.

딴 소리인데 나는 수목장이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서.



2021/03/13 20:03 2021/03/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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