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Kiss & Cry(2022.02.25.) 행사와 변희수 하사 1주기 추모제(2022.02.27.)에 다녀왔다.

키스앤크라이 행사는 혼자 다녀왔는데 그 자리는 무척 좋았다. 전시회도 좋았고 붙이지 못하는 편지의 내용은 슬펐다. 감정이 움직이는 자리였고 그래서 참가하길 잘 했다 싶었다. 무엇보다 그날 발언을 한 타리님의 통찰은 언제나처럼 감동적이었고(성소수자의 죽음과 미등록 이주민의 삶과 죽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모두 잘 엮으셨다) 처음으로 발언한 분의 "애인을 충분히 애도할 수 없었는데 애도할 수 있었다면 애인은 세상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말은 너무도 아픈 말이었다. 그렇게 행사에 함께 한 사람들과 우리는 함께고 혼자가 아니며 그렇기에 오래오래 만날 수 있기를 다짐하는 자리를 가졌다.

행사가 끝나고 자리를 떠나 행사장 밖으로 나오자, 이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행사장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을 살폈는데 누가 행사에 참여한 사람인지, 누가 그냥 지나가는 행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행사장에서 나는 함께 했지만 행사장을 나서는 순간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 감각. 행사장에서는 혼자가 아니고 함께하는 감정이었지만 행사장을 나서는 순간 누가 함께하는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고 그래서 결국 혼자라는 감각. 이 감각을 고민했다.

한때,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한 하루로 1년을 살아간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도 그런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퍼레이드에서 받은 에너지로 일 년을 살아간다는 말은 사실 퍼레이드의 강력한 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고통스러운 일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때도 퍼레이드가 끝나는 순간의 쓸쓸함이 강렬했다. 행사장에서는 함께지만 행사가 끝나는 순간의 고립 혹은 쓸쓸함. 나는 나를 아껴주는 애인이 있고, 활동가 친구가 있고, 무려 활동 단체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고 있기에 퍼레이드 끝난다고, 행사가 끝난다고 혼자 고립되지는 않는다. 나는 계속 연결되어 있고, 퀴어-페미니스트 친구나 지인이 아니면 인맥 자체가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니 행사가 끝난 뒤의 고립감이나 쓸쓸함은 이상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늘 그런 단절을 느꼈다.

어째서인지 키스앤크라이 행사가 끝나고는 유난히 행사장 주변 사람들을 더 살폈다. 어떤 굿즈를 들고 있다면 혹시나 하며...

굿즈를 살피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굿즈는 단순할 수록 좋구나.

퀴어아카이브에서 일하기에 예전 굿즈부터 최신 굿즈까지 모두 살필 수 있는데, 그럼 확실히 굿즈가 더 예뻐지고 멋지게 변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예전에는 그저 6색 무지개 색깔만 들어가 있는 굿즈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면, 지금은 더이상 그런 굿즈는 나오지 않는다. 6색 무지개 색깔만 들어갈 때도 색감을 잘 뽑아야 하고, 그것에도 별도의 디자인이 들어가야 한다. 더 많은 경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케이크 디자인이나 고양이 디자인에 6색이나 다양한 정체성 범주를 상징하는 색깔을 녹인다. 그래서 아는 사람은 알아보고 모르는 사람은 그저 예쁜 디자인의 굿즈로 넘어갈 수 있는... 그날 행사장을 나서며 나는 문득, 이 '아는 사람만 알아본다'는 것이 생각보다 편하지가 않았다. 퀴어 굿즈여도 내가 모르는 굿즈면 그것이 퀴어 굿즈인지 알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 굿즈가 별로라는 의미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멋지게 디자인된 굿즈를 사랑한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디자인이 잘 뽑힌 굿즈는 상당히 다량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있다.. 호호). 하지만 그날 알리에 들어가서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굿즈를 구매했다. 그냥 단순하게 6색 무지개, 트랜스 프라이드 색깔 같은, 가장 단순한 디자인. 디자인을 안 하고 그냥 대충 색깔을 얹은 것만 같은 것. 너무 단순해서 그냥 알 수 있는 것.

사실 알리에서 구매하는 많은 퀴어 굿즈는 색감이 애매할 때가 많다. 그래서 예쁘다는 느낌이 안 들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굿즈를 애호하는데, 그냥 단순하고 확실하기 때문이다. 6색 무지개 굿즈는 퀴어라는 걸 알기만 한다면, 그냥 그 상징성은 확실하다.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도 없고 1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굿즈. 키스앤크라이 행사장을 나서며 그냥 단순한 굿즈를 원하기 시작했다. 행사장 밖에서도 고립되지 않기 위한 가장 확실하고 단순한 주파수가 될 수 있겠다 싶어서...


+
누가 20미터 떨어진 거리에서도 단박에 파악할 수 있는 단순한 디자인에 색감을 잘 뽑은 퀴어 스티커를 대량 만들어주면 좋겠다. 나는 색약이고, 미적 감각이 없어(별자리 운세에 예술적 재능이 없다고 확인해줌 ㅋㅋㅋ) 누가 예쁜 색감에 단순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2022/03/03 11:46 2022/03/03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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