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길 바랐는데, 그 이유는 내가 매우 사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공적 가치나 사회적 정의보다는 친분에 약하고 흔들리는 편이라, 친분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비판해야 할 지점을 비판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을 두려워했다. 실제 나는 몇 년 전 대단히 잘못된 판단으로 한 지인을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퀴어 운동에 20년 정도 있었고 계속 단체에서 활동가로 살아왔고 학제에도 살짝 걸치고 있으면서 친밀한 지인이 여럿 생겼고 그 중엔 친구도 있고 스승도 있고 고마운 사람도 있고 그렇다. 그러면서 나는 적절한 때 적절한 비팜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을 한다. 더 정확하게, 지금 쓰는 논문에서 트랜스와 퀴어 사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살피는 작업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떠오르는 얼굴이 많다. 그들의 친절과 환대와 애정과 배려와... 이런저런 많은 감정의 기억이 있어 글을 쓰며 계속해서 글을 진행하기가 어렵다. 그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충분히 비판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들의 서운함을 최소화하면서 비판과 논의의 수위를 최대치로 만드는 길은 무엇일까. 이것이 어렵다.

어디가 적절한 수준일까.


2022/04/23 21:15 2022/04/23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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