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4회 성소수자인권포럼에 다녀왔다. 지난주에 진행한 행사인데 이제야 행사에 참여한 뒤 든 고민을 짧게 기록하면...


ㄱ.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인권포럼 자체가 반가웠다. 그래서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다녀왔다. 즐거웠고 좋은 자리였다. 무엇보다 참가자 상당수가 처음 보는 분들이라 더 반가웠다. 계속해서 익숙한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 계속해서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한다는 것은 고인물로 정체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비록 오래 활동한 이들을 만날 수 없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커뮤니티 혹은 운동 지형에서 새로운 사람이 늘어난다는 일은 좋은 일이라고 믿는다.


ㄴ.
이번 행사에서 가장 큰 고민은 언어와 시간이었다. 이번 행사에서는 총 3가지 언어가 동시에 등장했다. 구어, 수어, 문자통역. 유튜브 중계에도, 현장에서도 세 가지 언어가 동시에 사용되었다. 몇 년 전 인권포럼에서 문자통역이 처음으로 제공되기 시작하면서, 그때는 여러 논란이 있었다.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는가, 그리고 발표자가 적당한 속도로 발언을 하는가가 중요한 의제로 등장했다. 발표자가 지나치게 빨리 말하면 문자로 통역하기 힘들고 그럴 경우 어떤 사람들은 내용을 알 수 없게 된다. 그 문제로 인해 얼마간의 논란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당시 말을 빨리한 1인으로써 죄송합니다...)

그리고 이제 행사는 말의 속도를 느리게 혹은 빠르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규범이 되었다. 이번 인권포럼에서 발표자의 말하기 속도가 조금이라도 빨라지면 사회자는 곧바로 속도를 늦추라고 요구했고, 발표자는 속도를 늦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 속도는 자막통역에 필요한 속도이기도 하고, 수어 통역에 필요한 속도이기도 했다. 그런데 수어 통역을 하시는 4분 중 한 분이 계속해서 발표자의 발표를 중단시키고 내용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담당 수어 통역자는 담당하는 모든 발표자의 발언을 중단시키고 내용을 확인한 뒤에 수어 통역을 했고, 발표자는 그 이후에야 발언을 진행했는데...

이 장면을 보며, 구어와 수어의 문장 체계, 동시통역의 어려움 등이 동시에 떠올랐다. 수어가 자모를 하나하나 찍어주는 통역이 아니라는 점에서, 구어의 내용이 충분히 이해되지 않으면 수어로 통역하기 어렵고 이것은 다른 구어(영어, 말레이어 등)로 통역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구어 발표자는 어떤 식으로 발표 내용과 문장을 만들어야 할까.

여기서 든 또 다른 고민은, 세 가지 다른 언어를 동시에 송출하는 행사하면 발표 시간을 좀 더 충분히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동시 통역이 아니라 순차 통역의 경우, 행사 시간이 1시간이라면 실제 발표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30분이 안 된다. 순차 통역에 필요한 시간, 통역자가 해당 발언을 이해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어 발표자가 충분히 발언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많은 시간이 배분되어야 하는데, 이번 행사에서 이 고민이 떠올랐다. 자막통역은 늘 실시간 통역 같고, 수어 통역도 마치 실시간 통역이 가능할 것 같아서, 시간 배분이 기존의 행사에서 배분하는 방식과 같아도 괜찮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20분의 발언 시간이 주어진다면, 세 가지 언어가 동시에 사용될 때 실제 발언 시간은 그보다 훨씬 짧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발언자의 내용과 문장이 매우 매우 정확하지 않으면 통역자는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발생하고, 그러다보면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발언자는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싶었다. 내용이 분명해야 하고, 문장은 간결해야 하고... 사실 이 지점에서 내가 발표자가 아니라 참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호호... 나는 엉킨 문장으로 말을 하는 편이라 문맥상으로 이해해야 할 때가 많다보니, 수어통역자가 통역을 못 하겠다 싶어서... 호호... ;;;;;;;;;;;;;;;; 앞으로 문장을 더 간결하게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 싶네.

아무려나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 행사라고 해도, 언어의 종류가 다양하다면 시간 배분도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는 게, 이번 인권포럼에서 배운 나의 교훈이다. 언어의 속도, 언어의 시간성을 새롭게 이해해야 하고 이 감각을 새로운 인권 규범으로 만들어야겠다 싶고. 무엇보다 구어가 당연하고 구어가 언어와 표현의 기본값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구어 발표자는 문장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하겠다 싶고... 크게 반성합니다... ;ㅅ;


ㄴ-1
이렇게만 적으면 발표자의 발표 내용에서 교훈이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오랜만에 인권포럼에서 배울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내용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다시 예전처럼 2박 3일의 큰 행사로 진행되길 바라고.


ㄴ-2
오전 발표자 중 한 분이 30대만 되어도 회원 모임에 안 나오고(시위 현장에는 나오는데 행사에는 안 온다고), 그래서 인권포럼에도 40대 넘어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하셔서... "저요! 저 제1회 인권포럼부터 참여했어요!!"라고 손들고 말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ㅋㅋㅋㅋㅋ 잘 참았어... ㅋㅋㅋ


ㄷ.
이번 행사를 단 네 분이 기획했다는 걸 보고... 진짜 고생 많으셨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런데 인권포럼 기획자 중 일부 혹은 전부는 아이다호 행사를 기획, 준비했고, 차별금지법 대응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이다. 제발 오래오래 살아남기만 바랄 뿐이다.



2022/05/28 14:15 2022/05/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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