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10년 정도 전인가, 웹툰 작가가 "집안에 조사가 있어 이번주 휴재합니다."라고 적었는데, 댓글 일부가 난리였다. 조사를 받다니 무슨 범죄를 지은 것이냐며 비웃는 내용이었다. 곧 조사는 장례식을 의미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댓글이 달렸고, 조사의 뜻도 모른다는 비난의 댓글이 후두둑 달리기 시작했다.

조사를 범죄와 연결했던 이들은, 잘 모르는 것은 알려주면 되지 왜 조롱하냐고 항변했고, 지적한 이들은 작가를 비난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왜 가르쳐주지 않느냐고 항변하나며 다시 반박했다.


ㄱ의 일화는 이제 익숙한 '사건'이 되었다. 사흘은 4일이 되고, 심심한 사과는 심심해서 하는 사과로 독해된다고 문맹률 운운하는 지적이 심심찮게 들린다. 부끄럽게도 나도 처음 심심한 사과와 관련한 기사를 읽고 당황했다. 심심한 사과의 심심하다(甚深하다)가 어떤 맥락인지 모른다는 사실에 당황하기는 했다.


하지만 심심한 사과, 사흘, 조사와 같은 단어의 뜻을 모른다고 문맹률 운운하며 모르는 이들의 무지를 한탄하는 방식으로 논평하거나 반응하는 순간, 논의를 생산하는 수준 역시 현저하게 떨어진다. 모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지를 깨달은 이후의 태도, 무지에 대응하는 태도가 논의의 수준을 만든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심심한의 뜻도 모른다고 조롱하고 비꼴 때, 논의는 나의 지적 우월과 타인의 무식을 조롱할 수 있는 오만함으로 구도가 만들어지고 논의의 장이 생성되기보다 비난의 장이 생성된다. 이런 태도를 바꿀 때 비로소 논의의 장이 생선되지 않을까..


2022/08/28 13:44 2022/08/28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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