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보학: 정희진과 벨 훅스bell hooks

수업시간에, 인용과 참고문헌을 쓰는 것은 지식노동자로서 자신의 지식계보학을 쓰는 것과 같다는 얘길 들었다. 일종에, 자신에게 영향을 준 글들과의 관계 지형도를 그리는 행위이며 경우에 그래서 일종의 족보를 만드는 행위다.

학부 시절부터 수업논문을 제출할 때면 참고문헌이 좀 많은 편이었지만(루인은 적다고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은 “많다”고 얘길 해서 “많은 편”이라고 적었다) 그렇다고 그것이 딱히 루인의 족보를 쓰는 일이라곤 느끼지 않았다. 왜냐면 당시엔 인용을 하더라도 그 표기를 지금처럼 엄격하게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일테면, 애초 루인의 아이디어와 저자의 아이디어가 비슷하면 그냥 인용표시를 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대학원이라는 학제에 편입한다는 건, 자신의 고민과 성찰을 위해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빌리는 연습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다. 다른 때 같으면 각주나 인용표기가 없을 법 한 부분을 꼼꼼하게 인용처리 하고 있는 루인을 느끼며,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다시 읽을 기회가 있을 때면, 이건 그 사람의 고민에서 도움을 받았으니 인용표기를 정확히 했어야 했는데, 하는 부끄러움이 들면서 이번엔 루인과 닮았지만 발전하는데 도움을 준 글이 있다면 무조건 인용표기를 했다.

이와 동시에 루인의 인식은 누구에게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받았는가를, 인용표기 및 참고문헌을 쓰며 깨달았다.

그러니까, 정희진 선생님이 루인의 역할 모델인 건, 우연이 아니다. 루인이 수업조교를 하고 있는 선생님은 루인에게, 여성학방법론이나 여성학인식론 과목이 루인이 다니는 학교에 없음을 걱정해주셨다. 여성학이나 페미니즘의 출발점은 세상을 어떤 위치에서 어떤 식으로 경험/해석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그것은 다른 학과와의 연계를 통한 수업에선 배우기 힘든 지점들이기 때문이다. (반드시 학제에 있어야지만, 혹은 여성학을 배워야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때론 학제에 있기 때문에 더 모를 수도 있다. 실제 이런 경우가 많다. 루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며 깨달은 사실. 루인은 정희진 선생님과 벨 훅스bell hooks를 읽으며 배웠구나.

벨 훅스 읽기는 단순히 영어와 놀기 이상이었음을 갈수록 깨닫고 있다. 그것은 어떻게 질문을 재구성할 것인가를 배운 시간이었고 지금의 루인이 서 있는 위치가 유동적임을 그래서 언제든 변할 수 있는 위치임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는 정희진 선생님 글을 열렬히 챙겨 읽고 강좌를 쫓아다니며 변태하는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어떻게 다시 읽을 것인가 였다. 트랜스란 위치가 “피해자” 혹은 “변방인”의 위치라기보다는 지금의 세상을 재구성하고 ‘다른’ 식으로 말할 수 있는 위치임을, 엄청난 상상력과 용기를 주는 위치임을 깨달을 수 있었던 건, 정희진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다. 벨 훅스 읽기를 통해 루인의 중요한 축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정희진 선생님이 없었다면 힘들었으리라.

그래서 참고문헌을 쓸 때면, 망설인다. 글 내용에선 인용이 없었다고 해도 참고문헌, 즉 루인의 토대를 이루는 참고문헌엔 정희진 선생님 글이 빠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 두 개 넣으면 되지 않느냐고? 아니다. 지금까지 읽은 모든 글을 다 넣어야 가장 정확한 기록이 되는데, 단언하건데, 신문에 쓴 칼럼까지 한다면, 정희진 선생님 글로만 두 세장은 가뿐히 채울 수 있으리라. 그러니 이 번에도 글 속에서 인용한 책과 논문 합해서 세 개만 넣었다.

그러고 보면, 관계망을 그리고 족보를 그리는 것을 파벌을 만들고 계파를 만드는 것으로 착각했나 보다. 그것인 파벌이나 계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구성하는 행위의 하나임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 책 서문에 나오는 감사의 말을, 지금까지도 관례적인 형식-한국에서 쉽게 접하는 인맥중심주의의 결과로 몸앓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때론 그 내용이 정말이란 것을 깨닫는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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