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토요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트랜스젠더는 당신 곁에 있다"는 행사를 진행한다. 소식을 들은 날부터 계속 고민했다. 그날 트랜스젠더 깃발을 챙겨갈까, 논바이너리 깃발을 챙겨갈까.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고 복직과 명예획복을 위한 행동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행사라 트랜스젠더 깃발을 챙겨갈까 했다. 하지만 내게 그날은 또한 이은용 작가와 기홍을 함께 기억하는 날이기도 하다. 특히 기홍은 자신을 논바이너리라고 설명했으니, 그를 기억하기 위해 나 하나 정도는 논바이너리 깃발을 들어도 괜찮겠지. 논바이너리 깃발은 몸에 두르고, 변희수 하사를 기억하는 행사의 기획에 맞춰 트랜스젠더 손깃발을 들고...

그날 트랜스 깃발이 없는 분들에게 대형 깃발과 손깃발을 좀 나눠줄까 고민이다. 비가 온다고 하니 할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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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내용 없이 예전에 했던 내용을 조금 수정하는 수준에서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줌으로 강의하는 자리를 만들어볼까...


2021/03/25 22:06 2021/03/25 22:06

01 서지류 DB-0002431
1994년 초동회를 설립하기 위한 두 번째 모임을 가졌을 때 간사를 정했는데, 간사의 정식 명칭은 '에이즈 성교육 자원봉사원'.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에이즈 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시작했음. 초동회 간사 및 다른 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문서는 "Korea AIDS Center 자원봉사단 활동 계획서"라는 제목으로 작성됨.


02 서지류 DB-0002434
1994년 초동회 문서에는 이대 앞 한 업소(카페인지 바인지는 불확실)의 사장님과 유대 강화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이나 양성애 여성 관련 자료의 필요를 명시함. 즉, 초동회 초기부터 양성애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


03 서지류 DB-0002437
초동회는 1994년 1월 말, 초동회 첫 번째 소식지를 발행하고 곧바로 해체되었다고 알려져 있음. 하지만 그해 2울 중순 문서에 따르면 초동회(동성애女), 친구사이(동성애男)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동회라는 명칭은 좀 더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초동회의 해체가 곧 여성 성소수자의 활동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음. 아울러 일부가 주장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사이의 불화로 초동회가 깨진 것이라고 볼 수 없음.


04 서지류 DB-0002445
초동회에서 같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활동가가 미국으로 가면서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를 보면, 한국 퀴어 운동이 인종주의를 좀 더 깊이 다룰 수도 있었음을 짐작하게 함.


05 서지류 DB-0002464
1995년 7월에 발효하는 끼리끼리 회칙.
1항 모임명은 "한국 여성 동성연애자의 모임인 본 단체명은 끼리끼리로 한다.",
2항 목적은 "끼리끼리는 여성 동성연애자(Lesbian)간의 친목도모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아직까지도 지독한 편견과 억압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게이/레즈비언의 인권 향상에 활동의 주 목적을 둔다."고 작성하였음.
두 가지. 첫째, 동성연애자라는 말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초기에 계속 사용하였음. 참고로 정확하게 이 시기에 PC통신에서는 퀴어라는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고 끼리끼리 활동가도 PC통신에 참여하고 있음. 용어는 항상 혼용해서 쓰임. 둘째, 끼리끼리는 여성 성소수자 단체지만 게이와 레즈비언의 인권 향상이 주 목적임. 게이와 레즈비언이 사이가 나빴다면 이 문구는 가능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 것.


06 서지류 DB-0002467
1995년 8월 끼리끼리의 네 번째 소식지 머릿글에 끼리끼리의 의미를 설명해줌. ""여자끼리의 사랑", "남자끼리의 사랑"의 줄임말과 동시에 동성애자임을 숨기며 뿔뿔이 흩어져 있기보다는 일단 비슷한 사람들끼지 모여야 힘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라고 적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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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락에 등록되었지만 아직 공개되지는 않은 자료를 맛보기 삼아 설명해봅니다. 실물을 열람하시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나만 봐야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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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기록물은 초동회부터 끼리끼리 설립 등을 함께 한 전해성님께서 기증해주신 것입니다.


2021/03/25 17:07 2021/03/25 17:07
01
트랜스젠더퀴어에게 죽지 않고도 살 수도 있는 미래가 있다고, 그런 가능성도 우리에게는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때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크고 어려운 결정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살아서 10년, 50년이 지나도 다시 만나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그래서 계속 살아가는 것도 우리가 선택할 수 있고 모색할 수 있는 미래 중 하나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02
몇 년 전, 어느 특강 자리에서 수강생 한 명이 내가 뱅글을 너무 덕지덕지 착용하고 있다며 무지개 뱅글을 왜 그렇게 많이 착용하느냐고 물었다. 그때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뱅글을 다섯 개 정도는 착용하고 있다. 가방에는 다양한 뱃지가 붙어 있고 겨울이면 겉옷에도 뱃지를 착용한다. 내가 퀴어라고 선언하는 일이 아니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가는데 앞에 가는 사람의 가방에 퀴어 굿즈가 달려 있을 때, 누군가가 퀴어 관련 문구가 적힌 옷을 입고 있을 때, 잠깐이나마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 아는 사람에게 소문 내고 싶은 마음.

누군가 내가 착용한 퀴어 굿즈를 보고, 종일 우울했던 하루에 다만 10초라도 기분이 좋아지기를, 그래서 행여 세상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 그 생각을 다만 10분이라도 미룰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10년이, 30년이 지나서도 인사를 나눌 수 있기를. 요즘은 이런 간절함으로 굿즈를 더 악착같이 착용하고 있다.


03
김비 작가님의 연극 물고기로 죽다를 보고나서, 오드리 로드의 책을 읽다가 어째서인지 이런 고민이 든다.

딴 소리인데 나는 수목장이면 좋겠다. 다시 태어나면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서.



2021/03/13 20:03 2021/03/1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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