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과 유가족은 동의어이어도 괜찮을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유족을 검색하면 동의어로 유가족이 나온다. 그리고 현행 법에 따라 유족은 가족관계증명서에 존재할 수 있는 이들만 포함한다. 배우자, 자녀, 부모, 조부모... 이런 식으로. 그러니까 현재 한국에서 유족은 유가족의 줄임말에 해당하고, 족族은 마치 가족의 줄임말 혹은 족族은 오직 가족만을 지칭한다는 의미로 규정되고 있다.

하지만 유족과 유가족이라는 두 개의 단어가 존재한다면 그 의미, 함의를 별개로 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혹은 한국의 지독한 가족주의가 유족의 가능한 범위를 계속해서 혈연가족으로 한정하도록 상상력을 규정하는 것은 아닐까?

나에게 있어 나의 유일한 유족은 현재 나의 파트너인데, 나의 파트너는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어떤 법적 권한을 갖지 못하며 그래서 나의 사후 삶에 대해 어떤 결정 권한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현재 나의 파트너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를 원하지 혈연가족이 왈가왈부하며 결정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럴 때 유족과 유가족은 별개의 개념으로 가져가는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유족을 내가 지정한 상속인처럼 내 사후 남겨진 상황에 대해 결정권을 지닌 사람으로, 유가족은 내가 가족으로 인정한 사람으로. 물론 가족 개념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 한편에서 진행될 필요가 있지만 기존 혈연가족 개념을 그대로 유지한다고 해도 유족과 유가족을 다른 개념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2022/11/17 11:49 2022/11/17 11:49
최근 뉴스를 보면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해야 하는데 접종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기사 제목을 자주 접한다. 흠... 정부에서는 백신 접종을 홍보하고 있나보다. 그런데 이 행정 방향은 설득력이 있을까?

문재인 정권을 경험하며 정치에 매우 놀라운 일이 많았다. 댱시 민주당은 여당에게 유리하고 야당에게는 불리한, 민주당이 야당이라면 절대 반대할 그런 정책을 다수 법제화하거나 제도로 만들려고 했다. 그 모습을 보며, 민주당은 마치 향후 50년은 집권할 것처럼 행동한다는 고민을 했다. 그리고 현재 민주당은 야당이다.

그런데 당시 더 놀라운 사실은 국민의힘은 마치 자신들이 영원히 집권당이 되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의 가장 대표적인 상황이 코로나19 백신을 둘러싼 국민의힘 의원 및 보수 언론의 행태였다. 코로나19가 한창이고 이제 막 백신이 도입되던 2020년, 당시 부산시의 어느 지역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ㅈㄱㅌ 의원은 아침 공중파 방송사의 라디오에 나와서, 아스트라제네카의 항체 형성율은 50% 정도인데, 이건 아무 효과가 없다 공장에서 공정율이 50%면 이걸 어떻게 쓰겠냐라고 주장했다. (다들 알겠지만 독감 예빙 주사의 항체 형성율이 50% 정도다.) 진행자는 매우매우 화가 나서 인터뷰이로 나온 ㅈㄱㅌ와 싸웠다(이 진행자는 정치인이 팩트에서 벗어난 말을 하면, 참지 않고 싸운다). 그런데 ㅈㄱㅌ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의힘 의원이나 보수 진영 평론가들은 백신은 위험하다, 부작용이 엄청나다, 문재인 정권은 코로나19 방역을 멋대로 하고 있다,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고 그러니 비판할 수 있다. 그런데 백신의 부작용을 지적하면서도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과 백신의 부작용만 강조하고 위험성만 강조하며 정치 방역을 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심지어 조중동 역시 백신의 부작용과 관련한 기사를 계속 게재했다. 인과 관계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계속해서 심각한 부작용, 사망 소식을 경마 중계하듯 전했다. 종종 가짜 뉴스와 혐오를 의도한 뉴스도 자주 실었다. 그때 그 모습을 보며, 한편으로는 화가 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민의힘은 자신들이 영원히 집권을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국민의힘이 집권당이 되었다. 하...

현 정권은 예전처럼 백신 접종을 강조하지 않는 느낌이고(사실상 코로나19가 종식되었다는 분위기가 한 번 지나간 효과이기도 할 것이다) 백신 접종율이 매우 낮아 큰일이라는 식의 기사만 간헐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큰일이라는 기사를 보수언론이 싣고 있다. 문재인 정권 때 부작용이 그렇게 심하던 백신은 대통령이 바뀌면서 부작용도 사라진 것일까? 문제는 저들이 백신 무용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부작용만 과하게 강조했고 방역 정책 문제를 너무도 심하게 공격하고 비난했기 때문에 집권당인 지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점이다. 백신의 효과가 없다고 말하던 국민의힘 진영 사람이 이제 와서 백신 접종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당시 부작용 관련 기사를 두드러지게 실었던 언론이 이제와서 접종이 중요하다고 말하면 그 말을 믿을 수 있을까? 설득력이 있을까? 행정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달라질 수 있어도 최소한 지켜야 할 것, 협조해야 할 것은 협조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무시하고 공격했으니 이제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정치력, 행정력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현재 정권의 행정력, 정치력에 힘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국회의 의석이 적어서가 아니라고 고민한다. 현 대통령이 정치를 할 생각이 없는 것도 큰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던 시절 국힘 진영 사람들이 한 말이 있고 지금은 본인들의 말을 전면 부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어떤 말도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다. 다른 말로 옳은 판단, 옳은 행정일 때도 그것을 설득할 언어를, 이전 정권에서 그들 자신이 전면 부정했으니 어떤 행정력, 정치력이 가능할까.

이것은 정당 정치를 둘러싼 논쟁에 관련한 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비판과 논쟁을 할 때 어떤 언어를 써야 하나와 관련된 글이기도 하다. 상대의 논의를 비판하거나 문제 삼을 때, 나중에 나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과도한 언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데, 사실 나 자신도 별로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비판을 할 때 내가 집권하지 않을 것 같은 태도를 취하지 않기, 다른 말로 나는 마치 저와 같은 위치나 입장에 처하게 될 일이 없을 것이라고 고민하지 않기... 뭐 이런 고민을 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언어는 날선 비판이 아니라 그냥 파괴일 뿐이라는 사실을 더 열심히 고민해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2022/11/16 16:41 2022/11/16 16:41
한 언론이 10.29 참사 희생자의 명단을 임의로 공개하면서 더욱 정치적 논쟁이 심해지고 있다. 그 전부터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논쟁해왔고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라는 방식으로 논쟁을 하고 있었기에 임의로 공개한 행위를 비난하는 의견이 더 크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논쟁이 조금 심란하다. 그 이유는 희생자 명단 공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이는 유가족 뿐이라는 말 때문이다.

첫째. 유가족만이 희생자 명단을 공개할 권한이 있다는 현재의 논쟁은 결과적으로 명단을 공개할 수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없도록 한다. 국민의힘은 공개에 매우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고, 민주당은 유족 동의를 전제로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런 정치적 상황에서 유가족은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공개하면 민주당에 우호적이라는 비난이 가능해지고 공개하지 않으면 국민의힘에 우호적이라는 비난이 발생할 위험이 가능해진다. 그러니까 애시당초 정당에서 이와 관련한 논쟁 구도를 만든 것 자체가 공개를 둘러싼 모든 결정을 정당 정치의 지형에 배치되도록 만들었고 그래서 어떤 선택도 선뜻 하기 힘들게 했다는 점에서 문제다.

둘째. 유가족의 동의 여부, 유족의 판단 여부에 따라야 한다는 말은 유가족에게 모든 판단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발생하는 비난이나 문제나 책임도 모두 유족에게 향하도록 하는 것은 유족의 마음이나 결정을 존중하는 행동이라기보다 유족에게 모든 책임을 방기하는 것과 같다.

셋째. 사실 내가 가장 고민하는 부분은 고인에 대한 판단의 기준, 결정의 근거가이왜 유족에게 있어야 하는가에 있다. 이것은 오랜 시간 퀴어의 죽음과 범주 논쟁을 고민한 측면과 연결된다. 고인의 삶을 해석하고 결정할 유일한 권한이 유가족에게 주어진다면 이것은 고인의 삶을 정상 가족 중심의 서사에 부합하는 형태로 만드는 데 동의하는 것과 같다. 나는 이태원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 중에는 퀴어도 있을 것이라고 고민한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유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지만 무시되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환대받았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말도 안 했을 것이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과 관련한 어떤 결정도 혈연가족이 하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유가족을 고인의 처우에 관한 유일한 결정권자, 유일한 심급으로 호명하는 행위는 고인을 애도하는 행위라기보다 유가족이 원하는 가족 서사 속에 비규범적 존재이기도 한 고인을 규범성으로 재창조하는 행위와 같다. 이것에 동의해야 하는가. 퀴어의 죽음, 퀴어의 슬픔, 퀴어의 애도와 관련한 많은 논의는 이성애 규범적 가족주의가 어떻게 퀴어를 삭제하는지, 퀴어와 관련한 흔적을 어떻게 부정하는지를 계속 비판해왔다. 그래서 모든 결정 권한이 유가족에게만 있는 것처럼 논하는 태도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가장 퀴어 혐오적인, 참사와 죽음에서 퀴어를 삭제하는 태도에 공모하는 위험을 동반한다. 유가족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은 고인을 애도하는 행동인가, 유가족의 가족 규범성, 이성애 규범성을 복원하고 지지하는 행동인가.

이런 고민이 있어, 이번 논쟁이 편하지 않다. 희생자의 명단 공개를 둘러싼 논쟁을 경유하며 다른 논의의 가능성을 지우고 유가족의 권한을 계속해서 절대화하는 일은 이태원에서 발생한 참사를 역설적으로 안전하게 만든다.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징, 공간적 특징, 역사적 맥락이 모두 삭제되고 유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이성애 기반의 규범적 가족주의만 남겨지게 된다. 이것은 정말 괜찮은 일일까. 이런 이유로 나는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을 것이라면 이태원 참사보다 10.29 참사라고 부르는 것이 낫다고 고민한다. 이태원 참사라고 부르려면 단순히 이태원이라는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라서 부르는 명명이 아니라, 이태원이라는 지역의 특징 즉 퀴어와 미/등록이주민과 비규범적 존재가 일상을 살아가고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는 가장 빨리 비난의 대상이 되어온 편견이 혼재하는 이 공간의 특징을 제대로 고민하면서, 동시에 유가족의 슬픔을 존중하지만 고인의 삶에 대한 결정권을 유가족에게만 절대적으로 부여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2022/11/15 18:39 2022/11/15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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