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서지류 DB-0002431
1994년 초동회를 설립하기 위한 두 번째 모임을 가졌을 때 간사를 정했는데, 간사의 정식 명칭은 '에이즈 성교육 자원봉사원'. 한국 성소수자 운동은 에이즈 운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시작했음. 초동회 간사 및 다른 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문서는 "Korea AIDS Center 자원봉사단 활동 계획서"라는 제목으로 작성됨.


02 서지류 DB-0002434
1994년 초동회 문서에는 이대 앞 한 업소(카페인지 바인지는 불확실)의 사장님과 유대 강화가 필요하다고 나와 있을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이나 양성애 여성 관련 자료의 필요를 명시함. 즉, 초동회 초기부터 양성애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


03 서지류 DB-0002437
초동회는 1994년 1월 말, 초동회 첫 번째 소식지를 발행하고 곧바로 해체되었다고 알려져 있음. 하지만 그해 2울 중순 문서에 따르면 초동회(동성애女), 친구사이(동성애男)로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동회라는 명칭은 좀 더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초동회의 해체가 곧 여성 성소수자의 활동 중단을 의미하지는 않음. 아울러 일부가 주장하는, 게이와 레즈비언 사이의 불화로 초동회가 깨진 것이라고 볼 수 없음.


04 서지류 DB-0002445
초동회에서 같이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활동가가 미국으로 가면서 한국에 있는 동료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를 보면, 한국 퀴어 운동이 인종주의를 좀 더 깊이 다룰 수도 있었음을 짐작하게 함.


05 서지류 DB-0002464
1995년 7월에 발효하는 끼리끼리 회칙.
1항 모임명은 "한국 여성 동성연애자의 모임인 본 단체명은 끼리끼리로 한다.",
2항 목적은 "끼리끼리는 여성 동성연애자(Lesbian)간의 친목도모를 가장 우선으로 하고, 아직까지도 지독한 편견과 억압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의 게이/레즈비언의 인권 향상에 활동의 주 목적을 둔다."고 작성하였음.
두 가지. 첫째, 동성연애자라는 말은 성소수자 인권운동 초기에 계속 사용하였음. 참고로 정확하게 이 시기에 PC통신에서는 퀴어라는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고 끼리끼리 활동가도 PC통신에 참여하고 있음. 용어는 항상 혼용해서 쓰임. 둘째, 끼리끼리는 여성 성소수자 단체지만 게이와 레즈비언의 인권 향상이 주 목적임. 게이와 레즈비언이 사이가 나빴다면 이 문구는 가능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세상을 함께 만들 것인지를 고민한 것.


06 서지류 DB-0002467
1995년 8월 끼리끼리의 네 번째 소식지 머릿글에 끼리끼리의 의미를 설명해줌. ""여자끼리의 사랑", "남자끼리의 사랑"의 줄임말과 동시에 동성애자임을 숨기며 뿔뿔이 흩어져 있기보다는 일단 비슷한 사람들끼지 모여야 힘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다."라고 적혀 있음.


+
퀴어락에 등록되었지만 아직 공개되지는 않은 자료를 맛보기 삼아 설명해봅니다. 실물을 열람하시는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립니다. 나만 봐야지...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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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기록물은 초동회부터 끼리끼리 설립 등을 함께 한 전해성님께서 기증해주신 것입니다.


2021/03/25 17:07 2021/03/25 17:07
경조사를 생각한다.

사무실 내규를 정하며 경조사 규정을 같이 논의했었다. 퀴어에게 경조사는 그 의미가 다르니 가족 중심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사람의 경조사에 경조사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논의. 부모 조사는 보통의 회사와 달리 좀 더 길게 사용할 수 있다는 식의 논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를 했다. 이렇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둔다고 해도 현실은 어렵다. 경조사를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관계도 있다.

10년도 더 전, 당시 친했던 사람의 부모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다녀왔고 그냥 지나간다 싶었다. 그 며칠 뒤, 친했던 사람의 파트너(역시 친했다)를 만나 이야기를 할 일이 있었다. 파트너도 장례식장에 갔지만 그저 식사 자리 한 곳을 차지하고 몇 시간 동안 음식만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음식을 오래 오래 천천히 먹었다고 했다. 어느 쪽의 부모에게도 밝히지 않은 사이. 그래서 장례식장에는 친구로 갈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였고 사랑하는 사람,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좀 더 적극적으로 위로해주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저 장례식장을 한 번 찾아가 오래 머물며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내게 소중한 사람의 슬픔을 그저 멀리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슬픔. 그런데 나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다른 모두에게 말해도 내게 소중한 바로 그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는 슬픔. 어떤 쓸쓸함.

그리고 나는 장례식장을 아예 찾을 수 없는 관계를 고민한다. 파트너의 가족 중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장에 머물고 있는데, 그곳을 찾을 수도 없고 존재 자체를 드러낼 수도 없는 관계. 지금 어떤 상태인지 궁금하지만 계속해서 물을 수 없고 그저 계속 걱정만 할 뿐이다. 위로의 메시지도 한계가 있고, 상황을 모르니 보낼 수 있는 말,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같은 말 뿐이라 더 이상 말을 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진다. 소중한데 존재할 수 없음. 이 상황이 나도 파트너도 모두가 속상한데 또 이것을 지키는 것이 현재의 최선이다. 그래서 그저 기다리고 기다리는 상황.


태양이 뜨겁다.
하루 종일 해는 지지 않고 소금꽃이 핀다.

2020/06/19 15:50 2020/06/19 15:50
"언제나 억압자들은 정작 자신에겐 없는 이해심을 억압받는 자들에게 발휘해 달라고 요구한다."(오드리 로드)

"자신이 억압받는다고 다른 이를 억압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오드리 로드)

2020/03/29 17:14 2020/03/29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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