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이후

주변미터 기준, 녹색정의당은 50명은 당선되어야 했지만 그 결과는 슬펐다. 무엇보다 오랜 정치인 심상정은 사실상 정계 은퇴를 시사했다. 다음 세대의 새롭게 의제를 만들어갈 수 있는 정치인은 장혜영을 비롯한 다른 누군가가 될 것이다. 6색 무지개를 선거용 트럭에 칠했던 장혜영은 정치인으로 다음을 어떻게 모색할 수 있을까.

선거를 압두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너무 고개를 들어서 좀 무서웠다. 그 와중에 더 무서웠던 것은 자유통일당이 여론조사에서 4.1%가 나왔다는 점이었다. 만약 저들이 당선자를 내면 어떡하지? 다행이라면 2%대 지지율로 당선자를 내지 못 했지만 문제는 그 지지율이 녹색정의당과 비슷하다는 데 있다.

개신교 기반 극우 정당이 당선인을 내는데 실패했다면 트럼프 타입의 혐오 기반 극우 정당은 당선인을 3명이나 배출했다. 개혁신당 이야기다. 이준석의 당선에 여러 사람이 (우려와 함께) 놀라움을 표했지만 진짜 끔찍하다. 혐오와 비난만이 유일한 정치적 수단인 인물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같은 당의 다른 비례 당선자는 이준석이 이미 국회의원 10명의 역할을 해왔다고 했지만 이준석은 정치인으로서 정책을 내고, 이를 토론하고, 의제로 풀어가는 능력을 증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장애인을, 여성을, 페미니즘을, 퀴어를, 노인을, 외국인을, 이주민을 그리도 또 다양한 범주의 사람들을 혐오하는데 동조하고 그에 맞춘 주장을 했을 뿐이다. 나로서는 그에게 어떤 기대도 없는데, 평론가나 동료 정치인들이 그를 대단한 정치인처럼 평가할 때마다 곤혹스럽다.

정당 정치를 잘 모르지만 해보는 추정 하나. 한국에서 극우 성향 정당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 하는 이유는 민정당계 정당 즉 국민의힘이 극우 성향의 정치를 직접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극우 정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적어서가 아니라 민정당계 정당이 극우 정치의 이념과 세력, 의제를 수용하고 있어서 별개의 극우 정당은 힘을 얻기 어려운 것 아닐까 싶다. 그리하여 개신교 기반 극우 정당이 존재하는 이유는 민정당계 정당에게 알리바이를 제공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극우 의제를 보수 의제로 만들기 위한 것이지 않나 싶다.

그나마 진보당이 세 명의 당선자를 확보해서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진보당은 지역구에서 민주당과 상당수가 단일화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정책 협의가 되었다고 들었다. 부디 그 협의가 22대 국회에서는 논의가 되기를…

노동당 지지율이 매우 낮아 아쉬웠다. 후보들이 좋았는데…

어제 소속 단체에서 후원의 밤을 했고 많은 이들이 왔다. 그 중에는 녹색정의당 대표도 있었다. 물론 누구에게도 자신이 왔음을 알리지 않았고 4.16 10주기 행사를 마치고 지인들과 조용히 왔지만, 어쩐지 내가 그의 얼굴을 알아서… 행사가 끝나고 청소를 하다가 그의 앞을 지나치게 되어서, 고생 많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랬더니 그는 당황하다가, 당선자를 못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그 말이 매우 슬펐다. “중간 계투로 올라갔다가 마무리 투수” 역할까지 하게 된 대표이고, 이래저래 많이 애쓴 것을 알고 있기에, 진짜 고생이 많았다고 어떤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그 말은 더 큰 부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미안했다. 위로를 하려고 전하는 말이 상대에게 부담일 때, 그것은 잘못된 말을 선택한 것이니까.

미안함에, 종일 그 말이 상황이 신경 쓰이네…

선거

아침에 학교 가기 전, 사전투표를 했다. 어영부영하면 못 할 수도 있고, 빨리 하는 것이 속편하겠다 싶어 고민하다가 그냥 아침 일찍 투표부터 했다. 나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비례정당에서 세 곳을 두고 고민했다. 어떤 사람은 네 곳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상당히 인기 있는 정당보다는 나라도 한 표 보태야지 싶은 정당을 두고 고민이 좀 많았다. 어휴… 비례투표 용지는 왜 이렇게 긴가…

이번 선거를 앞두고 데이터센트럴을 들으며 좀 충격적이었다.

ㄱ. 민주당 국회의원은 상상 이상으로 성실하게 일한다. 상임위나 본회의 출석율 95%는 중간 정도의 성실성었고 대표 발의한 법안도 100개가 넘는 경우도 빈번했다. 나의 직장에서 동료들과 시끄럽다고 욕하는 한 국회의원의 경우, 입법노동자로서의 역할은 상당히 성실해서(출석율이 거의 99%, 100%였다) 좀 충격받았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런 사람이?? 싶은 후보가 많아 편견이나 이미지를 재생산했다.

ㄴ. 진보 계열 정당의 지역구 후보는 좀 슬펐다. 호남 지역에 출마한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경우 중앙당 공약만 있고 지역구 공약이 없었다. 진보 정당의 지역구 출마는 비례를 홍보하기 위해서라지만, 사실 지역구 출마 자체가 상당한 헌신과 비용이 드는 일인데 15% 이상을 득표하지 않는 이상 그 모든 비용은 개인의 빚으로 남기 마련이다. 언제까지 개인의 헌신으로 유지되어야 할까? 이것은 달리 말해 진보정당의 지역구 의원이 왜 이렇게 드문가, 그리고 새로운 지역구 의원이 등장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가를 말해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지역구 공약이 없는 후보를 뽑아야 할 이유를 설명해주지 못하는 상황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또 슬프고 아쉬웠다.

ㄷ. 생각보다 괜찮은 입법 노동을 한 현역 후보도 다수였다. 나는 나름 뉴스를 잘 챙겨 읽는 편인데 그럼에도 지난 4년 동안 들어본 적 없는 법안이 다수였다. 그러니까 공중전, 큰 그림 그리는 작업, 혹은 잘못된 행태를 보도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언론에서 괜찮고 가치 있는 입법 활동도 소개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ㄹ. 후보들의 공약을 들으며, 구청장이나 시장 후보의 공약과 국회의원의 공약을 구분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웠다. 동네 공원를 만들겠다는 정책이 국회의원이 낼 공약은 아니지 않은가.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나왔다면 그에 걸맞는 고민이 부족한 후보도 상당해서 아쉬웠는데 이것은 정치인 역시 직업인이자 노동자라는 자각이 필요한 것이지 않나 싶었다. 국힘에서 종종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너희들을 위해 선심쓴다’는 태도로 출마한 후보가 있는데, 이건 너무도 명백하게 정치 혐오이자 무시다. 정치인도 노동자고, 국회의원이 된다는 것은 구직활동이다. 다른 말로 국회의원은 성실해야 하고, 자신의 업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한다면 국회의원의 역할에 맞는 공약을 냈으면 했다. 내가 사는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 역시, 지역구 후보로서의 공약도 있지만, 공원 조성 같은 공약도 있어서 당혹스러웠고…

ㅁ. 웃긴 거: 국힘은 재산의 상당수가 후보 본인의 것이었는데,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경우 재산의 상당수는 후보가 아니라 파트너의 것이었다. ㅋㅋㅋㅋㅋ 파트너가 관리해야 허튼 정치 활동을 안 하지… 비트코인 등 코인을 100원 1000원 단위로 갖고 있는 후보들… 공부하려고 구매했겠지만 ㅋㅋㅋ

ㅂ. 인권 운동을 하다보니 대외적인 이미지 등으로 좋게 평가하는 정치인이 종종 있는데, 입법 노동자로서의 성실성이라는 측면에서 당혹스러운 경우가 있었다. 혹은 이미지가 좋았음에도 지난 번에 출마를 못해서 아쉬웠던 경우도 있는데, 그 지역에 당선된 다른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이 상당히 좋아서 반성한 경우도 있었다. 정당의 정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한편, 지금 입법 노동자로서의 활동 역시 좀 더 정교하고 중요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는 반성을 했다.

동의/합의의 시차

수업 시간에 잠깐 언급한 내용인데…

폭력은 무엇이고, 동의나 합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종식되는 것일까를 질문했다. 폭력이 무엇인가도 어려운 문제이지만, 무엇보다 동의나 합의는 언제 시작해서 언제 종식되는 것일까를 둘러싼 고민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유성애자여서 성적 관계를 맺기로 한 합의는 언제까지 유효한 것일까? 그 합의는 유효한 것일까? 20년 정도 전에 성폭력의 사후 구성과 관련한 논문이 나왔는데, 그 논문의 주요 쟁점은 성폭력 발생의 시차였다. 연애 관계일 당시에는 합의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서 다시 고민해보니 그것은 합의라기보다 강요였고, 강압은 아니라고 해도 마지 못해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논문의 중요한 통찰은, 성폭력은 자명한 사건이 아니라 사후 해석과 시차가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점이었다. 이런 시차의 발생은 동의와 합의 개념의 시작에서 종식까지의 시간성을 고민하도록 한다. 어떤 사건이나 행위에 대해, 더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로 서약하면 동의나 합의는 완결되는 것일까? 아니면 동의나 합의는 계속해서 지연되고 종식될 수 없는 속성인 것일까? 종식될 수 없는 동의나 합의라면 어디서 폭력이 발생하고 어디서 친밀감이 구축되는 것일까?

뭐 이런 식의 질문을 했었다. 물론 여기에 대해 나 역시 충분한 답을 갖고 있지 않다. 그저 동의나 합의에서 시간적 완결성을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더 많은 고민과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렇게 말하니 최근 발생한 정치권의 ‘사건’이 떠오르는데, 복잡한 논의 지형을 소란으로 만들어버리는 이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화가 난다. 나는 화가 나지만, 반성폭력 운동과 동의/합의를 둘러싼 논의를 오래 고민한 이들은 얼마나 속이 터질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