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며칠 전, 원문복사신청을 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고 있던 논문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여러 논문을 한꺼번에 하다보니 내가 무슨 논문을 신청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것. 암튼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논문을 찾았는데.

담당자는 처음엔 무난하게 반응하더니 논문 제목을 읽곤 미묘하게 까칠하게 반응했다. 논문 제목은 기독교에서 본 동성연애 어쩌고 저쩌고. 그는 나를 게이로 이해하고 까칠하게 대한 건지, 논문 제목이 동성애혐오 성격이 짙어, 이런 논문을 읽는 내가 보수기독교에 동성애혐오인 사람이라고 이해하며 까칠하게 대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다. 후자일 가능성에 한 표.

02
2001년 겨울부터 사용한 인터넷을 해지했다. 이유는 간단한데, 돈은 나가는데 인터넷이 안 되어서.

몇 달 전, 회선을 교체해야 하고 회선을 교체하지 않으면 인터넷이 안 된다는 내용의 전화가 왔다. 난 기사를 玄牝에 들이는 것도 싫고 기사가 제시한 시간에 玄牝에 머물지도 않아서 회선 교체를 안 했다. 그랬더니 얼추 한 달 전부터 인터넷이 안 되기 시작한 것. 이럴 바에야 어차피 몇 달 뒤 이사를 갈 거고, 玄牝에서 인터넷을 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 그냥 해지했다.

근데 인터넷 해지 전화를 하고서야 깨달은 것. 나 3년 전에 3년 약정으로 계약했다고 하더라. 응? 3년 전에 3년 약정으로 내가 계약을 했다고? 그런 적 없는데? 하나로에서 SK브로드밴드로 넘어가면서 자기들 멋대로 한 거겠지. 따질까 했지만 해지하는 마당에 따져서 무엇하나 싶어 그냥 관뒀다. 하지만 황당할 따름. 그럼 2001년 12월부터 사용한 건 뭐가 되지? 얼추 8년 장기 고객이 아니라 3년 고객일 뿐인 이 황당한 약관이라니!

03
인터넷을 해지할 때 상담직원이 해지하지 말라고, 장기고객에게 주는 혜택이 아깝지 않느냐고 했다. 그냥 두면 기존의 가격에서 7,000원 정도 할인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별로 안 아깝다. 내가 계약한 적도 없는 약정을 만든 게 괘씸할 뿐.

암튼 장기고객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떠오르는 건 핸드폰. 2001년 11월인가 12월부터 중간에 기기 한 번 바꾼 것을 제외하면 같은 통신사를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난 장기고객 혜택에 무관하다. 몇 년 이상이란 조건엔 충분하지만 월 사용료 3만 원 이상이란 조건엔 한없이 부족하니까. 이젠 확인도 안 하는데. 나의 월 사용료는 기본료에 살짝 더 나온다. 1만 몇 천 원 수준. 정확한 금액은 나도 모른다. 그러니 장기고객 혜택이란 말은 나와 무관하다.

04
비가 내린다.
할 말이 없어도 무언가를 말하고 싶고, 쓰고 싶은 날이다.

어젠 마음이 뻥 뚫린 것만 같은 밤이었다. 음악이 없으면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2009/10/31 13:58 2009/10/31 13:58
제목: 행복을 파는 여자 / 행복을 파는 여자들 / 행복을 사는 여자 / 행복을 사는 여자들

뭐 대충 이런 제목입니다. 상당히 오래 전에 기자가 썼다고 합니다. 전 순간 르포작가가 쓴 "서울서 팔리는 여자들"인가 했지만 아닌 듯합니다. 내용은 레즈비언 관계를 다뤘다고 하니까요.
혹시 관련 정보를 아시면 제보 부탁합니다!!

정보 습득 경위
: 한 손님이 대충 이런 제목으로 매우 오래되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이 책을 찾았습니다(그러니 정확한 제목은 아니며 전혀 다른 제목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낯설었지만 찾았으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없다고 하니, 레즈비언 소설 혹은 레즈비언이 나오는 소설이라는데, 그이는 제가 레즈비언이란 단어를 모르는 사람으로 대하며 부연 설명을 하려고 하더군요. 그래서 더 들을까 하다가 관뒀습니다. 레즈비언 관련 소설이란 정보를 획득한 순간, 그 책이 있어도 없다고 말해야 하니까요. 하하. ㅡ_ㅡ;; 불량 점원! 그리고 다시 한번 열심히 찾았지만 역시나 없네요. 그래서 조금 전 검색사이트를 통해 확인했지만 보험설계사 자서전만 나오고 제가 찾는 책은 안 나와요.

혹시나 해서, 이 넓고 넓은 웹의 바다에서, 여러분들의 엄청난 정보력을 믿으면서 부탁합니다.
혹시 정확한 제목이나 관련 정보를 아는 것 있으신가요?
2009/10/29 22:13 2009/10/29 22:13
인종차별주의와 연관된 공포가 상당히 가시적으로 대상화된 흑인의 몸에 투사된 관념에서 나오는 것인 반면, 동성애공포증에 깔려있는 공포는 누구나 게이나 레즈비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온다. (231)

혐오범죄는 개인을 처벌함으로써 가시적인 동성애의 사례를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사례로 인해 나머지 동성애자들을 벽장 속에 가두어 두는 효과가 발생한다. 게다가, 동성애가 제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 인식되자, 동성애를 공적이고 합법화된 공간에서 제거하려는 전략이 의도된다. 동성애자 결혼금지법은 동성애의 “확산”을 멈추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232)

에이즈 담론에서 아프리카, 동물, 표면상 일탈적으로 보이는 섹슈얼리티가 서로 연결된다는 점은 이러한 관념들이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음을 말해준다(Hammonds 1986; Watney 1990). 폴라 기딩스가 논의한 대로, “믿을 만한 학회지에서도 예컨대 녹색원숭이와 흑인여성을 연결한다거나 에이즈의 기원이 아프리카 성매매여성(흑인여성의 오염된 성기)에게 있다고 추정하려 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계속해서 인종차별주의 이데올로기에 취약하다는 것을 드러낸다”(Giddings 1992, 458). (246-247)

그 이후 윌리암스는 포르노그래피가 성관계와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이라고 논의한다. 윌리암스는 포르노그래피를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재연하는 “사유관습”이라고 보게 되었다. 윌리암스에게 포르노그래피는

관음증적인 응시주체로 하여금 상상력을 펼치며 관찰대상의 주체성을 말소해버리는 자동감각에 탐닉하게 한다. 온전한 타인과 상호작용하며 듣고 대화하고 상대를 돌보는 대신에 그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낸 감각으로 대체해 버리는 사유습관인 것이다. … 대상은 진압되어 이러한 감각이 투사되는 유순한 “사물”이 된다.(Williams 1995, 123) (249)


패트리샤 힐 콜린스의 책 『흑인 페미니즘 사상』(박미선, 주해연 옮김. 서울: 여이연, 2009)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섹슈얼리티와 성정치를 다룬 6장을 가장 좋아해요. 그 중에서도 포르노그래피를 사유습관으로 분석한 윌리암스의 통찰은 매우 매력적이라는. 에헷.

한국에 페미니즘 이론 공부할 때 보통 로즈마리 통의 『페미니즘 사상』을 많이 사용했는데요(요즘도 그런가요?). 저는 콜린스의 책이 훨씬 좋다고 느껴요. 기초입문으로 벨 훅스의 『행복한 페미니즘』을 읽고 콜린스의 책을 읽는다면 무척 좋을 듯. 통의 책은 젠더를 중심으로 여타의 범주를 덧붙이며 설명합니다. 젠더는 이런데 계급에서는 저렇고, 인종이 더해지면 또 다르고 …. 어떤 보편적인 젠더(혹은 ‘여성’)를 가정하고 그 기준에 계급이나 인종을 더하며 다양성을 만드는 식이죠. 사실 많은 이들의 글이 이렇고요. 하지만 콜린스의 책은 덧붙이기 식의 설명이 아니라 뒤섞여 있는 상태에서 설명합니다. 최소한 세 가지 범주, 젠더-인종-계급의 교차점, 그리고 (이성애)섹슈얼리티의 교차점들에서 이들이 서로 얽혀 있음을 매우 잘 분석하고 있습니다. 전 이 책이 다양한 범주의 교차점을 분석하는 글쓰기나 방법론의 역할모델로, 교차점에서 사유하는 방식의 역할모델로 매우 좋다고 판단해요.

불만이 없는 건 아닙니다. 이 책에서 콜린스는 트랜스젠더를 여러 번 언급합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가 분석 범주는 아닙니다. LGBT를 나열할 때만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굳이 트랜스젠더를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요? 반면 흑인 레즈비언 인식론은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양가적인 감정이 든다는. 하하.

+또 다른 리뷰가 어딘가에 실릴 예정입니다만 ... 아하하;;;;;;; ㅠ_ㅠ
2009/10/27 21:30 2009/10/27 21:30
01
요즘 음악을 틀어 놓고 잠든다. 잠귀가 밝은 편이지만, 음악 없인 잠들 수가 없어서. 그리고 음악으로 인해 숙면을 취할 수 없다. 악순환.

예전부터 음악을 틀어 놓고 잠들었던 게 아니다. 얼추 열흘 혹은 일주일 전부터 생긴 습관이다. 음악 소리가 들려야 잠들 수 있다. 잠드는 중간에 잠깐 깨었을 때 음악소리조차 없이 침묵만 무겁게 떠돈다면 불쑥 어떤 감정이 튀어 나올까 두려워 한다. 음악소리라도 나를 감싸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이런 기대로 잠든다. 그리고 음악소리는 잠드는 순간에도 나를 일깨운다. 잠들 수도 없고 잠들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게 늘 깨어 있는 상태로 잠들어 있고, 잠들어 있는 상태로 깨어있다.

어제 ㅈ님께 지나가는 말로 요즘 잠을 잘 못 잔다는 얘길 했는데 …. 오늘 ㅈ님께 전해줄 게 있어 잠깐 만난 자리에서, 무려 매우매우 귀여운 숙면마스크를 내게 선물로 주셨다!!! 정말 고마워요! (근데 여기 들어오시려나? ;;; )

02
네 마음은 이미 떠났니?
내 마음아, 너도 진정 가는 거니?
-허수경, 마치 꿈꾸는 것처럼

03
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면 그건 나의 즐거움도 있지만 이런 나를 지지해주고 독려하는 다른 트랜스젠더들, 퀴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공부는 내게 일종의 즐거움이자 욕망이며, 의무이자 권리다. 그러니 나의 앎은 결코 나 혼자 독점할 수 있는 앎이 아니며 나 혼자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앎이 아니다. 많은 이들의 지지와 격려 속에서 그네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얻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 언어를 팔아 내가 먹고 살고, 글쓴이 자리에 언제나 나의 이름만 들어간다. 하지만 글쓴이 자리의 나머지 여백엔 무수하게 많은 이름들이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모든 문장에 나 아닌, 나인 무수한 이름들이 꿈틀거리며 숨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2009/10/27 20:54 2009/10/27 20:54
오전에 당고님 블로그에서 읽은 서평에 끌려, 보우먼의 『럼두들 등반기』(김훈 옮김. 서울: 마운틴북스, 2007)를 읽었다. 눈치 없는 산악대장, 길치인 길안내인, 과학실험에만 관심 있는 과학자, 사실상 혼자만 아픈 의사와 같은 이들이 등장인물. 에베레스트를 능가하는 높이의 산, 럼두들에 오르려는 이들의 등반 과정이 내용인데 ….

하지만 우리에게는 시간 여유가 없었다. 일몰 전까지 정글을 곤경에서 구해 내려면 뭔가 조치를 취해야 했다. 그것도 신속하게. 분명 누군가가 아래로 내려가야 했다. 그런데 누구를 내려보내야 하지?
나는 오전에 일어난 사건 덕에 그 해답을 얻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거는 특권을 차지할 만한 사람으로는 셧만 한 사람이 없었다. 셧이 그 영애를 다른 사람들에게 양보하려 최선을 다한 모습은 그가 얼마나 겸손한 사람인가를 보여준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이 진짜 바라는 것을 포기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곧 그를 로프로 붙잡아 맸다.(66)

이런 식의 유머가 이 책엔 가득하다. 읽는 내내 키득거렸다. 무려 도서관에서 읽었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민망할 지경이었다. 위에건 그나마 전후 맥락 없이도 웃겨서 인용했지만, 앞뒤 맥락 속에서 웃긴 내용이 너무 많다. 이들은 결국 등반에 성공하지만,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단 두 가지. 하나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을 피하다 보니 어쩌다가! 다른 하나는 다재다능하고 힘 좋은 포터들이 들고 올라가서. -_-;; 흐흐. 즐거운 오전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원래 읽어야 하는 책은 외면했다. *먼산*

난 이 책이 출판사의 소개처럼 “코믹산악소설”로도 충분히 즐거운 소설이지만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관한 블랙코미디로도 더없이 좋은 소설로 읽었다. 눈치 없는 대장은 대원들의 싸움을 격렬한 언쟁과 대화로 이해하며 좋은 징조로 받아들인다. 아울러 럼두들이 위치한 동양의 요기스탄이란 나라, 현지에서 채용한 포터들을 미개한 존재로 이해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산소호흡기 사용을 포터들이 거절하자 포터들은 산소호흡기가 마법을 거는 물건으로 이해하는 듯하다고 쓴다. 이것은 정확하게 서구가 동양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소설에도 등장하지만 포터들은 서구유럽에서 온 등반대들이 간신히 오르는 산을 산책하듯 어렵지 않게 오른다. 누군가에겐 도전의 대상이며 정복의 대상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일상 공간이다. 맥락을 탈락하면 언제나 등반 대장과 같은 식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저자가 얼마나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또 다른 의도는 제국주의나 서구의 시선에 대한 조롱이 아닐는지.

암튼 즐거운 오전이었지만, 다 읽고 나서 쌓여 있는 할 일을 깨닫곤 다시 무거워진 오전이었다. ㅜ_ㅜ
2009/10/25 21:53 2009/10/25 21:53
01
어찌된 조화인지 4시간 전에 퇴고한 글을 퇴고했더니, 고칠 부분이 와르르 쏟아지더군요. 크릉. 이건 도대체 무얼 의미하는 걸까요? 4시간 전의 퇴고는 날림이었을까요? 아님 그만큼 고칠 부분이 많은 글이란 의미일까요? 아무려나 퇴고할 부분이 많다는 건, 좋은 겁니다. 아무렴요. (우헹 … 울면서 달려간다.;;;)

이제까지 글을 쓰고 나면 항상 혼자 검토한 후 발송했는데요, 이번엔 누군가에게 미리 논평을 받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습니다. 일단 청탁한 곳에 파일을 보낸 후 몇 사람에게 원고를 줘서 논평을 받고 수정한 후 다시 보내는 거죠. 하하. 청탁한 곳에선 일단 원고가 들어오면 안심을 하니, 완성도가 좀 떨어져도 보내는 거죠. 그러고 나서 최종 마감일을 확인한 후 그 며칠 전에 다시 보내고요. 근데 논평을 받고 싶은 이들이 모두 바쁘다는 것! 흑흑. 뻔뻔하게 괴롭힐 것인지 그냥 자숙할 것인지 며칠 더 고민한 후 결정할까 봅니다.

02
블로그 검색유입을 확인할  때마다 깨닫지만 제가 쓴 글은 “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뿐인가”(http://bit.ly/6kW9U)뿐인 거 같아요. 으흑. 나름 글을 많이 썼지만 사람들이 계속해서 검색하는 글은 저것. 그래서 꼭 제가 저 글만 쓴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많죠. 흐흐.

사실 저 글은 다른 어떤 글보다 많은 독자를 가진 매체에 실렸고, 읽기 수업의 교재(무려시중에 판매한다는;;)에 재수록 되기로 했으니 그런 거라고 믿고 싶어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저 글이 유일하게 읽을 만한 글인지도 몰라요. 끄아악. ㅠ_ㅠ 뭐, 어쨌든 한 편이라도 읽을 만한, 사람들이 찾는 글을 썼다는 것 자체로 만족해야 할까요? 아무려나 찾아 주는 분들에겐 고마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매체에 발표한 글이 유일하게 찾는 글이라는 건, 왠지 쓸쓸하기도 합니다. 이건 성장에 강박적인 저 자신이 성장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으니까요. 반성해야죠.

03
그나저나 이번 글쓰기는 나름 재밌는 부분이 있어 좋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으면 다른 사람들에겐 별로일 가능성이 높지만요. 으흑. 전체 분량 중 후반부는 앞으로 특강 갈 때 꽤나 유용하게 사용할 부분이기도 하고요.

참, (예전에 한 번 언급했듯)지난 주에 특강을 했었는데요. 제게 특강 기회를 꾸준히 챙겨주는 선생님의 수업이었습니다. 그 분과도 꽤나 죽이 맞는 편이라 종종 재밌는 상황을 연출하곤 합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제 이성애혈연가족을 제외하면 커밍아웃이건 아웃팅이건 개의치 않는데요. 사실 ‘아웃팅’을 좀 더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특강을 할 때면 종종 눈치를 챌 수 있는 사람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저를 드러냅니다. 그러니 대부분은 못 알아듣고요. 하지만 특강이 끝난다고 끝은 아니죠. 그 다음 시간에 선생님이 저를 트랜스젠더라고 소개합니다. 그럼 수강생들은 난리가 나죠. 정말 몰랐다고, 다시 한 번 보고 싶다고. 하하.

이건 한국에서 트랜스젠더가 소비되는 방식과 관련 있죠. 더구나 어떤 의료적 조치도 취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상상하지 않으니까 더 그렇죠. 그래서 저를 한 번 보고 난 후, 저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한다고 합니다. 이건 제가 경험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고요. 그 선생님이 나중에 들려주는 부분이죠. 저를 한 번 본 후, 나중에 제가 트랜스젠더란 걸 알고 났을 때 달라지는 트랜스젠더 이미지. 그래서 전 이걸 선생님과 협의해서 전략적으로 사용하면 어떨까, 상상하고 있습니다. 하하.

그나저나 그렇게 트랜스젠더 이미지를 달리한 사람들에겐 부작용도 있습니다. 저와 같은 트랜스를 알 수 있거나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드무니까요. 그래서 수술 안 한 트랜스도 있다고 말하면 주변에선 “에이 설마?”라고 반응하니까요. 뭐, 어쨌든 그건 제가 감당할 몫은 아니고요. :P

이번에 쓴 글은 바로 이런 부분과 관련 있습니다.

04
다음 달 말이면 다시 수입원이 하나인 알바 인생이 됩니다. 아슬아슬한 인생이 도래하네요. 현재로선 나름 투잡 인생이거든요. 으하하. 사실 제 직업은 매우 많지만, 고정 수입이 들어오는 직업은 비정규직 하나, 알바 하나죠. 그래서 가끔은 이 둘이 제 직업 같기도 해요. 에헤헤. 그 중 비정규직은 다음 달로 끝. 문제는 알바인데, 이게 부동산 경기와 관련 있다고 합니다. 나 이사도 가야 하는데! 어찌하여 부동산 경기는 제 알바와 이사 모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거냐고!!
 
암튼 12월부터는 정말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 군요. 꽤나 위태롭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위태로우니까요. :)
2009/10/22 09:36 2009/10/22 09:36
헌책방에서 김훈의 산문집이 있어 몇 줄 읽었다. 그는 연필로 쓰는 글쓰기에 애정을 표했다. 그 자신이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의 글을 읽다가 뜬금없이 왜 원고지는 200자인지를 깨달았다. 나는 원고지에 글을 쓰지 않는다. 이면지, 다른 무언가를 출력해서 뒷 면이 깨끗한 이면지에 글을 쓴다. 종이가 더블A면 가장 좋고. 하하. 이건 글쓰기에서 나의 몇 안 되는 사치 혹은 까탈스러움이다. (사실 펜으로 글을 쓸 때면 더블A가 느낌이 가장 좋다.) 아무튼 이면지에 글을 쓸 경우, 한 면을 다 채우면 워드프로그램에서 한 쪽 이상의 분량이 나온다. 나의 글자 크기로는 대충 그렇다. 예전에도 적었듯, 펜으로 글을 쓸 때면, 어느 정도 쓰다가 막히면 처음부터 다시 쓰는 경향이 있다. 몇 줄 안 쓴 상황이라면 사용하던 종이에 그대로 써도 괜찮다. 하지만 반 이상 쓴 경우라면 새 이면지에 써야 한다. 그럴 경우, 어느 정도 정리를 한 부분도 다시 처음부터 쓰고, 막히던 부분을 연결해서 쓴다. 이건 원고지로 따지면 대여섯 장을 새로 쓰는 격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원고지는 200자가 아닐까? 새로 써도 200자 정도만 새로 쓰면 되니까. 마지막 줄의 문장이 꼬여서 쓰던 원고지를 버리고 새로 써도 200자만 쓰면 되니까. 1,000자 혹은 1,400자 이상을 새로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원고지를 살 의향은 없다. 명백한 낭비. 난 아마 원고지도 이면지 삼아 뒷 면에 쓰지 않을까 싶다. 흐흐.
2009/10/19 20:32 2009/10/19 20:32
바람이 쌀쌀하던 저녁,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의 색깔이 바뀌기를 기다리다 제가 제로전투기란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떠올리면서, 저는 달콤한 아름다움을 상상합니다.
훌쩍, 뛰어드는 황홀.
그 황홀의 달콤함.

그것이 어떤 형태건, 아름다움이란 공통점이라도 있어 다행입니다.
2009/10/17 21:41 2009/10/17 21:41
이것은 본격 행사 홍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굽신굽신*

앞으로 두어 번 더 새 글로 홍보할 수도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에서도 즐겁게 일하고 있는 변혜정입니다.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이하, 유섹인)라는 단체가 많이 낯설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섹인은 사람들의 존재 양식과 타인들과의 관계 맺는 방식인 섹슈얼리티의 쾌락과 위험 등을 가시화하여
각각의 위치에서의 자신의 언어로 타인과 소통하고자 만든 단체입니다.

이런 목적에 따라 다양한 사업을 계획하고 있고요.
그 계획 중 하나로서, 이번 가을 "십대 섹슈얼리티 전문강사 워크샵: 십대의 섹슈얼리티를 배우다"란 제목으로 '제1차 유섹인 섹슈얼리티 강좌'를 열고자 합니다.

십대란 주제어, 섹슈얼리티란 주제어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매우 뜨거운 이슈입니다.
하지만 뜨거움에 비해 논의의 방향은 항상 익숙한 방식으로,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흐르고 있어,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갑갑증을 느끼게 합니다.

유섹인 강좌는 이런 갑갑함을 나누고, 다른 상상력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기획하였습니다.

십대의 통제와 보호, 성폭력, 티켓다방, 십대이반, 조기모성, 미혼모, 영화와 인터넷, 핸폰 등에서의 십대의 일상과 저항 등을
주제로 11월 9일부터 매주 월요일 저녁 7시  여러분들과 함께 하고자 합니다.

십대 섹슈얼리티에 관심 있는 분들, 십대들과 직접 상담을 하면서 여러 고민을 하고 계시는 분들, 초중고등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계시면서 소통이 힘들었던 경험이 있던 분들 모두를 초대합니다.

더 자세한 문의나 참가신청은
sexuality@sexuality.or.kr 로 메일을 주시기 바랍니다.
참가신청하실 때,
이름:
입금자명:
소속:
전화연락처:
이메일주소:
는 꼭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제1차 유섹인 섹슈얼리티 강좌

제목 : 십대 섹슈얼리티 전문강사 워크샵 : 십대의 섹슈얼리티를 배우다
기획 :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Pleasure, Danger and Empowering Center
후원 :  도서출판 동녁, 안세M치과
대상 : 십대 교육 관련자, 쉼터 관리자. 교사, 성교육강사 등
일시 : 11월 9일 - 12월 7일 매주 월요일 7시~10시
장소 : 서강대학교 (추후공지)
수강료 : 12만원(유섹인 회원과 서강대 관련자 10%할인)
           *임금계좌: 우리은행 1005-001-549121 예금주: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 본 강의는 도서출판 동녘에서 "유쾌한섹슈얼리티 강의 - 십대의 도전과 힘기르기(가제)"로 다담어 집니다. (최종 원고는 추가/변경될 수 있습니다.)

* 수강등록자에게 2010년 9월 출간예정 "유쾌한섹슈얼리티 강의 - 십대의 도전과 힘기르기(가제)" 책을 기증하며, 2010년 2월 중에 진행될 '유쾌한섹슈얼리티 강의 - 남성(가제)' 교육 수강시 10% 할인 혜택을 드립니다.

* 제1차 섹슈얼리티 전문 강사 워크샵 수료증을 드립니다.

* 앞으로 지속되는 전문강사원크샵을 수료하시면 섹슈얼리티 전문강사로 추천해드립니다(유섹인 강사뱅크 등록).

1강 11월 9일 십대의 섹슈얼리티 통제와 보호 : 예스, 노우, 그리고 탈주?!(변혜정)
2강                십대의 성폭력피해의미와 성문화(변혜정)

3강         16일 모바일 테크놀로지, 그리고 진동하는 십대(김예란))
4강                 미디어에서의 십대 섹슈얼리티 재현(손희정)

5강        23일 조기모성과 십대여성의 섹슈얼리티(서정애)
6강                 티켓다방 십대여성의 일, 놀이, 문화(김주희)

7강        30일 소년원(구금시설)에서의 십대여성의 섹슈얼리티(황선희)
8강                신촌지역에서 만난 십대이반의 섹슈얼리티(잘해보지)

9강 12월 7일  민/관의 섹슈얼리티 교육과 십대의 만남(박현이, 최자은, 김민혜정)
10강               종합토론(성적자기결정권과 십대) 

** 프로그램은 강사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2009년 10월 유섹인 드림

2009/10/16 21:46 2009/10/16 21:46
01 “탈고 안 될 마음”
가을에 듣기 좋은 노래는 힙합이지만, 기타만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요들도 무척 좋아요. 어젠 오랜 만에 임지훈을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무척 좋아했죠. 그래서 서울에 왔을 때 가장 먼저 간 공연은 임지훈의 소극장 콘서트였습니다. 지금은 위치도 알 수 없는(당연한가ㅡ_ㅡ;;) 곳을 나름 어렵게 찾아갔죠.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은데 늦을 까봐, 못 찾을 까봐 일찍 가서, 공연은커녕 개관까지 무려 30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렸고요. 하하. 그래도 설렜던 시절이었죠. 처음 가는 콘서트니까요. 그리고 스무 살은 저 뿐이었습니다. 관계자들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제가 조금만 용기를 냈으면 싸인도 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죠. 저 외엔 모두 삼,사십대에 부부동반도 꽤나 많았으니까요. 앨범으로만 듣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는 느낌은 정말 새롭죠. 그 기쁨을 처음으로 배우기도 했네요.

요 며칠 자꾸 입 안에서 맴도는 가사가 있어 앨범을 꺼내 듣고 있습니다(라고 쓰고 CD에서 mp3를 추출해서 듣고 있다고 읽죠;;). 목소리가 가을 이미지와 참 많이 닮았네요. 쓸쓸하지만 바닥을 치는 건 아닌 무게. 띄엄띄엄 가사를 듣다가 문득 한 부분에서 숨이 멎었습니다.

“탈고 안 될 마음 그 뭇 느낌으로”
(전문은 http://bit.ly/2OKPio)

<아름다운 사람>이란 노래의 가사입니다. 탈고 안 될 마음이라니 …. 아, 이 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요. ㅠ_ㅠ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02 알러지?
어릴 때 대상포진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왼쪽 아랫 배가 심하게 아프더군요. 꽤나 심하게 아팠지만 신경 쓰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원래 가족이란 그런 거잖아요. :)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한 게 드러나자 그제야 응급실에 갔는데요. 의사는 변비라고 진단을 했습니다. … oTL 돌팔이! 그러고 며칠 지나 배의 왼쪽에서 대각선으로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기 시작하더군요. 약국에 갔더니 약사가 대상포진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진단도 약사에게?

구글링을 하니 수두에 걸린 사람 중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높다는데 제 기억에 전 수두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http://bit.ly/133hJJ , http://bit.ly/kFi3o). 그럼 대상포진이 아니었을까요?? 수두 대신 대상포진이 생긴 걸 수도 있겠네요. 흐흐. 신경성이라고 하니, 당시의 저라면 충분히 가능한 것도 같고요. 하하. ;;; 암튼 그 비슷한 무언가를 앓았는데요.

며칠 전 갑자기 그날 저녁에 먹은 게 잘못 되었는지 배 앓이를 했습니다. 통증이 꽤나 심해서 밤을 새웠죠. 그러고 나서 배 부위가 좀 가려웠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붉은 반점 같은 게 생기는 거 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기에게 물렸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알러지 모양으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네요. 통증은 별로 없는데 두드러기 모양은 대상포진 때와 비슷하고, 안 아픈 건 아니고요. 근데 재발하는 증상이 아니라고 하니, 뭔가 또 다른 알러지일까요 …. 하하. 드물게 재발하기도 할까요? 사실 음식 알러지라고 하기엔 물집의 모양이 달라 음식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네요. 제가 음식으로 알러지가 발병하면 온 몸이 붉은 색으로 피부가 다 일어나거든요. 으하하. 이때 보면 정말 볼 만 합니다. :P

징크스인데, 아플 때 아프다고 블로깅을 하면 금새 증상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괜히 징징거리고 싶어서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요. 으하하. ;;; 암튼 이런 이유로 쓰는 거니 곧 좋아질 거예요. 아무렴요.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고작 이런 일에 신경 쓰면 곤란하거든요. :)
2009/10/15 13:26 2009/10/15 13:26
뭔가 재밌는 일로 지도교수를 만나러 갔다가, MLA 7판(2009년 발행)을 빌렸다. 논문을 쓸 때면, 본문을 다 쓴 후 참고문헌 혹은 인용문헌을 작성해야 한다. 글을 쓰면서 도움을 받은 문헌, 직접 인용한 문헌의 출처와 해당 문헌의 정보를 기록해야 하는 것이 참고문헌 혹은 인용문헌 작성인데 이를 작성하는 표준이 몇 개 있다. MLA는 몇 가지 표준 중에서 인문학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법. 물론 학술지마다, 잡지마다 참고문헌을 작성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니 몇 가지 표준 중 하나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나의 경우, 지도교수의 전공도 전공이지만 나 자신의 관심이 인문학에 더 가까워 원고를 쓸 때면 일단 MLA가 제시하는 방법으로 작성을 한 후, 잡지나 편집자가 요청하는 방식으로 수정하는 편이다. 이게 좋은 건, 일단 하나라도 제대로 작성할 수 있으면 다른 식으로 바꾸는 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01
암튼 최신판을 빌려 뭐가 바뀌었나 검토했는데, 많은 게 바뀌었더라! 흑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용문헌의 형태를 기술하는 방식이다. 내가 논문을 쓸 당시인 6판(2003년 발행)에선 인쇄본이 기준이었고, 웹에서 구한 문헌을 기술하는 방식은 부가적이었다. 예를 들면

 글쓴이. 『책 제목일 수도 있음』 파주: 출판출판, 2007.
 저자. “논문 제목을 쓰세욤” 『잡지제목이에요』 4.2 (2006): 113-149. DBDB. 2009.09.23. <www.dbdb.org/search>
 (DBDB는 논문을 다운로드 받은 사이트 이름, “2009.09.23”은 해당 사이트에 접근해서 다운로드한 날짜. 주소는 말 그대로 해당사이트 주소)

이런 식으로 웹사이트 주소를 명기하지 않은 문헌은 기본적으로 인쇄본으로 가정했다. 그런데 7판엔 이게 확 바뀌었다.

 글쓴이. 『책 제목일 수도 있음』 파주: 출판출판, 2007. 인쇄본[Print].
 저자. “논문 제목을 쓰세욤” 『잡지제목이에요』 4.2 (2006): 113-149. DBDB. 웹[Web]. 2009.09.23.

Print를 인쇄본으로 번역해야 할지 종이출판으로 번역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2009년 현재, 온라인 출판물은 더 이상 오프라인 출판물의 부가물이나 보조가 아니며, 인쇄본이 기준일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다. 너무도 당연한 일. 개정판에서 보강한 부분, 공을 들인 부분들 대부분도 온라인 서비스를 인용할 때 참고문헌을 작성하는 방식이며, 모든 자료에 CD인지, 라디오방송인지, 텔레비전 방송인지를 표기하도록 했다. 이것은 더 이상 종이에 인쇄한 형태의 문헌만이 권위를 가지지 않은다는 걸 의미한다. 그 만큼 웹이 일상 생활, 글작업, 학술작업에서 비중이 커졌다는 걸 뜻한다. 웹이 나의 전공은 아니라 더 자세하게는 못 쓰겠지만 매우 중요한 변화가 아닐까 싶다. 블로그에 쓰는 글 하나하나, 트위터나 미투데이에 쓰는 단문 하나하나, 댓글 하나하나가 인쇄물과 동일한 권위라는 걸, 가장 보수적일 수도 있는 곳에서 받아들였다는 느낌이다.

덧붙이면, 미국기준으로 구글지도를 인용하거나 글에서 사용할 때 참고문헌을 작성하는 방법도 나온다.
“Maplewood, New Jersey.” Map. Google Maps. Google, 15 May 2008. Web. 15 May 2008.
“지역 이름.” 지도[자료의 성격을 표시한 것]. 구글지도[사이트 이름]. 구글[사이트 제공자 혹은 사이트 저작권자], 사이트 최근업데이트 날짜. 웹[자료형태]. 사이트 접근 날짜.
구글지도, 다음지도, 네이버지도와 같이 지도서비스를 이용하고 나서 참고문헌을 작성할 때 응용하면 좋을 듯하다.

02
작년에 논문 쓸 때는 참고문헌을 작성하는 방법만 복사해서 읽었는데, 이번엔 책을 빌렸다. 그랬더니 표절 관련 내용도 따로 있더라.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 포스트를 쓴 이유기도 하고.

미국이나 영국논문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인용이나 참고문헌 표시를 참 꼼꼼하게 한다. 아는 사람과 대화를 한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면 “##와의 대화”라고 분명하게 표시하는 식이다. MLA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 정보/자료, 표현방식 등을 모두 인용으로, 참고문헌에 표시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어도 윤리적으론 문제가 된다고 명시한다. 그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 한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Some of Dickinson’s most powerful poems express her firmly held conviction that life cannot be fully comprehend without an understanding of death.(56)
대충 번역하면, 디킨스는 죽음을 이해하지 않고선 삶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음을 확신했다고 시에서 표현하고 있다... 정도? Wendy Martin이란 사람이 쓴 구절이란다. 근데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면 어떻게 될까?

Emily Dickinson firmly believed that we cannot fully comprehend life unless we also understand death.(56: 에밀리 디킨슨은 우리가 또한 죽음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삶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고 확신했다.)
표현 방식은 달라도 기본 아이디어가 동일하다면 이는 표절이라고, MLA는 지적한다. 따라서

As Wendy Martin has suggested, Emily Dickinson firmly believed that we cannot fully comprehend life unless we also understand death(625).
Wendy Martin이 제안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인용표시(“(625)”)를 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사람이 만든 용어를 인용표시 없이 사용하거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것도 표절이며, 다른 사람의 글을 좀 다르게 각색해서 요약하는 것 역시 표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들은 얘기, 혹은 어떤 아이디어 역시 인용과 참고문헌 표시가 없다면 표절이다. 그것이 본인만 아는 사실이라 해도.

인용과 참고문헌은 자신의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도움 받은 문헌의 저자, 함께 얘기를 나눈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단 점에서 법적인 문제라기 보단 윤리적인 부분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글을 시작하기 전에 논평자들에게, 함께 얘기를 나눈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고.

오전에 표절 관련 글을 읽으면서 뭔가 정리를 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지금 쓰고 있는 글에서, 참고문헌에는 분명히 표시하는데, 본문에서 인용을 표시하기도 애매하고 표시하지 않기도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 갈등하고 있었다. 한 편의 논문과 세 권의 책을 읽고 내 방식으로 정리한 내용을 쓰는데, 모든 문장이 인용표시 없이 쓰기도 애매하고 인용표시를 하기도 애매했다. 인용표시를 하기로 작정하면 모든 문장에 인용표시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와중에 표절 관련 글을 읽어서인지 고민이 좀 해결되는 느낌이랄까. 암튼 타이밍 적절한 아침이었다.

+
본문과는 무관하지만 중요한 변화. 6판에선 도서명을 표시할 때 언더라인을 했는데, 7판에선 다시 이탤릭으로 바뀌었다. 즉 Gender Trouble에서 Gender Trouble
2009/10/13 22:31 2009/10/13 22:31
서둘러 써야 하는 글이 있다. 이번 주에는 마무리 해야 한다. 그래서 고민했다. 펜으로 쓸 것인가, 블로그에 쓰듯 워드프로그램에 바로 쓸 것인가. 그리고 잠시 오픈오피스로 글작업을 진행했는데,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도저히 진행이 안 된다. 문장을 종잡을 수가 없고 흐름을 종잡을 수가 없다. 내가 무얼 쓰는지 모르겠다는 느낌.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아아, 습관이란 어쩔 수 없는가 보다. 하지만 펜으로 쓰면 매우 더딘데 어떡하지? ㅠ_ㅠ 그런데 블로그 글은 워드프로그램으로도 곧잘 쓰니 이건 도대체 무슨 조화란 말이냐! 흑흑.
2009/10/12 22:34 2009/10/12 22:34
─ tag  ,
하루에 한 번, 노래 한 곡을 무한 반복해서 듣는다.

두근거림은 때로 마음을 할퀸다. 할퀸 흔적이 선명하지만 마음은 또 두근거린다. 두근거리다 부푼 마음은 기어코 터져 붉은 피를 흘린다. 피가 흐르는 자리마다 햇살이 반짝인다. 눈이 부시다. 부신 눈으로 계속 걷는다. 낯선 길을 따라 걷는다. 길을 잃은 마음은 햇살이 빛나는 곳이, 눈이 부셔 시력을 잃은 곳이 갈 곳이란 걸 안다. 노래는 계속해서 흐르고 할퀸 흔적마다 소금꽃이 핀다.
2009/10/10 21:23 2009/10/10 21:23
관련글: 화학적 거세란 말의 심란함: 여성혐오, 트랜스혐오, 이성애주의 등이 얽힌 매우 위험한 발상

어제 이 글 초안을 쓰고, 공개를 할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하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아무래도 제가 관련 글을 너무 짧게 써서 생긴 문제 같으니까요.

전 현재 발생하는 성폭력이 관련 처벌 조항이 없다거나(없는 것도 있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형벌이 약해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처벌을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현재의 특별법으로도 충분히 처벌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현재의 법으로도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경찰, 검찰, 재판부의 의지가 매우 부족한 현실이죠), 사건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죠.

ㄱ. 화학적 거세니 형벌 기간 증가와 같은 법률상의 명문화가 보기엔 그럴 듯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형벌의 역설을 감안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형벌이 가중할 수록 사건 ‘해결’은 더 어렵고, 때로 사건 ‘해결’이 안 되고, 사건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는 거죠. 물론 형벌이 무겁게 바뀌면 사람들은 일말의 경각심이라도 가지겠죠. 하지만 이 경각심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형벌이 화학적 거세와 최소 징역 20년이란 식으로 가중하면, 가해자는 악착같이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 갈 겁니다. 가해자의 입장에선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서 손해볼 건 없으니까요. 아울러 대법원까지 끌고 가면 “정말 가해를 안 했나 보다” 혹은 “가해자가 정말 억울한가 보다”와 같이 가해자의 편을 드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고요(실제 발생하는 경우죠). 아울러 형벌을 가중하면 판사는 현재보다 더 가해자를 봐주려고 하겠죠. 조두순 사건도 형량이 약해서라기보다는 판사가 가해자를 봐준 경우고요(이건 언제나 “정상참작”이란 탈을 쓰죠).

문제는 이렇게 사건 ‘해결’ 과정 자체가 길어질 수록 피해경험자가 겪을 고통 혹은 어려움은 더 커지고 길어진다는 거죠. 대법원까지 최소 3~4년 걸린다면, 곧 그 기간 동안 사건은 조금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거죠. 과연 이럴 때에도 형벌 가중이 효과적일까요? 글쎄요. 가해자가 악착같이 대법원까지 사건을 끌고 갈 것을 예상할 수 있을 때 피해경험자와 그 주변사람들은 쉽게 고소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형벌의 가중이 정말 피해경험자에게 이득이기만 하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겠죠. 형벌가중은 사건을 사건으로 구성할 수 없게 하는 족쇄가 되기도 하니까요. 때론 형벌가중이 피해경험자에게 더 불리한 여건으로 작동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쉽지 않습니다.

성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 젠더 권력에 대한 인식 변화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건 이런 이유에서죠. 성폭력 피해경험을 여전히 매우 부정적으로 대하는 게 현재 상황이고요. 물론 이곳에 들리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요.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경우 비난의 상당 부분은 피해경험자에게로 향합니다. 가해자를 비난하는 만큼이나 피해경험자 역시 비난을 경험하는 상황에서, 형벌 가중이 단편적이나마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판사, 검사, 경찰, 변호사, 주변 사람들이 언제나 “정상참작”을 주장할 수 있고, 이것이 먹혀드는 분위기에선 형벌 가중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거죠.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의 검사 박대식에게 제가 호의적인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는 인종편견을 드러내는 태도를 취했지만 사건을 법적 해석에 따른 사건으로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의 태도가 지극히 당연하거나 '상식'일 텐데도 실제 그렇지 않으니까요. 성폭력 사건을 대하는 태도를 대입하면, 다른 판사라면 인종편견에 따라 다른 정황은 검토하지 않고 피어슨을 취조하기 바빴겠죠.)

ㄴ. 형벌을 가중할 때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는 사건 자체를 말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거죠.

형벌을 가중하면 사람들은 성폭력이 그토록 심각한 일이라고 지각은 하겠지요. 1990년대 초반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이와 동시에 피해경험자는 심각한 피해의 무력한 피해자란 이미지로만 남겠죠. 오직 고통만을 재현하고 말해야만 하는 여타의 행위자들처럼요(예를 들면, LBGT나 퀴어, 장애인처럼 지배규범은 이들의 구체적인 일상이 아니라 언제나 고통 아니면 축제만을 들으려고 하죠). 아마도 사회 전반은 오직 고통만을 듣고 싶어 하겠죠. 혹은 고통의 극복담만 들으려 하거나요. 피해경험자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듣는 게 아니라, 고통만을 들으려 하고 그 고통에 베풀 수 있는 시혜만을 듣고 싶어 할 거고요. 이 과정은 결국 피해경험자가 사건 자체를 말할 수 없는 여건을 조성하지 않을까요? 피해경험자는 사건을 말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 할 것이고, 주변사람들은 피해경험자를 낯설게 대하겠죠.

일례로, 한국에서 동성애혐오폭력, 트랜스젠더혐오폭력, 바이혐오폭력이 없어서 법적 사건이 안 되는 게 아니죠. 피해경험자들은 이것을 드러내면 더 큰 피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피해경험자들이 법적, 제도적 사건으로 구성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몇 년 전, 한 트랜스젠더가 폭력피해경험으로 경찰서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때 경찰서 직원들 모두가 와서 트랜스젠더라고 피해경험자를 구경했다고 합니다. 그 경찰들이 양식이 없어서 그랬을까요? 전 이런 반응이 한국사회에서의 매우 평이한 반응이라고 이해합니다. “쟤가 동성애자래.” “쟤가 트랜스젠더래.”와 같은 수근거림은 특정 사건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하죠. 사건이 초점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가가 초점이 되니까요.

더 정확하게 말해, 피해경험자들이 사건을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피해경험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되죠. 일례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 하기가 어려운 건, 커밍아웃 자체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기 때문에 어려운 거죠.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일을 드러내고,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건이 끔찍하다고, 매우 무거운 주제라고 여겨질 수록 더 심해지죠. 그렇다고 성폭력이 가벼운 주제, 끔찍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형벌을 가중하고, 성폭력 사건을 특정 이미지로 고착할 경우, 이 사건은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사건이 되고 말겠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집단적인 반응이 매우 우려스러워요. 이런 반응이 강할 수록 사건 자체가 은폐될 테니까요. 피해경험자가 은폐할 지, 가해자가 은폐할 지도 알 수없고요. 물론 바로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재는 그런 분위기니까요. 하지만 이것이 지속될까요? 앞으로도 말할 수 있고, 여타의 사람들과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저의 우려는 간단합니다. 형벌 가중으로만 논의를 진행하면, 그 논의가 의도했던 바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그 논의의 목적인 법적 사건으로 구성하는 것 자체가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죠. 지금 분위기가 이전의, 이후의 사건들을 법적 사건으로 구성할 수 있고, 그것이 피해경험자에게 이득으로만 작동한다면 반대할 이유도 우려를 표할 이유도 없습니다(물론 이건 좀 논쟁적입니다).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거죠.

…. 예. 전 이전의 관련글을 쓰기 전에 이 말을 먼저 해야 했습니다. 이런 우려 속에서 화학적 거세의 위험성을 지적한 거죠.
2009/10/09 12:34 2009/10/09 12:34
01
『페르세폴리스』 세트 득템. 헌책방은 아름다워라! 기다린 보람이 있네요. 음하하.

02
삶의 가치가 다른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참 묘해요. 규범적인 가치를 살기위해 애쓰는 사람과 잉여로 여기는 가치를 살기위해 애쓰는 사람. 각자의 행복과 가치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분은 참 묘해요. 그건 제가 모르는 삶이기 때문이죠.

며칠 전 제가 무척 좋아하는 스타일의 논문을 읽었어요. 그 논문의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어떤 정치학에서 특정 규범을 비판하는 건 좋지만, 그 규범을 비판하면서도 욕망하거나 얼마간 바라거나 알고 싶은 감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뤘죠. 아마 이런 거겠죠. 저는 한국 사회에서 요구하는 규범적인 삶의 방식, 행복의 이상에 도달할 수도, 도달할 의지도 없죠. 그래서인지도 몰라요. 그런 삶을 살거나 지향하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해요. 대충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러한 삶을 산다는 것이 규범에 매여 있다거나 수동적이라거나 뭐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어떤 삶의 방식이 더 우월하고 덜 우월하다는 식의 구분을 어떻게 제가 할 수 있겠어요. 그저 제가 평생 알 수 없을 가능성이 큰 그런 삶, 그런 삶을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궁금한거죠. 아, 물론 이런 삶을 살기 위해선 상당한 자원이 필요하죠. 집안 배경, 학력이나 학벌, 젠더, 섹슈얼리티 등등. 몰라, 몰라요. 고민할 수록 골치 아파요.

그러고 보니 오전에 우체국에 갔다가 입사원서를 작성해서 우편으로 발송하려는 사람을 몇 명 봤습니다. 신기하더라고요. 전 그런 거 쓴 적이 없어서. ;;; 대학원 입학 원서는 쓴 적이 있긴 하지만요 …. 하하. 암튼 제가 일한 곳은 이력서나 기타 서류가 아예 필요 없거나 엉성하게 대충 작성해도 되는 곳이었거든요. 알바라 지원만 하면 받아 주는 곳이라서요. 아, 제가 비장애인이고 한국인국적을 의심받지 않는 외모라서 지원만 하면 일할 수 있었겠죠.

03
하루 종일 기분이 폭등과 폭락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후후.
2009/10/08 22:39 2009/10/08 22:39
할 말이 있었는데, 꽤나 중요한 말이었는데 까먹었다. 악! ㅜ_ㅜ

01
오랜 만에 특강을 하기로 해서, 준비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이번 강의 내용이 다음주 말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의 바탕이기도 해서 더 그렇다. 강의를 듣는 사람은 대학생이고 원고가 실릴 잡지를 읽는 사람은 대학생부터 좀 배웠고 이론 좀 읽었다는 사람들이다. 물론 트랜스젠더 이슈를 강의한다는 건 독자가 누구건 상관없다. 다들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의 욕심과 독자/청자의 기대 사이에서 수위를 조율하는 건 늘 쉽지 않다. 10년의 내공이 쌓인 것도 아니고, 매우 어설픈 지식에 어정쩡한 체계를 갖춘 나로서는 더 어렵다. 말하고 쓰는 나도, 듣고 읽는 이들도 모두 난감한 상황일 때도 많다. 물론 모든 빼어난 강사들도 이런 과정을 거쳤겠지? 그들도 어설펐던 시절이 있었을 거라고 믿으며 위로하지만, 정작 그 자리에 있었던 청중들은 어쩌란 말이냐! 흑흑.

02
몇 주 전, 한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한국어로 쓴 논문 중에서, 섹스 혹은 생물학적 성이란 것이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었음을 설명하는 논문이 매우 적다는 얘길 듣고 놀랐다. 두꺼운 책이 있긴 하고(『섹스의 역사』, 책은 두껍지만 서론만 읽어도 충분하다;;;) 여성학 교제라고 불리는 책들마다 간단하게 언급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성, 의료기술을 통해 구성되는 몸과 젠더의 관계를 집중해서 다루는 논문은 별로 없다고 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충분히 쉬우면서도 사람들에게 권할 만한 논문이 없다고 한다. 의학의 사회문화사를 다룬 괜찮은 책은 젠더나 섹슈얼리티란 범주를 간과하는 식이다.

사실 이번에 쓰고 있는 글의 주제가 대충 이런 거다. 근데 잘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의학-기술-몸-젠더란 주제어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주제다. 그래서 관련 글을 읽을 때마다 깨달음의 황홀을 느낀다. 흐흐. 하지만 이를 글로 쓰는 건 전혀 다른 문제. 흑.

03
추석이라 부산에 갔다 왔다. 엄마 님과 얘기를 나누다 재밌는 순간이 있었다. 엄마 님은 언제나 내가 의사가 되길 바랐다. 이유는 간단하다. 엄마 님이 워낙 아픈 곳이 많다보니 의사 자식 덕을 보고 싶었던 것. 하지만 난 이과에선 수학을 전공했고, 실험보다는 인문학 서적을 좋아하는 인간이다.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했다. 위에서도 적었듯, 내가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책 중엔 의학사상사나 의학 발달과 관련 있는 책들이 여럿 있다. 의사는 안 되었지만, 의학이 몸을 통제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공부하는 사람이 될 것 같긴 하다. 크크크.

아이러니는 하나 더. 부모님은 내가 공무원이라는 안정된 직종에 취직하길 바랐다. 평생 돈문제로 고생했으니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바람이다. 하지만 나는 프리터처럼 평생 비정규직으로, 불안정한 직종에서 살기를 바란다. 근데 또 내가 흥미롭게 읽는 주제 중 하나는 국가가 국민/시민을 관리, 통제하는 방식이다. 뭐, 이런 식이다.

04
두근거림이 결국 나를 구원할 거야!
후훗.
2009/10/08 15:28 2009/10/08 15:28
조두순 사건과 관련, 화학적 거세를 하자는 얘기를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다. 여성호르몬을 통해 성욕을 감퇴시키면 재범율이 3% 수준이라나. 심란하다. 매우 간단하게 쓰는 단상 다섯 가지. 자세한 건 다음 주 특강에서 할 듯?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글이 상당히 거칠고, 읽는 사람에 따라선 불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ㄱ. 화학적 거세를 하면 성폭력이 준다는 주장은 남성의 성욕과 성폭력 원인은 생물학적 필연이라고 가정하는 것. 남성의 성욕은 너무 강하고 어쩔 수 없어서 화학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니 어쩔 수 없고, 성폭력은 남성의 본성이다? 남성 성욕 신화의 결정판.

ㄴ. 화학적 거세는 여성호르몬을 조치하는 것. 이는 여성은 무성적이거나 여성호르몬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성욕이 없으니 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음. 모든 성폭력 가해자는 남성호르몬이 호르몬 비율상 더 많거나 여성호르몬이 비율상 더 적다는 의미일까? 여성성폭력가해자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 관계에서의 성폭력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음. 더 정확하게는 이 세상엔 이성애 관계만 존재한다고 강변하는 격.

ㄷ. 성욕의 발생이란 측면, 더 정확하게 말해 발기란 측면에서, 모든 성행위는 남성형 성기의 발기 혹은 삽입욕망을 정상 성욕으로 가정하고 있음. 이것은 이성애 성관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거나 남성들만의 성욕/성관계만을 가정하고 있음. 모든 남성이 삽입만을 욕망하는 건 아님. 아울러 흡입을 욕망하는 이 혹은 그런 남성은 성폭력 가해를 하지 않을까? 성폭력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가정하며, 성기를 매개하지 않는 매우 많은 종류의 성폭력을 은폐함.

ㄹ. 여성호르몬 투여를 통한 남성의 성욕 감퇴, 성범죄예방이라면, mft/트랜스여성은 어떻게 되고, 이런 논의에서 뭐가 되는 거지? 의료적 조치 과정에서 성범죄예방과 mtf의 호르몬 조치가 겹치면서 매우 심란. mtf/트랜스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걸까? 아울러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는 성폭력 가해를 의료적 질병으로 이해하고, 이 과정에서 질병이나 문제를 치료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를 사용하여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를 질병치료로, 트랜스젠더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mtf/트랜스여성은 결국 화학적 거세를 당한 남성, 성욕을 잃어버린 남성, 여전히 남성이란 의미일까?

ㅁ. 이것저것 다 떠나서 젠더 권력이 팽배하고, 젠더 규범이 지배질서인 사회에서 화학적 거세가 ‘해결’하는 건 사실상 거의 없음. 결국 개인이 문제이지 사회제도, 문화적 규범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 만사를 법과 규제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 나아가 이것이 섹슈얼리티, 다양한 성적 실천을 협소하게 규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함.
2009/10/06 21:22 2009/10/06 21:22
시골엔 가을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종 가던 그곳은 아직도 초록이 만발하고, 무화과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몸을 가득 채울 초록 공기를 기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얼추 10년 전 들어선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 익어가는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공기는 고약하게 달고, 가을이 오면 보상금은 익어갑니다. 누군가는 빛을 청산했고, 누군가는 집을 개조했습니다. 가을이라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사시사철 쓰레기가 익어가는 나날, 보상금이 익어가는 나날. 삶은 무료합니다. 극렬했던 매립장 건립 반대 시위는 보상금 액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다들 반대 시위는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전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 속의 고향은 박제된 형태도 없이 아득합니다. 새롭게 진행될 개발 계획에 보상금이 얼마가 나올지, 그 금액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산하기 바쁩니다. 푸른색과 퍼런색의 간극은 매우 좁습니다. 노후 보장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 지려나봅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노후 보장이 되면 다행일까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냄새만 불평할 뿐, 생활 자체는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공중목욕탕도 생겼고, 대형 마트도 생겼으니까요. 재래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아, 대형마트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닙니다. 농촌마을이라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 사람들이 없어서, 살 사람도 없어서 사라졌습니다. 5일장이란 말은 이제 기억 속 유물입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마을버스를 타고 대형마트로 갑니다. 보상금은 농사로만 살기엔 불안했던 삶에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시간, 나뭇잎들이 얼굴 표정을 바꾸는 시간, 무화과가 입술을 벌리는 시간, 그리고 보상금이 익어가는 시간. 가을 하늘은 높고, 보름달은 크고 환했습니다. 저만 혼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있습니다. 외부자라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2009/10/06 09:48 2009/10/06 09:48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