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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31  2009, 읽은 책들 (2)
  2. 2009/12/30  어떤 오자 (4)
  3. 2009/12/30  겨울잠 (8)
  4. 2009/12/28  [영화] 브로큰 임브레이스: 기억을 구성하기 (2)
  5. 2009/12/28  [영화] 셜록 홈즈 (5)
  6. 2009/12/24  요즘 세상살이에 대한 단상: 한명숙, 가카의 실업대책 (2)
  7. 2009/12/24  대청소를 앞둔 시간... (10)
  8. 2009/12/23  장애인 웹 사용 실태조사
  9. 2009/12/23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오픈!! (4)
  10. 2009/12/22  책, 메모-두 번째: 더 드라마 (2)
  11. 2009/12/22  책, 메모
  12. 2009/12/20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주: 10년 뒤 거리는... (4)
  13. 2009/12/20  주절주절: 어떤 일, 조용필, 우분투9.10, 집, 겨울 (6)
  14. 2009/12/16  책책, 독후감은 아니지만 (8)
  15. 2009/12/13  [길고양이] 리카와 나는... : 편애 (8)
  16. 2009/12/13  [길고양이] 이런저런 고민들: 트랜스젠더이슈, 인터넷쇼핑몰, 카페가입 안 하기 (6)
  17. 2009/12/11  트랜스젠더 이슈 관련: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 국립국어원과 인권위의 "전환여성/전환남성"? (6)
  18. 2009/12/10  [길고양이] 먹고 사는 일 (4)
  19. 2009/12/08  [길고양이]주절주절: 겨울, 피아노, 고양이-리카, 웹 접속 (8)
  20. 2009/12/04  나는 지금: 도망 (4)
  21. 2009/12/04  [길고양이] 일상을 공유하는 삶의 불안
  22. 2009/12/03  [길고양이] 길고양이와 공존하기: FHV의 가능성에 도움 요청, 서로 길들지 않으면서 살아가기 (10)
  23. 2009/12/02  [길고양이]주절주절: 길고양이, 냐옹이, 인식체계 (4)
2009년도 얼마 안 남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구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오늘이 끝난다고 삶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요. 그저 2009년이 아쉬운 게 아니라, 특정 기간을 주기 삼아 뭔가를 정리할 구실이 필요한 거겠죠. 2009년을 어떻게 정리할까 고민했습니다. 올 한 해를 평가하자면, 100점 만점에 후하게 쳐서 13점.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았으니까요. 어쨌든 또 한 해를 살아냈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려고요. 하하. ;;

아, 올해 계획 중에 논문 세 편을 쓰겠다고 했죠. 논문 세 편은 아니지만, 어쨌든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을 세 편 쓰기는 했습니다. 블로깅은 제외하고요. :) 암튼 그 세 편 중 두 편은 올해 출판되었고(이미 출판된 글을 읽은 분도 계신데 저는 아직;;; ) 한 편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후후.

영화는 고작 20편. 한 달에 두 편이 안 되니 제 기준에선 매우 적은 편입니다.

그리고 또 무얼 정리할까, 고민하며 다이어리를 뒤적이다 올해 읽은 단행본과 논문 등을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카이브 기록물 분류 기준으로 단행본만 정리할게요. 논문, 잡지, 문서 등은 제외하고요. 다이어리의 좁은 칸에 기록하다보니 글쓴이와 제목만 적었고, 옮긴이와 출판사 등은 없네요. 번역하신 분들껜 죄송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합니다. 읽은 책 중 어떤 책은 과거에 읽은 걸 다시 읽기도 했고, 또 다른 어떤 책은 올해만 두세 번 읽기도 했지만 중복해서 기록하진 않았습니다. 만화책 포함 단행본 187권이면 많은 것도 적은 것도 아니죠. 소설이 압도적으로 많고요. 흐흐. (12월의 책책, 두 번째를 쓸까 말까 고민 중입니다. 하하 ;; )
아, 글쓴이 이름이나 제목에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다이어리에 메모한 그대로 옮겨서요. 하하. ;;;;;;;;;;;;;;;;;

단행본1
001 김승옥 『싫을 때는 싫다고 하라』
002 다니엘 클라타우어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003 브람 스토커 『드라큘라』
004 샤를로테 로쉬 『습지대』
005 주디스 버틀러, 가야트리 스피박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006 제리 스피넬리 『링어, 목을 비트는 아이』
007 패트리샤 맥코믹 『컷』
008 제리 스피넬리 『스타걸』
009 제리 스피넬리 『문제아』
010 코리지 『노수부의 노래』
011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012 스콧 피츠제럴드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013 기예르모 마르티네스 『옥스퍼드 살인방정식』
014 요시다 슈이치 『파크라이프』
015 미야베 이유키 『마술은 속삭인다』
016 오쿠다 히데오 『걸』
017 쓰네카와 도타로 『야시』
018 마리 르도네 『장엄호텔』
019 A. Cranny-Francis et al. 『Gender Studies: Terms ans Debates』
020 파스칼 로즈 『제로 전투기』
021 덴도 신 『대유괴』
022 야마모토 후미오 『플라나리아』
023 마리 르도네 『영원의 계곡』
024 장 퇼레 『자살가게』
025 장 퇼레 『중력의 법칙』
026 브루아 뒤퇴르트르 『고객서비스부』
027 권윤주 『To Cat 고양이에게』
028 나시키 가호 『엔젤 엔젤 엔젤』
029 아멜리 노통브 『불쏘시개』
030 아멜리 노통브 『적의 화장법』
031 아멜리 노통브 『제비일기』
032 주제 사라마구 『동굴』
033 Kate More and Stephen Whittle 『Reclaiming Genders』
034 위베르 니쌍 『개미』
035 아멜리 노통브 『황산』
036 오쿠다 히데오 『면장선거』
037 여인석 『의학사상사』
038 이재담 『서양의학의 역사』
039 루이스 세풀베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
040 이케이도 준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041 강신익 『몸의 역사』
042 장 필립 뚜생 『사랑하기』
043 디디에 라메종 『저주받은 왕 - 오이디푸스 렉스의 재구성』
044 퍼트리샤 콘웰 『흑색수배』 1, 2권
045 끌로딘느 갈레아 『붉은 지하철』
046 레슬리 오마라 『고양이 카페』
047 로이 루이스 『나는 왜 아버지를 잡아 먹었나』
048 줄리 앤 피터스 『루나』
049 임혜기 『사랑과 성에 관한 보고서』
050 사토 유야 『플리커 스타일』
051 박노자 『당신들의 대한민국』
052 오가와 요코 『박사가 사랑한 수식』
053 에쿠니 가오리 『하느님의 보트』
054 이스마엘 카다레 『부서진 사월』
055 야마모토 후미오 『내 나이 서른 하나』
056 팀 버튼 『굴 소년의 우울한 죽음』
057 모리스 샌닥 『괴물들이 사는 나라』
058 Suzanne J. Kessler and Wendy McKenna 『Gender』
059 김영민 『동무와 연인』
060 아토다 다카시 『시소게임』
061 윌리엄스 탭 『위키노믹스』
062 신이현 『내가 가장 예뻤을 때』
063 Eli Clare 『Exile and Pride』
064 히가시노 게이고 『호숫가 살인사건』
065 가쿠타 미츠요 『공중정원』
066 김기창 『한국 웹의 불편한 진실』
067 히가시노 게이고 『흑소소설』
068 오기와라 히로시 『벽장 속의 치요』
069 문광립 『이태원에서 세계를 만나다』
070 패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
071 이동철 『신문고 2. 性』
072 배상문 『그러니까 당신도 써라』
073 감수미 『서울 생활의 발견』
074 박성태 등 『서울서울서울』
075 심승희 『서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076 문옥정 『이제는 말하고 싶다』
077 유재순 『여왕벌』
078 유국치 『이태원』
079 문일석 『깨어있는 여자에겐 남자는 휴식이다』
080 유재순 『서울서 팔리는 여자들』
081 채호기 『슬픈 게이』
082 캐서린 H.S. 문 『동맹 속의 섹스』
083 카를로 프라베타 『책을 처방해 드립니다』
084 진중권 『폭력과 성스러움』
085 백영옥 『다이어트의 여왕』
086 마쓰모토 하지메 『가난뱅이의 역습』
087 유하 『이소룡 세대에 바친다』
088 폴 오스터 『빨간 공책』
089 W. E. 보우먼 『럼두들 등반기』
090 야마모토 후미오 『슈가리스 러브』
091 고종석 『경계 긋기의 어려움』
092 이토야마 아키코 『막다른 골목에 사는 남자』
093 안보윤 『악어 떼가 나왔다』
094 미야베 미유키 『용은 잠들다』
095 조장은 『골때리는 스물다섯』
096 마르셀 에메 『날아라 돼지!』
097 기노시타 한타 『악몽의 엘리베이터』
098 피터 게더스 『파리에 간 고양이』
099 다카노 가즈아키 『13계단』
100 후지타 요시나가 『텐텐』
101 가쿠다 마쓰요 『더 드라마』
102 다카노 가즈아키 『유령 인명구조대』
103 요코야미 히데오 『종신검시관』
104 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105 제임스 시겔 『탈선』
106 다나베 세이코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107 데이비스 리스 『도덕적 암살자』
108 기욤 뮈소 『사랑하기때문에』
109 카미유 로랑스 『사랑, 그 소설같은 이야기』
110 기시 유스케 『유리망치』
111 타쿠미 츠카사 『금단의 팬더』
112 가쿠타 미쓰요 『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113 웬디 매스 『망고가 있던 자리』
114 요시다 슈이치 『거짓말의 거짓말』
115 천운영 『잘가라, 서커스』
116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단행본2: 만화
001 오노 나츠메 『데조로』
002-004 김민희 『르브바하프 왕국 재건설기』 1~3(완)
005 오츠이치, 오이와 켄지 『Goth』
006 카타야마 코이치 원작, 이치이 가르미 작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007 앤디 라일리 『돌아온 자살토끼』
008 오히나타 Go 『유전자 레벨 검』
009 박형동 『바이 바이 베스파』
010-011 마사카즈 이시구로 『그래도 마을은 돌아간다』 1,2
012 강풀 『타이밍』
013 강풀 『아파트』
014-047 A***** 『**』 1-34(완)
048 아다치 미츠루 『모험 소년』
049 앨리슨 벡델 『재미난 집』
050 프레데릭 페테르스 『푸른 알약』
051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1 -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052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2 - 다시 페르세폴리스로』
053 아사노 이니오 『빛의 거리』
054 최규석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쥬』
055 이가라시 다이스케 『영혼』
056 아와오카 히사에 『하얀 구름』
057 김은희 『나비가 없는 세상』
058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4
059 아즈마 키요히코 『요츠바랑!』 6
060-064 히토시 이와아키 『히스토리에』 1-5
065-067 아키야마 하루 『참새들의 세레나데』 1-3(완)
068-071 카츠라 노조미 원작, 이마타니 텍츠 작화 『공무원스타』 1-4(완)

다 정리하고 나니, 어떤 책은 무슨 내용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나고, 어떤 책은 부분만 읽기 애매해서 그냥 한 권 다 읽기도 했네요. 흐흐. :)
2009/12/31 15:26 2009/12/3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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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오자는 다음과 같다.

트랜스 젠더: 띄어쓰기를 한 경우
트렌스젠더: 랜을 ㅐ가 아니라 ㅔ로 쓴 경우
트렌스 젠더: 위의 두 경우를 포함한 경우

어떤 글에선 트랜스젠더/트랜스 젠더/트렌스젠더/트렌스 젠더 네 가지를 섞어 쓰기도 하고, 어떤 글에선 한 가지만 고집스럽게 쓴다. 비단 옛날 자료에서만 그러는 건 아니다. 최근의 글에서도 빈번하게 이런 표기가 등장한다. ㅔ와 ㅐ를 같이 쓰는 건, 키보드 자판에 붙어 있기 때문일까?

좀 더 흥미로운 건, 트랜스바나 클럽에선 '트렌스'란 표기가 빈번하단 점이다. 한 클럽에 간판이 두 개일 경우, 하나는 '트렌스젠더 클럽 **'이고 다른 하나는 '트랜스클럽 **'인 식이다. 혹은 '트렌스 클럽 ##'와 'Transgender Club ##'을 같이 쓰는 식이고. 물론 사장님들은 이런 표기의 병행에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없을 것이다. 그냥 과거 누군가가 '트렌스'라고 사용한 걸 습관처럼 반복했을 뿐이겠지. 설마 미국의 트랜스젠더와 한국의 트랜스젠더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트렌스'라고 사용한 건 아니지 않을까? 아하하. 차라리 이태원에 있는 비슷한 이름의 게이/드랙 클럽인 트랜스(Trance)와 구분하려고 트렌스라고 썼다는 게 설득력 있겠다. ㅡ_ㅡ;; 행여나 트렌스란 표기에 어떤 의도가 있다고 해도, 적어도 현재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에 있진 않을 거 같다.

암튼 '트렌스 젠더'란 표현을 접할 때마다, 이걸 오자라고 말하기도 난감하고, 오자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난감해서 갈등한다. 흐흐.
2009/12/30 15:13 2009/12/30 15:13
요즘은 완전 동면기다. 잠이 부쩍 늘었다. 환절기여서만은 아니다. 해마다 이 시기면 그랬듯, 단순히 그렇게 잠이 는 것만도 아니다. 종일 멍한 상태로 지낸다. 그리고 수시로 잠든다. 잠을 자도 계속해서 밀려 오는 잠. 마치 이제까지 못 잔 잠을 보충이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졸립고 또 잠든다. 단 한 순간도 말짱한 정신으로 깨어있는 일도 드물다. 계속해서 잠, 잠, 또 잠에 빠져들 것만 같은 상태. 올해가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2009/12/30 14:55 2009/12/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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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임브레이스] 2009.12.27.일. 14:40. 아트하우스 모모 B4층 1관 F-15.

확인하니 개봉한지 꽤나 된 영화네요. ;; 전 최근 개봉한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래서 일요일에 무리해서 영화관에 두 번 갔습니다. 물론 덕분에 선착순으로 준다는 단행본도 한 권 얻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읽는 종류의 책은 아니라서 난감;;; 암튼 줄거리를 모르고, 정보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극장에 갔습니다. 최근 개봉작인데 단 한번 상영하는 줄 알았거든요. ㅡ_ㅡ;;

영화는 기억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영화감독이었던 주인공은 과거 다른 사람의 편집으로 자신의 영화가 엉망이 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영화를 새롭게 편집하고자 하는데, 그 과정에서 당시 영화를 촬영하고 영화 편집이 망쳐지는 과정을 회고합니다. 이 과정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사건,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하죠. 그리하여 과거 영화를 다시 재편집하는 과정은 과거의 기억을 새롭게 편집해서 다른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과정입니다. 그리하여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기도 하지만, 기억이 (재)구성되는 방식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이 영화엔 게이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페드로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게이 캐릭터야 새로울 것 없죠. 솔직히 여타의 영화에서 모두가 이성애자 비트랜스젠더로만 나오는 게 더 이상하지만요. 아무려나 이 영화엔 게이 캐릭터가 여럿등장하는데요. 게이의 등장보다 게이 캐릭터의 등장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흥미로웠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관객의 두드러진 반응이 흥미로운 거죠. 아무리 퀴어영화 혹은 게이캐릭터가 유행이라고 해도, 극장에서 두드러진 반응은 야유와 거부였습니다. 제 옆자리에 앉은 이의 거부반응은 너무 노골적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엔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암튼 극장에서 나오니, 극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내리던 눈은 거리에 쌓여있고 더 많은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 거리를 캣 파워(Cat Power)의 “Maybe Not”을 들으며 걸었습니다. 마침 영화에도 캣 파워의 “Werewolf”가 나와 반가웠거든요. 그리고 “Maybe Not”은 눈 오는 날 듣기에 가장 좋은 음악 중 하나죠. 눈이 내리는 풍경과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로 꼽는 곡 중 하나니까요. 그러고 보면 최근 눈이 내리는 날엔 항상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즐거운 일이죠.
2009/12/28 17:57 2009/12/28 17:57
[셜록 홈즈] 2009.12.27.일. 10:20. 아트레온 5관 7층 E-5.

영화가 끝나고, 출구로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얘길 들었다. 워낙 목소리가 커서 듣지 않을 수 없었다. ㅡ_ㅡ;; 내용인 즉, 사람들이 깔깔 웃는데, 도대체 왜 웃는지 모르겠다, 유머코드가 다른 건가 싶다는 말. 두 분에겐 죄송. 하지만 깔깔 웃었던 인물 중 한 명이 나였다. 제목만으론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을 바탕으로 한 추리영화(서스펜스 스릴러 어쩌구 저쩌구 하는 영화?)일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건과 추리가 등장하긴 한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낄낄 웃으면서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코믹물이었다.

원래 이 영화엔 관심이 없었다. 추리소설로서 셜록 홈즈 시리즈에 별 관심이 없어서. 어릴 때 셜록 홈즈 시리즈를 몇 권 읽으면서, 별다른 감흥을 못 느꼈기에 지금도 읽지 않고 있다. 그 시절 나는 루팡 시리즈를 좋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하하. 이 영화에 관심이 생긴 건, 토요일에 지구인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다. 이글루스 이오공감에 오른 어느 글이 한바탕 논란을 일으켰는데, 그 얘기를 해주셨다. 영화 [셜록 홈즈]를 “호모영화”로 표현하면서 발생한 논란이었다. 호모란 용어가 문제를 일으켰다. 이것저것 다 떠나서, 퀴어 영화로, 게이 관계로도 해석할 수 있는 영화라니, 어찌 안 볼 수 있겠는가!

영화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다. 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추리영화가 아니다. 일본에선 추리, 환상, 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소설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영화는 딱 엔터테인먼트 영화다. 부담없이 즐길 수 있고, 조조에 통신사 할인 가격이면 돈이 아깝지도 않은 영화. 추리가 등장하지만 굳이 추리 어쩌고 할 필요도 없이, 그냥 즐길 수 있는 영화.

사실 추리영화로 부르길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주인공만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수 있는 그런 추리가 과연 추리일까, 싶어서다. 소설에서건 영화에서건,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는 건 결국 작가와 주인공 뿐이다. 비록 독자와 관객이 대충 예측은 할 수 있다고 해도, 정보의 불균형은 상당하다. 뭔가 암시를 주긴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영화에서 등장하는 쥐꼬리가 무슨 의미인지, 뼈 조각이 무엇인지 사건의 전말을 주인공이 설명하기 전까진 결코 알려주지 않는데, 이게 무슨 추리람. 주인공은 추리를 하겠지만, 독자가 할 수 있는 추리의 정보는 매우 적으니 추리를 하는데 무리가 있다. 그러니 이제 독자와 관객이 할 일은 얼마나 재밌게 즐길 수 있는가가 관건. 이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충분히 재밌다. 굳이 추리를 할 필요도 없다. 추리는 주인공이 할 테니까. 나는 그것의 타당성을 검증하고, 엔터테인먼트란 장르 명칭답게 충분히 즐길 수 있는지만 확인하면 그만.

이 영화를 읽는 내내 깔깔 웃었는데, 그건 홈즈와 왓슨의 관계 때문이다. 왓슨 없으면 사실상 아무 것도 못 하는 홈즈와 홈즈를 떠나고 싶어하지만 결코 떠나지 않는 왓슨의 관계는 확실히 현대적 범주용어로 동성애 관계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1900년 전후로 등장한 소설에서 남성들 간의 관계는 대체로 이러했다. 우정과 애정 사이에서 매우 미묘했다. 그러니 이들 관계를 꼭 게이관계로 단정할 필요도 없다. (물론 영화가 2009년도에 나왔다는 점에서 1900년 전후의 소설과 비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둘의 관계는 미묘하게 재밌다. 일테면 왓슨이 병원에서 퇴원하고 홈즈와 다시 만났을 때, 홈즈는 왓슨에게 다시 만나서 기쁘다는 말을 한다. 이 말, 뉘앙스가 매우 미묘하다. 설레는 고백이라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멋진 부분은 따로 있다.

왓슨은 홈즈와 동행하다 결국 일시 감금된다. 구금시설에서 왓슨은 홈즈에게, 밤새 지난 7개월 간의 일을 메모한 일기를 다시 읽고는 자신이 미쳤다(확실한 건 아닌데, disturb인가 disorder인가 하는 용어를 사용한다, 확실한 건 아니다)고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한다. 이 말이 매우 의미심장했다. 1800년대 후반, 1900년대 초반 유럽에서 동성애 관계는 일종의 정신병, 질병이었다. homosexuality란 용어는 정신병 진단범주로 등장했다. 물론 다른 많은 것들도 정신병이었다. 합리적 이성이라고 불리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행동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정신병이었다. 의사와 탐정이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 과학적 이성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이 시기에 스스로를 정신병으로 부르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합리적 이성이라는 말 자체가 ‘정신병’과 같은 집착, 광기의 산물이란 의미일 수도 있고('이성적이여야 한다'는 집착), 비록 ‘합리적 이성’을 상징하는 둘이라고 해도 둘은 정신병으로 불리는 관계란 의미일 수도 있다. 뭐, 다른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정신병이란 표현은 홈즈에게 집착하거나 홈즈에게서 벗어나지 못 하는 왓슨 자신의 행동만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둘의 관계와 둘 모두를 설명하는 단서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 뻔한 안전장치를 사용한다. 왓슨에겐 메리, 홈즈에겐 아이린이 있다. 메리와 아이린은 왓슨과 홈즈가 이성애자라고 안심시키는 역할을 하지만, 바로 이런 이유로 둘의 관계가 더 의심스럽다. 뻔한 안전장치가 관계를 더 미묘하게 만들어버렸다. 이성애 규범에 따라 이성애자란 가면을 써야 하는 게이관계거나, 바이거나. 뭐, 대충 그렇다.

이 영화에서 흥미로운 인물은 홈즈. 홈즈가 주인공이라서가 아니다. 홈즈가 할 줄 아는 건, 이성의 결정체라고 불리는 추리 밖에 없어서다. 심지어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사람과의 시합에서도 이성적인 계산과 판단으로 승리한다. 정신은 육체를 이긴다? 하지만 홈즈는 왓슨과 같은 파트너, 자신의 일상을 보살펴 줄 사람이 없으면 거의 아무 것도 못한다. 방 구석에 콕 박혀, 방에서 총이나 쏘고 파리를 잡아 황당한(그래서 은근히 매력적인!! 흐흐) 실험이나 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걸 정당하게 말하고, 마치 대단한 것처럼 얘기한다. 이것은 합리적 이성이란 방패막을 사용하는 근대 남성성의 전형 아니던가? 홈즈의 모습은 근대적 남성성의 이상과 실상을 매우 잘 요약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아이린! 극중 인물 중에서 가장 멋있다. +_+

속상했던 관계는 메리와 왓슨. 왓슨은 홈즈와 메리 사이에서 계속 갈등한다. 영화에선 등장하지 않지만, 이 과정에서 메리는 속이 까맣게 탔겠지? 그런데도 끝까지 밝은 모습을 연기하는 메리의 태도는 당대 여성성 규범을 짐작케 한다. 그리고 왓슨은, 비록 홈즈와의 관계에선 홈즈를 보살피는 역할을 하지만 메리와의 관계에선 메리의 보살핌 혹은 이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홈즈와 별로 다르지 않다. 거칠게 말하면 왓슨이야 말로 ‘점잖은 가부장’의 전형 아니던가?

암튼, 암튼. 영화는 부담없이 꽤나 재밌었다. 그리고 영화 말미에도 나오지만, 2편도 나오겠지? 노골적으로 암시했으니까. 하하.
2009/12/28 15:55 2009/12/28 15:55
01
검찰이 한명숙 씨가 5만 달러를 수수했다고 주장하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사건의 진위와 상관없이 코미디라고 밖에 달리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라 당황합니다.

사립초중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하는데도 몇 천만 원이 필요한 세상인데, 공기업 사장이 5천만 원이란 거지? 5천만 원에서 1~2천만 원이 부족했거나, 연줄이 없어 공기업 사장 자리를 부탁할 수 없었던 사람은 억울할 거 같아. 어떤 동네는 1평에 5천만 원이라고 하던데. 공기업 사장 자리를 청탁하는데 5천만 원이라고 하니, 군장성 되려고 몇 억을 쓰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공기업 사장 자리를 알아보는 게 훨씬 싸겠다. 별이 안 될 바에야 공기업 사장 자리가 좀 더 폼도 날 테고.


02
크리스마스 이브에 2MB 가카께서 즐거운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년실업과 관련, 24일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고 한 번 입학하면 졸업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다는 현실"이라며 "인문대를 나온 학생들, 특히 지방대를 나와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학생·졸업자들을 대상으로 기술교육을 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중략...)

 이 대통령은 "내년 상반기 경제가 회복되면 현장에서 기술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라며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기술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모순된 현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대학 졸업생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직업 훈련을 시키도록 하자"며 "정부가 예산을 대고 훈련기간 동안 생계를 위한 보조금을 지급해 주면서 청년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고 제안했다.

전문 및 출처는 여기 http://bit.ly/51mGVD
정말 대책 없는 대책이지만, 뭐, 하루 이틀인가요? 근데 왜 만날 접하는 이런 소식에도 뒷목을 잡게 될까요?

암튼, 즐거운 크리스마스!
2009/12/24 21:41 2009/12/24 21:41
 무려 5년 전 크리스마스 전날 밤엔 이사 준비로 바빴습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저도 안 믿습니다만;;; ), 이사 날짜를 25일로 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밤새 이삿짐을 싸고, 뒷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죠. 그 후 5년 동안 제 삶은 언제나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아, 아니군요. 뭔가 엄청난 변화가 있었습니다. 전 제가 평생을 여유롭고 빈둥거리며 지낼 거라 믿었습니다. 모든 약속은 기억할 수 있는 정도고, 다이어리 같은 건 필요 없는 삶. 더 정확하게는 한달에 많아야 약속 한둘인 삶. 방에 콕 박혀 느긋하게 책을 읽는 삶. 알바와 학교, 그리고 책과 웹이 전부인 삶. 5년이 지난 지금 저는 동시에 서너 가지 프로젝트에 알바와 원고 쓰는 것 정도는 바쁜 축에도 안 드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알바와 원고 두엇, 프로젝트 한둘이면 그냥 평범하다고 말하는 삶. 어떤 사람에겐 너무도 바쁜 것 같은 삶이 느긋하게 여겨지는 삶. 아니, 제 주변 사람들 상당수에겐 그냥 일상적이고 평이한 방식인 삶. 이런 삶을 살거라곤 단 한번도 예상한 적 없습니다. 이렇게 살면 책을 읽을 시간이 없을 거라 믿었는데, 많지는 않아도 꾸준히 책도 읽고 논문도 읽고 지내는 삶. 사실 전 지금의 삶이 바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즐거운 일만 골라서 하고 있는 걸요. :)

그리고 지금 저는 이사를 준비하기 위해 대청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밤새 대청소를 하고, 내일 낮엔 종일 잤다가 저녁에 알바를 가리라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대청소를 조금이라도 미루기 위해 카페에 잠시 들러 블로깅을 하고 있습니다. 으하하. ;;; 5년 전이나 5년이 지난 지금이나 이사란 핵심어로 뭔가를 하는 건 변하지 않았네요.

참, 이번엔 포장이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돈이 많이 들어도 제가 직접 포장하는 건 못 할 거 같아서요. ;;; 몇몇 사람들에게 물으니, 포장이사가 나쁘지 않다고 하네요. 다행입니다. 직접 이사를 하려면 박스를 구하고, 짐을 싸느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사 가기 전에 버려야 할 짐이 많으니 할 일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뭐, 원고료만 타이밍 적절하게 들어오면 포장이사비용 정도는 충분히 댈 수 있으니 큰 걱정은 없습니다(근데 왜 책이 아직도 안 오는 걸까요? ;;; ). 하하.
2009/12/24 21:34 2009/12/24 21:34
─ tag  ,
rss 리더로 구독하고 있는 어느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소식입니다.
웹표준화, 웹전근성과 관련해서, 장애인의 웹 사용 실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단체나 어떤 프로젝트라기보다는 소모임 차원에서 진행하는 듯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 http://bit.ly/4tH02j
실태조사는 여기 http://bit.ly/5ZqkzC
설문 내용 자체는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설문 진행방식 자체가 문제가 될 수도 있으려나요?
아무려나 참고하세요. :)
2009/12/23 12:42 2009/12/23 12:42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 홈페이지를 오픈했습니다. 이제 본격 시작입니다 ... 만;;;

암튼 홍보전단지에 적힌 내용을 살짝 옮기자면

퀴어락은 성적소수자와 관련된 국내외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기록물을 수집, 정리, 보존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으로 누구나 검색, 열람, 이용, 교류하는 것을 꿈꾸는 비영리 공공 아카이브입니다.

아카이브의 사전적 의미는 "특정 자료를 모아 둔 정보 창고"입니다.
아카이브가 도서관이나 박물관과 다른 점은 모든 책, 역사적 유물만을 모아 전시하거나 열람하게 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의식을 갖고 관련된 기록물들을 모은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사진 아카이브, 소리 아카이브, 민속 아카이브 등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처음 아카이브는 '저장 창고'의 의미였을지 모르지만, 퀴어 아카이브는 단순한 기록보관소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모으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입니다. 한국의 퀴어들의 자긍심과 즐거움을 위해 움직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찾고, 담고 그리고 느끼는 공간으로서의 아카이브가 될 것입니다.

퀴어락은 3개년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9년은 도서, 문서 및 영상물 DB구축, 홈페이지 오픈, 2010년에는 사진 및 박물류로 범위를 확장하고 기증 등 자료 수집에 주력할 것입니다. 2011년에는 음원, 웹아카이빙, 기존 기록물의 디지타이징을 비롯 퀴어락 구축 과정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여 아카이브 구축에서 활용까지의 모든 정보가 공유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KSCRC는 이런 본격적인 아카이브 개발을 위해 2002년부터 기초다지기를 해왔고,
드디어 2009년 12월 21일 공식 오픈과 함께 문을 활짝 열고 여러분과 함께 합니다.

*퀴어락은?
한국퀴어아카이브(Korea Queer Archive)의 애칭!! 이는 Queer+Archive를 조합한 'Queerarch'를 발음대로 읽은 것이기도 하지만, 한자의 '즐거울 樂'이란 의미를 담아 퀴어의 즐거움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홈페이지 주소는 www.queerarchive.org 입니다.
많은 방문과 활용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내용 기록에서 오탈자를 비롯한 잘못된 부분도 적잖을 것입니다. 발견하시는대로 알려주시면 매우매우매우 감사!!!
(메일 kscrcqueer@naver.com으로 보내주시면 될 듯?)
2009/12/23 12:36 2009/12/23 12:36
예전에 구글웨이브에 메모를 남겨두고선, 블로그에 올리는 걸 깜빡한 인용구절. 기대치가 높아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인상적인 구절은 많았다.

가쿠다 미쓰요. 『더 드라마』(안윤선 옮김, 서울:예담, 위즈덤하우스, 2007)

39 헤어질까. 그 단어에 놀라울 정도로 가슴이 방망이질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것이 시작될 듯한 예감. 야경을 보면서 프러포즈 받는 것보다, 아오야마로 이사하는 것보다, 교제 6년, 동거 2년의 남자와 헤어져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다.
헤어지기만 하면, 틀림없이 연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슴 뛰는 일도 많아질 것이다. 일상은 작은 드라마로 채색될 것이다.

48 데이트는 장보기가 되고, 디너는 저녁이 되고, 왕자님은 두꺼비가 되고, 틀림없이 그러한 일상이 나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114 남자는 여자가 도가 지나친 행동을 하면, 그 이면에 있는 것들을 마음대로 상상하고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자신을 어필하는 것도, 남자의 취미에도, 심드렁하게 대하면, 오히려 그 무관심을 두려워하는 남자도 있었다.
지나치게 강한 애정도, 지나치게 희박한 애정도 남자를 두렵게 만든다. 미래에 대한 기대심리도 남자를 두렵게 하고, 과거에 대한 집착도 남자를 두렵게 한다.

117 "노노짱. 헤아려 봤는데, 나 애인 없이 지낸 세월이 14년하고도 3개월이야. 그건 말이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의 기간이야. 그 만큼의 시간이면, 사람은 글도 쓸 수 았고, 뜀틀도 넘을 수 있고, 원주율도 계산할 수 있고, 일도 하고 독립도 할 수 있어. 그만큼의 시간을 나는 연애에서 멀어져 있었다고. 너무 하지 않니? 좋아한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2009/12/22 21:43 2009/12/22 21:43
질투의 원인은 사랑보다는 자존심 때문이다.
-라 로슈푸코, 잠언324
2009/12/22 21:00 2009/12/22 21:00
거의 모든 오프라인이 인터넷으로 이주하고 있는 기분입니다. 홈페이지는 기본이고 검색은 필수란 느낌입니다. 물론 저란 인간은 검색을 제 몸의 일부로 여기고 있긴 하지만요. 하하. ;;; 아무려나 10년 정도 지나면 거리의 풍경은 지금과 매우 다를 듯합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영업이 가능한 상점은 음식점(술, 커피 등을 포함) 정도려나요?

헌책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책방으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 질문의 상당수가 도서문의입니다. 책이 한두 권 정도일 경우엔 책 제목을 확인하고, 문의에 응하긴 합니다. 그런데 이때 약간의 문제가 생깁니다. 제가 일하는 책방을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책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선 관련 분야의 책장에 가서 직접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전화를 거는 분들 모두가 오프라인의 형태를 아는 건 아니죠. 검색해서 전화번호만 보고 문의하는 경우도 상당합니다. 그런 분들께, 검색이 안 되어서 직접 찾아야 하니 5분이나 10분 뒤에 다시 전화달라는 말을 하면 당황합니다. 제가 일하는 헌책방은, 아날로그로 운영되는 몇 안 되는 공간이죠. 제가 아날로그로 움직이는 몇 안 되는 공간이고요.

헌책방의 재미는, 품절되어 더 이상 새책방에서 구할 수 없는 책을 찾는 것도 있지만, 예상치 못한 책을 찾는 재미가 더 큽니다. 만약 제가 헌책방을 다니지 않았다면 평생 몰랐을 책들이 상당했을 테니까요. 1980년대 초반에 나와 조용히 사라졌지만 지금의 제게 너무 매력적인 책을 온라인으로 찾을 거란 기대 같은 건 없습니다. 온라인과 검색을 저팔 할로 여기지만, 온라인으론 결코 채울 수 없은 오프라인의 매력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제 모든 공간은 온라인으로 이주할 거 같습니다. 제가 일하는 책방이 문을 닫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니, 이건 제가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전 그저 저녁에 잠깐 일하는 알바생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찮아요. 예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네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알바하는 곳이 없어지는 건 걱정이 아닙니다. 알바 자리야 또 어디서 구하면 되죠. 물론 이보다 좋은 곳은 없겠지만요. 하지만 헌책방이 없어진다면, 그것도 제가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책방이 없어진다면, 이것 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딨겠어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10년 뒤, 거리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2009/12/20 13:08 2009/12/20 13:08
01
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건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 그나저나 저를 그렇게 싫어하면서, 마치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말하는 걸 보니 정치력은 대단하세요. :) 그럼 이제 그들의 혐오발화는 어떻게 할까요? 폭로를 해도 2년은 지나야 가능합니다. 현재 폭로하고 싶긴 하지만, 제게 피해가 오는 게 아니라 엉뚱한 사람들에게 피해가 발생하니 참아야죠. 후훗.

02
지구인 님에게서 마이클 잭슨의 앨범 [This Is It]을 빌려 들었습니다. 듣다가 조용필의 라이브 앨범을 다시 들었습니다. 그러며 ‘내년엔 꼭 조용필 콘서트에 가야겠어’라고 다짐했습니다. 전 조용필이 죽지 않을 거란 환상에 빠져 있었던 걸까요? 내년엔 꼭 조용필 콘서트에 가서 신나게 즐기렵니다. 예습을 하지 않아도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를 자신은 있습니다. 후후.

03
우분투를 9.10으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우분투/리눅스는 매년 4월과 10월에 새 버전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윈도우가 과거 XP를 냈고, 다음 버전으로 비스타, 그리고 최근에 윈도우7을 낸 것처럼요. 농담으로, 어떤 사람은 윈도우 XP가 1년에 한 번 새로 깔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싫어서 우분투로 바꿨는데, 우분투를 사용하고 나선 6개월에 한 번 새로 깔고 있더라고 했죠. 하지만 새로운 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물론 반드시 새로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상당기간 업데이트 지원을 계속하고, 장기지원버전이 따로 있기도 하니까요. 2년에 한번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버전도 있으니 어려움은 없죠. 2년에 한번 시스템 최적화 겸 포맷을 한다는 기분으로 바꿀 수도 있으니까요. :)

9.10은 2009년 10월에 나온 버전입니다. 10월에 나온 걸 이제야 설치했으니 늦었죠. 하지만 일부러 늦게 했습니다. 이번 버전은 초기에 불안하다는 얘기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한 달 정도 기다리면 각종 업데이트를 통해 안정적으로 바뀔 테니까요. 역시나 업그레이드를 하고 각종 업데이트를 설치하니 상당히 안정적입니다. 인터넷 결제를 안 하는 제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OS가 없습니다. 물론 한국 이외의 지역에선 우분투/리눅스에서도 인터넷 결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요.

04
집주인에게 이사할 예정이라고 확답을 주니, 얼굴에 화색이 도네요. 아, 짜증나! ㅡ_ㅡ;;
역시 건물을 가진 자에겐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 요즘이 좋긴 하겠어요. 꾸엑.

05
역시 겨울엔 이불 속에 파묻혀 귤이라도 까먹으며 추리소설을 읽는 게 최고죠! >_<
2009/12/20 13:05 2009/12/20 13:05
다른 얘기도 있지만 이번 달 들어 지난 13일까지 읽은 단행본 중 소설 얘기나 주절거릴까요?

다카노 가즈아키의 『13계단』을 읽었습니다. 뚜렷한 증거 없이, 정황에 따라 유죄확정과 사형선고를 받은 이가, 범인이 아님을 밝히는 내용입니다. 얼추 1년도 더 전에, 어쩌면 2년 정도 전에 산 거 같은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어떤 책들은 명성에 기대어 읽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대체로 만족입니다. 범죄와 사형제도, 생명이라는 것, 죄를 반성한다는 것 등을 이런 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전반적으로 매우 꼼꼼하게 치밀한 구성을 이루고 있지만, 핵심적인 부분에서 허술함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아쉬웠지만, 이 작품이 공식적으로 첫 번째 소설이란 점을 감안하면 그런 자잘한 허술함이 오히려 다행입니다.(응?)

후지타 요시나가의 『텐텐』을 읽었습니다. 사채 80만 엔을 갚을 수 없어 고기잡이 배를 타야 할 지도 모르는 주인공이, 도쿄를 같이 여행하면 100만 엔을 준다는 말에 도쿄를 도보여행한다는 내용입니다. 뭔가 폼을 잡고 있긴 한데, 다소 진부합니다. 하지만 도쿄 시내(혹은 자신이 일상을 살아가는 공간이나 도시)를 여행한다는 아이디어는 매우 매력적입니다. 저의 경우,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서 거의 5년 정도 살고 있지만, 여전히 제가 사는 동네를 잘 모릅니다. 어떤 가게가 있는지, 어떤 골목이 있는지 ….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사는 동네를 도보여행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꽤나 재밌을 거 같습니다. 그 길엔 고양이들이 살아가고 있겠죠?

가쿠다 마쓰요의 『더 드라마』를 읽었습니다. 예전에 『공중정원』을 읽고 반해서 이 책도 읽었습니다. 『공중정원』은 일체의 거짓 없이 진실만 말하는 걸 모토로 하는 가족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실이 어떻게 기획되는지, 진실해야 한다는 약속이 만드는 진실한 거짓을 매우 잘 풀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떠나 흥미로운 소설이죠. 그래서 『더 드라마』도 읽었습니다. 헌데 이 책은 야마모토 후미오, 에쿠니 가오리 류의 소설입니다. 30대 여성의 연애에 관한 소설이고요. 물론 작가가 다른 만큼 또 다른 재미가 있긴 합니다. 뭐랄까, 읽고 있노라면 공감하는(응?)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공중정원』의 인상이 너무 강해서인지 조금 아쉽더라고요. 나중에 『삼면기사』를 읽을 예정입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유령 인명구조대』를 읽었습니다. 『13계단』을 읽은 김에 『유령 인명구조대』도 같이 읽었습니다. 자살한 4명의 주인공이 천국에 가기 위해 자살하려는 100명을 구조한다는 얘기입니다. 소설 자체는 재밌는데,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100명을 구조하니 적어도 10명의 에피소드가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히키코모리, 우울증, 사채금융과 카드빚, 이혼, 성적, 장애 등 각종 사회 이슈를 다 다루려고 합니다. 너무 산만해서 못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차라리 각각의 이슈를 별도의 책으로 다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 그리고 책 편집이 엉망입니다. 글자 크기는 보통 단행본보다 1~2포인트 정도 작습니다. 오탈자는 수시로 등장하고 심지어 줄나누기를 잘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어쩌자는 건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이렇게 편집하다니, 출판사가 너무하다 싶더군요.

요코야미 히데오의 『종신 검시관』을 읽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현장으로 가서 검시를 하는 인물이 주인공입니다. 헌데 주인공의 능력이 출중하여 주변에서 다른 부서로 인사이동을 못 하도록 로비를 할 정도고, 부하 형사들은 주인공을 교장선생님으로 부를 정도로 존경 받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전통적인 추리물의 형식에 충실하단 점입니다. 사건이 발생하면 자살인지 살인인지 밝히고, 살인이면 어떤 방식으로 살인을 했는지, 살인 같은 자살이면 어떤 방식으로 자살했는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즉, 추리 자체를 강조하여 주인공의 매력을 부각하는 소설이랄까요? 비교적 최근에 쓴 소설 중에 이렇게 추리 자체를 강조한 소설은 오랜만이라 재밌게 읽었습니다.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을 읽었습니다. 감히 강추합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는데 피해자는 현직 경찰. 경찰과 검찰은 사건을 비밀에 붙이고 내사에 들어갑니다. 사건을 최초 발견한 경찰은, 자동차 안에서 총에 맞아 죽은 이를 조수석으로 밀어내고 그 차를 운전해서 경찰서로 갑니다. 이 장면에서 잠시 뜨악했습니다. 바로 전에 읽은 『종신 검시관』에서 가장 중시한 건, 현장보존이거든요. 근데 『재판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의 시작 장면은 현장 훼손이거든요. 이 소설은 현장보존과 논리적인 추론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기존의 추리물과 상당히 다릅니다. 1950년대 나온 책이지만, 최근 읽은 소설 중 가장 매력적입니다. 더 이상 말하는 건 스포일러겠죠? 아무려나 추리형식부터 재판과 처벌 등에 관해 매우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제임스 시겔의 『탈선』을 읽었습니다. 아내와 딸을 사랑하는 주인공이 기차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에 빠지고 바람을 핍니다. 근데 그 장면이 어떤 범죄자에게 들키고, 이후 협박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끔찍합니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묘사와 몇몇 장면은 끔찍해서 차마 이 책을 읽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소설 뒷표지엔 ‘충격적인 반전의 연속’, ‘최고’ 등 갖은 찬사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찬사가 현란할 수록 실체는 현란한 수사를 못 따라 간다는 걸, 이 책은 매우 잘 증명합니다. 물론 추리소설로서 재미는 있습니다. 심심할 때 한번 읽어도 무방하겠지요. 하지만 전 이미 프리드리히 뒤렌마트의 소설을 읽었는 걸요. 현란한 소설적 장치, 복잡한 구성 같은 거 없이도 훨씬 빼어난 반전과 의미를 담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즘 소설은 지나치게 복잡해지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하긴 …. 추리소설의 기본 아이디어는 이미 에드가 앨런 포Edgar Allan Poe가 다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 어쩔 수 없겠죠.

아무려나 추리와 소설의 형식을 고민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제가 이런 걸 고민해서 뭐하죠? 흐흐.
2009/12/16 13:12 2009/12/16 13:12
동네냥이들 중 리카를 특별히 편애하지만, 이제까진 특별한 애정표현을 안 했습니다. 다른 고양이들이 제가 리카를 편애한다는 걸 알아 좋을 게 없으니까요. 아, 물론 그들은 제가 누굴 더 좋아하는지 신경도 안 쓰겠지만요. ;;; 아무튼 지금까진 그랬지만, 이틀 전부터 그냥 리카를 향한 저의 편애를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틀 전엔 음식을 기다리며 저를 바라보던 리카에게 특별식을 주었습니다. 리카가 무척 잘 먹어 기뻤습니다. 음하하. 농담처럼 리카를 납치하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알고 있습니다. 길이, 동네가 집인 리카를 좁은 방에 가두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리카가 찾아오진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저 저의 애정을 책임감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겠죠.

제가 음식을 내놓는 시간에 항상 리카가 저를 기다리는 건 아닙니다. 리카와 만날 수 있는 날도 있고 못 만나는 날도 있습니다. 아무려나 리카와 만나도, 리카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드뭅니다. 항상 뒤로 밀리거든요. 동네고양이들 간의 위계질서가 있으니 어쩔 수 없지요. 아무려나 사흘 전, 리카가 음식을 일찍 먹어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리카는 음식을 다 먹자, 물을 마신 후 제 갈 길을 가는데요. 저를 향해 얼굴을 돌리더니 “야옹”하고 울었습니다. 아아 … ㅠ_ㅠ “밥 먹는데 왜 자꾸 쳐다보는 거냐!”란 의미일 수도 있지만, 저는 “잘 먹었다”는 인사로 이해하렵니다. 이히히.

이틀 전에도 리카는 음식 먹는 순서에서 뒤로 밀렸습니다. 그렇게 밀릴 때마다 리카는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해맑은 얼굴로 삥 듣으려는 표정이랄까요. ;;; 흐흐. 저는 결국 캔으로 된 사료를 슬쩍 꺼내 리카 근처에 두었습니다. 리카는 열심히 먹더군요. 기뻤어요. 그런데 갑자기 우당탕 소리가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확인하니 무려 카노가 음식이 든 봉지를 들고 도망쳤더군요. 그렇게 도망쳐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혼자 먹고 있었습니다. 카노의 미운짓이 얄미웠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리카가 깜짝 놀랐다는 거죠. 리카는 골목길을 가로질러 다른 곳에 있는 차 아래로 숨었습니다. 캔은 그대로 두고요. 저는 캔을 챙겨, 리카가 있는 자동차 아래로 가져다 두었습니다. 리카는 다시 캔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이, 다른 고양이들은 어리둥절하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근데 분명 카노보다 덩치가 큰 냥이들도 있었는데 카노 음식을 뺏진 않더군요. 덩치와 위계는 다른 거겠죠?

어젠 사료에 캔을 섞어 주었습니다. 밖에 나가니 여러 냐옹이들이 몰려들더군요. 하루 종일 굶었던 거 같습니다. 대충 경향을 보니, 제가 음식을 주기 전에 충분히 먹었으면 안 나타나고, 못 구했으면 나타나는 거 같습니다. 다행이죠. 아무려나 그 와중에 리카도 보였습니다. 이힛. 저는 우선 지저분한 쓰레기들을 치웠습니다. 음식을 두고, 쓰레기를 치우면 다들 도망가거든요. 음식을 먹다 도망치면 건강에도 안 좋을 테니까요. 그렇게 쓰레기를 치우는데, 리카가 한쪽 구석에서 자꾸 저를 보는 겁니다. 그래서 평소와 다른 곳에, 리카가 가장 먼저 먹을 수 있는 곳에 음식을 두었습니다. 성공! 다른 고양이들은 매우 당황했지만, 리카가 가장 먼저 음식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 제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덩치 큰 고양이가 리카를 밀어냈더군요. 밀려난 리카는 다시 자동차 아래서 저를 보았습니다. 리카, 바보! 이 순둥이!! 마침 쓰레기 봉지를 버려야 해서, 玄牝으로 돌아가 음식을 조금 더 챙겨왔습니다. 그리곤 리카 근처에 챙겨온 음식의 일부를 두었습니다. 리카가 먹기 시작하는데요.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 또 다른 고양이에게 밀려났습니다. 이이... 리카, 이 순둥이!! 저는 안타까움으로 리카를 보았는데요. 리카 역시 저를 보았습니다. 그러다 저를 바라보며 슬슬 어딘가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리카를 계속 바라보았고, 리카 역시 저를 보며 이동하더니, 제가 등지고 있던 자동차 아래로 갔습니다. 그거야! 저는 자동차 아래, 리카와 가깝지만 너무 가깝지 않는 곳에 남은 음식을 두었습니다. 리카 역시 만족스러운듯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리카가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론 충분하지 않았죠. 매우 적은 분량만 남았으니까요. 그래서 리카는 사료음식을 다 먹자 아직 배가 고픈 듯, 제 앞에 앉아선 저를 보았습니다. 저는 갈등했습니다. 주머니엔 캔이 있었거든요. ;;; 리카는 일단 저를 한동안 보다가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낮은 담장과 건물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우리는 눈이 마주쳤습니다. 어쩌겠어요. 다시 고민을 하다, 리카와 떨어진 곳에서 저는 결국 캔을 꺼냈습니다. 바닥에 놓아두고 저는 멀찍이 떨어졌죠. 리카는 얼른 달려와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혹시나 다른 고양이들이 리카를 밀쳐낼까봐 리카 근처에 서 있었습니다. 리카 역시 음식을 먹는 내내 저를 확인하더군요. 아니, 그냥 신경쓰는 걸까요. "밥 먹는 거 그만 구경해!"라는 의미로. 흐흐. 아무려나 그렇게 밤 늦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자자. 농담으로 말했던 리카 납치 기획을 정말 실천해야 할까요?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겠지요. 그런데 리카를 납치하려면 카노도 같이 납치해야 합니다. 둘은 늘 붙어다니거든요. 혼자만 납치하면 분명 외롭고 또 우울할 테니까요. 아무려나 이건 제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은 리카가 합니다. 그리고 납치를 못 해도 괜찮아요. 제가 이사를 해도 괜찮고요. 애정은 언제나 책임감을 요구한다는 것을, 저는 리카에게서 배우고 있으니까요.
2009/12/13 11:46 2009/12/13 11:46
01
만약 늦은 밤 골목에 어떤 사람이 어슬렁거리고 있는 걸 멀리서 본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떤 존재로 이해할까요? 특히나 그의 키가 170센티미터 이상이고 머리카락이 짧은 편이라면? 저라면 그를 치한으로 여기면서 두려워할 거 같습니다. 더구나 그가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흠칫, 놀란다면? 매우 불안해 한다면? 분명 그를 치한으로 여길 겁니다. 그가 고양이에게 음식을 조공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의 키가 160센티미터 정도고 머리카락이 상당히 길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아무려나 동네냐옹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간혹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저의 행동이, 행인들에겐 치한의 위협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악. ㅠ_ㅠ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길고양이가 처한 상황,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는 행위의 의미, 개인의 신체를 해석하는 젠더(이분)화된 인식들이 교차하는 순간입니다. 제 몸은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주는 순간에도, 매우 불안하고 불편한 몸이더군요. 트랜스젠더 이슈가 스며들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02
저는 대부분의 쇼핑을 인터넷으로 해결합니다. 편하고 빠르니까요. 편하고 빠른 만큼이나, 상당히 빨리 해결하는 편입니다. 제가 입고 다니는 옷의 대부분은 인터넷쇼핑몰에서 산 겁니다. 한 번에 두세 벌을 동시에 사는데요, 두세 벌을 고르는데 30분 이상 안 걸립니다. 그렇게 사서 별로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매우 만족스러운 경우도 상당하죠. 운이 좋은 게 아닙니다. 설명할 수 없는 노하우도 있고, 감도 있고요.

하지만 요즘 동네냐옹이들에게 줄 사료를 사기 위해 사이트에 들어가선 얼추 사흘 동안 매일 한 시간 씩 비교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다른 경우라면 결코 읽지 않을, 상품후기도 하나하나 다 읽고 있습니다. 고양이들이 잘 먹는지, 건강엔 좋은지 등을 따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괜시리 ‘내가 뭐하는 짓인가’ 싶을 때면 “그냥 주는 대로 먹어!”라고 외치지만, 이건 그냥 즐거운 투덜거림일 뿐입니다. 고양이는 제가 조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습니다. 먹어 줄 뿐입니다. 고양이는 음식을 바라지 않습니다. 당당하게 요구하죠. 그러니 고양이가 입이라도 대면, 제가 감지덕지! 흐흐. 더구나 제가 먹을 음식이 아니라 고양이가 먹을 음식인데 아무 거나 고를 수는 없죠. 제가 먹을 음식이면 그냥 대충 고르고 맙니다. 김밥천국과 동네분식집에서 거의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제가 입맛을 따질 리 있겠어요? 하지만 고양이잖아요.

요즘은 꽤나 괜찮은 거 같은 사료를 주고 있는데요. 며칠 전, 학교고양이인 얼룩이에게 사료를 주었습니다. 얼룩이는 제가 준 사료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지나가면서 종이컵을 얼룩이 옆에 두고 가더군요. 뭔가 했더니 그가 챙긴 사료였습니다. 얼룩이는 그 사료를 잠시 먹더니 다시 제 것만 먹기 시작했습니다. 잠깐씩 두 사료를 비교했지만 결국 제 것만 먹더군요. 음하하. 꽤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제게 분명하게 알려 준 것은, 어정쩡한 사료를 사서 냥이들에게 줄 생각하지 말 것! 물론 다음날 확인하니 그가 준 사료도 다 먹었더군요.

03
저는 포털사이트의 카페에 가입하는 걸 안 좋아하는 편입니다. 로그인해서 확인해야 하는 것이 번거로워서요. 흐흐. 가입한 카페가 몇 개 있지만, 2009년도에 로그인해서 확인한 적이 없는 듯합니다. 아무려나 고양이 관련 자료를 찾다가, 결국 다음카페 냥이네에 가입할 일이 생겼습니다. 공지글 중에 길냥이들에게 음식을 주는 사람들에게 필독을 권하는 글이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제가 읽어야 할 글인 듯해서 제목을 클릭하니 로그인을 요구하더군요. 카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는 듯했습니다. 첨엔 그냥 안 읽겠다고 창을 닫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쓰여 결국 카페에 가입하기로 하고, 잊고 지낸 비번을 간신히 찾아 로그인했습니다. 그리고 가입하기를 클릭했는데 …. 무려 실명확인한 회원만 가입할 수 있더군요. 저는 실명확인을 거부하고 있거든요. 더구나 그 아이디는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않을 당시에 만든 거고요. 흐흐. 그래서 그냥 가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글이 궁금하지만 어쩌겠어요. :)
2009/12/13 11:38 2009/12/13 11:38
예기치 않게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해서 쓸 내용이 두 가지 생겼습니다. 좋은 소식(하지만 조금 슬픈 소식)과 황당한 소식 중 어떤 소식을 먼저 전할까요?

01
갈매나무 님께서 댓글로 알려 주신 소식입니다( http://bit.ly/6wIgH6 ).
(소식, 고마워요!!)

12월 10일 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2009 반인권의 옷을 벗기자”란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 자리에서 ‘인권밉상’과 ‘인권울상’을 발표하는 한편, ‘인권의 맛을 돋운 소금들’이란 상도 발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금들 상에 트랜스젠더인권활동단체 지렁이도 있었다고 …. 음….
(자세한 기사는 http://bit.ly/8zRh8R )

지렁이가 2009년에 한 거라곤 인권위 사업 철회한 거 밖에 없는데요... ;;; 다른 때라면 이 기사에 매우 기뻤겠지만, 현재로선 난감한 기분입니다. 무턱대고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그래도 선정해주신 분들껜 고마움을 전합니다.

아무려나 올해 안에 지렁이와 관련해서 뭔가 새로운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02
어느 선생님과 전화를 하다가 전해 들은 소식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국립국어원이 트랜스젠더를 “전환여성(남 → 여)”, “전환남성(여 → 남)”으로 용어를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네요. 국립국어원과 인권위 홈페이지에선 해당 내용을 검색할 수 없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 환경 때문일까요? 국립국어원과 인권위 홈페이지가 웹표준을 지키지 않아서 생긴 문제일까요? 아무려나 검색사이트로 해당 내용을 찾으니 다음의 글만 찾을 수 있습니다. http://bit.ly/6BCVWB

아무려나 이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상념. 이런 어처구니 없고 황당한 경우가 있나! 도대체 뭐하자는 건가요? 이런 어이 없는 짓에도 성명서나 항의 메일을 보내야 할까요? 이런 용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요? 한 존재를 명명하는 작업을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자세한 내막을 몰라 더 길게는 쓰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매우 화가 나고, 황당한 일이라고 밖에 달리 더 할 말이 없습니다.
2009/12/11 13:37 2009/12/11 13:37
01
어제 학교고양이인 얼룩이에게 음식을 주고 있는데, 누군가가 “좋은 일 하시네요”라는 말을 건넸다. 순간 당황했다. 그래서 대충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그 인사는 관용어구이니 신경 쓸 말은 아니다. 일테면 “식사하셨어요?”와 같은 정도의 인사니까. 하지만 이런저런 고민이 많은 초보자인 내게 이런 사소한 인사도 신경 쓰인다. 나는 이게 좋은 일인지 잘 모르겠다. 얼룩이는 이미 사람들의 손을 너무 많이 타서 사람이 음식을 챙겨주지 않으면 굶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얼마나 그렇게 살아온 걸까? 나 역시 얼룩이의 이런 삶에 일조하고 있다. 그래서 한편으론 죄책감이 든다. 어쩌면 얼룩이를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닐는지 ….

02
어제 밤에도 내가 사는 집 길냥이들에게 음식을 줬는데. 언제나 가장 먼저 달려오는 냐옹이와 그외 고등어 무늬의 고양이 셋. 그들이 음식에 달려드는데 …. 잠시 딴 곳에 신경을 썼다가 음식을 두는 곳을 봤더니 없었다! 비닐에 담아 줬는데, 비닐이 없어졌다. 나는 순간, 순식간에 어느 고양이가 음식을 담은 비닐을 물고 도망갔다고 착각했다. 아기들에게 음식을 주기 위해 아예 비닐봉지를 가져간다는 식으로. 처음 모인 넷은 그대로였으니, 순식간에 나타나서 순식간에 사라진 것으로 상상했다. 실제 고양이들은 당황하고 있었고, 바닥에 떨어진 사료를 먹고 있었다. 나는 구시렁거리며 다시 음식을 가져왔다. 그리고 이번엔 비닐을 제외하고 길바닥에 음식을 놓았다. 사실 이건 정말 싫은 일이다. 한 생명에게 음식을 주면서, 길바닥에 놓아주는 건 무례한 일이다. 그럼에도 음식을 바닥에 뿌릴 수밖에 없었다. 또 어느 고양이가 비닐봉지를 물고 도망갈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지켜보고 있는데 …. 두둥. 그게 아니었다. 고등어 무늬 고양이 넷 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비닐봉지를 물고 어느 구석으로 가선 혼자 먹고 있었다. 울컥. 첨엔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거니 했다. 너무 배가 고프니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을 깬 것이 아닐는지.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玄牝으로 돌아갔을 때, 나는 가장 덩치가 큰 그 고양이에게 화를 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혼자 음식을 독점하는 건, 해선 안 되는 일이니까. 아무려나 속상한 밤이었다.

아무려나 앞으론 그냥 음식을 바닥에 둬야 할 거 같다. 내키진 않지만.

아, 그리고 사료를 인터넷으로 사야할 거 같다. 혹시 괜찮은 사이트 있으면 추천 부탁!

03
어쩌다 보니, 이 블로그, 고양이 블로그로 은근슬쩍 바뀌고 있다. ;;; 조만간에 트랜스 관련 글이라도 올릴 테니, 관련 내용을 기대하는 분들은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흐흐.
2009/12/10 12:15 2009/12/10 12:15
01
눈이 내렸다. 낮 12시 전후로 대충 30분 정도. 카페에 앉아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설렘과 우울이 흩날렸다. 바닥에 쌓이진 않았다. 젖었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바닥의 물기와 함께 셀렘과 우울도 증발할까? 하지만 결국 또 순환하겠지.

02
Keith Jarret의 The Koln Concert를 듣고 있다. 서늘한 피아노 소리. 키쓰 자렛의 피아노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지난 일요일의 추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였다. 바람이 심하게만 불지 않았다면 내가 최고로 좋아하는 날씨였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쌀쌀한 게 아니라 정말로 추운 날씨. 그 날씨면 내가 깨어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름날의 더위에 죽어가던 내가, 겨울이 오고 추위를 온 몸으로 느끼면 그제야 비로소 내 몸도 깨어나고 살아 있음을 깨닫는다. 무엇보다 피아노 소리와 잘 어울려서 좋다. 나는 이 계절의 서늘함이, 푸른 빛이 감도는 햇살이, 피아오와 어울리는 차가움이 좋다. 무엇보다 키쓰 자렛의 피아노와 너무도 잘 어울리는 계절이라 기쁘다.

03
어제 밤엔, 유섹인 강좌가 끝나 사람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헤어지느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은 귀가. 고양이들은 없었다. 그리고 주변 쓰레기 봉투가 뜯어져 있었다. 안도했다. 아직은 쓰레기봉투를 뜯으며 음식을 구할 능력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음식을 챙겨 나왔다. 5분 정도 기다리자 카노가 슬쩍 나타났다. 카노가 한참 음식을 먹고 있을 때, 리카도 나타났다. 잠시 나와 눈을 맞추더니 음식을 먹으러 갔다. 리카와는 참 오랜 만이다. 거의 나흘 만인가? 그동안 통 안 보여 걱정했는데, 아직 살아 있었나 보다. 다행이고 또 다행이다. 난 겨울 추위에 동사했는지, 로드킬이라도 당했는지, 동네주민의 혐오폭력에 아픈 건지, 행여 내가 준 음식에 아팠던 건지, 이런저런 걱정을 했는데, 다친 것 같진 않았다.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 음식을 먹으러 오는 시간이 늦었을 뿐인 거 같다. 확실히 리카는 너무 예쁘다. 그리고 나와의 거리도 많이 줄었다. 예전엔 1.5미터 정도만 다가가도 서둘러 도망갔는데, 지금은 그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도 눈을 맞추는 정도다. 걱정이다. 음식을 먹다가 사람 소리에 움찔하다가도 내가 보이면 안도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사실 냐옹이보다 리카를 더 좋아하는 나는, 이사갈 때 리카를 납치할까 하는 고민도 슬쩍 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리카가 결정할 부분이다. 리카의 의사를 따라야 한다.

04
날씨가 좀 풀리고 있다. 사흘 만에 웹으로 돌아왔다. 지난 이틀 동안 인터넷 접속이 원할하지 않았다. 행사에 학회 이사로 분주했다. 하지만 언제나 내 몸은 웹에 있다. 그래서 웹이 그리웠다. 인터넷이 일상인 시대, 인터넷을 어릴 때부터 경험한 세대에겐 전통적인 오프라인 공간이 아니라 웹이 그리움의 공간이 되겠지. 웹이, 카페가, 홈페이지나 블로그가 고향이 되겠지.
2009/12/08 14:08 2009/12/08 14:08
다시 혹은 또, 나는, 마지막 순간에, 아니,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래서 견디고 또 견뎌야 할 기간에, 도망친 건지도 모른다. 아니다. 무서워서 도망친 거다. 직면하기 무서워서, 나의 부끄러움을 견디기 싫어서. 그래서 더 부끄럽다.
2009/12/04 22:38 2009/12/04 22:38
어제 밤엔 시사IN 지난 호 중, 길고양이 특집을 다시 읽었다. (http://bit.ly/6sevqn, http://bit.ly/6ffcqB, http://bit.ly/6llQV6) 예전에도 읽었지만 어제 읽는 내용은 하나하나 새롭고 또 절실했다. 가장 큰 차이는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민할 필요가 있는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고민할 수 있었단 점이다. 이전엔 그냥 지식이었다. 혹은 그냥 기사의 일부였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이며 맺고 있는 매우 일상적인 관계다.

어젠 음식을 주는 시간이 되자, 무려 고양이 여섯이 달려왔다. 나는 매우 당황했다. 정작 내가 기억하는 리카나 카노는 내가 잠시 머무는 동안 음식을 못 먹었다. 그들 간의 서열에 밀려 가장 나중에야 먹는 듯했다. 어쩌면 마지막에 남은 음식이 없어 못 먹는지도 모른다.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런 풍경을 보며 나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혹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의지만 있다면, 나는 이사를 가서도 시간을 달리하며 같은 장소에 음식을 놓아둘 수 있다. 이건 충분히 실현할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나의 의지와 나의 수입이다. 이사간 곳 냥이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기로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다. 너무 늦지 않게, 적어도 이사 가기 한 달 전엔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지금 현재의 고민과 함께, 앞으로 내가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 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한 순간은 드러나게 용감할 수 있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일상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렵다. 나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이미 몇 생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상황을 자초한 혹은 자처한 나는 얼마나 끈기 있게 할 수 있을까? 학교고양이들에게 주는 음식이 종종 끊기는 걸 확인할 때마다, 나는 나의 삶을 불안하게 살피고 또 살핀다.
2009/12/04 22:00 2009/12/04 22:00
01
어디서부터 얘기를 풀어야 할까요? 원래 지금부터 할 얘기는 나중에, 한두 달 뒤에나 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해야 하는 이유는 제가 할 수 없는 수준의 일이 생겼기 때문이죠.

어제 밤에도 늘 비슷한 시간, 냥이들 넷이 모여있었습니다. 그들을 그저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습니다. 인기척은 없었는데 기침 소리 같았죠. 냥이 셋이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 근처 집에서 나는 소린 줄 알았습니다. 무심하게 넘겼습니다. 다시 기침소리. 사람의 기침소리라기엔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 발소리에도 가만히 있던 냥이들이 기침소리엔 유난히 민감하게 반응하더군요. 또 한번 기침소리가 날 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냥이 중 한 아이(리카로 추정)의 소리였습니다. 자주 리카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여준 카노는 거의 공황상태더군요. 기침소리가 날 때마다 안절부절 못하고, 때로 갑자기 사람이라도 나타난 것처럼 멀리 도망가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냥이들을 만나며 처음으로 들은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전 공황상태에 빠질 뻔했습니다. 혹시나 헤르페스/허피스/허페스 바이러스(FHV, Feline Herpes Virus, http://catbook.kr/15)가 아닐까 싶어서요.

그간 가장 걱정했던 것 중 하나가 이 추운 겨울, 혹시나 허피스 바이러스에 걸리면 어떡하나 였습니다. 그래서 가게에 갈 때마다 L-라이신이 있느냐고 물었죠. 서너 곳을 돌아다녔지만, 아는 주인이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걸까, 하며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리카가 기침을 하기 시작한다는 걸 안 지금, 어떻게든 감기약을 구해야겠지요. 더 큰 걱정은, 감기약을 구해서 먹이지 않으면 FHV의 전염성으로 일대 모든 고양이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약은 어떻게 구해봐야죠. 제가 청하고 싶은 도움은, 혹시나 약 말고도 감기에 좋을 법한 음식이 따로 있을까 하는 겁니다. 일상적으로 줄 때, 따로 챙겨주면 좋을 음식들이요. 검색을 해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가 없어서요. 아마도 냥이와 함께 사는 분들이거나 길냥이와 친하신 분들이라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02
무서운 사실 하나는 어제야 비로소 깨달았는데, 제가 사는 곳 주변의 7~8 고양이(추정)들 누구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거죠. 첨엔 그냥 저를 경계하느라 소리를 내지 않는 걸까, 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매우 적은 경험에 따르면 작은 소리라도 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냥이들은 어느 순간에도, 어느 누구 하나 소리를 내지 않더군요. 기침 소리가 냥이들에게서 들은 유일한 소리라는 걸 깨달았을 때, 전 조금 무서웠습니다. 누군가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방사하는 과정에서 목소리까지 없앤 걸까요? 물론 도시에서 살아가며, 전략적으로 소리를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목소리를 없애는 수술까지 한 경우라면 ….
(중성화 수술을 하고 방사한 경우라면, 또 어떻게 상상해야 할까요? 그리고 원래 길고양이는 소리를 잘 안 내나요?)

03
이쯤되면 대충 눈치채셨겠지만, 냥이들에게 밤에만 음식을 주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는 딱히 할 만한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 혼자 고민하고, 검색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른 듯하네요.

시작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지난 11월 초, 어느 늦은 밤, 평소와 같은 시간 玄牝으로 돌아가는데, 집 근처에서 어느 냥이가 쓰레기봉투를 뜯다가 제 발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자동차 아래로 숨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 무언가가 제 뒤통수를 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 가게에 가서 고양이 음식을 사려고 했지만, 11월 중순까지 제 생활은 무지하게 바빴죠. 아침은 어떻게 김밥을 사 먹더라도 저녁 먹을 시간이 없어 건너뛰거나 알바 가는 길에 서둘러 김밥 한 줄 사들고 가는 식이었죠(참고로 저 하루 두 끼 먹는 인간;; ). 그러니 가게에 갈 시간 자체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냥이들에겐 매우 짠 음식이지만 참치캔 중간 크기를 집 근처에 있는 식당건물과 낮은 담 사이에 두었습니다. 지난 글에서 얘기한 ‘그곳’은 바로 여깁니다.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곳이라 발소리에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곳이겠더라고요.

그 시기엔 냥이가 몇 이나 있을까 싶었고, 설마 먹을까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확인하니, 깨끗하게 비웠더군요. 정말 깨끗하게. 하지만 참치캔을 준 건 그 후에도 몇 번 정도입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가장 큰 사이즈로 고작 몇 번. 알바 전에도 알바 후에도 행사 준비로 바빠, 참치캔을 살 정신이 없기도 했고, 참치캔이 고양이에게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조공하는 참치캔은 고양이들에게 그저, 우연히 생긴 득템 정도의 의미라면 충분했죠. 아울러 저의 책임감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동네, 골목을 생태계 삼아 살아가는 냥이들에게 몇 달 뒤면 떠날 제가 개입한다면 얼마나,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서로에게 길들지 않길 바랐습니다. 저의 조공이 그저 로또 같은 것이길 바랐습니다.

그렇게 학회의 바쁜 일정이 지나고 그 다음주 어느 날, 저는 가게에 들러 사료를 샀습니다. 조금 큰 접시도 같이 샀죠. 그날 밤, 사료를 담은 접시를 참치캔 두는 곳에 두었습니다. 반신반의했습니다. 얼마나 먹을까? 하지만 다음날 아침 깨끗하게 비운 모습을 보았을 때의 고마움이란. 그리고 복잡한 심경이란. 그렇게 매일 밤, 대충 11시를 전후한 시간에 음식을 담은 접시를 그곳에 두기 시작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깨끗한 접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딱 이 정도를 바랐지만, 그건 저의 의지였을 뿐입니다. 그 다음주 월요일 밤, 다른 행사를 끝내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그곳' 근처에 냥이의 귀가 보였습니다. 카노였습니다. 카노는 제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며 자동차 아래로 숨었습니다. 어디 멀리 도망가진 않았습니다. 저는 玄牝에 들러 음식을 챙겼고, 그곳에 두고 떠났습니다. 다음날도 누군가 기다렸고, 며칠 뒤엔 기다리는 이가 혼자가 아니라 때로 리카와 카노가, 때로 카노와 아리가 자동차 아래서 식빵 굽는 자세로 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더 며칠 뒤엔 아예 노아가 낮은 담장 위에 앉아 있다가 제가 나오자 서둘러 자동차 아래로 숨는 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떤 냥이는 제가 근처에 있으면 꼼짝도 안 하고, 어떤 냥이는 제가 근처에 있거나 말거나 음식을 먹으러 가고, 어떤 냥이는 저를 빤히 쳐다보고.

그리고 이틀 전, 냐옹이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저로선 낯선 얼굴인데 냐옹이는 저를 기억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제 발소리를, 제 얼굴을, 혹은 저의 어떤 냄새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에 서둘러 숨다가 제 냄새를 맡았는지 고개를 내밀고 저를 바라보는 표정. 그 표정은 명백히 저를 알고 있는 표정이었습니다. 어젠 냥이 넷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냐옹이도 있었습니다. 곤혹스럽게도, 냐옹이는 玄牝이 있는 건물까지 따라오려고 하더군요. 가는 길에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玄牝에 가서 음식을 챙겨나오기에 곤란했습니다. 물론 냐옹이가 저를 따라온 건, 이틀 전 제가 항상 주머니에 챙겨다니던 캔을 줬기 때문이겠죠. (네, 혹시나 아침이나 다른 시간에 우연히 마주치면 주려고 캔을 두세 개 정도 항상 챙겨 다닙니다. ;;; ) 카노는 제가 항상 玄牝에 들렀다가 나온다는 걸 알지만, 냐옹이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제게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더군요.

내겐 낯선 고양이와 나를 기억하는 고양이들. 이 기묘한 관계. 애당초 모든 관계는 저의 의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모든 고양이들은 제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저를 지켜보고 있는 거죠. 제가 몇 시에 오는지, 어떤 절차로 음식를 주는지,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모든 걸 알고 있는 거죠. 저만 모를 뿐입니다.

아무려나 어제 밤에도 음식을 챙겨 그곳에 갔습니다. 냐옹이는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나치게 가까워지자(냐옹이는 음식을 두는 그곳에 있었거든요-_-) 서둘러 저멀리로 도망갔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쁘고 또 섭섭하고, 안도하고 또 …. 네, 복잡했습니다. 누구와도 필요 이상의 거리를 좁힐 의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 필요는 없습니다(전 이미 냥이에게 복종하고 있지만;;). 그래서 냐옹이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다면 그 순간은 기뻤겠지만, 그 이후엔 내내 괴로웠겠죠. 또 한 가지 다행인 건, 다른 사람들 발소리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거죠. 그나마 제가 근처에 있으면 사람이 지나가도 걱정을 덜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을 경우엔 매우 빠른 속도로 도망가더군요. 이건 정말 다행입니다.

04
어제 밤엔 또 다른 화가날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화를 낼 일은 아니죠. 밥그릇을 항상 밖에 두었는데 누군가가 치워버렸더군요. 그곳이 결코 안전하지 않은 곳이란 의미죠. 그 근처에 사는 누군가가 그곳에 냥이가 드나든다는 걸 알면 언제든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죠. 아울러 저와 냥이에겐 밥그릇이지만 다른 이들에겐 그냥 길에 버린 쓰레기죠. 그래서 밥그릇을 치워버린 모습에 화가 나면서도 또 어쩔 수 없구나, 했습니다.

제가 밤에만 음식을 주는 건 사람들 때문입니다. 아침, 출근(?)하기 전에도 음식을 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고양이에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 고양이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우연히 출몰했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풍경일 수는 있어도, 존재 자체를 인식하진 않을 겁니다. 그런 이들에게 이 동네 고양이들을 인식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하는 거니까요. 아울러 아침에도 밥을 줘서 사람들에게 고양이의 존재와 위치를 노출한다면, 그건 또한 고양이를 매우 혐오하는 이들에게도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니까요. 그래서 전 항상 늦은 밤, 사람들이 거의 안 다니는 시간에만 음식을 줍니다.

물론 제 생활비가 적어서이기도 합니다. 아니, 사람 걱정은 음식을 주면서부터고, 사실 제 생활비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봉지 정도를 사고, 캔도 여럿 사고 있는데, 그러고 나니 등골이 휘네요. 그래서 전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제가 7~8 고양이를 모두 양육할 건 아니니까요. 저의 역할은 그저 늦은 밤에 음식을 주는 정도니까요. 어쩌면 하루 종일 굶었을 냥이들에게, 허기를 면할 정도, 혹은 목숨은 부지할 정도의 음식만 주는 정도가 저의 역할이니까요. 제가 마당 넓은 주택에 살았고, 월 수입이 많았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요. 사실 지금은 매주 사료 한 봉지에 캔 몇 개 사는 것으로도 충분히 과도한 지출이거든요. 하하.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늦은 밤에만 딱 한번, 음식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늘 불안합니다. 자주 마주치던 냥이가 안 보이면 걱정하죠. 제가 모르는 시간에 로드킬을 당한 건지, 어떤 사람의 괴롭힘에 혼자 앓고 있어서 못 나오는 건지, 영역을 바꾼 건지, 전날 제가 준 음식에 문제가 있어 아픈 건 아닌지 …. 그나마 괜찮은 상상은 낮에 수확이 좋아 저의 음식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경우죠. 사실 제가 가장 많이 하는 걱정 중 하나는 사람들의 괴롭힘과 함께, 제가 사다 주는 음식이 고양이들에게 괜찮은 걸까, 입니다. 혹시나 제가 준 음식에 문제가 있어 냥이들이 아프기라도 하다면 그것만큼 괴로운 것도 없겠죠. 그래서 전날 만난 냥이가 다음날도 나오길 희망합니다. 서로 인사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안부와 생존이 궁금한 거죠.

네. 압니다. 이건 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닙니다. 전 고양이들의 생태계 중 극히 일부분일 뿐, 제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 제가 이사를 갔기에 지금 동네에 가끔 들러 음식을 줄 수는 있어도 매일 음식을 줄 수 없는 상황이 와도 고양이들이 별탈 없이 지내길 바랄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 개입하는 건 서로에게 위험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인간인지라, 저의 안심을 위해 어제 만난 냥이를 오늘도 만날 수 있길 바랍니다. 안심하거나 애도할 수 있길 바랍니다.

05
그나저나 냐옹이가 걱정입니다. 다른 냥이들(리카나 카노를 비롯한 다른 냥이들)은 저와의 거리를 확실하게 유지합니다. 그건 다행이죠. 하지만 냐옹이는 제게 너무 달라붙을 기미가 보여 걱정입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부비부비를 하거나 무릎묘의 기질까지 보일 정도죠. 태도만 보면, 집으로 들이는 것도 가능할 정도지만 이건 저의 착각일 겁니다. 그나마 집으로 들일 수 있다면 이사 가지 전에 서로에게 적응해서 같이 가면 됩니다. 냐옹이는 길고양이에서 집고양이로 생존 방식을 바꾸고, 저는 별도의 입양 없이 냐옹이와 함께 살면 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말처럼, 글처럼 모든 게 쉽다면 세상 일이 무슨 걱정이겠어요. 그래서 걱정입니다. 냐옹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남은 시간 저의 고민 거리겠지요. 물론 모든 결정은 냐옹이가 하겠지만요.
(참고로, 냐옹이가 얼마나 미묘냐면, 만약 집에서 살았다면 스노우캣의 고양이보다 더 예뻤을 거라는 ….)
2009/12/03 11:56 2009/12/03 11:56
01
착하게 살아야겠다. ㅠ_ㅠ

02
또 고양이 이야기!
어제 밤, 무슨 일이 생겨 조금 일찍 玄牝에 갔다. (사실 그 전에 서울 시내 어딘가를 하릴 없이 헤맸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ㅠ_ㅠ) 터벅터벅 걸으며 玄牝으로 가는 길. 어느 길부터는 총 2번을 꺾어야 玄牝이 있는 건물이 나온다. 바로 그 길의 그 첫 번째 모퉁이에서 냐옹이가 서둘러 자동차 아래로 숨었다. 난, 미안하기도 하고, 이번엔 어떤 냐옹일까 궁금해서 자동차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데 냐옹이가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슬그머니 나오더니 몸의 반은 자동차에 숨겼지만, 반은 자동차 밖으로 빼선 나를 빤히 처다보는 거다! 으하하. 날 알아보는 고양이였다. 이히히. 그 눈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기에 난 적극 호응했다. 히히. 그 모습을 바라보며 너무 기뻤다. 난 한참 동안 냥이를 바라보았다. 냥이도 나를 떠나지 않고 근처에 있었다. 때로 내게 도움을 청하기도 하면서. 에헤헤. 사람들이 지나가면 내가 더 불안해서, 주위를 살피며 냐옹이 곁에 있었다. 기뻤다.
이사가 걱정이다.

03
나를 알아보는 고양이와 나는 못 알아 보는 고양이. 고백하건데, 난 사람 얼굴은 구분 못 해도 고양이는 구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놀랍게도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구분할 수 있는 고양이는 리카와 카노 뿐이었다. 으흑. ㅠ_ㅠ

내가 사람을 구분 못 하는 건,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런데 그게 좀 웃긴 방식이다. 예를 들어, ㄱ은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 ㄴ과 ㄷ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가정하자. 길에서 우연히 ㄴ이나 ㄷ을 보면 나는 내가 아는 ㄱ인가 싶어 헷갈려 한다. 그러며 ㄴ이나 ㄷ을 바라보기도 하며 곤혹스러워 한다. ㄱ과 무척 닮았기에 어쩌면 내가 아는 ㄱ인지도 모른다고 고민한다. 그런데 정작 ㄱ과 마주치면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친다. 으하하. ㅡ_ㅡ;; 도대체 나의 인식체계, 사람 혹은 생명 구분체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걸까? 나도 정말 궁금하다.
(ㄴ과 ㄷ이 ㄱ과 닮았다는 보장은 없다. 그냥 그렇게 인식하는 거다. ;;; 이쯤되면 내가 알아본다고 믿고 있는 리카와 카노가 매우 닮은 다른 고양이인지, 정말 리카와 카노인지도 확실하지 않다. ㅠ_ㅠ )
2009/12/02 22:17 2009/12/0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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