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링 관련 글을 찾아 읽고 있는데... 어떤 글에서 셜리번이란 학자는 멘토(mentor)와 뮤즈(muse)를 구분한다. 셜리번은 멘토에서 뮤즈로 관계 방식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 멘토 관계에서 성인의 역할은 가르치고 가이드하며 소녀에게 도움을 주는 모델로 나타난다. 이런 유형의 관계는 우선 일방향이고 과도기적이다. 대조적으로, 뮤즈는 소녀의 잠재성을 소녀가 이해하고 억압적인 사회 규범에 저항하도록 소녀를 도와주며, 소녀의 느낌과 경험을 경청하고 증명한다. 이러한 관계 모델은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취약함과 힘이 있다고 가정하며, 둘다 관계의 맥락에서 배울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
(번역은 대충 날림에 적당히 윤문한 것. 출처는 의도적으로 생략. 다음에 추가하겠음..;; )

여성주의/페미니즘에서 주로 논의하는 상담관계는 후자란 점에서 뮤즈의 역할 자체가 새로운 건 아니다. 다만 뮤즈 자체를 새롭게 해석한 점은 흥미롭다. 지금까지 내가 읽어온 많은 글에서 뮤즈('여성')는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지만 착취당할 뿐 결국은 거의 무명으로 버려지거나 정신병원을 비롯한 구금시설에 감금되는 위치였다. 물론 이런 해석 자체도 '남성'중심적인 해석이란 점에서 문제가 많긴 하지만. 이런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셜리번의 뮤즈는 확실히 흥미롭고, 좀 더 힘이 넘치는 모습이다.

+
그리고 구글만세! -_-;;
이 논문은 어느 책에 실렸는데, 그 책은 내가 접근할 수 없는 학교도서관에만 있다. 빌리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내가 필요한 건, 책 전부가 아니라 해당 논문일 뿐. 그래서 구글링을 했더니... 으하하.
2010/01/30 15:51 2010/01/30 15:51
관련 글: 주절주절

01
그러고 보면 늘 생활비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월급 많이 주는 곳에 취직하려고 노력을 한 적이 없다. 그냥 대충 한달 생활비만 어떻게 되면 그만이라는 나날. 나 뿐만 아니라,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어떻게든 입에 풀칠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0평, 80평짜리 초호화 아파트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10평 남짓(실 평수가 7평이건 12평이건), 나 한 몸 살 수 있는 공간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도 재개발, 재건축이란 이름으로 작은 공간을 바라는 욕심은 살아남기 힘들다. 이 사회에서 이런 욕심은 위험한 욕망 같다. '작거나 소박한' 욕심이 위험한 욕망으로 변주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 나의 일상은 아마, 평생 위태롭겠지. 그래도 어쩌랴. 나는 평생 이렇게 살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02
당고의 글을 읽다가 문득 궁금했다. 난 5년 전 만났던 사람들 중, 아직 연락을 주고 받는 사람은 두어 명 정도다. 우연히 만나 아는 척 하는 사람 말고, 가끔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사람. 그래서 문득 궁금했다. 내가 이 블로그, [Run To 루인]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곳을 찾아, 지금도 계속 들리는 사람이 있을까? 흐흐. 매우 민망한 궁금증이다. 얼추 5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이곳은 변해도 너무 변했고, 이런저런 일도 많았으니까... (후략 ;; )
2010/01/29 00:00 2010/01/29 00:00
01
자칫하면 한번에 다섯 곳에서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런저런 돈이 입금될 거 같다. 허억. ㅡ_ㅡ;; 물론 받으면 좋긴 한데... 시기가 받는 입장에선 참 미묘하달까요?

예전에 연봉 1,200만 원이어도, 매달 100만 원을 꾸준히 받는 것과 1~6월까지는 수입이 전혀 없다가 7월에 갑자기 700만 원이 들어오고 또 수입이 없다가 12월에 500만 원이 들어오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이 딱 후자의 경우다.

사실 다섯 곳 중에서 다른 네 곳이야 언제 입금될지 애당초 몰랐으니 큰 문제는 아니다. 근데 다른 한 곳, 이미 몇 번 거래(?)를 했던 곳은 항상 거래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 입금을 해줬다. 그래서 이번과 같은 상황에 당황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벌써 입금을 하고 남을 시기인데 아직도 입금이 안 되고 있달까. 담당자가 바뀐 걸까? (연락을 주고 받은 분께 문의하니 그 분도 당황하신 듯;; )

그러고 보면 해마다 1월이면 자금 위기에 시달리는구나. 흐흐.

아무려나, 정 위기면 정당한 사유로 미리 입금해 줄 수 있다고 말해준 ㅎ님 고마워요!

02
뭔가 쓰고 싶은 말이 있으면서도 모니터를 마주하면 모든 할 말이 휘발한다.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는 막연한 냄새만 코 끝에 지독할 뿐이다.

03
휘발하다... 며칠 전엔 책방에서 정말 휘발유를 쏟았다. 기름난로를 사용해서, 새로 채우는 과정에서 조금 쏟았다. 이번 겨울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날 내내 정신줄을 놓고 있었으니, 그러려니 한다. 휘발유를 쏟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더라는. 하하. ;;; 서둘러 기름을 닦아서 치우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나마 덜 추워서 다행이었다. 하지만 석유가 휘발하는 냄새는 쉽게 빠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공기 속을 떠돈다. 이미 냄새가 다 빠져도 코끝에 냄새가 남아 계속 기름 냄새가 나는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액체는 휘발해서 기체가 되고, 기체는 냄새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매우 독하게.

04
책방에서 새로 들어오 책을 확인하니,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란 제목의 책이 있더라. 예전에도 몇 번 들어온 적 있는 책이다. 그 제목을 읽곤, "그 이유를 알면 사랑 안 하지..."라고 중얼거렸다. 일종의 습관이다.

05
올해는 예전에는 세운 적 없는 그런 계획을 세웠다. 아니 어떤 바람을 품고 그 바람에 따라 노력하기로 했다.

06
기술 발달도 참 빠르지. 오늘 새벽에 아이패드(iPad)가 나왔는데, 벌써 '아이패드 나노'가 나왔다고 한다. (힐끔 ;; )
2010/01/28 23:24 2010/01/28 23:24
01
5년 만의 이사.
5년 동안 숙성된 먼지 뭉텅이를 만나다.
쿨럭... 쿨럭쿨럭...

02
이른 새벽, 잠시 바람 쐬러 밖으로 나갔을 때, 카노를 보았다. 안녕. 이젠 안녕.

이제 이곳에서 새로운 만남이 있기를...

03
운이 좋아, 만화방이나 비디오가게에서 사용하는 9단 책장을 10+2개를 매우 싼 가격에 샀다.
책장의 빈칸이 많이 남을 줄 알았는데...
새로산 책장, 기존에 있던 책장, MDF박스 등이 다 찼다. 헉...
만약 책을 더 산다면... 또 바닥에???
이사짐을 비우느라 대충 채우기만 했기에 이젠 책을 정리해야 한다.
한달은 걸릴 듯?

그래도 뿌듯하다. 히히.
2010/01/26 10:10 2010/01/26 10:10
─ tag 
새로 이사 가는 곳에 인터넷을 설치할 것인가, 말 것인가...
설치를 하면 급하게 인터넷을 사용해야 할 때, 카페에 가야 하는 불편함과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미 카페 사용에 적응했다는...;;;
설치하지 않으면, 玄牝에 머물 때 인터넷을 할 수 없으니 책을 읽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책 읽을 시간을 확실하게 확보할 수 있는거죠. 전 인터넷만 안 하면 책 읽을 시간이 무지무지 늘어난다는... 하하. ;;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래저래 갈등입니다.

참... 인터넷을 설치하면 하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 현재 나스타샤(데크스탑)에 주분투를 설치해서 사용하고 있는데요. 리눅스 민트란 걸 한번 설치해서 사용해보고 싶달까요. 나스타샤의 장점은, 아무 OS나 재미로 설치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워낙 오래된 컴퓨터라 확실히 부담이 없네요. 흐흐. 이왕이면 리눅스의 다양한 버전을 한번씩 설치해서 사용하며, 제가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제게 가장 적합한 OS를 찾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하하.
2010/01/24 12:55 2010/01/24 12:55
이런저런 일로 영어논문을 찾아서 읽고 있습니다. 학교에 속한 학생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학생이라고 자처하는 입장에서 영어논문을 읽는다는 게 뭐 그리 대수겠어요. 영어건 한국어건, 논문인건 단행본이건 뭐건 읽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죠. 뭐든 읽지 않고 있다면 그걸 부끄럽게 여기고 고백해야겠죠. 그러니 읽는다는 일은 특별할 것 없습니다. 다만 저로선 워낙 새로운, 이제까지 공부하지 않은 영역을 읽고 있어서 이런저런 고민이 많달까요? 제가 구금시설, 비행/일탈/불량, 십대와 같은 주제어로 논문을 찾고, 읽을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뭐, 워낙 잡식성에 온갖 것에 관심이 있으니 언젠가는 한번 읽었겠죠. 하지만 이렇게 찾아서 읽을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집중해서 여러 편을... 하하;;

찾아 읽은 논문 중엔 상당히 좋은 논문도 많고 제목에 낚였다는 느낌이 드는 논문도 많습니다. 낚였다는 느낌이 드는 논문의 대다수는 양적연구를 수행한 논문입니다. 설문지를 몇 백 명에서 몇 천 명에게 돌려 그 내용을 통계로 분석한 논문들. 고백하자면 학교를 다닐 때, 통계분석(양방) 논문을 읽는 적이 거의 없습니다. 2년 동안 5편이 될까 말까 합니다. 그보다 적을 수도 있고요. 전 통계분석 논문은 재미가 없어서 안 읽는 편입니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한국에서 트랜스젠더의 생활을 조사한 후, 트랜스젠더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건 정말 힘들다란 결론을 내린다면? 읽는 시간이 아까워요. 조사한 사람에겐 의미가 있으려나요? 정책이나 제도를 바꾸기 위한 자료로선 의미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통계자료를 통해 어떤 '구체적인 사실'을 제시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논문이라면 힘들다는 통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구조적인 맥락 등을 같이 분석해야겠죠.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도 제시할 수 있는 내용을 학술지 논문을 제시한다는 건 좀... 양식이 없거나 양심이 없거나...

Cochran, Bryan N., Angela J. Stewart, Joshua A. Ginzler, and Ana Mari Cauce. "Challenges Faced by Homeless Sexual Minorities: Comparison of Gay, Lesbian, Bisexual, and Transgender Homeless Adolescents With Their Heterosexual Counterparts."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92.5 (2002): 773-777.
Cochran 등이 쓴 논문 "노숙 성적소수자에 의해 직면하는 도전: 이성애 노숙 청소년과 게이, 레즈비언, 바이 그리고 트랜스젠더 노숙 청소년의 비교"를 읽었습니다. 일단 제목만으론 혹합니다. 검색하다가 이 제목에 끌려 내용도 검토하지 않고 출력부터 했습니다. 하지만 결론은? 이성애 노숙청소년보다 LGBT 노숙청소년이 더 어렵다, 성적지향 및 동성애혐모/호모포비아 문화와 십대란 점이 겹쳐있다...가 끝입니다. LGBT 십대의 가출을 호모포비아 문화와 연결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문장에 감동 받을 정도입니다. 겨우 이 문장에... 물론 잡지의 성격에 따라, 분과학문에 따라 논문을 쓰는 방식에 차이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좀... 암튼 제목 하나는 잘 뽑았습니다. ㅡ_ㅡ;;
(조만간에 읽을 논문 중에 더 매력적인 제목도 있는데, 그건 어떨까요? ;; )

Widom, Cathy Spatz, and Joseph B. Kuhns. "Childhood Victimization and Subsequent Risk for Promiscuity, Prostitution, and Teenage Pregnancy: A Prospective Study" American Journal of Public Health. 86.11 (1996): 1607-1612.
위덤과 쿤스의 논문 "아동 피해와 그것이 난교, 성매매, 그리고 십대 임신에 끼치는 위험"을 읽었습니다. Promiscuity를 사전에선 난교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지만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아니, 동의할 수 있는 번역이 아닙니다. Promiscuity는 일부일처가 아닌, 배타적인 관계가 아닌 성관계를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논문을 읽다보면 1년 동안 10명과 성관계를 맺은 경험을 promiscuity란 용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논문의 전제 자체에 문제가 있습니다.

내용은 어린 시절의 아동폭력 피해 경험이 promiscuity, 성매매, 그리고 십대임신에 끼치는 영향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여타의 논문이 통상적인 통계 자료를 비교하며, 아동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이들은 promiscuity, 성매매, 십대임신 경향이 상당히 높고, 피해 경험이 없는 이들은 경향이 낮다는 식의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이런 비교는 두 집단의 다른 사회적 조건을 간과합니다. 만약 피해 경험이 있는 집단은 빈곤층이 상당수고 피해 경험이 없는 집단은 상류층이 상당수라면? 빈곤층에 피해 경험이 많고, 상류층에 피해 경험이 적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계급, 젠더, 인종, 성적지향, 젠더정체성 등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이 고려해야 하는데 간과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 논문은 아동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집단과 피해 경험이 없는 집단을 나눌 때 비슷한 환경에 있는 이들을 선별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다른 조건은 비슷하게 세팅하고, 아동폭력 피해 경험 여부만을 변수로 만들려고 애씁니다. (물론 이런 세팅이 완벽할 수 없는 건 저자들도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데이터 통계를 분석하니, promiscuity와 십대임신은 아동폭력 피해 경험과 상관관계가 없고, 성매매만 아동폭력 피해 경험과 관련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 결론은 기존의 많은 논문들이 제시하는 결론은 다르고요.

이 논문은 데이터 통계분석이 중심이지만 조사분석을 위한 세팅의 방식에 따라 상당히 흥미로운 논문이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물론 구조적인 분석 등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통념을 반복하긴 합니다. 하지만 세팅만으로도 이렇게 다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는 재미가 있습니다.
(관련 공부를 하시는 분들은 이미 이런 기법을 잘 알고 계시겠죠? ^^;; )

Brown, Lyn Mikel, Meda Chesney-Lind and Nan Stein. "Patriarchy Matters: Toward a Gendered Theory of Teen Violence and Victimization." Violence Against Women. 13.12 (2007): 1249-1273.
브라운, 체스니-린드, 스틴(슈타인?)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논문 제목을 번역하기가 좀 난감한데요. 이 논문의 가장 마지막 문장에 제목의 단서가 나옵니다. "... the reality that living in a patriarchy matters." 대충 옮기면, 가부장제에서의 삶이 물질로 만드는 실재...? 가부장제라는 사회구조에서 여러 억압 구조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삶을 문제 삼자는 내용인데, 이걸 한글로 옮기려니... 저 처럼 내공 없고, 실력 없는 인간으로선 불가능한 일입니다. 크크크. ㅠ_ㅠ 억지로 옮기면 "가부장제 문제: 십대 폭력과 피해의 젠더화된 이론을 향하여" 정도입니다.

체스니-린드는 관련 주제어로 검색하기 전까진 전혀 모르던 사람인데요. 이번에 이런저런 논문을 찾고, 읽는 과정에서 청소녀-일탈/불량-구금시설 관련해서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더군요. 마찬가지로 브라운과 스틴도 유명인들이고요. 제게 좀 더 익숙한 이들로 비유하자면, 게일 러빈, 주디스 버틀러, 스잔 스트라이커가 공동으로 논문을 쓴 격? 아니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이 협력해서 신제품을 출시한 격? 혹은 네이버, 다음, 네이트가 협력해서 새로운 포털을 만든 격? 흐흐. 뭐, 대충 이 정도의 느낌을 주는 공저자들이 모인 논문입니다. 물론 이런 기획에 따른 문제도 많을 테고, 제가 아직 모르는 분야라, 이런 비유가 문제가 많긴 하겠지만요. 그나마 다행인 건, 적어도 체스니-린드의 경우 꽤나 괜찮은 논의를 펼치는 저자란 점이죠. 다른 논문을 읽고 호감을 느껴서 이 논문도 읽기로 했으니까요. :)

체스니-린드는 단독저서보다 공저가 많은 듯한데요. 다른 공저 논문에선 여성의 폭력이 좀 더 관계적이란 식의 표현, 덜 폭력적이란 식의 표현이 기존의 여성성을 반복하고, 강화할 수 있음을 지적해서 인상적이었죠. 현상적으로 그렇다 아니다를 떠나서, '더 관계적이다', '남자/소년에 비해 덜 폭력적이다'란 표현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브라운 등이 함께 쓴 이번 논문 "Patriarchy Matters"는 이런 인식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야 할까요? 십대여성 혹은 청소녀의 범죄 및 구금과 관련한 논문에서 공통으로 지적하고 있는 사항은 1990년대 들어 여성범죄율, 청소녀 범죄율이 상당히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건 미국 논문과 한국 논문에서 공통으로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경찰청, 교정시설 등에서 제시하는 통계 역시 이것이 사실이라고 증명합니다. 십대여성의 체포율이 상당히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재밌는 건, 1990년대 들어서면 '여성'과 '남성'에 관계 없이, 폭력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란 점입니다. 폭력은 줄어들고 있는데, 범죄율은 증가한다? 브라운 등이 쓴 이 논문은 바로 이 지점에서 논의를 출발합니다. 페미니즘/여성주의/젠더관점에서 접근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의 논문들이 여성의 범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은 언급하지만 폭력은 감소하고 있음을 간과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의 의의는 상당합니다. 저자들은, 폭력이 감소하는데 체포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건 다른 무언가가 변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것은 여성을 통제하는 방식이 변한 점과 관련 있다고 주장합니다.

거칠게 요약하면 두 가지. 과거엔 젠더 차이를 강조하며 여성을 통제했다면 지금은 젠더 동등을 강조하며 여성을 통제하고 있으며, 과거엔 여성 섹슈얼리티를 통제했다면 지금은 여성 폭력을 통제하고 있다는 거죠.

전자의 경우, 과거엔 여성과 남성은 다르기에 여성의 가사노동은 당연하단 식으로 여성을 통제했죠. 하지만 지금은 여성과 남성은 동등하니, 젠더 범주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여성의 행동을 통제합니다. 즉, 현대사회는 더 이성 성차별이 없다는 식의 접근이죠. 그래서 성폭력, 젠더 권력 관계가 작동하는 폭력을 그냥 개인 간의 폭력으로 대한다는 거죠.

후자의 경우, 과거엔 여성이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면 그것을 처단하는 식으로 여성을 통제했죠. 마녀란 이름으로 부르거나, 무성적인 존재로 여기며 여성의 성적 표현을 억압하여 여성을 통제했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은 특정 행동을 폭력으로 명명하고 그것을 못 하게 하는 방식으로 여성성을 통제한달까요? 이를테면 작년 말, "루저의 난"으로 불렸던 키와 관련한 논쟁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그 여성을 법원에 고소할 정도로 엄청난 테러가 있었는데요. 특정 발언을 폭력으로 명명하고, 그것에 테러를 가해 여성성을 통제하는 거죠. 그러니 이젠, 성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것이 폭력이냐 아니냐로 명명하는 방식이 바뀌었고, 전통적 젠더 역할에 위배될 때 그것을 폭력으로 명명하고 처단하는 식이죠. 여성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을 "내가 미니스커트 입은 모습에 불쾌함을 느꼈으니, 성희롱이고 (성)폭력이다"란 식으로 반응하는 것이 단적인 예가 되겠죠. 폭력이란 명명이 상당히 포괄적인 표현이듯, 여성의 행동을 폭력으로 명명할 때 젠더표현부터 섹슈얼리티 실천까지 거의 모든 행동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 논문의 결론은 다소 뻔합니다. 젠더가 인종이나 계급, 성적지향 등과 별개일 수 없으니 여러 범주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충분한 사례와 분석을 제공하고 있어서 공허한 결론은 아닙니다. 어쨌거나 진부한 결론이긴 하지만, 논의를 차근차근 따라 읽노라면 꽤나 감동적입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겐 익숙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막연하게 짐작만 하고 있던 부분을 잘 정리하고 있으니 유용하기도 하고요. 흐흐. 여성성 통제와 관련해서 참고문헌을 찾고 계시다면 읽으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치명적인 문제는 영어논문...ㅠ_ㅠ (그렇다고 제가 이 논문을 한국어로 옮길 의향은 없습니다. 그 시간이면 트랜스젠더 관련 논문을 옮길 수도 있으니까요. 흐흐. 그렇다고 트랜스젠더 관련 논문을 한국어로 옮기는 것도 아니지만요... 음하하;;; )
2010/01/24 12:39 2010/01/24 12:39
베르너 엔케 글, 그림. [행복한 폐인의 하루] 이영희 옮김. 서울: 열린책들, 2004.

책방에 이 책이 있다. 얼추 일주일도 더 전에 들어왔는데, 의외로 아무도 안 사갔다. 이 책이 들어온 날, 꽤나 재밌을 거 같아서 살까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만뒀다. 그래도 왠지 재밌을 거 같아 어젠 일을 하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아, 정말 재밌다.

몇 년 동안 '아무 일도 안 하는 일'을 하며 지내는 하로가 주인공. 하로와 거의 매일 산책을 다니는 단짝 프랑크. 하로와 동거하는 주지. 주지의 단짝 민헨 콜마이어가 주요 등장인물. 번역 책 제목은 "폐인"이지만 내가 사랑하는 용어로는 잉여인간에 가깝다. 스스로를 잉여인간으로 여기는 이들에게 보내는 찬가. 그리고 무척 즐거운 책. (하지만 모든 가사노동과 경제적 지원은 주지가 책임지고 있다는 점에서 좀 짜증이 나기도.)

아래엔 특히나 인상적인 구절을 골랐는데, 고르는 거 정말 힘들다. 정말이지 모든 대화를 옮기고 싶었으니까.

p.10
프랑크: 무슨 일 하니?
하로: 피할 수 있는 한 피하지.

p.27
주지: 빨리 가자. 서둘러.
하로: 걱정 마. 우린, 너무 늦지 않게 적당히 지각할 거야.

p.38
프랑크: 네 책은 어떻게 됐니? 오늘은 얼마나 썼니?
하로: 빈 페이지 하나... 어쩌면 내일은 두 페이지 해낼지 모르지.

p.59
주지: 하로가 미안하다고 그러긴 해.
민헨 콜마이어: 그 문제에 있어서 하로가 하는 건 그것밖에 없지.

p.76
프랑크: 난 무슨 일이든 해야 해.
하로: 넌 빈둥대는 힘이 전처럼 활발하지 못해.

p.84
주지: 또 누워서 빈둥대며 하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어!!!
하로: 그렇지 않아! 난 벌써 한판 실컷 잤어...

p.85
주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하로: 그 이상 뭘 더 바라?

p.96
주지: 너, 하루에 [담배] 얼마나 피우니?
민헨 콜마이어: 두 개.
주지: 두 갑?
민헨 콜마이어: 라이터 두 개.

p.101
[무덤 가에서]
프랑크: 우리도 언젠가 여기 묻히겠지...
하로: 죽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닌가 봐.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리 없잖아?

p.172
하로: 시간이란 없어. 시간이 흐른다는 건 은행 직원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야. 이자 때문에...

p.242
하로: 정신이 말똥말똥할 때보다 더 심한 숙취 상태는 없어.

p.267
하로: 오늘 밤에는 우리 집에서 자자.
프랑크: 주지가 날 좋아하니? 내가 가면 좋아해?
하로: 네가 돌아갈 때도 좋아하던 걸...

p.276
카티: 주지는 그래, 행복하대? 그 하로라는 놈은 하는 일 없이 놈팡이 짓만 하잖아?
민헨 콜마이어: 그래도 그 짓은 부지런히 해.


더 인용하고 싶지만, 자칫 저작권에 걸릴까봐 여기서 자제... 하하. ㅡ_ㅡ;;
2010/01/22 21:24 2010/01/22 21:24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에서 운영위원으로 함께 하실 분을 찾는다고 합니다.
아카이브 운영에 관심 있거나, 자료 정리 등에 관심 있으신 분의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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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queerarchive.org/bbs/27377
안녕하세요 퀴어락입니다.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은 2009년 아카이브 기획단이 운영의 주체가 되어 아카이브 구축 및 오픈을 준비했습니다.
지난 12월21일 아카이브가 무사히 오픈을 했고, 현재 계속해서 수정, 보완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2010년 퀴어락은 한 걸음 더 도약하기 위해 책임주체를 기획단에서 운영위원회로 전환하고, 그에 맞는 운영위원회를 꾸리고 있는 중입니다. 2010년도는 추가적인 DB 입력과 함께 아카이브 운영체계를 잡아야 하는 기간이므로 기획단에서 운영위원회로 위상을 전환하고 그 안에 역할에 따라 팀을 나눌 예정입니다.

운영위원회는 아카이브의 운영 전반에 있어 공동의 책임을 가지며, 기록관리의 목표와 계획수립, 기록물의 수집과 폐기 등의 평가를 합니다. 운영위원은 전문 지식은 없더라도 퀴어아카이브 구축과 운영에 관심과 애정이 있으며, 운영위원회 회의에 결합할 수 있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가능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운영위원회를 함께 하고 싶은 이유와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보내주시면 됩니다.
신청은 1월31일까지이며 kscrcqueer@naver.com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퀴어락 -
2010/01/21 13:25 2010/01/21 13:25
01
이사 날짜를 잡은지는 한참 지났다. 이제 이사 준비로 분주한데 새로 갈 집을 청소해야 하니, 이건 두 집 살림하는 기분이다. 하하.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렇잖아도 근근히 살아가는 삶인데 이사 준비에 따른 지출 증가는 은근히 스트레스.

실질적인 이사는 입금 예정에 있는 수입을 바탕에 두고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어느 것도 입금이 안 되고 있다. 예상 수입 중 어느 것도 정확한 입금 일자가 없었기에 통장 잔고에 없는 비용을 책정한 것 자체가 잘못이긴 하다. 내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는, 미래수입은 수입이 아니라는 태도 때문인데... 어째 뭔가 실수한 듯. 더구나 어떤 건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아아아...


02
새로 살 곳은 방이 두 칸이라 처음엔 작은 방을 월세로 낼까 하는 고민을 했다. 이 고민을 지금이라고 아예 접은 건 아니다. 월세를 고민한 솔직한 이유는 적은 금액이라도 월세를 받으면 공과금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꿍꿍이였다. 하하. ;;; 하지만 월세로 내기엔 차마 민망하다. 여러 가지로.

월세를 낼까 고민하고 있다는 농반진반에 사람들의 공통 반응이 있었다. 내가 내건 조건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조건은 담배를 안 피는 사람, 술을 안 마시는 사람 등등.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방이 나의 성격을 견디는 게 가장 큰 문제일 거라고 말했다. 으하하. 백 번 동의한다. 크크크. 맞다. 내가 봐도 상대방이 나의 성격을 견딜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 중 하나는 결국 고양이 정도만이 나를 견뎌 줄 수 있지 않을까? 흐흐. 그러며 월세로 다른 사람을 들이는 고민은 접었다.

그런데 오늘 낮에, 이사 갈 집에 청소하러 갔다가 다시 월세로 방을 내놓을까 하는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살았는데, 이번에 가는 집은 또 다른 형태다. 반지하에서도 살았고, 주택가 1층 문간방(별채? -_-;; )에서도 살았고, 옥탑에서도 살았고. 부산집에선 아파트와 시골집에서도 살아 봤고. 이번엔 주택가 2층이고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상태다. 2년 계약을 다 채우면 더 연장할 수도 있고, 2년을 못 채우고 이사를 준비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바로 이런 동네에 살 예정인데, 집이 상당히 낡았고 묵은 때가 상당히 심했다. 청소를 하다보니 이건 결코 혼자서 관리할 수 있는 집이 아니란 걸 깨달았달까.

난 가끔 기본적인 일만 처리하고 그 외의 일은 전혀 할 수가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이 상태가 좀 오래 지속되기도 하고, 몇 달만에 끝나기도 한다. 새로 이사갈 집에서 무기력 상태에 빠져 집 관리를 한번 그만두기 시작하면 그 다음부턴 수습할 수 없는 상태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그래서 월세를 매우 적게 받더라도 나를 좀 관리해줄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불안 혹은 망상을 했다. 하지만 역시나 나의 성격이 문제다. 으하하.

03
봄가을에 신던 신발은 이미 물이 새는 상태였다. 그래서 봄가을 신발을 새로 사야 하는데...라고 예전에 쓴 적이 있지만 아직 안 샀다. 그리고 지금은 겨울이라 겨울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데. 눈이 내리거나 비가 오면 물이 새서, 운동화란 신발이 원래 그런가보다 했다. 그러며 그냥 지냈는데.

어제 玄牝에 갔을 때, 신발 상태를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한 곳이 심하게 찢어졌단 걸 깨달았다. 그러니 그냥 물이 새는 정도가 아니라 신발이 물을 마시는 상태랄까. 크크크. 겨울 운동화도 새로 사야 하는구나... 허허. 역시나 돈이 없다. 이사 비용 내고 나면 파산 직전으로 갈 듯? 후후. 주급으로 받는 알바가 있어 굶지는 않겠지만. 에헷.

근데 옛날 일을 떠올려보면 어릴 때부터 신발이 찢어질 때까지 신지 않은 적이 없는 듯하다. 신발이 찢어져도 그냥 신고 다녔던 적도 많고. 찢어진 걸 모르기도 했지만 신발이나 옷가지에 욕심이 없기도 하고 무심하기도 하고. 집안 형편 문제도 있긴 했지만 이건 별개로 하고. 흐흐. 찢어진 걸 알고 있어도 그냥 신고 다닌 적이 많다. 남들은 신발을 바꾸라고 하는데 내가 무심해서 상대방이 당황한 적도 있고. 큭큭.

이것보다 좀 더 재밌는 일은 라디오를 들을 때 일어난다. 진행자가 청취자 사연을 읽다보면, 어릴 때 집이 가난해서 찢어진 신발을 신고 다닌 경험이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자식들 신발이 찢어졌는데도 새 신을 못 사줘 가슴이 아팠다는 경험이 나오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난 항상, 내겐 이런 경험이 없었다는 듯 들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사실이다. 동일한 방식으로/감정으로 경험하지 않은 일을 동일한 경험으로 묶을 수는 없으니까. (조금 딴 소리를 하면, 표면적으로 동일한 경험 같지만 동일한 방식으로, 유사한 감정으로 겪지 않은 일을 '다른 경험'으로 분류한다면, 인터뷰나 질적연구는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문득 궁금.)

04
암튼 이러나 저러나 다 돈 문제다. 돈이 문제다.
2010/01/20 16:23 2010/01/20 16:23
─ tag  , ,
가끔 이메일로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 받거나, 간단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답장을 보내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아울러 이메일을 보낸 분만 읽기엔 아쉽기도 하고요. 제가 쓴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동안 들인 품이 아깝달까요. 하하 ;; 그래서 앞으로는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이곳에 올릴까 합니다. 올리는 주기는 없습니다. 이메일이 오면 그때마다 정리해서 올릴 수도 있고 귀찮으면 한두 번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P

이 글 혹은 이 시리즈의 독자는 이제 처음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 이슈나 퀴어 이슈에 관심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니 내용은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내용이 단순하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어쩌겠어요. :P 이 시리즈(?)에 실릴 글의 상당 부분은 다른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집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으니 꼭 함께 읽으시길 바랍니다. :)

기본 용어는 KSCRC사전을 참고하세요. :) 출판물로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에 실린 용어정리가 있고, 다른 여러 단체에서 발간한 다양한 자료집도 있습니다.

모든 관련 기록물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www.queerarchive.org)을 참고하세요. :)


질문: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꼭 수술을 해야 할까요?

답변:
다이어트를 하려는 사람에게, 성형수술을 하려는 사람에게, 혹은 자신감이 없는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네 자신을 인정해"란 식의 조언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네. 가장 무난한(=맥빠지는) 조언이긴 합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란 개념 자체를 다시 고민하는 것이 더 좋은 게 아닐까요?

트랜스젠더의 맥락에서, 주민등록번호 상으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하고 단 한 번도 자신이 여자가 아니란 사실을 의심한 적이 없다고 가정할 때, 이 사람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은 남들 보기에 남자인 몸일까요, 자신이 인식하는 여성이라는 젠더정체성일까요? 이것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나'라고 생각하는 '나'와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너'는 다르기 마련입니다. 이 차이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누가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가도 논쟁거리고요.

비단 이런 경우만이 아닙니다. 한 쪽 손의 손가락이 여섯 개일 때, 의사 중에서 수술을 해서 손가락을 다섯 개로 만들지 않고 여섯 개를 그대로 두는 것에 동의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샴쌍둥이가 태어나면 거의 언제나 분리수술 기사가 함께 합니다. 많은 의사들은 아이가 간성으로 태어났을 때, 간성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항상 여성 아니면 남성 어느 하나의 젠더로 만드는 간성수술을 그 부모에게 권합니다(많은 경우, 간성의 의견은 무시되고요). 이런 맥락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는 어쩌면 사회에서 가장 규범적인 형태에 맞춘 몸, 규범에 완벽하게 들어 맞지는 않아도 대충 그에 근접하는 형태의 몸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회가 용인하는 수준의 몸을 갖추었을 때, '있는 그대로'라는 언설이 그나마 가능합니다. 아니,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있는 그대로'의 수위와 기준이 있고, 그에 맞춘 몸일 때만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맥락에서, 여성이면서 고환과 음경을 유지하는 몸, 남성이면서 질을 유지하는 몸을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여기진 않는다는 거죠.

질문 자체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있는 그대로'란 표현 자체를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건 분명하게 말하고 싶습니다. :)
2010/01/19 10:45 2010/01/19 10:45
가끔 이메일로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인터뷰를 요청 받거나, 간단한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때마다 답장을 보내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생기더라고요. 아울러 이메일을 보낸 분만 읽기엔 아쉽기도 하고요. 제가 쓴 내용이 좋아서가 아니라(!!) 글을 쓰는 동안 들인 품이 아깝달까요. 하하 ;; 그래서 앞으로는 관련 내용을 정리해서 이곳에 올릴까 합니다. 올리는 주기는 없습니다. 이메일이 오면 그때마다 정리해서 올릴 수도 있고 귀찮으면 한두 번으로 끝날 수도 있습니다. :P

이 글 혹은 이 시리즈의 독자는 이제 처음 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 이슈나 퀴어 이슈에 관심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러니 내용은 최대한 단순하게 정리했습니다. 내용이 단순하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상당하지만 어쩌겠어요. :P 이 시리즈(?)에 실릴 글의 상당 부분은 다른 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집에도 비슷한 내용이 많으니 꼭 함께 읽으시길 바랍니다. :)

기본 용어는 KSCRC사전을 참고하세요. :) 출판물로는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에 실린 용어정리가 있고, 다른 여러 단체에서 발간한 다양한 자료집도 있습니다.

모든 관련 기록물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www.queerarchive.org)을 참고하세요. :)


질문:
내가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이 남자를 좋아할 수도 있고 여자를 좋아할 수도 있는 건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성전환 수술까지 해야 하는 걸까요?


답변:
일단 트랜스젠더/비트랜스젠더라는 젠더정체성과 동성애/양성애/이성애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성적지향/성정체성 개념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을 경우,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수술을 이성애자되기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성적지향은 내가 누구를, 어떤 젠더를 좋아하는가를 핵심으로 해요. 이를테면, 나는 나를 여자로 인식하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상대방이 여성이면 레즈비언/여성동성애자, 좋아하는 상대방이 남성이면 이성애자, 여성과 남성 어느 한쪽만 배타적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닌 경우엔 양성애자로 구분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식의 간단한 구분이 문제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기선 그냥 넘어 갈게요. 하하. ;; )

반면 젠더정체성은 나 자신의 성별(젠더), 즉 흔히 말하는 여성이나 남성 중 어느 쪽으로 생각하는가와 관련 있는 거죠. (물론 젠더가 여성이나 남성만 있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둘만 가정하고 설명하겠습니다.) 나를 여성 젠더로 인식한다면 나의 젠더정체성은 여성일테고, 남성 젠더로 인식한다면 남성이겠죠. 그래서 성적지향이 상대와 나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개념이라면, 젠더정체성은 나 자신의 성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관련 있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듯합니다.

성적지향과 젠더정체성의 관계는, 성적지향이 자신의 젠더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나의 성별, 상대방의 성별을 확정한 다음에야 통상적인 성적지향을 얘기할 수 있죠. 여성으로서 여성을 좋아한다는 말은, 즉 나의 젠더정체성이 여성이고 상대의 젠더정체성이 여성이라고 확정한 다음 우리 둘의 젠더정체성은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동성이란 개념이 가능한거죠. 이렇듯 성적지향은 젠더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랄까요.

거칠게 설명했는데, 대충 이렇게 이해하면 성적지향과 젠더정체성은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다소 다른 개념입니다. 즉 내가 남자 혹은 여자란 것과 내가 누구를 좋아하는 건 다른 이슈인 셈입니다. 성적지향과 젠더정체성을 구분한다면, 성전환 수술은 젠더정체성 이슈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수술이 '이성애자 되기'는 아니란 거죠. :) 언젠가 기회가 되면(과연?) 정리하겠지만, 트랜스젠더의 성전환수술을 이성애자되기로 이해한다면, 레즈비언인 트랜스여성, 게이인 트랜스남성, 바이인 트랜스젠더를 설명하기 힘들고요.

(논의를 더 진행하면 이런 구분 자체도 문제가 되긴 하지만 여기선 생략할게요. 더 자세한 논의는 ... 부끄럽지만 루인 "범주명명과 경계지대"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를 참고하세요. ;;; )


그 다음의 논쟁점은 흔히 얘기하기를 "나는 내가 남자건 여자건 상관없다"는 식의 표현입니다. 그럼요. 저 역시, 어떤 의미에서, 제가 어떤 젠더인지 크게 개의치 않아요. 하하. :) 문제의 핵심은 그럼에도 내가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나를 구분하고 그 구분에 따라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이를테면 나는 남성이 아닌데, 사람들은 계속해서 나를 남성으로 구분하고 남자답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요. 아울러 남성처럼 생긴 사람이 자신을 여성으로 설명한다면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바라볼 가능성이 크고, 남성처럼 생긴 사람이 여성일 거라고 여기고 여성으로 대하는 주변 사람들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암튼 갈등의 많은 지점은 여기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물론 스스로 바라는 몸의 형태가 있긴 하지만 이런 형태는 한 사회의 지배규범과 크게 다르진 않겠죠. 인기 연예인의 몸이 규범적인 몸이 될 때, 많은 이들이 그 연예인을 닮고 싶어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듯. 혹은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아도 그런 규범으로 인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듯. 수술 자체의 논의는 좀 다르게 가져가야 할 부분이 있긴 하지만, 우선은 이 정도로 설명할까요? (슬쩍 얼버무리고 도망치는 분위기!!) 관련해서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충 정리하겠습니다. 논쟁적이지만 음미할 만한 구절이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내[트랜스젠더]가 젠더시스템을 위반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젠더시스템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이분법이 나를 위반합니다."
-리키 앤 윌킨스(Riki Ann Wilchins).
2010/01/17 14:50 2010/01/17 14:50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읽지 마세요. 이건 일종의 경고입니다. :)

어제 저녁엔 ㄹ제과에서 마련한 신제품 평가회에 갔다 왔습니다. 프로젝트S란 이름으로 연구개발을 진행한 신제품을 선보이고, 맛을 평가 받는 자리였습니다. 음식이나 요리와는 상관 없는 제가 직접 초대 받은 건 아니고요. 아는 분이 같이 가자고 해서 그냥 따라갔습니다. 참가하지 않았으면 무척 아쉬울 자리였습니다. 참, 제품의 또 다른 명칭은 달팽이 아이스크림.

꽤 오래 전, 멜론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하고(저는 알 수 없으니;;), 요즘은 바나나를 냉동실에 얼려 먹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죠. 이번에 선보인 신제품은 이 두 가지에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울러 요즘 추세가 맛있으면서도 건강에도 좋은 제품이어야 한다면서 유기농이란 점을 여러 번 강조하더군요. 유기농 건강 아이스크림이란 기묘한 조합의 목표와 함께, 지구온난화로 올 여름은 유난히 더울 것이라는 기상예측에 따른 대비, 기상이변에 따른 최적의 환경 등을 조합해서 기획했다고 합니다. 이것저것 갖다 붙인 설명인 티가 팍팍 나죠? 넵. 저도 처음 설명을 듣는 자리에선 잔뜩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을 직접 먹어 보고 제조과정 설명을 듣고 나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만큼 획기적이랄까요.

달팽이 아이스크림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품은 정말 신선하고 새로웠습니다. 제조과정을 직접 확인할 수도 있었는데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산 제품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 기존의 빙과류에 많이 사용하는 화학제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유통과 보관에 따른 어려움으로, ㄹ제과에서 운영하는 N** 지정업체에서만 판매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반응이 좋으면 마트 등으로 판매처를 확대할 예정이라고 하고요. 아마 경쟁 마트에서도 상품을 입고하지 않을까 싶어요. 암튼 이 제품은 소위 말하는 웰빙 빙과류, 유기농 빙과류입니다. 물론 어제 시식회 자리에서 담당자가 웰빙이란 말을 제품 홍보에 사용하려고 한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은 극구 말렸습니다. 빙과류는 그냥 즐기는 제품인데 무슨 웰빙이냐고.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이구동성으로 웰빙이니 유기농이니 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거라고 말하는 걸 들으며 저는 웃었습니다. 웰빙이나 유기농이 트렌드면서도 거부감이 많구나 싶어서요. 하하. 달팽이란 명칭을 사용한 건, 달팽이가 깨끗한 환경에서만 살아가는데 착안한 것이기도 합니다. 제품명으로 썩 좋은 네이밍은 아니죠. 뭐, 회사의 홍보부에서 알아서 정리하겠죠?

수박바하면 수박 모양, 죠스바하면 어쨌거나 죠스 모양이듯 달팽이 아이스크림은 달팽이 모양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집을 등에 달고 다니는 달팽이 모양은 아니고 차라리 민달팽이 모양에 가깝습니다. '가깝다'고 표현하면 개발진에서 섭섭하게 생각하려나요? 민달팽이 모양에 가까운 게 아닙니다. 민달팽이 모양 그 자체입니다. 아니, 집을 등에 달고 다니는 달팽이에서 집만 제거한 모양 그 자체입니다.

어제 선보인 제품은 세 가지 정도지만 제품 특성상 무한확장 가능합니다. 꽤나 다양한 제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첫 번째 제품은 달팽이바. 제조 과정은 간단합니다. 식용달팽이를 깨끗이 씻고 집을 제거한 후, 소금 간을 한 뜨거운 물에 살짝 익힙니다. 그후 급속 냉동시켜 냉동보관합니다. 그걸 그냥 먹는 겁니다. 뜨거운 물에 삶은 걸 급속 냉동했기에 사각거림과 달팽이 특유의 쫄깃함이 살아 있습니다. 식감을 중시하는 분들을 타겟으로 삼고 있는데, 맛이 일품입니다. 첨엔 몇몇 분들이 시식을 망설였지만, 한입 먹고 나더니 그 자리에서 두세 개를 더 먹을 정도였죠.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두 번째 제품은 달팽이 샤베트입니다. 급속 냉동한 달팽이를 몇 가지 과일(역시 급속냉동한 것)과 믹서기로 갈아서 살짝 녹인 다음 다시 얼린 제품입니다. 달팽이 특유의 쫄깃함과 과일 특유의 상쾌함이 의외로 잘 어울립니다. 상당히 맛있고요. 후식으로 먹기에 좋은 제품이라고 주최측은 설명했지만, 그냥 먹기에도 좋습니다. 가격은 미정이라고 하는데, 가격만 적당하면 식사 대용으로도 그만이고요.

세 번째 제품은 달팽이바와 달팽이 샤베트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는 제품입니다. 제조하는데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제품입니다. 달팽이가 음식을 먹는 걸 본 적이 있으면 아실 텐데요. 음식을 잘게 갉아 먹는 달팽이는 그 음식이 몸에 고스란히 저장되는 편입니다. 그래서 당근을 먹으면 달팽이는 붉은색으로, 상추를 먹으면 초록색으로 변하는 걸 볼 수 있지요. 여기에 착안한 제품입니다. 우선 달팽이들에게 과일을 먹인 후, 소화시키기 전에 달팽이바와 같은 제조과정을 거칩니다. 이 타이밍이 중요하더군요. 조금만 늦어도 과일을 소화시키거든요. 그래서 소화되기 직전에 조리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렇게 해서 먹으면, 겉은 달팽이바지만 속은 과일샤베트입니다. 놀라운 건, 달팽이가 먹은 과일이 고스란히 살아있을 뿐만 아니라 과일의 식감입니다. 믹서기로 과일을 오래 갈다보면 물이 되기 쉽고, 너무 적게 갈면 덩어리가 생기죠. 그런데 달팽이의 잔 입으로 먹은 과일은 매우 미세하게 갈렸으면서도 물이 아닌 상태더군요. 과일샤베트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만족스런 제품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 제품은 정말 최고였습니다. 요리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과장법을 빌리면 꿈의 맛이랄까요? 하하.

제조과정이 아무리 다양하다고 해도 관건은 달팽이 양육과 관리인데요. 제조과정이 아무리 신선해도 기본은 달팽이죠. 달팽이를 어떻게 기르느냐가 맛을 좌우하죠. 이런 점에서 이번 달팽이들은 매우 훌륭했습니다. 시중에서 팔거나 일등급 호텔에서 내놓는 달팽이와는 비교도 안 되게 살이 올랐고, 맛있더라고요. 달팽이 맛을 유지하는 데 핵심은 바로 기상이변과 자연재혀였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달팽이를 처음 먹기 시작한 곳은 지중해와 대서양이 닿아있는 지역의 카라콜(Caracol)이란 어촌이라고 합니다. 그 마을은 옛날부터 기상변화가 심하고 해안에 암초가 많아 조난당하는 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매일 아침 파도에 실려온 선원들의 시체를 치우거나 간신히 살아 남은 이들을 돌보는 게 일상이었죠. 뱃사람들이 조심해서 조난 당하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여름 태풍이 발생하는 시기엔 거의 매일 시체 여럿 치우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번거로운 일이라고 그냥 방치하자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종교적 신념도 있거니와 해안에 시체가 버려져 있는 건 아무래도 미관상 안 좋으니까요. 한 가지 흥미로운 일은 이 시체들 주변엔 커다란 달팽이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달팽이를 죽음의 신으로 여겼죠. 죽음을 부르진 않지만 죽은 사람을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신. 고대 그리스에선 달팽이를 decadência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이건 우연이 아니었던 거죠. 아무튼 달팽이는 시체 위를 돌아다니면서 죽은 사람을 위로하는 듯했습니다.

문제는 1600년대 어느 해, 어촌의 우두머리가 바뀌고, 얼마간의 혼란이 생겨 며칠 동안 해안으로 밀려온 시체를 못 치웠는데요. 며칠 지나 시체를 치우러 가니, 놀랍게도 그 모든 시체들이 깨끗하게 백골만 남아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첨엔 자신들의 게으름에 신이 벌을 내린 것으로 해석하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의 신부와 노파, 학자 등에게 의뢰를 했지요. 며칠 관찰한 결과 덩치 큰 달팽이들이 시체를 먹는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달팽이들은 죽은 이를 위로한 것이 아니라 돌아다닐 때 발생하는 끈적한 액체로 살을 녹여선 갉아 먹었던 거죠. 식성이 대단해서 몇 십 마리의 달팽이가 한 사람을 먹는데 하루면 충분했습니다. 네. decadência에 담긴 여러 의미는 달팽이의 이런 행동을 지칭하기에 적합했죠.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해변의 달팽이들이 식인달팽이였다는 사실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공포를 자아냈죠. 행여라도 자신들이 자고 있을 때 달팽이가 집으로 들어와 자신들을 갉아 먹으면 어쩌나 하는 공포였죠. 근거 없는 공포였습니다. 이제까지 그런 적이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요. 그때 마을의 식당 요리사가 그 달팽이를 잡아서 요리를 할 생각을 했습니다. 성체를 먹는 의식처럼, 식인달팽이를 먹는다면 달팽이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 거란 막연한 환상때문이었죠. 그렇게 요리한 달팽이를 마을 사람들과 서로 나눠먹었는데요. 처음엔 일종의 공포와 부적 효과를 노리며 적의에 가득찬 마음으로 먹기 시작했지만, 종국엔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별다른 간을 하지 않았음에도 요리가 너무 맛있었던거죠. 누군가는 맛의 이유를 깨닫고 흠칫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맛의 원인을 발설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입을 닫았죠. 그 맛을 차마 잊을 수 없었으니까요. 자신의 깨달음을 말하는 순간, 더 이상 먹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보았을 때,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같은 사실을 깨달았지만 어느 누구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서로 모른척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그 일이 있은 후, 사람들은 해안에 밀려온 시체를 다음날 바로 치우지 않았습니다. 뼈만 수습할 뿐이었습니다. 대신 달팽이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달팽이가 없어질 것을 우려하여, 알을 낳은 다음에만 달팽이를 잡아야 한다는 조약도 만들었고요. 이것이 달팽이 요리의 기원입니다. (또 다른 설에 따르면, decadência란 용어의 기원으로 유추할 때, 카라콜이 아니라 고대 아테네 귀족들이 달팽이 요리를 즐겼지만 이 사실을 비밀에 붙였다고 하네요.)

ㄹ제과에서 생산을 앞두고 있는 달팽이 아이스크림 시리즈는, 달팽이 요리의 기원에 충실한 제품이기도 하더군요. 최근의 기상이변과 자연재해는 달팽이 양육에 최적의 조건이라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죠. 태풍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가 많은 곳에 이번 신제품의 생산시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달팽이 양육과 제품 생산을 거의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죠. 자연재해가 빈번할 수록 제품 생산도 원할할 듯하니, 다른 무엇보다도 자연재해가 얼마나 자주 발생하느냐가 관건이라고 합니다. 급속 냉동 후 지속적인 냉동보관, 그리고 독자적인 유통망을 통해 제품 생산 후 24시간 이내에 매장 진열. 모든 설비는 다 갖추었다고 합니다.

암튼 이번 여름 선보일 신제품 달팽이아이스크림은 정말 기대하셔도 좋을 듯합니다. :)
2010/01/17 14:13 2010/01/17 14:13
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 [블루 혹은 블루]를 읽었다. 기대 이상. 도플갱어가 소재다.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나와 다른 내가 생긴다는 아이디어.

도저히 어느 쪽으로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정말 또 다른 내가 생겨나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때 나와 헤어진 나는 내가 하지 않는 선택 상황에서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을 살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도망쳤던 또 다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본체'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도플갱어'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도저히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과거의, 내가 모르는 선택을 한 나는, 나의 '본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들이 서로 만날 가능성은 있는 걸까? 만약 우리가 만나, 서로의 삶을 서로 바꿔가며 살 수 있다면 그때 나는 내가 모르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 서로의 생활을 질투하겠지. 서로 상대방의 삶이 부러워서 생활을 바꾸고 싶어 하겠지. 그러다 때때로 바꾼 삶이 너무 낯설고 괴로워서 또 다른 나를 찾아 삶을 바꾸려고 하겠지. ...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2010/01/16 14:14 2010/01/16 14:14
날씨가 쌀쌀하니 기분이 너무 좋아서, 온 몸이 짜릿짜릿하게 떨려서 좋아하고 있습니다.
으헤, 으헤헷.
2010/01/14 14:26 2010/01/1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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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여성의 성매매/'원조교재' 관련 영어 논문을 찾다가 "Teen Prostitution"(십대 성매매)이란 발표문을 봤습니다. 발표문 내용은 게이 공동체에 속하는 성매매/성판매 십대들과 인터뷰가 주를 이룹니다. 딱히 어떤 해법이나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건 아니고 그냥 고민이 많다는 식의 결론만 내리네요. 그나저나 1997년에 쓴 발표문인데도, 웹과 관련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홈페이지에 성노동자/성판매자의 사진이나 소개글을 올리면 전화로 연락해서 만나는 일이 있다는내용입니다. 그 와중에 종종, 성구매가 목적이 아니라 혐오폭력을 목적으로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새로울 건 없는 내용이죠. 발표문 자체엔 새로운 내용이 없지만 그래도 혹시나 LGBT 공동체에서의 성매매 혹은 유사 이슈에 관심 있으면 한번 읽어보셔도 나쁘진 않겠어요.

인터뷰 내용 중에 한 명은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인데요. 부모님과 나눈 대화를 소개한 부분은 간결하면서도 씁쓸합니다. 예상할 수 있는 내용이고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부모님께 나는 바이섹슈얼이라고 말했어. 부모는 내게 집에서 썩 나가거라고 답했지."
성적지향/성정체성-가출-부모나 가족과의 관계-성매매/'원조교제'의 연결고리를 알려주는 대화기도 합니다. 아, 이 일화를 알려준 이의 인칭대명사는 "he"입니다.

많은 이들이 성매매에 참여하는 이유로 돈을 얘기합니다. 이건 현대 사회에서의 생존구조를 알려주는 말입니다. 자본주의가 사라지면 성매매가 사라진다는 의미로만 이해하거나, 물질만능주의의 폐해란 식으로만 말하는 건 초점을 잘못 맞추는 거겠죠.
적잖은 논문에서 이 부분을 분석하지 않고 있는 건 아쉽죠.

이 발표문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부분은 인터뷰에 응한 십대들의 힘입니다. 모든 인터뷰 인용자료는 글쓴이의 검열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인용구절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일 순 없겠죠. 하지만 저자의 글투는 매우 조심스러운데 반해 인터뷰 인용구절엔 힘이 넘칩니다. 이런 종류의 많은 인터뷰 인용 구절이 피해자 만들기, 무력한 약자 만들기에 경도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요? 따옴표에 등장하는 인터뷰 내용에서 넘치는 힘을 읽을 수 있는 건 분명 기분 좋은 일입니다. 문장에 담긴 어떤 '사실'을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문장에 실려 있는 힘, 늬앙스를 읽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저는 잘 못하는 부분이지만, 문장에서 말하는 이의 힘과 태도를 파악하고 이를 분석하는 작업이 많아진다면 또 다른 어떤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영어논문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한국과 여타 지역의 확연한 차이 중 하나는 에이즈(HIV/AIDS) 이슈입니다. 외국의 경우 에이즈 이슈가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져서 십대 성매매 이슈라고 해서 에이즈 이슈가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더군요. 한국에선 아직 이 이슈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듯합니다. 한국에선 학교제도, 교육제도가 더 중요하려나요.

또 하나 가장 큰 차이는 성적지향/성정체성/성별정체성 이슈입니다. 영어권 논의에서 동성애/양성애/이성애, 트랜스젠더/비트랜스젠더 이슈는 기본 분석 범주로 등장합니다. 깊이 있게 다루진 않아도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는 잘 없더군요. 반면 한국에선?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본 분석 범주가 아니라 특수 사례로 언급이나 하면 다행일 정도입니다(물론 이렇게 언급할 바엔 아예 언급하지 않는 게 더 좋지만). 사실 한국에서 발간한 구금시설 및 폭력 관련 논문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분석 범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 자체가 길어야 5년 정도란 점을 감안하면 놀랍지도 않지만요. 저도 작년에야 이 이슈에서 논의가 매우 부족하단 걸 깨달았죠. 물론 논의가 부족한 건 트랜스젠더 이슈도 만만찮지만요. ㅠ_ㅠ

자료를 찾으며 흥미로운 건, 원조교제의 영어식 표현은 일본어를 영어표기로 바꾼 Enjo Kosai(혹은 compensated dating)입니다. 그리고 enjo kosai로 검색하면 일본, 한국, 홍콩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자료만 나옵니다.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용어가 다름을 알 수 있는 부분이죠.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prostitution(성매매)을 사용하는 듯합니다. 십대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고, 구매자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성구매와 (원조)교제의 뉘앙스는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요. 하지만 prostitution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일까요? 미국 등 영어권 국가에서 prostitution의 뉘앙스를 제가 모르니 쉽게 단정할 부분은 아니고요.

참 두서 없는 글입니다. 뭔가를 정리할 필요가 있어서 끄적였으니, 글이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
2010/01/14 13:50 2010/01/14 13:50
아는 분의 요청으로... 하하.
근데 이것도 재밌네요. 제 블로그가 홍보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재밌기도 하고요. 헤헤.

암튼 장애여성공감에서 호프를 연다고 합니다.

일시: 2010년 1월 16일 12:00-22:00
장소: 여의도 BTB호프

자세한 프로그램은 웹자보 참고하세요. :)
(근데 공감 홈피에서 텍스트파일을 찾으려고 했는데 웹자보만 있다는;;; 당황;; )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0/01/12 13:32 2010/01/12 13:32
Muse, The Resistance Tour in Seoul. 2010.01.07.20:00- @ 올림픽 체조경기장 C-315.

그러니까 나는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야. 아니, 어제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그 공연장에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야. 아, 정말 행복해서 곧 죽어도 좋을 기분이었어!

공연장에 가겠다고 출발한 시간은 오후 3시. 일단은 어제의 첫 식사를 하고. ;;; 4시 즈음 지하철을 타고 올림픽 체조경기장으로 향했다. 5시 즈음 표를 현장수령하고 스탠딩 입장을 위한 대기석에 갔는데. 무려 외부! 눈이 쌓여 있는 외부에서 기다렸는데, 이미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후후. 그 심정 알아. 녹지 않은 눈이 쌓인 곳에서 발을 동동 거리며 몸을 녹이며 얼추 두 시간 정도 기다렸다. 그리고 입장. 입장한 시간은 7시. 공식적으로 공연을 시작할 시간은 8시. 아직 한 시간이 남았다. 나는 그나마 괜찮은 자리를 확보하고 마냥 무대를 바라보며 기다렸다. 빨리 시작하면 8시 10분이나 15분. 늦게 시작하면 8시 30분이나 40분 정도일 거라고 예상했다. 이미 두 번의 경험이 있으니까. 매튜가 공연을 앞두고 변비로 고생한다는 얘길 어디선가 읽은 기억도 있어서. 하하. 그래서 나로선 조금 느긋했지만 주변에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저 불만도 공연이 시작되는 순간 사라질 거란 걸 알고 있으니까. 공연이 끝날 땐, 찬양과 황홀만 남으리란 걸 알고 있으니까. 아무튼 공연은 8시 40분 즈음 시작했다.

약간 과장하면, 세상은 뮤즈의 공연을 관람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후후. 매우 조금 과장한 거다. 정말 얼추 100분 정도의 시간 동안 미친듯이 달렸다. 다들 방방 뛰는 시간엔 방방 뛰고 손을 뻗어 팔을 흔들고. 첨엔 근육이 안 풀려 팔이 아팠지만 두 곡 정도 지나고 나선 그런 것도 없었다.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며 열심히 놀고, 적당히 쉬어주고. 중간에 호흡이 가프고 폐가 조금 아팠는데(평소 운동부족의 결과;; ) 그래도 좋았다. 이대로 호흡곤란으로 쓰러진다고 해도 괜찮았다. 사실 아침부터 몸이 살짝 안 좋았고, 그래서 밥도 제대로 안 먹고 공연장에 갔기에 걱정했다. 공연장에 갈 땐, 무조건 잘 먹고 가야 충분히 놀 수 있으니까. 그나마 생수 한병 준비한 건 정말 잘한 일. 물이 없었다면 쓰러졌을지도. ;; 얼굴이 땀 범벅이었고, 땀이 흘러 눈에 들어왔는데도, 마냥 좋았다. 그래, 이 기분이야!

스탠딩이라 초반에 주위 사람들에게 부딪히며 다칠 위기도 있었고, 안경이 날아갈 위기도 있었지만 그것도 초반일 뿐. 세 번째 곡이 흐를 즈음엔 자리를 잘 옮겨서 꽤나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세 번째 줄에 섰는데, 내 앞에 계신 분들이 모두 나보다 키가 작아서;;; 무대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지난 두 번은 무대를 제대로 구경할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번엔 무대도 구경하고 노래도 즐기고. 음하하. 하지만 스탠딩은 키 작은 사람에겐 저주다. 펜스 바로 앞에 서지 않는 이상. 나 역시 나보다 키가 큰 사람들로 무대 구경을 못 할 때도 있었으니까.

연주는 완벽 그 자체. 선곡도 매우 만족스러웠다(5집 [The Resistance]를 중심으로 연주할 줄 알았는데 2~5집 곡들을 고루 연주했다). 특히 앵콜로 "Plug In Baby"와 "Knights of Cydonia"를 부른 건 탁월한 선택. "Knights of Cydonia"는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고정한 듯. 예전 공연에서도 그렇고 다른 나라의 공연에서도 그런 듯하고. 확실히 마지막 곡으로 "Knights of Cydonia"가 최고이긴 해. 그리고 이 곡을 들을 때마다 공연의 감흥이 고스란히 되살아나기도 하고. 길에서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마치 공연장에 있는듯 뛰고 싶으니까. 흐흐.

매튜를 비롯한 뮤즈 멤버들은, 이제 한국공연에선 떼창과 팬들의 호응을 기본으로 전제하고 공연하는 느낌이었다. 어느 곡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평소라면 다 부를 텐데, 일부러 가사의 일부를 안 불렀고, 그 부분은 팬들의 떼창으로 충분히 매웠다. 조용한 곡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곡에 떼창은 기본이었다. 공연이 정말 끝났을 때, 메튜와 크리스, 도미닉은 자신들도 만족스럽고 또 아쉬워 하는 표정으로 무대에서 나갔다. 2010년 첫 공연으로 자신들도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아, 정말 나에게 그냥 쓸 수 있는 돈이 매우 넉넉하다면, 뮤즈의 앨범 투어를 따라다니며 모든 공연을 관람할 텐데.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다. 흑흑. 아무려나 이렇게 2010년의 힘을 받았다.

+Exogenesis를 연주하지 않아 아쉬웠는데, 무대를 보면서, 뮤즈는 핑크 플로이드를 욕망하는 것 같았다.
++지산에 온다는 카더라 소문이 있는데, 혹시...
+++과분하지 않은 바람 중 하나는, 매년은 아니어도 앨범 투어 때마다 한국에 왔으면 좋겠다. 공연을 함께 하며 함께 나이들면 기쁠 듯. :)
2010/01/08 14:44 2010/01/08 14:44
겨울의 추위는 자폐증을 일으키고, 여름의 더위는 분열증의 원인이 된다. 신경이 쉴 수 있는 계절은 잠깐뿐이다. (64)
-곤도 후미에 [얼어붙은 섬] 권영주 옮김. 서울: 시작/웅진, 2008

무척 재밌는 책. 그리고 인상적인 구절.
2010/01/06 10:41 2010/01/06 10:41
KSCRC(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작년에 이어 2010 아카데미를 연다고 합니다. 재밌는 주제가 많아요! 많은 분들의 관심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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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KSCRC 겨울 아카데미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관련 연구자, 그리고 인권과 퀴어 이론 등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위한 "생각나눔, 지식나눔, 배움나눔"의 장 - <2010 겨울 KSCRC 아카데미>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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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1] 퀴어이론입문 : 차이와 정체성
강사 _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이 강의는 퀴어 이론과 운동이 도전하고 사용하고 있는 몇몇 차이와 정체성에 대한 핵심개념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입문강좌이다. 이 강좌에서는 동성애를 정상적인 정신병으로 명명한 프로이드, 정상과 비정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존재한다고 말한 푸코, 강제적 이성애라는 개념을 통해 문제를 동성애가 아니라 이성애로 옮겨간 게일 루빈, 젠더 이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욕망의 새로운 문법을 시도한 세즈윅 등의 핵심 개념을 같이 읽어보고 토론하고자 한다.

총 4강 : 1월 넷째 주 화요일 ~ 금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5만 5천원, 정원 12명

1강_ 도착 (1월 26일/ 화)
2강_ 비정상 (1월 27일/ 수)
3강_ 강제적 이성애 (1월 28일/ 목)
4강_ 동성사회성 (1월 29일/ 금)

[강좌2] 십대 이반 워크숍 : 페미니즘은 나의 힘 2
진행자_타리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 성정치위원회)
작년에 이어 2탄으로 준비되는 10대들을 위한 페미니즘 워크샵. 지금까지 페미니즘 없이 잘 살아왔다고? 아니, 아직 맛보지 못한 것이 있어. 이번엔 10대 활동가들을 위한 워크샵으로 더욱 진귀한 상차림을 준비했으니 와서 한번 맛을 보라구. 바로 이 맛이야!

총 4회, 1월 23일부터 2월 20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1시~3시, 수강료 3만원 (* 이 강좌는 22세 이하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정원 8명

1강- 우리가 지금 페미니즘을 시작하는 이유 (1월 23일/ 토)
2강- Her스토리로 본 세상의 특별함 (1월 30일/ 토)
3강- 우리의 고민을 해결하는 여성주의적 상담 (2월 6일/ 토)
4강- 우리의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는 또래 상담 (2월 20일/ 토)

[강좌3] 논쟁과 이슈 : 성적자기결정권
지금까지 한국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은 성폭력에 도전하는데 유용한 도구였다. 하지만 혼인빙자간음죄와 간통죄가 위헌논의에 휘말리면서 보수주의자들 역시 아무렇지 않게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을 전유해가는 상황이다. 자기결정이라는 형식 아래 개인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개념이 아직도 유효한 것일까 하는 고민마저 들 정도이다. 왜 이렇게 성적자기결정권 논의가 미궁에 빠진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이번 강좌에서는 기존의 성적자기결정권 논의의 폭을 퀴어의 눈으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시도한다. 이는 새로운 성적자기결정권 연구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총 6강 : 2월 매주 화요일, 목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7만 5천원, 정원 30명

1강_ 성적자기결정권, 미궁에 빠지다 (2월 9일/ 화)
권김현영(여성주의 연구/활동가)

2강_ LGBT들의 성매매, 성적자기결정권의 정위 혹은 탈구 (2월 11일/ 목)
김주희(막달레나의집 현장상담센터 활동가)

3강_ 의료권력과 성적자기결정권: 땜질하는 몸, 그래서 자연스러운 몸 (2월 16일/ 화)
루인 (트랜스젠더 활동가)

4강_청소년과 성적자기결정권 : 아무도 허락할 수 없는 섹슈얼리티 (2월 18일 / 목)
5명의 10대 LGBT와 함께.

5강_ 동성결혼과 성적자기결정권 : 필요성과 불가능성 사이의 권리 (2월 23일/ 화)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6강_ 안전한 섹스는 '자유'인가 '권리인가'? (2월 25일/ 목)
엄기호(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활동가/ ‘닥쳐라 세계화’ 저자)

[강좌4] 흐름읽기 : 퀴어 미학
점점 더 막장 혹은 불륜, 엽기로 치달아가고 있는 주류 미디어는 이제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입에 담지도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정말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 강좌에서는 공연예술, 미술, 음악, 영화 등 각 장르별로 아름다움의 기준과 정의를 바꾸고 새로운 숭배자들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포스를 가진 퀴어 문화 작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퀴어들의 필수교양강좌!

총 4강 : 2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9시, 수강료 5만 5천원, 정원 30명

1강_ 무대위의 성별 유희와 젠더퀴어들: 미국 드랙킹(drag king) 공연 미학 (2월 5일/ 금)
지혜(공연학/문화연구)

2강_ 이상한queer 미술, 즐거운gay 감상 (2월 12일/ 금)
정은영 (미술작가)

3강_ 대중음악에서의 ‘퀴어’한 미학 (2월 19일/ 금)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웨이브’ 편집장)

4강_ 게이가 삼킨 영화, 영화가 빚은 게이 (2월 26일/ 금)
김조광수 (영화감독, 청년필름 대표)

강좌신청방법: 원하시는 강좌를 선택하신 후 수강료를 입금하시고 아카데미 홈페이지/ 이메일/ 전화로 입금 확인과 함께 신청을 해주시면 됩니다.
신청 및 문의처: kscrcqueer@naver.com / 0505-896-8080
강좌안내홈페이지: http://kscrc.org/academy

입금계좌: 국민은행 477401-01-043885
우리은행 1006-301-221561
(예금주: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강좌신청마감: 각 강좌 전일까지 가능합니다.
강좌장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서교동 475-15번지 영화빌딩 6층) / 강좌 3과 강좌 4는 강의장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http://kscrc.org)
2010/01/06 10:40 2010/01/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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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실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또 슬픈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요. 까르르 웃으며 뛰놀고 싶은 기분도 드네요. 하하.

玄牝에서 밖에 나갈 준비를 하며 라디오를 듣는데, 눈이 많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수시로 날씨 정보를 전하는 것을 통해 눈이 많이 내린다는 건 짐작했지요. 하지만 밖에 나왔을 때,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멋져요! 모른 시름이 눈에 묻혔으면 좋겠어요.

02
핸드폰과 mp3p를 대략 4~5년 정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사용하는데 별 문제는 없지요... 아, 아니군요. 몇 가지 버튼이 마모되어 불편함이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사용하기에 특별한 문제는 없습니다. 어떤 분은 제것보다는 최신폰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분의 주변사람들은 오래된 것이라고, 좀 바꾸라는 말을 한다고 하더군요. 자기는 신경쓰지 않는데 주변에서 말이 많아 신경쓰인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제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없으니 다행이죠. 하하. 암튼, 전 적어도 올해까진 바꿀 의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년엔 바꿀 의향이 있습니다. 한국에 안드로이드폰이나 구글폰이 제대로 된 것으로 나온다면요! 지금은 핸드폰과 mp3p를 따로 사용하고 있지만 나중엔 겸용으로 구매하려고요. 하지만 이상하게 개조한 형태로 안드로이드폰이나 구글폰을 출시한다면 내년에도 현재 것을 계속 사용할 예정입니다. 사용하는데 큰 문제만 없다면요.

데스크탑인 나스타샤를 사용한 게, 햇수로 얼추 10년입니다. 2001년 겨울에 샀으니, 엄밀하겐 9년 조금 넘었지만요. 하하. 그 사이에 컴퓨터 사양은 엄청나게 변했습니다. 그리고 가격도 많이 내렸습니다. 제가 컴퓨터를 구매하던 시절의 반값으로 제것보다 훨씬 좋은 컴퓨터를 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앞으로도 계속 나스타샤를 사용할 예정입니다. 노트북인 후치가 있어서는 아닙니다. OS를 주분투(Xubuntu)/리눅스로 바꾸니 큰 불편함이 없거든요. 아, 물론 사운드카드 문제로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볼 수 없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그럴 때만 윈도우XP로 부팅하면 되니 큰 문제는 아닙니다. 뭐, 이것도 모두 인터넷이 될 때의 문제긴 하지만, 제가 컴퓨터를 사용하는 습관이 웹과 워드 정도니 현재의 하드웨어로도 충분합니다.

흔히, 시간이 많이 흐르면 하드웨어 사양을 업그레이드 해야 한다는 말을 하더군요. 나스타샤 역시 소소한 업그레이드를 한번 했습니다(메모리를 256에서 512로). 하지만 하드웨어 사양을 업그레이하는 것보다는 현재 하드웨어 사양에 최적인 OS를 설치해도 인터넷과 워드작업에 문제가 없는 웹 환경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고민을 하는 요즘입니다. 하드웨어 업그레이를 당연하게 여기는 발언은, 한국에서 복지정책이 국가가 아닌 가정, 특히 어머니/여성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같다고 이해합니다. 구글의 독점을 경계하면서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그 가벼움에 있습니다. 저사양 컴퓨터에서도 구글서비스를 사용하는덴 큰 어려움이 없거든요. 기술의 발달이 비싼 제품을 만드는데만 쓰일 것이 아니라 저사양 하드웨어에서도 서비스를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데 쓰여야 겠죠(구글이 이렇게 한다는 건 아니고요). 암튼, OS만 바꾸면 앞으로 5년 아니 과장해서 10년은 더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굳이 업그레이드를 할 이유도, 버리고 새 컴퓨터를 살 이유도 없지요. 저사양 컴퓨터를 사용하기에 좋은 OS가 더 많이 나오고 있는 요즘 추세를 보면, 더 그렇고요.

데스크톱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이유나, 핸드폰과 mp3p를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이유는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참, 전 요즘 모든 작업을 웹브라우저에서 실행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별도의 오피스 프로그램을 열지 않고 웹에서 (날려도 큰 문제가 없을)문서를 작성하는 식으로요. 저와 같은 사용자는 정말 웹브라우저에서 거의 모든 작업을 실행할 수 있을까요? 재밌는 실험이 될 거 같습니다.
(아, 그리고 구글웨이브는 아무리 봐도 이메일+메신저+문서작성+협업 등을 통합한 서비스가 아니라 클라우드 컴퓨팅을 대비한 서비스 같습니다. 아니, 클라우드 컴퓨팅에 최적화한 서비스란 표현이 더 정확하겠죠? ;; )

03
암튼 눈이 오니 기분이 좋아요. 그리고 며칠 뒤면, 뮤즈(Muse), 음악의 신이 강림하십니다!!
2010/01/04 12:25 2010/01/04 12:25
어느 블로그(미투였나? ;; )에서 직원이 사장에게 저항/복수하는 최고의 방법은 돌발적인 사표라는 구절을 읽었다. 물론 이 행위는 직원 자신의 생계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중소기업이거나 벤처회사라면 악질적인 사장에게 직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자 저항은 사표다. 둘의 권력구조를 깨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일전에 나의 도망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도망은 직원이 사장에게 사표를 내는 것처럼, 그렇게 어떤 관계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도였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관계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 관계가 섬뜩했다. 내가 바보같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도망쳤다. 어쩌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그 관계는 내가 바라는 형태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망쳤다. 마치 관계에 사표를 쓰듯, 그렇게. 아마 그 관계에서 유일하게 타격을 입은 사람은 나 뿐일 것이다. 그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이듯. 지금 내가 그 관계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건 아니다. 아직도 그 관계의 자장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10년이 되었어도 글을 쓸 때마다 습관처럼 2009를 썼다가 지우고 2010이라고 쓰는 것처럼.

그래, 아직은 생계를, 삶의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다. 2010이 손에 익듯 그냥 그런 식으로 괜찮아질 거다. 그러니 괜찮다.
2010/01/03 13:19 2010/01/0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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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동네냥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있다. 리카와는 몇 번인가 고양이키스도 했다! 그땐 무척 감동이었다. 하지만 리카와 나의 거리은 여전히 1미터. 리카는 언제나 1미터 정도의 아름다운 거리를 유지하며 내게 다가온다. 스프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다가온다. 물론 내 손이 닿도록 가만두진 않는다. 음식을 줄 때면 오른쪽 앞발을 흔들며 음식을 낚아 채려는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악수라도 하고 싶지만 가당찮은 일. 아무려나 나는 여전히 음식을 주고 있다.

조금은 변했다. 예전엔 매일매일 가급적 같은 시간에 음식을 줬다면 요즘은 이틀에 한번, 사흘에 한번, 혹은 이틀 연속으로 주곤 다시 하루 쉬는 방식으로 음식을 주고 있다. 이사를 하고 나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별을 연습하고 있다. 한동안 음식을 규칙적으로 조공했다면 지금은 불규칙적으로 조공하고 있다. 이런 나의 태도와는 별개로 음식을 꾸준히 줄 때도 동네냥이들은 쓰레기봉투를 뒤졌다는 점은 다행이다. 고등어무늬 고양이 중 한 아이는 내가 음식을 주러 나가도, 자기가 찾은 음식을 다 먹고 나서야 내가 준 음식을 먹으러 왔다. 이런 모습들은 안도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은 음식을 주는 패턴을 바꾸고 있다. 서로에게 적응했던 몸을 바꿔나가기. 그 시간을 넉넉하게 주기. 내가 음식을 주는 시간을 깨닫는데 일주일 정도 걸렸으니 불규칙한 행동을 깨닫는데 한달이면 넉넉하겠지.

아쉽기도 하다. 리카는 내가 나가면 야옹, 야옹 울면서 음식을 요구한다. 스프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내게 무척 가까이 다가온다. 이 정도의 관계를 만드는데 들인 노력을 떠올리면 아쉽다. 하지만 아쉬움은 나의 몫이다. 고양이들에게 나의 아쉬움은 독이 될 수도 있다. 고양이들에게 나의 행위가 화양연화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때 만만한 인간이 음식을 줬던 적이 있지'라고 떠올려 주기만 해도 좋겠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어차피 헤어져야 한다면, 이별을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지. 그 시간이 안타깝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그나마 이 추운 겨울, 살아있다는 사실은 고맙고 또 고맙다.
2010/01/03 13:01 2010/01/03 13:01
이른바 12월 특집인가요? 흐흐. 평소엔 안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끝나고 새로운 일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라 쓰는 독후감 아닌 독후감입니다.

다나베 세이코지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읽었습니다. 영화는 예전에 봤으니, 책을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책과 영화가 모두 좋은 경우가 드물어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상당히 잘 썼어요. 조근조근하다는 느낌이 많이 드는 작품이고요. 실린 단편 중, "사랑의 관"이 가장 좋아요. 두고두고, 가끔씩 꺼내 읽을 수 있는 책이라 기쁩니다.

이비스 리스의 『도덕적 암살자』를 읽었습니다. 여러 고민 거리를 동시에 던져 줍니다. 스포일러가 아니니 미리 말하면, 암살자는 채식주의자입니다. 저처럼 유제품이나 달걀도 안 먹는. 아울러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저자의 대역이지 않을까 싶어요. 소설 내내 사람이 동물을 얼마나 부당하게 죽이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합니다. 그러며 채식이 윤리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전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살짝 짜증도 났지요. 전 현재의 도살장이 비윤리적으로 살생하기에 육식이 부당하고 채식이 정당하다는 식의 주장은 인간의 자뻑/자기애일 뿐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니 제발, 인간 아닌 동물들이 농장에서, 도살장에서 얼마나 참혹하게 사는지를 전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윤리가 기준이라면, 이런 전시야 말로 비윤리적이죠. 그리고 살인의 윤리 말고, 내용 전개에서의 윤리를 따지면 이 책보다는 미야베 미유키 같은 작가의 작품이 훨씬 윤리적입니다. 미미와 같은 이들의 추리소설은, 윤리를 설파하지 않지만 등장인물을 그려내는 방식에서의 윤리를 고민하게 합니다. 아무려나, 그래도 다음의 구절은 꼽씹을 만합니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절반은 자랑스럽고 절반은 분노에 차, 마치 어린 학생이 라틴어 동사 활용 시범을 보이듯 말을 꺼냈다.
“범죄자들을 더 기술이 좋은 범죄자로 변화시키는 곳인데도 우리가 교도소를 운영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로 교도소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멜포드가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했구나. 말해봐.”
톰스 경관이 내게 보여준 똑똑한 십대 소년인 조지 킹슬리를 떠올렸다. 그는 착한 아이였지만 냉혹한 범죄자가 되었다. 모든 걸 바꾹 개혁하겠다며 미래를 그리던 아이는 모든 맹세와 야망을 잃은 채 범죄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범 죄자들은 대개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생겨요. 그 사람들은 우리 문화로부터 별로 얻는 것이 없어요. 그들이 뭔가 얻으려면 사회를 변화시키거나 심지어 파괴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될 새로운 체제로 바꿔야 해요. 물론 더 나은 체제일 수도 아닐 수도 있죠. 그건 상관없어요. 그들은 주류가 아니라는 이유로 결국 법을 어기는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들에게 범죄를 배우죠. 어쩌면 교도소에 가서 훨씬 중요한 법률을 어기는 걸 배우기도 하겠죠. 어느 사이엔가 미래의 혁명가들은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사회는 범죄자는 쉽게 흡수할 수 있지만 혁명가는 받아들이지 못해요. 범죄자들은 체제 안에 자리가 있지만 혁명가는 자리 자체가 없죠. 그래서 교도소가 있는 거예요. 사회의 부적응자들을 살인자로 바꾸는 거죠. 사회에 피해를 주고 분위기를 해칠 수는 있지만 사회를 파괴하지는 않거든요.”
-데이비드 리스. 『도덕적 암살자』 남명성 옮김. 서울: 대교베텔스만, 2008. 463-464.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때문에』를 읽었습니다. 100만 권씩 팔린다는 소설은 이런 소설이군요. 이런 소설이 이렇게 많이 팔린다는 사실이 놀랍지만, 부담 없이 읽기엔 좋아요. 소설이 읽는 시간 동안의 유희라면, 나쁘진 않습니다. 다만 다시 읽고 싶은 작가는 아닙니다.

카미유 로랑스의 『사랑, 그 소설같은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만약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좀 안다면 매우 재밌을 책입니다. 프랑스문학와 프랑스어에 문외한인 저로선, 아쉬웠습니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책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쉬움과는 별도로, 매우 매력적인 책입니다. 특히나 작품의 구조와 구성은 제 취향. 흐흐.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는 형식으로 풀어냈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기시 유스케의 『유리망치』를 읽었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한 『검은집』의 저자기도 합니다. 읽고 난 느낌은... 오오. 감탄, 또 감탄. 『도덕적 암살자』가 도덕과 윤리를 주장하기만 한다면, 이 책은 도덕과 윤리를 녹이고 있습니다. 도둑질은 괜찮아도 살인은 안 된다는 구절 때문이 아닙니다. 소설 속 인물을 설명하고 전개하는 방식 때문입니다.

타쿠미 츠카사의 『금단의 팬더』를 읽었습니다. 반 정도를 읽었을 땐 그냥 그랬는데 어느 순간 빠져들더군요. 사람들이랑 농담으로 하던 얘기를(스포일러라 말을 할 수가 없어요;; ) 이렇게까지 밀어붙였다는 점에 점수를 후하게 주고 싶습니다.

가쿠타 미쓰요의 『삼면기사, 피로 얼룩진』을 읽었습니다. 이 작품도 괜찮습니다. 책마다 편차가 있긴 해도, 이 작가, 대체로 괜찮은 듯합니다. 사실 "삼면기사"라고 해서 흑기사와 같은 기사인 줄 알았습니다... 아하하 ;;; 그 기사가 아니라, 신문의 3면에 실린 기사란 뜻입니다. 짧게 실린 기사에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붙인 소설입니다.

웬디 매스의 『망고가 있던 자리』를 읽었습니다. 책을 옮기신 분에게서 2009년 늦여름에 선물 받았는데 이제야 읽었습니다. ;; 전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합니다. 사회적으로 '다른' 존재로 불리는 이들이 지배규범과 소통하는 과정을 그리는 성장소설. 소리에 색깔과 이미지를 볼 수 있는 공감각인(synesthesia)이 주인공입니다. 예를 들면, a는 분홍색, b는 하늘빛이 도는 은색, d는 주황색이란 식으로요. 2000명 중 한 명이 공감각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 존재를 아는 이들이 거의 없기에 주변 사람들은 상상이나 헛소리로 치부하죠. 정신병으로 간주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주인공의 다른 경험과 함께,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다른' 경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별도로, 소설 자체도 무척 재밌습니다.

내가 나를 미쳤다고 하는 것과, 의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웬디 매스. 『망고가 있던 자리』. 정소연 옮김. 서울: 궁리, 2007. 95.

요시다 슈이치의 『거짓말의 거짓말』을 읽었습니다. 헌책방에 있어서, 그냥 일하는 시간 동안 읽었습니다. 의외로 재밌는 부분은, 주인공이 젊은 시설 게이 파트너와 동거를 했다가 현재는 표면적으로 이성애 결혼을 한 상태라는 것. 그래서 꽤나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뭐, 이런 내용이 아니어도 요시다 슈이치 소설이 부담 없이 읽긴 좋기도 하고요. 내용만으로는 구매할 수도 있겠지만, 분량에 비해 비싼 편이라, 사지는 않았습니다. 결혼한 동성애자와 관련한 소설에 관심이 있으시면 참고하세요. :)

천운영의 『잘가라, 서커스』를 읽었습니다. 천운영은 2000년 이후 등단한 작가 중 제가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고 읽고 있는 작가입니다. 제 취향이 옛날 작품을 좋아해서인지, 2000년대 등단 작가 중에서 읽을 만한 작가를 못 찾았거든요. 김애란이 잘 쓴다고 하지만,
『달려라 애비』도 네 편 정도 읽다가 결국 덮었습니다. 전 소설을 읽을 때 한국작가의 작품과 번역작품을 평가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번역작품이야 내용이 재밌으면 그만이지만, 한국어로 쓰는 작가의 작품은 구성과 문체 등을 좀 더 엄격하게 따집니다. 근데 등단 첫 작품집이란 점을 감안해도 김애란의 작품에선 큰 매력을 못 느꼈습니다. 반면 천운영은 첫 작품집 『바늘』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꾸준히 읽고 있습니다. 물론 갈 수록 기대에 못 미치지만요. 하하. ;; 『잘가라, 서커스』는 첫 장편이라, 계속 기대를 가져도 될지, 아님 그냥 접어야 할지를 가늠하는 기분으로 읽었습니다. 결론은, 아직은 좀 더 읽자는 것. 그렇다고 예전처럼 엄청난 매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요. 뭔가 평이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습니다.

에릭 포토리노의 『붉은 애무』
를 읽었습니다. 홍보띠지에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이 결합된" 운운하는데, 이런 구절은 무시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딱히 추리소설이라고 부를 거리도 없거니와 순수문학과 추리문학이란 구분 자체도 문제니까요. 아무려나, 이 작품 매우 매력적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다음 인용구절을 음미해 보세요. 하지만 이 인용구절에 낚이진 마세요. 후후.

아이는 아빠 목소리를 가진 엄마를 너무나 좋아했다.(107)

"아빠가 내 엄마였을 때 기억나?"(108)

정확하게 말해, 마리가 아니라 내가 연기하는 엄마, 무엇이든 받아줄 준비가 되어 있고, 펠릭스도, 마리도 결코 보이지 못했을 인내심을 발휘하는 금발 여인, 아버지의 서투름도, 짜증도, 불뚝 골도, 그리고 생모의 차가운 거리감도 없는 새로운 존재를.(161)

나는 실추한 어머니, 두께가 없는 아버지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었다.(172)
-에릭 포토리노. 『붉은 애무』 이상해 옮김. 서울: 아르테, 2008.

2010/01/01 16:44 2010/01/01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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