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불, 기억

새벽, 추워서 잠에서 깼습니다. 많이 쌀쌀하더라고요. 지금까지 한여름 이불을 덮고 잤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가을 이불은 없고 비몽사몽 상태로 겨울 이불을 꺼냈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겨울 이불을 꺼내는데, 리카가 떠올랐습니다. 그 이불을 처음 사서 펼쳤을 때 리카는 이불이 맘에 들었는지 한참 꾹꾹이를 했거든요. 이불을 꺼내는 순간 리카가 떠오를 줄 몰랐기에 당황했습니다. 그리움도 함께 왔고요. 하지만 이불을 덮는 순간, 그대로 다시 잠들었습니다. 졸렸거든요.
바람은 가끔 매트리스 커버 아래에 들어가 잠들곤 합니다. 그 모습이 귀엽지만, 가끔은 덜컥 겁이 나서 일부러 바람을 깨웁니다. 커버 아래 손을 넣고 깨우는 것이 아니라 커버에 나타난 바람의 형상을 쓰다듬으며 깨우는 거죠. 대개 처음엔 반응이 없습니다. 저는 다시 열심히 쓰다듬고 “야옹” 소리가 들리면 그제야 멈춥니다.
오래, 오래 함께 하자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행복하냐고 묻지도 않습니다. 그냥 함께 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무서워서, 미래를 기약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주절주절: “탈고 안 될 마음”, 알러지/대상포진

01 “탈고 안 될 마음”
가을에 듣기 좋은 노래는 힙합이지만, 기타만 연주하며 노래하는 가요들도 무척 좋아요. 어젠 오랜 만에 임지훈을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무척 좋아했죠. 그래서 서울에 왔을 때 가장 먼저 간 공연은 임지훈의 소극장 콘서트였습니다. 지금은 위치도 알 수 없는(당연한가ㅡ_ㅡ;;) 곳을 나름 어렵게 찾아갔죠. 그리 멀지도 않은 곳은데 늦을 까봐, 못 찾을 까봐 일찍 가서, 공연은커녕 개관까지 무려 30분 정도를 밖에서 기다렸고요. 하하. 그래도 설렜던 시절이었죠. 처음 가는 콘서트니까요. 그리고 스무 살은 저 뿐이었습니다. 관계자들도 신기하게 바라봤습니다. 제가 조금만 용기를 냈으면 싸인도 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죠. 저 외엔 모두 삼,사십대에 부부동반도 꽤나 많았으니까요. 앨범으로만 듣던 목소리를 라이브로 듣는 느낌은 정말 새롭죠. 그 기쁨을 처음으로 배우기도 했네요.

요 며칠 자꾸 입 안에서 맴도는 가사가 있어 앨범을 꺼내 듣고 있습니다(라고 쓰고 CD에서 mp3를 추출해서 듣고 있다고 읽죠;;). 목소리가 가을 이미지와 참 많이 닮았네요. 쓸쓸하지만 바닥을 치는 건 아닌 무게. 띄엄띄엄 가사를 듣다가 문득 한 부분에서 숨이 멎었습니다.

“탈고 안 될 마음 그 뭇 느낌으로”
(전문은 http://bit.ly/2OKPio)

<아름다운 사람>이란 노래의 가사입니다. 탈고 안 될 마음이라니 …. 아, 이 보다 적확한 표현이 있을까요. ㅠ_ㅠ 몇 번을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02 알러지?
어릴 때 대상포진을 앓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갑자기 왼쪽 아랫 배가 심하게 아프더군요. 꽤나 심하게 아팠지만 신경 쓰는 가족은 없었습니다. 원래 가족이란 그런 거잖아요. 🙂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한 게 드러나자 그제야 응급실에 갔는데요. 의사는 변비라고 진단을 했습니다. … oTL 돌팔이! 그러고 며칠 지나 배의 왼쪽에서 대각선으로 두드러기가 심하게 나기 시작하더군요. 약국에 갔더니 약사가 대상포진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진단도 약사에게?

구글링을 하니 수두에 걸린 사람 중에서 발생하는 경향이 높다는데 제 기억에 전 수두에 걸린 적이 없습니다(http://bit.ly/133hJJ , http://bit.ly/kFi3o). 그럼 대상포진이 아니었을까요?? 수두 대신 대상포진이 생긴 걸 수도 있겠네요. 흐흐. 신경성이라고 하니, 당시의 저라면 충분히 가능한 것도 같고요. 하하. ;;; 암튼 그 비슷한 무언가를 앓았는데요.

며칠 전 갑자기 그날 저녁에 먹은 게 잘못 되었는지 배 앓이를 했습니다. 통증이 꽤나 심해서 밤을 새웠죠. 그러고 나서 배 부위가 좀 가려웠지만 그러려니 했습니다. 붉은 반점 같은 게 생기는 거 같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모기에게 물렸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알러지 모양으로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하네요. 통증은 별로 없는데 두드러기 모양은 대상포진 때와 비슷하고, 안 아픈 건 아니고요. 근데 재발하는 증상이 아니라고 하니, 뭔가 또 다른 알러지일까요 …. 하하. 드물게 재발하기도 할까요? 사실 음식 알러지라고 하기엔 물집의 모양이 달라 음식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네요. 제가 음식으로 알러지가 발병하면 온 몸이 붉은 색으로 피부가 다 일어나거든요. 으하하. 이때 보면 정말 볼 만 합니다. 😛

징크스인데, 아플 때 아프다고 블로깅을 하면 금새 증상이 좋아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괜히 징징거리고 싶어서 아픈 건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요. 으하하. ;;; 암튼 이런 이유로 쓰는 거니 곧 좋아질 거예요. 아무렴요.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데, 고작 이런 일에 신경 쓰면 곤란하거든요. 🙂

가을이 익어가는 냄새

시골엔 가을향기가 가득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종 가던 그곳은 아직도 초록이 만발하고, 무화과가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실 때마다 몸을 가득 채울 초록 공기를 기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얼추 10년 전 들어선 쓰레기 매립장의 쓰레기 익어가는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공기는 고약하게 달고, 가을이 오면 보상금은 익어갑니다. 누군가는 빛을 청산했고, 누군가는 집을 개조했습니다. 가을이라고 달라진 건 없습니다. 사시사철 쓰레기가 익어가는 나날, 보상금이 익어가는 나날. 삶은 무료합니다. 극렬했던 매립장 건립 반대 시위는 보상금 액수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다들 반대 시위는 보상금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는 전략이었다고 기억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기억 속의 고향은 박제된 형태도 없이 아득합니다. 새롭게 진행될 개발 계획에 보상금이 얼마가 나올지, 그 금액을 어떻게 사용할지 계산하기 바쁩니다. 푸른색과 퍼런색의 간극은 매우 좁습니다. 노후 보장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 지려나봅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노후 보장이 되면 다행일까요?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민들은 냄새만 불평할 뿐, 생활 자체는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공중목욕탕도 생겼고, 대형 마트도 생겼으니까요. 재래시장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아, 대형마트 때문에 사라진 게 아닙니다. 농촌마을이라 재래시장에서 물건을 팔 사람들이 없어서, 살 사람도 없어서 사라졌습니다. 5일장이란 말은 이제 기억 속 유물입니다. 자가용이 있는 사람은 자가용을 타고, 자가용이 없는 사람은 마을버스를 타고 대형마트로 갑니다. 보상금은 농사로만 살기엔 불안했던 삶에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는 시간, 나뭇잎들이 얼굴 표정을 바꾸는 시간, 무화과가 입술을 벌리는 시간, 그리고 보상금이 익어가는 시간. 가을 하늘은 높고, 보름달은 크고 환했습니다. 저만 혼자 난감한 표정을 짓고있습니다. 외부자라 난감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