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섹스(간성), 상담, 그리고

아는 분이 내게 인터섹스와 관련한 전문 상담을 받을 수있는 곳이 있느냐고 묻는 메일을 보냈다. 내 앎이 일천하여 당연히 없지만, 대신 믿을 수 있는 곳으로 살림의원과 별의별상담소를 추천했다. 한국에 인터섹스 전문의가 없진 않겠지만, 전문의가 인터섹스에 부정적/혐오 태도를 보인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일까 싶어 그냥 내가 믿을 수 있는 곳을 말했다. 각각, 인터섹스와 관련한 상담이나 진료를 한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행여나 없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곳이며, 첫 면담/상담을 계기로 열심히 공부할 분들이라는 믿음은 있다. 무엇보다 혐오의 감정으로 인터섹스와 그 가족을 대할 가능성이 극히 적으리라.
(참고로 살림의원과 별의별상담소는 트랜스젠더 이슈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 많은 트랜스젠더가 살림의원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울러 확인한 결과, 살림의원 선생님이 잘 알지는 못 해서 종합병원을 추천해야 한다고 하지만 만약 처음 내원한다면 그래도 살림의원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그런데 인터섹스 성인과 만날 기회와는 별개로 인터섹스 아동이나 유아와 만날 기회는 최소한 퀴어 공동체에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단 점을 깨달았다. 메일을 주신 분의 이메일을 읽다가 깨달았는데, 인터섹스로 태어난 아동의 부모는 퀴어기보다는 퀴어가 아닐 가능성이 더 높다. 퀴어보다 비퀴어가 많아서가 아니라(어차피 이건 누구도 알 수 없으니) 퀴어보다 비퀴어의 결혼 및 출산의 경우가 더 높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추론에서 그러하다. 무슨 말이냐면, 인터섹스와 관련한 정보를 가장 필요로 하는 집단은 인터섹스 본인이기도 하지만 인터섹스 자녀의 이성애-비트랜스 부모기도 하다. 어쩌면 인터섹스의 부모야 말로 인터섹스와 관련한 가치 있는 자료를 많이 알아야 하는 집단이다. 다른 말로 누가 인터섹스의 부모가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결혼을 하건 안 하건 상관없이 아동을 출산하는 이라면 누구나 인터섹스와 관련한 정보를 필히 알아야 한다. (정확하게 동일한 이유에서 장애와 관련한 정보, LGBT와 관련한 정보 등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인터섹스와 관련한 어떤 자료가 나와야 하는지 자명하다. 아니, 자명하지는 않지만 그 대상은 상당히 분명하다. 하지만 누가, 언제?
국내에 인터섹스의 모임, 인터섹스 부모의 모임이 없진 않을 것 같은데 검색엔 안 걸린다. 카페 검색에도 안 걸린다. 흠…
인터섹스와 관련한 한글 자료 중엔
피터 헤가티(Peter Hegarty)와 셰릴 체이즈(Cheryl Chase)의 대화 http://www.dbpia.co.kr/Article/3047916
그리고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만화 <아이 에스>를 추천.

글 홍보: 인터섹스(간성), 만성질환, 장애-퀴어-페미니즘 / 리카패밀리

작년 12월에 나온 <여/성이론> 27호에 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글이 세 편 실렸습니다. 각 글의 주제에 관심 있는 분이 많을 듯하여 홍보합니다.

자세한 목차는 http://goo.gl/XwxO7 참고하시고요.
우선, 미국의 인터섹스(간성) 활동가 체릴 체이즈Cheryl Chase의 인터뷰 논문이 실렸습니다. 책임 번역자는 제이 님이고(제이 님이 번역을 워낙 잘 하셔서 문장 읽는데 어려움이 없을 거라 단언하고요) 기획은 리카패밀리에서 했습니다. 저를 포함한 네 분이 함께 세미나를 하는 모임이고요. 한국에서 인터섹스와 관련해서 충분한 논의를 살필 수 없는 상황이라 이 글을 번역하자고 논의했고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출판되었습니다.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기획 의도::
  이  논문은 피터  헤가티가  미국  간성(인터섹스) 활동가  셰릴  체이즈와  인터뷰한 글이다.  셰릴  체이즈는, 본문에도 나와 있듯,  1990년대 초반 간성 단체  ISNA를 설립하고, 관련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활동  경험을  밑절미  삼아,  이  인터뷰  논문에서  체이즈는  간성의  경험, 페미니즘과의 접점, 퀴어운동과의 교차점 등을 논한다.
  한국에서  간성  논의는  사실상  부재한다.  의학에서  치험례를  다룬  논문  몇  편,  트랜스젠더  논의에서 부분적으로 언급하는 글 정도가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간성 이슈는 매우 중요하다. 간성의 몸 경험은  규범적  인간  몸을  다시  사유할  것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이원  젠더-섹스,  의료기술과  젠더화된 몸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사유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간성 이슈가 소재로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지금까지  어떤  몸만  인간의  몸으로  사유했는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특정한  범주  존재의  삶을  어떻게  누락하고  은폐하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간성의  몸이 ‘특이’해서가 아니라 간성의 몸과 삶을 사유하지 않는 현재의 인식체계가 문제라는 뜻이다. 헤가티와  체이즈의  인터뷰는  한국  사회에서  누락된  간성  논의에  중요한  참조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  논문의  의의는  단순히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논문은  개인의  삶을  추상적  논의로  만들면서 구체적 삶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는 제공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간성 개념은 배울 수 있지만 간성의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상상해야 하는지, 간성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 식이다. 본 논문은, 로쿠하나 치요의 만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아이에스』와 더불어 간성 이슈를 조금은 더 구체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이 글 번역은 리카패밀리가 기획했다. 리카패밀리는 장애-퀴어 이슈를 함께 공부하는 공동체로, 황지성, 제이(김진선), 전혜은(당근), 루인이 구성원이다. 세미나의 일환으로 본 논문을 읽었고, 이 논문이  현재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번역하기로  결정했다.  전문  번역은  제이가 담당했다. 제이는 장애여성공감에서 활동했고, 현재 한국여성민우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리카패밀리를 조금 더 소개하면, 장애-퀴어 이슈를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 모임입니다. 장애-퀴어/트랜스젠더-페미니즘이 교차하는 지점의 이론을 공부하고 관련 글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 여름에 출판한 “수잔 스트라이커” 소개글을 읽으셨으면 ‘장애-퀴어 세미나’ 팀에게 고맙다고 한 구절을 확인할 수 있을 텐데요. 같은 모임입니다. 스트라이커도 세미나 팀에서 같이 얘기를 나눈(이건 저의 열렬한 애호와 팀원의 열렬한 호응이 결합한 경우죠 크크) 이론가 중 한 명이고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선, 수잔 스트라이커 소개글 역시 리카패밀리의 성과기도 합니다. 아울러 이번에 출간된 책 <성의 정치 성의 권리>에 실린 저의 글 “괴물을 발명하라”에도 장애-퀴어 세미나 팀에게 고맙다고 했는데요. 같은 세미나 모임입니다. “괴물을 발명하라”의 일부분은, 이 세미나가 없었다면 결코 쓸 수 없었을 거고요.
리카패밀리 얘기를 하는 이유는, 만성질환 및 수잔 웬델을 소개한 글 두 편 역시 리카패밀리의 자장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본인 동의 없이 막 이렇게 우기기.. 크크. ;;; )
수잔 웬델이 쓰고 전혜은이 옮긴 “건강하지 않은 장애인:만성질환을 장애로 대우하기”는 장애 이슈에 관심이 있건 없건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 흔히 장애를 사회적 범주로 해석하면서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태도를 어느 정도 경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인식론적 전환임에도 몸이 아픈 것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남습니다. 바로 이 지점, 아픔, 손상, 고통을 다르게 의미화하는 것과는 별개로 몸이 아픈 현상 자체는 남고, 그렇다면 이 아픔과 어떻게 관계 맺을까는 여전히 고민인데 이것이 이 논문의 핵심입니다. 이 정도 설명이면, 아마 많은 분들이 자신의 경험과 연결됨을 깨달을 듯 합니다. 이를 테면, 장애나 아픔과 같은 경험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퀴어고 퀴어라서 즐겁고 하는 것 등은 다 좋은데, 그럼에도 때때로 즐겁다고만 말할 수 없거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기도 하는 등 복잡한 감정을 느끼니까요. 이런 복잡한 고민에 어떤 위로를 주는 논문이 아닐까 합니다.
전혜은이 쓴 “수잔 웬델: 손상의 현상학자”는 수잔 웬델을 소개한 논문인데요. 간단하게 소개하면, 몸으로 쓰는 글이 무엇인지 그 진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꼭 읽어보셔요.

아그네스, 어느 트랜스젠더의 생애를 재해석하기.

#국내 포털 기준, 성인인증을 거쳐야 하는 단어들이 나옵니다. ㅡ_ㅡ;; 읽는 이의 입장에 따라 조금은 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도 있단 소리죠.

Garfinkel, Harold. “Passing and the Managed Achivement of Sex Status in an “Intersexed” Person Part 1.” Studies in Ethnomethodology. By Garfinkel. Englewood Cliffs, N.J. : Prentice-Hall, 1967. 116-185.

1950년대 말이었나. 미국의 한 ‘여성’이 한 명의 정신과 의사(혹은 정신분석학자)와 한 명의 사회학자를 찾아갔다. 그는 두 명의 ‘전문가’에게 자신을 간성으로 소개하며, 남자아이로 자랐지만 자신을 여성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1950년대 말, 1960년대 초면 트랜스젠더, 간성 관련 연구를 막 시작하던 무렵이다. 정신과 의사와 사회학자는 트랜스젠더와 간성 관련 해서 어느 정도 지명도를 획득하고 있었다. 그 ‘여성’은 다른 의사의 추천으로 이 둘을 찾아갔다.

아그네스(Agnes)란 이름으로 불린 그 ‘여성’은 당시 의학에서 상당히 새로운 존재였다. 고환과 음경이 소위 규범적 형태로 불리는 모습을 갖추고 있는 동시에 가슴이 상당히 발달한 상태였다. 머리는 금발로 길었고 손이나 발이 조금 크긴 했지만 체형 역시 여성형이었다. 전문가라 불리는 두 명의 표현을 빌리면, 아그네스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냥 여성’이란 점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다. 전문가라 불리는 두 인물의 이름은 로버트 스톨러(Robert Stoller)와 해럴드 가펑클(Harold Garfinkel).

아그네스는 스톨러와 가펑클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생애사를 얘기했다. 가족들과 주변 이웃들 모두 자신을 소년으로, 남자아이로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을 한 번도 남자로 생각한 적은 없었으며, 항상 여성으로 생각했다고 했다. 이런 괴리감을 느끼며 자라다 어느 순간 이차성징으로 소위 남성형 성적 특질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0대 중반이 될 무렵, 여성형 성적 특질도 동시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의료적 조치도 취한 적이 없는데 에스트로겐이 고환에서 분비되기 시작했다. 물론 아그네스는 기뻤다고 한다. 여성으로 통하는 외모로 변하면서 여성의 성역할을 새롭게 배웠고 남들에게 여성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아그네스의 고민은 외부성기형태였다. 남성형 외부성기는 그에게 상당히 불편했다. 이성애자인 아그네스는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고 때때로 성관계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외부성기형태를 말하길 원치 않았다. 외부성기형태 뿐만 아니라 소년으로 자라야 했던 역사도 말하길 원치 않았다. 그렇기에 아그네스의 욕망은 실현하기 힘들었다. 외부성기형태 재구성수술은 그에게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아그네스는 자신이 여성처럼 보이길, 여성으로 통하길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규범적이고 자연스럽게(“normally, naturally”) 보이길 원했다. 남자로 자랐다는 역사, 간성이라는 몸의 조건, 십대 후반에야 여성다움을 배워야 하는 상황을 다른 이들이 알지 않길 바랐다. 아그네스는 이런 저런 고민을 스톨러와 가펑클에게 얘기했다. 그리고 스톨러와 가펑클은 각각 아그네스와의 인터뷰에 뿌리를 둔 연구결과물을 출판했다.

첫 연구결과물이 출판되었거나 출판되기 직전 ‘새로운 일‘이 발생했다. 스톨러와 가펑클은 아그네스가 간성이라고 믿었다. 의료 조사 역시 아그네스가 간성이라고 판정했다. 아그네스는 에스트로겐이 자연스럽게 분비되었다고 증언했고, 이에 의사들은 분비기관이 고환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첫 만남으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아그네스는 스톨러에게 자신은 10대 중반 즈음부터 에스트로겐 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에스트로겐의 출처는 어머니였다. 아그네스의 어머니는 에스트로겐 약을 복용해야 하는 처방전이 있었다. 아그네스는 약국에 가서, 어머니의 처방전으로 약을 대신 사는 것처럼 말하며 약을 샀고, 그 약을 먹었다.

비록 4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이 일화는 상당히 많은 고민거리를 남긴다.

아그네스의 경험은, 이차 성징이 발생하기 직전부터, 혹은 그 즈음부터 호르몬 투여를 시작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신체 외형에 좀 더 근접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10대에 호르몬 투여를 원하는 경험적/’생물학적’ 근거이기도 하다. 트랜스젠더의 성전환, 의료적 조치에 반대하는 적잖은 논리 중엔 “10대는 성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시기이니 성인이 되면 그때 시작하도록 하자.”란 주장이 있다. 문제는, 20대에 호르몬을 시작하면 10대에 시작하는 것보다 효과가 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mtf/트랜스여성이면 남성형 성적 특질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상당하고, ftm/트랜스남성이면 여성형 성적 특질이 두드러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의료적 조치를 시작하는 시기가 늦을 수록 사회에서 ‘이질적이고 어색한 존재’로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진다. 10대엔 호르몬을 비롯한 의료적 조치를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상관없이, 트랜스젠더는 트랜스젠더란 티가 나야 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젠더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이차 성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후 의료적 조치를 시작할 경우, 더 많은 수술을 해야할 가능성이 크단 점에서 ‘성’을 바꾸려면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할 각오를 하라는 의미기도 하다. 그럼 언제 의료적 조치를 시작하는 게 좋을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10대는 성정체성이 혼란스러운 시기”란 식의 언설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점이다. 10대에만 혼란스러운 게 아니다. 혼란은 평생 경험한다.

아그네스와 인터뷰한 가펑클의 글을 읽으면 음경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구절이 나온다. 아그네스는 자신의 음경에서 어떤 성적인 감각을 느끼지 않으며 결코 발기하지 않는다고 가펑클에게 말한다. mtf/트랜스여성과 음경/페니스의 관계는 대체로 이와 같다. 적잖은 자서전, 공적 인터뷰와 같은 글에서 음경은 부인해야 할 대상으로 등장한다. 너무너무너무 끔찍할 뿐이라 쳐다도 보기 싫다는 식이다. 자신의 외부성기를 쳐다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반응은 트랜스젠더의 자기 몸 인식에 있어 널리 알려진 방식이기도 하다. “아이러니”는, 외부성기재구성수술을 할 때 음경 혹은 페니스를 뒤집는 기술을 선택하면서 발생한다. 소위 여성형 외부성기형태를 갖추기 위해 음경 혹은 페니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너무도 끔찍하다고 말하지만 너무도 필요한, 없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또한 항상 존재하는 “아이러니.”

“아이러니”란 단어는 가펑클이 아그네스를 평가하며 사용했다. 이것은 가펑클의 한계이자, 가펑클과 아그네스의 관계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단서다. 공적으로 알려진 내용과 개개인들의 관계에서 나누는 얘기에 상당한 간극이 있는 건 당연하다. 음경 혹은 페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공적으론 끔찍하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주는 성적인 쾌락을 포기하길 꺼리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음경 혹은 페니스에 부여하는 통상적인 의미(남자의 상징)가 아니라 단순한 신체기관, 살덩어리, 성적 기관으로만 이해하기도 한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이해들이 모든 자리에서 통용되는 건 아니다. 트랜스젠더, 성전환의 진정성 혹은 완성을 측정하는 핵심적인 기준이 외부성기형태재구성수술의 여부인 문화에서 외부성기는 끔찍해서 없애야만 한다. 여전히 소유하고 싶다는, 성적 감각에서 중요하다는 식의 언설은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너 진짜 트랜스젠더 맞아? 너 가짜지?”란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한국에선 “군대 가기 싫어서 트랜스젠더인 척 하는 거지?”라는 반응을 유발한다. 이런 문화적인 상황에서 공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내용은 제한되어 있다. 그래서 아그네스가 스톨러와 가펑클에게 자신의 음경이 끔찍하다고 말하는 걸 문자 그대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가펑클에겐 “아이러니”겠지만 아그네스에겐 전략적 발화일 가능성이 상당하다. 아그네스가 가펑클과 스톨러에게 자신을 간성으로 소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전략적 발화라고 해서, 음경을 싫어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다른 고민은 ‘여자’와 ‘규범’이다. 가펑클은 아그네스에게 여자로 보이고 통하길 원하는 거냐고 질문한다. 아그네스는 가펑클에게 자신은 여자로 보이거나 여자로 통하길 원하는 게 아니라 규범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이길 원한다고 말한다. 가펑클은 아그네스의 이 말이 혼란스러운 듯 하다. 나는 아그네스의 이 말이 상당히 멋지다고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펑클이 정의하는 여자와 아그네스가 정의하는 여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펑클에겐 여자라는 어떤 원본, 진짜 여자라는 상이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가펑클이 ‘여자처럼 보인다’라는 말은 ‘진짜 여자,’ ‘생물학적 여자’를 모방하고 따라하길 원한다는 말과 같다. 가펑클의 말은 아그네스가 ‘여자’도 ‘여성’도 아니지만 어쨌든 ‘여자처럼’ 보일 수는 있다는 걸 암시한다. 아그네스는 여자처럼 보이길 원하는 게 아니라 규범적이고 자연스럽길 원한다고 답하는데 이때 여자는 이미 결정된 요소가 아니다. 누구나 여자처럼 보일 수 있고, 트랜스여성이라고 해서 여자처럼 보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얼마나 규범적이고 자연스럽게 보이느냐이다. 이럴 때 핵심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몸’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한 사회의 젠더 규범을 얼마나 잘 인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소위 ‘생물학적으로 타고난 여성’이라고 해서 ‘여자처럼’ 보이는 데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실패했을 때 받는 타격의 정도는 각자가 다를 것이다. 아마도 아그네스, 혹은 트랜스젠더라면 그 타격은 훨씬 크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 “규범적이고 자연스럽게” 통하는 게 중요한다. 아그네스의 이 말은 젠더 이론에서 30년 정도 지나서야 비로소 논의를 시작하는 말들을 암시한다.

이런 글을 읽을 때 속상한 건 하나다. 아그네스의 본명도, 그가 남긴 글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여러 의미에서, 프로이트의 분석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