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남긴다는 것

01
2006년 가을,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기획 회의를 하고, 단행본에 실을 글을 쓸 때였다. 경계분쟁 관련 원고의 최초 기획의도는 트랜스젠더, 크로스드레서, 게이의 여성성 비교였다. 하지만 나는 범주와 경계분쟁을 주제로 썼다. 이 주제는 그 시절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고, 나를 설명하기 위해 꼭 써야 하는 말이었다. 그래서 1차 원고가 나왔을 때, 좀 난감했다. 다행이라면, 다른 원고도 최초 기획 목적과 조금씩 달라 1차 원고를 바탕으로 기획과 전체 흐름을 바꿨다는 것. 크. ;;

난 내가 쓰고 싶은 글, 하고 싶은 말을 했지만 그 말의 독자가 있을지엔 의문이었다. 나는 범주와 경계분쟁 이슈가 중요하다고 판단했지만 나 외에 누가 또 그 말을 필요로할까? mtf를 중심으로 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없었다. 실제, 에둘렀지만, 너무 이른 주장이 아니냐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책의 편집장인 채윤 님의 의견이었다. 내가 쓴 주제가 지금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며 매우 꼼꼼한 논평을 줬다. 무척 고마웠다. 그 논평의 많은 부분을 반영하지 않고, 나의 고집을 세운 건,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그 덕에 편집장의 말은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라면 따르는 게 좋다는 걸 배웠지만. 흐. 편집장은 저자를 제외한 첫 번째 독자이자, 책을 구매할 분들을 염두에 둔 독자이기에 가장 예민한 독자랄까…

그 글을 쓴지 대충 4~5년이 지났다. 물론 출판된 건 2년 반정도 흘렀지만… 책이 얼마나 나갔는지는 모른다. 초판을 500부 찍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초판도 다 안 나갔달까. 그리고 고백하자면 책이 나온 초기를 빼면 그다지 신경도 안 쓰고 있다. 문장이 엉망이고 꼬여 있어 읽기 수월한 글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쓰라면 전혀 다르게 쓸 텐데,라며 괜히 출판했다 싶을 때도 많다.

그런데… 반응이 조금씩 왔다. 자주는 아니지만, 잊힐 즈음이면 반응이 왔다. 책을 읽은 분들은 대체로 좋은 얘기만 해줬다. 고마웠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 쓰는 언어들이, 받아들이는 입장과 맥락은 다르겠지만, 다른 이에게도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닫는 건,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나 혼자 헛소리하고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는 것만큼 힘나는 일이 어딨겠는가.

비단 그 글만이 아니었다. 가끔이지만, 그래도 나도 잊고 있거나, 잊고 싶은 어떤 글을 잘 읽었다는 말을 들을 때, 그런데 그 말이 단순한 인사말이 아닐 때,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난 그저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나를 설명하기 위해 애쓴 것 뿐인데, 그 말이 나 아닌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때, 보잘 것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마움을 전하는 것 뿐이다.

어제 연세총여 문화제 자리도 즐겁고 또 고마운 자리였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원고 지옥 일정은 좀.. ㅠㅠ

02
원고까지는 아니지만, 11월에 발표 요청을 받았다. A4 다섯 장 이상 분량의 원고도 써야 한다. 상식적으로 수락하면 안 되는 일정이다. 근데 주제가 너무 매력적이다. 아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다. 그리고 요청 메일을 보낸 분은, 내가 팬질하는 분 중 한 분이고. 그래서 갈등했다. 결국 수락했다. 미쳤다. (변명하자면, 그때 알러지성 비염으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크.) 하지만 정말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행사를 진행하는 곳에서 최종 조율할 테니까. 암튼, 나 정말 미쳤다. ㅠ_ㅠ 그래도 관련 주제를 제대로 발표하는 건 처음이라 했으면 좋겠다는…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