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바꼭질: 계급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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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영화 <숨바꼭질>을 봤다. 평은 그럭저럭.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진 재밌었다. 범인이 밝혀진 다음엔 긴장감이 떨어졌고 평이했다. 하지만 이건 취향을 탈 듯.
*어쨌거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기대한 범인은 트랜스젠더 형상이었다. 주인공이 형의 집에서 여성용 속옷을 발견했을 때, 나는 여성동거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보다 형이 여장을 하거나 트랜스젠더거나, 대충 그런 가능성을 기대했다. 이럴 때 트랜스젠더 형상을 어떻게 범죄 형상으로 재현하는지 궁금했다. 뭔가 꽤나 재밌거나 한없이 진부하거나, 뭐 그런 가능성을 떠올리면서.
아니었다. 범인은 이웃의 다른 사람이었고 범인을 추리하는 측면에선 그저그런 가능성이었다. 이 찰나, 좀 김이 빠졌다. 그렇다면 형의 방에 깨끗한 여성용 속옷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범인이 일부러 가져다 두었다고 해도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 범인은 집이 중요하지 집에 거주하는 사람에게 어떤 혐의를 씌우는 덴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영화에서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야 하는 건 이해한다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부실하게 처리하나, 싶기도 했다. 주인공이 공격 당하기 전까지, 범인은 사람을 죽인 다음 랩 혹은 비닐로 포장했다. 그래서 무기로 죽이진 못 해도 질식사는 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주인공을 공격한 다음엔 그냥 방치했다. 다른 시체와 함께 방에 방치했고, 그 방을 집 안에서 그리고 집 밖에서 열 수 없도록 하지도 않았다. 그냥 깨어나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방치했다. 이전 행동 특징과 연결이 안 된다. 물론 억지로 합리화할 순 있다. 이를 테면 이전 피해자는 제대로 숨겨야 그 집을 차지할 수 있지만, 주인공은 전혀 다른 동네에 살기에 대충 처리해도 된다는 것. 억지로 이해하려면 할 순 있지만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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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영화를 다 보고 아까웠냐면 그렇지 않았다. 꽤나 흥미로운 텍스트다. 집을 가진 자의 공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피해자 혹은 주인공 집단은, 동네를 정확하게 알 순 없지만 상당히 넓고 고급스런 집을 소유하고 있으며 카페를 운영하며 경제적으로 윤택하다. 가해자 혹은 범인은 매우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으며 마땅한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이 정도면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택 문제가 영화의 배경이다. 어떤 사람은 주택 1,000채를 소유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은 평생 살만한 집에서 살아보지도 못한다. 현재 한국의 주택공급율은 한 명이 한 채 이상 소유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전세대란이다. 집값 잡는다고 쇼를 한다. 그래, 쇼를 한다. 솔직하게 말해 주택정책을 결정하는 고위 공무원이 한국의 주택 문제를 제대로 처리할 의지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고위 공무원은 어느 정도 괜찮은 자가 주택이 있을 것이며 집값이 오르면 이득이다. 그들이 집값을 안정시키거나 낮춘다는 건 곧 스스로 자신에게 손해를 입히는 정책을 추진함과 같다. 전세대란과 주택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책입안자 및 정책을 결정할 권한이 있는 자의 계급 이해가 해결할 수 없도록 한다고 의심한다.
안락하고 드넓은 집을 소유한 이들에게, 집이 없어서 작은 집이나마 구매하거나 전세로 살고자 하는 이들이 결코 좋게 보일리 없다. 자신의 집에 무단 점거했다가 월세를 제대로 안 내고 도망갈 수도 있고 집을 망가뜨릴 수도 있는 그런 부정적 존재로 보일 가능성이 크다. 어떤 임대인은 분명 전세 혹은 월세를 줬음에도 임차인의 집에 수시로 들락거리며 집의 상태를 확인한다. 임대인과 임차인은 결코 연대할 수 없다. 임대인에게 임차인은 탐욕스럽고 게으르고 또 공포스러운 존재일 수도 있다. 때때로 언제든 외국으로 이민갈 수도 있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집단에게 가난한 이들은 그저 공포의 대상이다. 영화는 바로 이 찰나를 다룬다. 계급 간의 갈등이 공포로, 호러로 변용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한국에선 계급 간의 이미지가 공포고 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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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살고 있는 집은 주거 밀집 지역이고 꽤나 깨끗한 편이다. 반면 이전에 살던 이태원의 보광동은 재개발을 앞둔 지역이었다. 도로는 있지만 자동차 두 대가 동시에 지나갈 수 없고 골목 사이로 또 골목이 있다. 처음 오는 택배기사는 자칫 엉뚱한 곳에서 헤매기 쉽다. 주택의 높낮이가 다 달라서 난 이층집의 이층에 있었는데 바로 옆집 삼층 옥상이 보였다. 하지만 자취를 하며 다양한 동네에 살았고 내겐 꽤나 괜찮은 곳이었다. 가장 괜찮은 동네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괜찮은 동네였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로선 감지덕지였다.
이사하는 날, 이사를 돕는 직원분이 내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동네에서 살았느냐고. 처음엔 이사를 축하하는 단순한 인사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어떻게 이런 동네에서 살았느냐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찰나, 나는 살만하지 않은 공간에 사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것은 사는 지역이 계급을 만드는 찰나일 수도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사는 동네의 정비된 모습과 주인공의 형, 범인이 사는 동네의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대조한다. 주인공의 시점에서 범인이 사는 지저분한 동네를 혐오스럽고 불결한 형태로 재현한다. 그런 불결하고 지저분한 동네에서, 나는 임대인의 문제만 제외하면 무척 즐겁게 살았다. 다른 말로, 보광동에 살던 시절의 나는, 영화에서 재현하는 계급 혐오 시선의 대상이기도 하다. 범인과 나는 동일한 피사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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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안전, 거주 공간의 안전은 젠더화되지만 또한 계급화된다. 주인공이 사는 곳엔 주민이 무슨 항의만 해도 경비원, 안전요원 등이 여럿 달려오고 쩔쩔맨다. 곳곳에 CCTV가 있고 CCTV가 비추는 곳을 집안에서 확인할 수도 있다. 아마 경찰도 하루에 몇 번씩 순찰할 것이다. 하지만 범인이 사는 곳은 그렇지 않다. 사고가 나도 이를 알아차리는 사람이 별로 없고 그냥 사라졌나보다 하고 만다. 가까운 경찰서 역시 없는 듯하다. 어떤 위험 사고가 발생할 때 바로 부를 경비원이나 안전요원도 없다. 계급이 안전을 담보한다.
이태원 일대의 한남동과 보광동은 붙어 있는 지역이고 경찰의 순찰이 잦은 지역이다. 하지만 각 지역을 순찰하는 목적은 다르다고 느낀다. 한남동을 순찰할 땐 거주자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할 목적일 것이다. 보광동을 순찰할 땐 위험한 거주민을 감찰할 목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해도 그 의미와 뉘앙스는 다르다.
영화 도입에, 여성역 인물이 동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줬다. 이것은 젠더화된 불안이다. 남성역 인물에겐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공간이지만 여성역 인물에겐 그럴 수 없다는 뜻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것은 계급화된 불안이기도 하다. 여성역 인물은, 애인에게 이 동네에서 벗어나 괜찮은 동네에서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얘기한다. 그 말은 안전을 젠더로만 설명할 수 없으며 지역, 계급과 얽혀 있음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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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 위험을 알려주는 상징으로 외국인 거주자를 등장시키는 장면은 정말 불쾌했다. 외국인 혐오, 외국인 공포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찰나다. 많은 외국인이 집값이 싼 곳을 찾다보니 영화가 재현하는 가난한 동네에 머물곤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지나가는 외국인을 통해 동네의 계급과 공포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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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가장 큰 공포는 영화에서 다루는 다양한 공포 요소를 전혀 성찰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2011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 겨울 퀴어 아카데미

어젠 우울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문제가 있는 기사기도 했지요. 이미 읽으셨나요? “18살 트랜스젠더의 ‘쓸쓸한 죽음'”(http://goo.gl/rSMFz)입니다. 고인은 mtf/트랜스여성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박민서(18,가명)군”이라고 적어 씁쓸했습니다. 지금은 “박민서(18, 가명)씨”라고 수정했네요.

얼마 전엔, 트랜스여성으로 추정하는 이가 자식을 학대했다며 구속된 일도 있습니다(http://goo.gl/STWVp). 연말, 우울한 소식만 도착한다고요? 전, 그나마 이렇게 기사로 기억이라도 되어 다행이다 싶어요.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생각하지만 비트랜스젠더로 기사에 나는 사람, 자신은 여성인데 기사엔 남성으로(혹은 그 반대로) 기사에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니, 어떤 죽음과 사건은 다른 사람에게 회자되지도 않으니까요.
2011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 겨울 퀴어 아카데미를 합니다. 논쟁과 이슈의 주제는 “혐오, 공포, 그리고 증오”입니다. 입문강좌도 그렇고 재밌는 주제가 많습니다. 많이 기대하세요. 🙂
2011 KSCRC 겨울 퀴어 아카데미
성적소수자 인권활동가들과 관련 연구자, 그리고 인권과 퀴어 이론 등에 관심이 있는 시민들을 위한 “생각나눔, 지식나눔, 배움나눔”의 장 – <2011 겨울 KSCRC 아카데미>가 열립니다.
[강좌1] 퀴어이론입문 : 팬심으로 읽는 ‘몸’ 이론 입문
 강사_ 전혜은 (『섹스화된 몸』저자)
‘몸body’이 뜬다. 하지만 어렵고 빡센 이론들만 넘쳐날 뿐! 그러니 올 겨울 팬심으로 한 번 버티어보자.
없던 팬심도 벌떡 불러일으킬 정열의 이론 입문!!
□ 전체 4강 | 2월 7일부터 매주 월요일 오후 7시
□ 수강료 5만원 (센터후원회원 10% 할인)
1강 그로츠 Mind, Body, Bodies! 팬심이 없어도 이 정도는 기본 (2월 7일, 월)
물질적인 몸을 중시하는 페미니즘 몸 이론의 흐름을 집대성한 그로츠의 논의를, 이리가라이, 크리스테바, 수잔 보르도 등의 중요한 학자들의 논의와 함께 검토해 보는 시간. LGBTQ 잘 모르는 꼰대 아줌마들이라고 욕하기 이전에, 어떤 맥락에서 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우리에겐 어떤 함의를 가져다주는지 훑어봅시다. (참, 그로츠는 L이에요)
2강 버틀러Ⅰ Bodies that Matter/Bodies that do not matter 팬심작렬 버틀러 해부 (2월14일, 월)
몸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인 Bodies That Matter를 중심으로, 버틀러가 몸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말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봅니다. 버틀러에게 가장 많이 쏟아지는 비판인 ‘물질은 무시하고 담론만 중시한다’는 비판이 사실은 버틀러 논의의 어떤 핵심을 무시하고 어떤 현실을 은폐시킴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인지 반박해보면서, 관점대전환을 통해 논쟁의 지반 자체를 흔들어놓는 버틀러의 탁월함을 팬심 충만하게 따라가 보는 시간!
3강 버틀러 Ⅱ 팬심 부족한 자들과 버틀러의 조우, 그리고 BTM 이후의 버틀러 (2월 21일, 월)
버틀러의 몸 이론에 대한 비판적 논의 중 장애이론과 퀴어이론에서 나온 진지한 비판들을 검토해보고, 포지션의 차이와 실천적인 지형에서 나온 입장의 간극들을 버틀러의 논의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 이야기해봅니다. 그리고 Bodies That Matter 이후에 버틀러의 작업에서 ‘담론화할 수 없는 것’, ‘인식론으로 포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논의가 윤리에 대한 문제의식과 결합하여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살펴봅니다.
4강 할버스탐 time-space-bodying, 팬심도 ing (2월 28일, 월)
시간과 공간과 진행(ing)의 문제는 퀴어 몸 이론에서는 핵심주제 중 하나이지만 앞 강의 논의들만으로는 포괄되지 않는 주제입니다. female masculinity에 대한 논의의 장을 열어젖힌 걸출한 이론가인 주디스 할버스탐을 따라, 퀴어 몸 이론을 구성하는 복잡한 지형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팬심의 이동도 경험해봅니다.
[강좌2] 10대워크샵: 백 개의 입으로 ‘나’를 말하다
강사_ 라이더 (퀴어뱅기획단)
주위 누군가가 “주제에 무슨!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테니 입 닫으라” 윽박질렀다면, “침묵은 금이라잖니, 어찌 됐건 참아라!” 강요했다면, 그래서 온 몸에 입이 돋아났고 그렇게 돋아난 백 개의 입 앙다무느라 천 개의 이빨이 시리다면, 그리 사는 게 서러워서 순간순간 울컥하고 그 때문에 백 개의 목울대가 찢어질 듯 아프다면,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제 말해도 됩니다. 말하고 싶은 사람을 기다립니다.
□ 전체 5강 | 1월 10일부터 매주 월요일, 목요일 오후 2시~5시
□ 수강료 1만 원  
□ 이 강좌는 17세 이상부터 22세 이하만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1회   가방 속 나에게 말 걸기(1월 10일/월)
소시오그램, 관계 속의 나, 가방 속의 나, 내 이름은 00
2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찾아서(1월 13일/목)
내가 살고 있는 이상한 나라, 먹과 난화 치기, 지금 맺혀있는 생각, 무의식 사인
3회   죽도록 미운 너, 지금 만나러 갑니다!(1월 17일/월)
색띠와 감정그래프, 죽도록 미운 당신에게, 내 인생의 그때, 그 장소, 그 장면
4회   어느  날 갑자기 무인도에서 생긴 일(1월 20일/목)
무인도 키워드로 핵심가치 찾기, 키워드를 가지고 함께 사는 공간 만들기
5회   다시 쓰는 위대한 나의 이야기(1월 24일/월)
자아의 창, 나에게 묻다, 셀프 인터뷰로 자서전 쓰기
[강좌3] 논쟁과이슈: 혐오, 공포, 그리고 증오
인아보고 게이된?? 며느리가 남자라니?? 호모포비아(homophobia)는 1972년 심리학적 공포증(phobia)의 하나로 불렸다. 하지만 여타의 공포증(고소공포증이나 폐쇄공포증)과 달리, 호모포비아는 사회적, 집단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은 동성애혐오를 마치 국가적 사명으로 이야기하고, 소수자를 향한 증오를 표현의 자유로 합리화하는 시대다. 도대체 왜? 이번 ‘논쟁과 이슈’는 ‘동성애/트랜스 혐오’에 분노하고 싸우고 슬퍼하고 대항하고,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을 위해 포비아의 실체와 역사적 맥락을 들여다보는 자리로 마련되었다. 현실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찾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바로 당신이 함께 한다면.
 
□ 전체 6강 | 2월 8일부터 매주 화요일, 목요일 오후 7시
□ 수강료 6만원 (센터후원회원 10% 할인)
1강 혐오란 무엇인가: 공포증(심리)과 증오(범죄)사이의 역사 (2월 8일, 화)
강사_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2강 종교와 포비아: 누가 혐오를 교리화하였나 (2월 10일, 목)
강사 _ 고상균 (향린교회 청소년부 담당 준목)
3강 한국 식민지 근대 변태 성욕의 고고학: ‘변태성욕자’는 어떻게 탄생하였나 (2월 15일, 화)
강사_ 박차 (이화여자대학교 여성학과 박사과정)
4강 ‘인생은 아름다워’로 본 호모-포비아(Homo-phobia)와 호모-러브(Homo-Love)의 정치 (2월 17일, 목)
강사_ 우주현(중앙대 한국사회연구소)
5강 젠더포비아: 어느 “복장도착자”의 죽음 (2월 22일, 화)
강사_ 루인 (유쾌한섹슈얼리티인권센터 사무국장)
6강 방법론과 실천을 모색하며 수강생과 강사가 모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전체토론 (2월 24일, 목)
[강좌4] 실천워크샵: 한국에서 퀴어 문화 운동을 한다는 것
손이든 발이든 허리든 입이든 움직이며 뭔가를 만들어내기를 좋아한다면, 하지만 혼자서가 아닌 함께 해보고 싶다면, 레즈비언으로서 게이로서 트랜스젠더로서 바이섹슈얼로서든 내 안의 것을 풀어헤쳐보고 싶다면, 미술/ 문학/ 만화/ 미디어/ 공연… 등 서로 분야는 달라도 퀴어문화운동에 관심있다면!  같은 꿈을, 하지만 그동안 따로 꾸었던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어떨까라는 기획으로 마련된 이번 강좌(워크샵)은 어떤 국내외의 문화 운동이 있었는지부터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배우고 나누며 함께 판을 짜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 전체 3강 | 1월 21일, 25일, 26일 오후 7시
□ 수강료 3만 5천원 (센터후원회원 10%할인)
특강: LGBT와 미술, 그리고 에이즈 시대 (1월 21일, 금)
강사_ 임근준 (aka 이정우, 미술·디자인 평론가)
간담회: 대체 그들은 어떻게 버티었고 무엇을 원하는가? (1월 25일, 화)
이야기손님_ 전재우(G-VOICE 음악감독), 우야 (레즈비언 라디오 제작팀 레주파 활동가)
토론회: 이제 우리들의 퀴어문화운동을 꿈꾸고 모색하며 (1월 26일, 수)
이야기손님 – 신군(퀴어문화축제 사무국장), 목소 (뮤지션) 외 여러 퀴어문화생산자들과 수강생 모두.
강좌신청방법: 원하시는 강좌를 선택하신 후 수강료를 입금하시고 아카데미 홈페이지/ 이메일/ 전화로 입금 확인과 함께 신청을 해주시면 됩니다.
신청 및 문의처: kscrcqueer@naver.com / 0505-896-8080
강좌안내홈페이지: http://kscrc.org/academy
입금계좌: 우리은행 1006-301-221561
(예금주: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강좌신청마감: 각 강좌 전일까지 가능합니다.
강좌장소: 아직은 미정이나 신촌, 합정 근방으로 정해집니다. 결정 되는대로 홈페이지와 이메일로 다시 공지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