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문헌을 발굴하다

지난 2월 지도교수가 괴물 관련 학술대회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줬다. 괴물은 나의 주요 관심이고 이를 알고 있는 지도교수가 발표 신청을 하거나 들으러 가거나 아님 참고라도 하라며 보내준 것. 한국이라면 발표를 들으러 가겠지만 무려 영국. 직접 들으러 가는 것은 포기하고 자료집을 구할 수 있길 기대하며 기다렸다.

학술대회가 9월이니 11월 이맘 즈음이면 자료집 편집이 끝나고 온라인으로 공개했을 법한 시간. 검색을 하니 해당 학술대회의 자료집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주관한 단체에서 과거에 발간한 PDF 형태의 자료집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게 대박이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전자책으로 발간한 자료집이 가득가득. 괴물 이슈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자료집이 상당했고 자료집에 속한 발표문도 흥미진진. 그 외에도 다양한 주제의 자료집이 있는데 각 주제가 모두 흥미로워 이건 금광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후후. 물론 몇 가지 주제는 목차만 훑고 넘겼으니 그것은 아동, 교육, 희망. ;;; 관심을 가지려면 가질 수도 있겠지만 흥미가 동하지 않아… 흐흐.
각 자료집을 열심히 다운로드하면서 언제 다 읽을까 싶지만, 그래도 언젠가 읽겠지. 그 중 몇 개는 꼭 읽어야 할 주제니 몇 년 안에 읽겠지. 흐. ;;;
그나저나 안타까운 문제가 있으니… 가장 관심 있는 주제의 자료집은 유료로 판매하고 있더라는… ㅠㅠㅠ 신용카드 없는 내가 파운드화를 결제할 수 있을리 없잖아!! ㅠㅠㅠ
구매 여부를 고민한 다음 부탁할 사람을 찾아야겠다. 끄응..

[논문] Susan Stryker “My Words To Victor Frankenstein …”

Susan Stryker “My Words To Victor Frankenstein Above The Village Of Chamounix: Performing Transgender Rage” GLQ, vol.1 (1994)

메리 셸리를 읽고 나서, 스트라이커의 논문 제목을 읽으려 했을 때, 이전엔 무슨 의미인지 몰랐던 제목의 의미를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샤뮤니(Chamounix)는 괴물과 빅터가 만나, 빅터를 떠난 괴물이 그 후 어떻게 지냈는지, 그리고 빅터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얘기하는 곳이다. 그러니 제목 “샤무니 마을에서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하는 나의 말들”은, 괴물이 빅터에게 하는 말이자, 스트라이커가 하는 말이기도 하다. 스트라이커는 괴물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으며, 이 논문은 바로 이런 감정에서 출발한다.

이 논문이, 처음으로 읽은 스트라이커의 논문은 아니다. 그간 몇 편의 논문들을 읽었지만, 그 중 몇 편은 읽기 쉬운 편은 아니었다. 짧은 몇 편의 글은 읽기 쉬웠지만, 어떤 글들은 수월한 영어는 아니라고 느꼈다. 하지만 이 논문 “My Words”는 정말이지 읽는 내내 감동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글이다. 여러 많은 문장들이 감동의 도가니지만, 단 한 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비록 그 한 마디가 이 글을 요약하진 않지만.

할 수 있는 한 무례하게 나는 말한다: 나는 트랜스섹슈얼이다, 고로 나는 괴물이다.(240)

아무려나, 트랜스 관련 글을 읽고자 한다면,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함께 이 글을 꼭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프랑켄슈타인] 혹은 괴물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 오숙은 옮김, 서울: 미래사, 2002
Mary Shelley, Frankenstein, London: Penguin Books, 2003/1818/1831

[프랑켄슈타인]을 읽어야지 했던 건 꽤나 오래 전이라고 기억한다. 하지만 언제나 “나중에”란 말로 미루기 일쑤였다. 그러다 5월 어느 날, 수잔 스트라이커의 글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을 때, 그렇다면 [프랑켄슈타인]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책을 사고 한 달이 흘러서야 읽을 시간이 생겼고, 오랜 만에 읽는 소설책이었다.

사실, 루인에게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주는 이미지는 기껏해야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이었다. 그러니 소설책으로 읽은 [프랑켄슈타인]은 낯선 내용이었다. 물론 다른 책을 통해, 프랑켄슈타인은 과학자이며, 괴물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소설을 읽으며, 내내 괴물에 감정이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고백과 감정은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경험들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일테면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니 (…) 당신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기쁨에서 몰아내었소. (…) 그들은 날 멸시하고 미워하오. 인적 없는 산과 황량한 빙하가 내 피난처요.(152-153)

아무리 그들에게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도, 우선 그들의 언어를 완전히 습득하기 전에는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고, 언어 지식이 있다면 그들에게 내 흉측한 모습을 무시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소. 내가 보기에도 내 일그러진 모습과 너무나 대조적인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깨닫게 된 사실이오.(171)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191)

괴물이 빅터 프랑켄슈타인에게, 샤뮤니 언덕에서 얘기하는 내용들, 인용하지 않은 너무 많은 구절들로 읽는 내내 숨이 막혔다.

“내 생김새는 소름이 끼쳤고 체구는 거대했소”가 특히 와 닿은 건, 이 말이 마치 mtf들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ftm과 달리 mtf들의 경우, 소위 “남성체형”이라는 몸의 형태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성별로 통하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일테면 넓은 어깨, 근육이 있는 팔이나 다리, 각진 얼굴 등등. 호르몬으로 몸의 형태가 변할 때에도 이러한 체형 때문에 “트랜스젠더란 사실”을 들키기 쉽고 그래서 혐오범죄에 노출될 가능성도 상당하다. 트랜스젠더 중 ftm보다 mtf가 더 두드러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인지한다면, 그건 이런 체형이 한몫하는 셈이다. 물론 이는 그 사회에서 “남성”의 체형은 이러이러해야 하고, “여성”의 체형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란 인식에 기인하고.

메리 셸리야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괴물을 만드는 과정은, 트랜스젠더/트랜스섹슈얼들이 수술을 하는 과정과 닮아 있고, 괴물의 고백과 빅터의 반응은 트랜스젠더의 고백과 의사의 반응처럼 들린다. 그러니 아마, 두고두고 읽을 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