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서로 적응하는 시간: 바람, 보리, 그리고 나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밤엔 그럭저럭 조용했다. 피곤해서 그냥 다 무시한 것일 수도 있고 정말 조용했을 수도 있다. 바람과 보리가 밤에 침대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오래지 않아 결정날 것인가. 하지만 어쩐지 다른 땐 바람이 하악하면 보리가 피하곤 하는데 밤에 침대에서 잘 땐 보리가 악착같이 행동하네. 왤까.
어젠 일부러 늦게 들어왔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바람과 보리가 둘이서 투닥투닥 싸우는 시간도 필요할 듯해서 그랬다.이미 수업 등으로 둘만의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을 좀 늘이고 싶었다. 그래서 둘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귀가했을 때 분위기가 살벌한 것만은 아니란 점에서 뭐, 적당히 조율하고 있는 듯하다. 둘이 알아서 잘 하겠지.
어젠 보리가 혼나지 않고 넘어갈까 했는데 실패! 가스레인지로 뛰어올라서 다시 한 번 혼났다. 이번엔 말로 하지 않고 그냥 공중에서 회전을 시켰… 그냥 큰소리로 혼내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스레인지에 올라오면 뭔가 무서운 걸 겪는다는 걸 인식시킬 필요가 있어서. 그래서 인간 화장실에 들어가면 전엔 쓰읍을 시전했는데, 요즘은 그냥 문을 약하게 닫는다. 보리가 작정하면 열 수는 있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은 수준으로. 그래서 인간 화장실에 들어가면 뭔가 난감하고 무서운 일이 생긴다는 걸 각인시키려고. 근데 이걸 각인시키면 나중에 목욕할 때 곤란해서 좀 갈등이긴 하다. 끄응.
아무려나 미칠 듯이 폭주하는 아깽이가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재밌다. 신기하고.
+
보리의 가장 좋은 점. 잘 먹고 잘 마신다. 정말 우다다 달리다가도 밥그릇이나 물그릇이 있으면 일단 킁킁 확인하고, 물은 상당히 자주 마신다. 정말 다행이다.

또 다른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야마모토 후미오의 소설 [블루 혹은 블루]를 읽었다. 기대 이상. 도플갱어가 소재다. 갈등이 심한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나와 다른 내가 생긴다는 아이디어.



도저히 어느 쪽으로도 선택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정말 또 다른 내가 생겨나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면… 그때 나와 헤어진 나는 내가 하지 않는 선택 상황에서 잘 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가 하지 않은 선택을 살고 있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내가 도망쳤던 또 다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은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본체’고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도플갱어’란 보장은 없다. 그렇다면 도저히 내가
기억하지 못 하는 과거의, 내가 모르는 선택을 한 나는, 나의 ‘본체’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우리들이 서로 만날
가능성은 있는 걸까? 만약 우리가 만나, 서로의 삶을 서로 바꿔가며 살 수 있다면 그때 나는 내가 모르는 나의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사는 나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서로 만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 서로의
생활을 질투하겠지. 서로 상대방의 삶이 부러워서 생활을 바꾸고 싶어 하겠지. 그러다 때때로 바꾼 삶이 너무 낯설고 괴로워서 또
다른 나를 찾아 삶을 바꾸려고 하겠지. …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