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 이후: 관계에 사표쓰기

어느 블로그(미투였나? ;; )에서 직원이 사장에게 저항/복수하는 최고의 방법은 돌발적인 사표라는 구절을 읽었다. 물론 이
행위는 직원 자신의 생계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회사가 중소기업이거나 벤처회사라면 악질적인 사장에게 직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이자 저항은 사표다. 둘의 권력구조를 깨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는 것.




일전에 나의 도망을 쓴 적이 있다. 나의 도망은 직원이 사장에게 사표를 내는 것처럼, 그렇게 어떤 관계 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도였다. 나는 꽤 오랜 시간 그 관계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어느날 문득 그 관계가 섬뜩했다. 내가 바보같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관계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도망쳤다. 어쩌면, 조금만 더 노력했다면 그 관계는 내가 바라는 형태가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망쳤다. 마치 관계에 사표를 쓰듯, 그렇게. 아마 그 관계에서 유일하게 타격을 입은 사람은 나 뿐일 것이다. 그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 뿐이듯. 지금 내가 그 관계에서 완전하게 벗어난 건 아니다. 아직도 그 관계의 자장 가장자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어리석다는 걸 알지만, 안다고 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010년이 되었어도 글을 쓸 때마다
습관처럼 2009를 썼다가 지우고 2010이라고 쓰는 것처럼.




그래, 아직은 생계를, 삶의 위기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금방 괜찮아질 거다.
2010이 손에 익듯 그냥 그런 식으로 괜찮아질 거다. 그러니 괜찮다.

나는 지금: 도망

다시 혹은 또, 나는, 마지막 순간에, 아니,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래서 견디고 또 견뎌야 할 기간에, 도망친 건지도 모른다. 아니다. 무서워서 도망친 거다. 직면하기 무서워서, 나의 부끄러움을 견디기 싫어서. 그래서 더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