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바람, 융, 그리고 길고양이 일상

01
요즘은 바람의 수난시대입니다..랄까. 주말마다 집을 장시간 비우고, 수업준비로 바쁘다며 집을 비울 때도 많아요. 그래서 바람은 조금 화가 난 표정입니다. 물론 집에 있을 땐 바람과 최대한 많이 스킨십을 하려고 합니다. 자고 있을 때도 괜히 깨워서 껴안고, 머리를 쓰다듬고..(*사악*) 집에서 한창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바람이 부르면 돌아보거나 머리와 뱃살을 한 번이라도 쓰다듬어 주려고 합니다.
아.. 이건 예전에도 하던 일이네요..;;; 암튼 6월 즈음까지는 이렇게 지낼 수밖에 없어 미안하달까요..
그리고 지금은 털갈이의 시간. 털이 풀풀 날리는 시간. 방 청소를 하고 나면 바로 털뭉치가 바닥에 굴러다닙니다. ;ㅅ;
02
글로 썼는지 기억이 안 나니 다시 쓸까요?
부산에 일주일 정도 머물고 서울로 돌아왔을 때, 저의 걱정은 바람에게 향해 있는 만큼이나 길고양이 네트워크에도 향했습니다. 배 곪고 있으면 어떡하지.. 다 떠났으면 어떡하지… 집으로 돌아온 날, 집 근처에선 얼룩이2가 저를 보고 야옹,하고 울더라고요. 종일 절 기다린 것은 아니겠지만 그 순간은 조금 감동이었습니다. 몸 한 곳이 짠하기도 했고요. 근처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던 시베리안 허냥이는 저를 뚫어져라 보더니 후다닥 달려오더라고요. 평소 이런 사이가 아닌데 말이죠. 미안했고 고마웠습니다. 일주일 자리를 비우기 전에 절 찾은 고양이가 그대로 다 저를 찾았습니다. 물론 우리의 거리는 여전하고요. -_-;; 흐흐. 밥 줘봐야 다 소용없지만 길고양이와 사람의 거리는 멀수록 좋은 거죠. 한국이잖아요…
03
봄이 오자 융이 거의 매일 아침 저를 기다립니다. 며칠 이러다가 말겠지 했습니다. 근데 거의 매일 아침, 밥 주러 나가면 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융은 괜히 몸을 쭈욱 늘이며 릴랙스를 하거나 문과 벽에 부비부비하거나. 흐흐. 그러며 집 안으로 들어올 때도 많습니다. 물론 거실까지는 아니지만 신발을 두는 현관까지는 들어왔다가 나가곤 해요.
재밌는 것은 바람의 반응입니다. 바람은 으아앙, 울면서 경계합니다. 꼬리를 잔뜩 부풀리곤 위협하죠. 그래서 길냥이에게 밥을 주고 나면 바람을 많이 다독여야 합니다. 평소라면 저를 피해 후다닥 도망가곤 하던 바람도, 이때만은 저를 기다립니다. 안아 달라고. 🙂
04
어느 오후 집으로 돌아오는데 얼룩이1이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던 저와 얼룩이1은 눈이 따악 마주쳤습니다. 평소라면 얼룩이1은 후다닥 도망갔을 텐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물론 저도 조심했고요. 일부러 뒤로 물러났고 눈을 마주쳤다 피하길 반복하며 딴청을 피웠으니까요. 얼룩이1은 그대로 가만히 있더니 저에게 고양이 키스를 날렸습니다. 눈을 깜빡, 깜빡. 아아… ㅠㅠㅠ
물론 밖에서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제가 그 자리에 있는 한 얼룩이1이 편할 것 같지도 않아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후다닥 피했지만요. 흐흐.
05
얼룩이1과 얼룩이2는 정말 친한 것인지 자매/남매/형제 사이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거의 항상 함께 다닙니다. 얼룩이2가 사람을 좀 덜 가리는 편이고요.
요즘 날이 많이 더워 집에 있을 때면 문을 열어 놓고 지내곤 합니다. 그럴 때면 얼룩이1과 얼룩이2가 같이 와선 나란히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럴 때면 얼마나 귀여운지! 밥 먹는 뒷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06
루스는 이제 안녕인 것일까요?
지난 추운 겨울엔 거의 매일 루스와 만났습니다. 그땐 융을 만나기 어려워 걱정할 정도였지요. 봄이 온 뒤로 루스를 만날 수 없습니다. 발정기가 나면서 어딘가로 떠난 것일까요? 아니면… 아닙니다. 좋게 생각해야죠. 분명 다른 어디 좋은 곳으로 떠난 것이라고 믿을게요. 새로운 영역을 찾은 거라고 믿을게요.
07
며칠 전 새벽. 고양이가 요란하게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잠결에 발정기인가..라며 다시 잠들기를 청했습니다. 하지만 이 동네에 와서 이제까지 들은 적 없는 그런 요란한 소리였습니다. 발정기의 울음 같지도 않았고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소리가 요란해서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창문을 열고 밖에 보니, 이웃집 지붕에서 고양이 둘이 대치상태였습니다. 한 아이는 시베리안 허냥이, 다른 아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흰 양말을 신은 아이 같은데 루스는 아닌 듯했습니다. 둘은 서로를 위협하듯 요란하게 울다가 맞붙었습니다. 조금 무서웠습니다. 정말 살벌하게 상대를 물었고,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선명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고양이는 목소리를 죽였고, 허냥이는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실, 둘이 싸우는 순간 종이를 뭉쳐 던질까라는 고민을 했습니다. 주의를 돌리거나 어떻게든 그 상황을 중지시키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함부로 개입할 수는 없다 싶어 그냥 쓰읍,이란 소리만 냈습니다.
둘은 대치를 계속했지만, 정체를 확인할 수 없는 고양이는 낮게 울면서도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습니다. 전 고양이가 싸우다가 한 아이가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도망갈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몇 걸음 물러섰다가 낮게 울며 옆으로 눕고, 허냥이가 위협하듯 울며 다가가면 다시 뒤로 물러났다가 옆으로 누우며 울기를 반복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얼른 헤어지라고 구시렁거렸습니다. 소리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거든요. 저의 바람과는 상관없이 둘은 그렇게 대치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반복하더니 결국 상황은 종료.
도망가야 했던 아이는 괜찮을까요? 또 누구였을까요?
08
아무려나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고양이 소식

01
봄이 오고 있다. 싫고 또 좋다. 집 근처 고양이에겐 그나마 괜찮은 시간이겠지. 여름이 오면 또 힘들까? 그래도 추위보단 괜찮겠지?
02
융은 아직도 밥을 먹으러 온다. 지난 겨울을 무사히 넘겨 다행이다. 하지만 처음 밥을 먹으러 왔을 때 만큼 자주는 아닌 듯하다. 가끔 만나기에 내가 착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며칠 전엔 이틀 연속 융을 만났다. 융을 처음 만났을 땐 이틀 연속 만남이 새로울 것 없었지만 요즘은 드문 일이다. 더구나 그날 저녁엔 날 기다리고 있었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루스가 아니면 그렇게 울지 않으니 루스인가 했지만 목소리가 달랐다. 계단을 올라가니 융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웅… 배가 많이 고팠구나…
다른 아이들도 그렇지만, 내가 주는 밥으로 모든 식사를 해결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여섯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현재 내가 주는 양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양이 두셋이면 그럭저럭 괜찮은 양이겠지만. 그러니 다른 곳에서 밥을 찾다가 먹을 것이 없으면 집 앞으로 오는 듯하다. 혹은 배 고플 때 저 집에 가면 사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03
루스는 여전히 활기차다. 한땐 아침 저녁으로 내가 밥을 줄 때면 몇 집 건너에 있는 옥상에서 자다가도 일어나 내게 다가오곤 했다. 물론 우리 사이의 거리는 50센티미터에서 1미터 사이. 나만 만나면 밥 내놓으라고, 혹은 캔사료 달라고 울기 바쁜 이 녀석은 자주 보이다가도 가끔은 한동안 안 나타나곤 한다. 뭐, 잘 지내고 있겠지.
04
융과 루스의 복잡한 관계란 뭐랄까, 묘하게 내가 당하는 기분이랄까?
집에 있을 때면 가끔 고양이가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나가면 루스는 꼭 있고, 상대는 대부분 융. 융과 루스가 영역싸움을 한 것이겠지. 루스가 터줏대감 노릇을 하려는 느낌이랄까. 이런 싸움이 먹히는 고양이도 있겠지만 융에겐 통하지 않는다. 거의 언제나 융은 밥그릇 가까이에 있고 루스는 계단 근처에 있으니까.
그리고 난 이 둘이 싸우는 소리에 밖에 나갔다가 융을 만나면, 거의 항상 캔 사료를 준다. 오랜 만에 융을 만난 반가움도 있고, 처음으로 밥을 먹으러 온 고양이기도 해서 유난히 정이 더 간달까.
첨엔 그냥 반가워서, 그리고 여전히 융에게 애정이 있어 캔사료를 주는데… 최근엔 내가 당했다는 느낌이랄까. 둘이 싸우는 것처럼 일부러 소리를 지르면 내가 확인하러 밖으로 나가고 그리하여 캔사료를 획득하는 전략. 진실은 과연…
05
집 근처 고양이 중, 늘 붙어다니는 흰둥이 둘이 있다. 정확히는 등부분에 깜장 얼룩이 있는 흰둥이1과 얼굴만 젖소 얼룩 무늬인 흰둥이2. 이 둘은 다른 고양이와 달리 내가 밖으로만 나가면 후다닥 도망가기 바쁘다. 멀리 떨어진 상태에선 얼굴을 확인하지만 사료 근처에선 얼굴 확인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재밌는 일이 있었다.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집에 왔다. 밥그릇이 비어 있기도 했고, 원래 저녁을 주는 시간이라 밥그릇을 채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야옹, 우는 소리가 들었다. 어딜까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서 흰둥이 둘이 달려오고 있었다. 흰둥이1은 조용히, 흰둥이2는 나를 보곤 야옹 울면서 다가오고 있었다. 집 근처, 이웃집 담장 근처까지 와선 흰둥이2는 얼굴을 내밀곤 조용히 야옹 울었고, 흰둥이1은 눈만 조금 보일 정도로 날 살폈다. 집에 들어갔다가 5분인가 10분 정도 지나 귀를 기울이니 사료를 먹는 소리가 들렸다.
아웅… 배가 많이 고팠구나 싶기도 하고 그렇게 도망가면서도 내가 밥을 주는 인간인 건 아는구나 싶기도 했다.
06
내가 부자가 아니어서 안타깝고 부자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사료를 많이 줄 수 없다는 건, 허기를 채울 정도 밖에 못 준다는 의미이자 다른 곳에서 먹을 것을 찾다가 못 찾으면 집으로 온다는 의미다. 아울러 내가 사료를 주지 않아도 살아 남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그래도 미안하고 다행이다.
07
며칠 전 저녁. 집 근처 골목을 도는데 발 아래서 뭔가 후다닥 숨었다. 동네 슈퍼마켓 앞이었고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아래를 보니 작은 고양이가 바르르 떨고 있었다. 덩치는 기껏해야 두어 달 되었을까? 비쩍 마른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아… 이 험한 세상 무사히 살아 남을 수 있겠니?

[고양이] 이것저것

01

고양이와 처음 살 땐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답답했다. 리카가 나와 같은 언어를, 혹은 내가 리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리카가 하는 말을 알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지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소통에 강박적이던 시절이 있었다. 끊임없이 얘기를 나눠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고양이와 살면서 말이 통하지 않아 상처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이 주고 받으면서가 아니라 말이 통할 것이란 기대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소통을 가로막는다는 고민을 하고 있다.
02
설 이전부터 융을 만날 수 없다. 설이 되기 며칠 전 융을 만났는데 그 이후 융을 못 만났다. 밥을 먹고 가는지도 모르겠다.
융은 처음으로 밥을 먹으러 온 아이고, 한 동안 집 근처에 자리를 잡기도 했기에 정을 줬는데.. 이 추운 날 안 좋은 상상을 하려다가 서둘러 관뒀다. 그 상상력이 만들 무서움과 공포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부디 잘 지내기를…
그리고 어차피 다 스쳐가는 인연인 걸. 그냥 스쳐가는 인연인 걸…
… 이라고 어제 아침 작성했는데, 어제 낮에 잠깐 바깥에 나갔더니 융이 밥을 먹고 있었다. 너무 반가워 깡통 간식 사료를 하나 주고, 따뜻한 물을 줬다. 융은 맛있게 밥을 먹었고 그 틈을 타 난 (캔사료를 주느라 끼고 있던 비닐장갑을 낀 손으로) 등을 살짝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좀 야위었다. 흠…
03
루스는 이 추운 날에도 여전히 밥을 먹으러 온다. 아침에 물을 주면 그 자리에 앉아 한참 마시기도 하고. 이렇게 꾸준해서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04
임시대피소 박스가 스크래처로만 쓰이는 줄 알았는데, 설 전까지는 루스가 안식처로 사용했다. 그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시험삼아 박스 근처에서 간식거리 포장을 뜯는 소리를 냈더니 후다닥 기어나오더라. 흐흐. 어떤 날은 루스가 박스 안에 있고, 허냥이가 박스 위에 올라가 있곤 했다. 하지만 비가 내리가 박스가 좀 허물어지면서 이제는 폐허가 되었다. ㅠㅠ
05
집 근처 흰둥이 둘이 어울려 있곤 한다. 어느 집 지붕 위에 둘이 딱 붙어선 떨어질 생각을 않는다. 그 두 고양이가 어느 날 집 앞으로 밥을 먹으러 왔다. 오홋. 종종 들리는 분위기다.
06
어떤 날은 밥이 거의 안 줄었고 어떤 날은 아침 저녁으로 밥그릇을 가득 채워야 한다. 꾸준히 드나드는 고양이도 있고 가끔 들리는 아이도 있겠지. 이 추운 날 부디 무사히 살아 남기를.
07
한편… 바람을 내 배 위에 올려놓으니, 뭐랄까, 그 얼굴이 매우 만족스럽고 또 푹 퍼진 것만 같은 표정이다. 흐흐. 언젠간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표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