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리카.

안녕, 나의 고양이. 우리 만난지 이제 4년이구나. 이미 우리가 함께한 시간보다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이 더 길지만, 안녕 나의 고양이. 너는 어떻게 지내고 있니?
얼마 전엔, 오랜 시간 두려워 듣지 못 하던 심성락의 앨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들었단다. 지난 몇 년간 난 그 노래를 들을 수 없었어. 어쩐지 고통스러울 것 같았으니까. 다행이라면 고통스럽진 않았어. 그저 그 노래를 들을 때의 시간이 생생하게 떠오를 뿐. 네가 내게 왔고, 나는 먹고 살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집을 비울 때가 많았지. 집에 널 혼자 두고 나갈 때면 종종 음악을 틀어놓곤 했어. 너의 음악 취향을 잘 몰라 그냥 가장 무난하게 골랐지. 그 당시 종종 듣던 음악이기도 했고. 아코디온의 소리, 혹은 바람의 소리. 혹시나도 네가 심심할까봐 틀어봤던 음악. 그래 심성락의 음악을 들으면 네가 내게 와서 어색하던 그 시간이 떠올라. 나는 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너는 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내 무릎 위에 올라왔지. 너는 자주 내 무릎에 올라왔고 너는 여덟 아깽을 품은 상태로 골골거리곤 했지. 너는 밤새 우다다 달렸고 너는 내가 준 맛없는 사료를 잘 먹어줬고 너는 그때 살던 집이 곧 네 영역이란 걸 알았음에도 내 자리를 존중해줬지. 너는 언제나 우아했고 너는 언제나 당당했고 카리스마 넘쳤으며 너는 예뻤지. 그리고 너는, 무수히 많은 너는, 내가 아직 못 잊는 너는…
안녕, 나의 고양이 리카. 안녕 나의 고양이, 리카.

안녕, 리카

우리가 함께 한 시간보다 너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길다. 고작 2주기인데 널 그리워하는 시간이 더 길다는 점도 애통하다. 고작 2주기인데…

햇살 뜨거운 날 오전 11시, 나는 네가 떠났다는 얘길 들었다. 먹먹했지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렇게 너에게 최대한 늦게 돌아가려고 했다. 너에게 천천히 돌아가는 시간, 햇살이 너무도 뜨겁던 시간, 그 시간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생각을 언제 즈음 정리할 수 있을까?
안녕, 리카.
리카, 안녕.

나와 나의 고양이 이야기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Rica, the Cat 블로그를 운영할 당시였다. 리카를 내게 분양한, 길고양이 리카를 임보하셨던 분이 내게 물었다. 출판사에서 출판하자는 연락이 안 왔느냐고. 그럴리가 있나. 당시 고양이 블로그는 방문자가 5명 남짓이었다. 아니, 그보다 출판을 고민할 정도의 매력과 지명도가 없었다. 알다시피 한국에서 고양이와 관련하여 유명한 작가는 여럿 있다. 내가 카페 활동을 하지 않고, 고양이 블로그를 찾지 않으니 잘은 모르지만 고양이 커뮤니티에서 유명한 사람 역시 상당할 것이다. 고양이와 살며 겪는 성찰이나 어떤 고민을 탁월하게 쓰는 사람도 여럿 있을 것이다. 비슷하게 고양이와 관련해선 전문가도 넘친다. 웹툰에 고양이와 관련해서 조금만 안 좋게 그려져도 댓글이 난리나고 별점테러가 일어난다. 이런 웹에서 나의 고양이 블로그가 누군가의 주목을 받을리 없다. 고양이 블로그를 한창 운영할 당시엔 이곳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저 우연히 들리거나 해서 알게된 소수의 사람만 찾는 곳이었다.
비슷하게… 언젠가 세미나에서 어느 고양이 이야기를 들었다. 트위터의 유명 고양이라고 했다. 상당한 미모로 많은 이들을 홀리고 있다고 했다. 이런 것, 나와 상관없는 얘기다. 나의 고양이는 나를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고, 이곳에 들리는 분들만 알고 있다. 특별히 유명하지도 않다. 내가 쓰는 고양이 관련 글은, 그저 내가 쓰는 다른 많은 글처럼 이런저런 일상의 일부일 뿐이다. 혹은 내가 하는 여러 고민이 고양이와 살며 겪는 경험과 겹치는 찰나를 기록하는, 그저 흔한 기록일 뿐이다.
이곳이 변방의 이름 없는 블로그고, 나를 아는 사람이 매우 적듯, 나의 고양이 역시 세상에 무수히 많은 고양이 중 한 마리고 아는 사람 역시 매우 적다. 고양이카페와 같은 형식의 커뮤니티에서 나는 존재감 자체가 없다. 그러니 나와 내 고양이의 삶은 그저 흔하디 흔한, 주목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더구나 사진을 잘 찍어, 사진만으로 혹할 수 있느냐면 그렇지도 않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내가 고양이와 관련한 어떤 글을 쓴다면 그것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내겐 기억을 기록하며 추억을 쌓는 행위에 불과하다. 내겐 딱 이 정도의 의미다.
하지만 내겐 이런 의미여도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겐 그 의미가 다른가보다. 혹은 이런 이유로 나와 내 고양이 이야기는 어떤 다른 지점을 점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려나 고맙다. 참으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