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덜레이

[만덜레이] 2007.07.30.월, 20:30, 스폰지하우스(시네코아), 6층 B-118

※스포일러 없음.

몇 해 전, [도그빌]을 읽었을 때, 두 가지 감정을 느꼈어.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하는 놀람은 꽤나 컸어. 연극을 하는 것만 같은 세팅도 놀랍고 감독의 문제의식을 이렇게 풀어갈 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 하지만 이 영화는 결코 유쾌하진 않았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 그땐 설명하지 못한 씁쓸함을, 지금 다시 읽는다면 설명할 수 있을까 궁금하지만, [도그빌]은 다시 읽고 싶은 영화는 아닌 것 같아.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도그빌]과 함께 3부작의 2편인 셈인 [만덜레이]를 어제 읽었지. 연극무대 같은 느낌은 이번에도 여전해. 인종차별주의를 다루고 있는 솜씨도 그럴 듯 하고.

책을 읽다보면, 종종 놀라운 사실을 깨닫곤 해. 일테면 1800년대 중후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활동했던 여권론자들 혹은 여성해방운동을 했던 이들이 보여준 인종차별적인 태도들. 루인은 편견이 없다고 믿었음에도, 페미니스트는 당연히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계급차별에 반대하고 등등의 공식을 루인 역시 가지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어. 이런 공식 자체가 페미니즘을 아주 단순하고 고정된 무언가로 만드는 효과를 낳음에도 그 책을 읽기까지 미처 깨닫지를 못 했어.

영화 주인공, 그레이스의 행동을 읽으며 문득 이런 일화들이 떠올랐어. 그레이스는 마치 자신의 모든 백인을 대표하는 듯,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했던 잘못을 자신이 대신 사과한다는 말도 해. 다들 기억하겠지만, 몇 해 전 부시가 대통령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을 때, 일부 미국인들이 “죄송합니다”란 글을 쓴 종이를 들고 찍은 사진이 나돌았고, 그 사진을 보며 솔직히 웃기다고 느꼈어. 영화를 읽다가 그레이스의 행동에, 이러 사진을 올린 일부 미국인들이 떠오른 건 우연이 아니겠지. 그리고 바로 이런 태도가 일종의 비극을 만들고.

근데, 이 영화를 읽으며, 이 감독이 그려가고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 속에 젠더는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 인종과 관련한 이 영화에서, “같은” 인종이라 일컫는 집단이라고 해서 젠더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젠더와 인종은 언제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작동하는데, 이 영화는 이런 지점은 전혀 다루고 있질 않아. [도그빌]에 이어 [만덜레이]도 읽고 나면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는데, 이런 이유에서인 걸까 싶기도 해. 한 번 쯤 읽을 만한 영화긴 하지만, 씁쓸해서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은 영화. 물론 3부작의 세 번째 영화라는 [워싱턴]도 나오면 읽겠지만, 두 번 읽고 싶지는 않아.

+
사실 이 영화를 읽는 내내 몰입을 할 수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주인공 때문에. [도그빌]에서 주인공인 그레이스 역할을, 니콜 키드만이 했는데, 그때 무척 인상적이었어. 문제는 그때만 인상적이면 되는데, [만덜레이]를 읽는 내내, 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와 비교를 하더라는. 영화를 읽는 내내, ‘니콜 키드만이었으면 더 멋졌을 텐데’라거나 ‘니콜 키드만이었으면 저 장면에서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휘했을 텐데’란 식으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