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페미니즘 선언문: 망상

“우리가 페미니즘의 안팎에서 거부당한 경험을 공유한다고 해도 우리의 최대 동맹으로 남아 있는 이들은 페미니스트, 레즈비언, 그리고 다른 퀴어다.”

의역한 표현입니다. Emi Koyama가 쓴 “The Transfeminist Manifesto”의 한 구절이죠.
선언문답게 쉽게 쓴 글입니다만.. 어차피 영어라는.. -_-;; 나중에 번역할까봐요.
읽으면서 저도 이런 글을 한 번 쓰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번역하고 싶었습니다. 번역하면서 별로인 구절은 뜯어 고치고 좋은 구절은 더 좋게 다듬고 제 고민을 보태고 의역하면서 저자와 옮긴이가 구분되지 않는 그런 글을 만들고 싶달까요.. 사실 새로운 글을 기획하는 것이 귀찮아서 이런 상상을 했지만요. 크. ;;;;;;;;;;;;;;;;;;
트랜스페미니즘, 혹은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관련 글을 꾸준히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접점을 좀 더 정교하게 모색하려는 시도였지 선언문은 아닙니다. 선언문이라면, 선언문이란 형식과 내용이 있죠. 그것은 쉬워야 하고 또 주장이 선명해야 하죠. 그런 글을 쓰고 싶고요. 방학 때 하면 되지 않느냐 싶지만.. 이미 계획한 일도 많아..;;;;;; 계획하면 쓸 수 없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 “삘”을 받아야죠.
그러고 보면 트랜스젠더 이슈 관련해서 처음 쓴 글이 “트랜스젠더 선언문 1/2″입니다. 읽는 사람 몇 없는 그런 글이지만요. 크. ;;; 그 시기의 치기와 고민이 담겨 있겠지요(저도 더 이상 기억이 안 나니까요;;). 제겐 중요한 글이지만 공개할 수 없는 그런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선언문을 쓰고 싶은가 봅니다. 다른 한편으론, 트랜스젠더 이론/실천과 페미니즘의 접점을 계속해서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서;; 글로 정리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 지금까지 쓴 글을 정리하는 수준일 수도 있겠지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제 판단에 지금 이 시점에서 “트랜스페미니즘 선언문”이 필요하단 것이죠. 무엇보다도 페미니즘 논의가 좀 더 확장되길 바랍니다.

자원에 바탕을 둔 여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이제 특별한 수입이 없는 상황인데, 여유롭다. 지난 봄엔 알바가 끝난 후 새 알바를 구하기까지 꽤나 조급했다. 그렇다고 열심히 구직활동(?)을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급했다. 이번엔 새 알바를 구하려는 노력을 않고 있다. 조급하지도 않다. 통장에 여유가 있냐고? 그럴리가. 그런데도 천하태평이다. 그냥 어떻게 되겠거니, 빈둥빈둥.
사실, 내년 봄에 같이 일하자고 제안 받은 곳이 있다. 종일 근무가 아니며 계약직이 조건이다. 유섹인 일과 퀴어락 일이 있어, 종일 근무직을 할 수 없다(바라지도 않는다). 이 일을 믿어서 새 알바자리를 구하지 않느냐고? 아니다. 비정규직으로 사는 삶에 미래는 없다. 나중에 같이 일하자는 말, 내게 일거리를 주겠다는 호언장담은 그 순간에만 진심이다. 그 진심이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다. 회사에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잘리는 직종이 비정규직/계약직이고, 좋은 일이 있거나 보너스가 있어도 혜택을 못 받는 직종이 비정규직/계약직이다. 나중에 같이 일하자는 제안,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나중이 현재가 될 때, 일자리가 사라지는 일 부지기수다. 그러니 현재 상황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게 최선이다.
오늘 갑작스레 새로운 알바 자리를 제안 받았다. 조건은 나쁘지 않다. 금액도 나쁘지 않다. (아직 확정이 아니라 조건과 금액은 변할 수 있다.) 문제는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다. 교수라는 직종에 있는 사람과 일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교수나 계약직교수는 다들 권위주의에 무관한 편이다. 내가 늘 자랑하는 지도교수가 그렇고, 같이 일하고 있는 ㅈ 선생님이 그렇다. 이들은 나 스스로 따르고 싶은 분이지 부정적인 의미의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안다. 이런 (계약직)교수는 거의 없다. 많은 교수가 부당한 권력을 남용한다. 이런 권력이 불편해서 교수와 함께하는 자리를 최대한 피한다. 그럼에도 내일 면접 약속을 잡았다. 면접 후 서로의 조건이 맞으면 같이 일하는 거고, 조건이 안 맞으면 관두는 거다. 되어도 그만이고, 안 되어도 그만이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 같겠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살기로 결정한 후, 원하지 않거나 재미없는 일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고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도 고를 수 있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물론 이런 나의 지위는, 내가 가진 문화적 자원 덕분이다. 돈은 안 되지만, 내가 가진 문화적 자원/권력은 상당하다. 어떤 사람에겐 보잘 것 없는 그런 자원이지만, 또 다른 사람에겐 너무 많은 자원이다. 더구나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선택할 때, 사람들은 내가 그것을 하지 않기로 선택했다고 이해한다(아, 아닌가..;; ). 이것이 내가 가진 자원/권력의 핵심이다. 김예슬 씨가 고대 자퇴를 선언했을 때, 언론이 학력과 학벌사회에 문제제기로 요란하게 포장한 것처럼.
아무려나 알바가 끝나고 이제 한 달 정도 지났다. 그 동안 나는 바빴고, 통장잔고는 줄고 있다. 뭐, 어떻게 되겠지. 아무래도 좋다.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논문과 단행본?

지난 일요일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ㅈㅎ님에게서 문자가 왔다. 예전에 받은 논문을 읽고 있는데 단행본을 내란 내용이었다. 그냥 예의상 하는 말로 넘겨들었다. 그럴 내용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내 논문에 대한 나의 평가는, 글쓴이의 주장이 없는 발제문이니까. 그래서 그냥 잊었다.

ㅈㅎ님과 같이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 어제 모처에서 만났다. 근데 논문을 책으로 내라는 얘길 시간이 날 때마다 반복하는 거다. 일요일에 받은 문자를 빈말로 들었기에 조금 놀랐다. 좀 정리를 해서 단행본으로 나오면 여성학 교재로 정말 좋겠다고. 조금만 쉽게 풀어 쓰면 학부와 석사초급과정 교재로 좋겠다는 말과 함께. 논문의 현실과는 별도로, 이 정도의 평가에 황송할 따름이다.

재밌게도, ㅈㅎ님의 얘기를 들으며 내 논문을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내 논문에 무얼 기대한 걸까? 다소 혼란스러웠다. 나의 평가대로 발제문이라면, 발제문 역할에 충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건 아닐는지. 논문을 쓰기 전엔 정희진 선생님의 석사논문수준을 욕망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 정희진 선생님의 석사논문이다ㅠ_ㅠ). 현재 한국에서 젠더를 논의할 때 많은 경우 트랜스젠더를 배제하거나 책 말미에 덧붙이는 식이 대부분이다. 관련 문헌을 찾거나 접근하기도 쉽지 않는데, 상당수가 외국어거나 이제는 구할 수 없는 자료집이나 보고서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트랜스젠더 이론을 중심으로 젠더 논의를 재배치한 책이 한 권 정도 있다면, 어떤 식으로건 쓸모가 있지 않을까? 『젠더 트러블』을 쓸 것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음을 아는 상황에선 간단한 입문서 정도도 괜찮지 않을까?
(사실 3년 전부터 미국의 트랜스젠더 이론을 정리하는 책이 나온다는 얘기가 있어 굳이 내가 낼 필요가 없는데, 아직 감감무소식이다.)

뭐, 이런 고민을 했다. “인세 계약을 하면 일 년에 10만 원 정도의 인세는 들어오지 않겠냐”란 말에 “그럼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생활비는 벌 수 있겠어요”라는 농담도 주고받으면서. 흐흐. 근데 정말 준비해볼까?

사실 이 모든 고민과 농담에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그건 내 논문을 책으로 낼 출판사가 있을 리 없다는 것. 으하하. 내 논문을 책으로 낼 출판사가 없다는 걸 확신하니 이런 망상도 하는 거다. 크크크. (결국 자학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