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완자가(모완)의 윤리: 무지로 무지를 얘기하기 혹은 트랜스-바이 맥락으로 읽기 시도

참고글
ㄱ 모두에게 완자가. 82화 “트렌스젠더에 대하여”에 대하여 https://www.runtoruin.com/2138
ㄴ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 https://www.runtoruin.com/2139
ㄷ 이것저것 잡담: 읽은 거, SNS, 구글플러스, 모두에게 완자가(모완), 무한도전-노홍철 https://www.runtoruin.com/2140
모두에게 완자가(모완)을 논하는 글을 썼을 때, ‘이 삐리리한 삐리리한 삐리리야’라고 쓸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모완을 읽으며 너무 싫어서 다시는 읽지 않겠다고 다짐하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욕을 하며 비판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은 다르며 각자의 맥락에 따라 이를 표현하는 방법도 다양하니까요.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룬 82화와 83화에 문제가 있은 표현이 상당하단 점에서 저 역시 “야이 삐리리야”라는 식으로 글을 쓸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제 판단에 저는 그럴 위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완자 작가보다 낫다고 얘기할 부분이 없거든요.
자신이 모르는 이슈, 열심히 고민하지 않은 이슈에 있어선 ‘누구나’ 미디어에서 재현하는 수준으로 얘기한다고 정희진 선생님께서 지적한 적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모든 이슈에 아무런 문제 없이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럴리가요. 어떤 이슈에서 저는, 저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로 논쟁적이고 혐오발화일 수도 있는 말을 했을 겁니다. 제가 주로 염두에 두는 맥락에선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제가 염두에 두지 않은 맥락에선 문제가 될 발언이 상당합니다. 장애이슈에 있어선 어떤 ‘사건’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지금 떠올려도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일입니다. 제가 주로 글을 쓰고 제 전공이라고 얘기하는 트랜스젠더 이슈라고 예외일까요? 오히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훨씬 더 논쟁적인 얘길 더 많이 했을 수도 있습니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고작해야 제가 경험한 방식의 일부만 떠들 수 있을 뿐인 걸요. 저는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대표하지 않으며 다른 트랜스젠더의 경험을 대리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경험과 역사만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저의 논의가 다른 트랜스젠더에겐 문제가 많고 혐오로 독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모완에 관한 논평을 쓸 때, 그 잣대를 저에게도 들이댈 수 있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얼마나 잘 할 수 있나? 자신없어요. 모완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도 자신할 수 없습니다. ‘너는 얼마나 잘 하나 보자’는 식으로, 타인을 비평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어떻게 비평할 것인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이 세상의 최대 약자, 최대 피해자라서 모든 언설을 판단하는 기준도 아닌데, 트랜스젠더 역시 다양한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혐오발화를 하는데 감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어요. 더구나 각자의 맥락에서 얘기하자는 건, ‘나는 이게 싫어’라는 식으로 그냥 툭 내뱉자는 게 아니니까요. 나의 감정을 정치적으로 맥락화하자는 거죠. 밑도 끝도 없이 ‘그건 혐오야’, ‘그 말이 난 불편해’라고 말하는 건, 적어도 비평적 글쓰기엔 … [그냥 생략할 게요.]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른 윤리가 있기에 제 글쓰기 윤리가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저 저는 이런 고민으로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는 거죠. 제 기준에 제가 잘 부합하는 것도 아니고요.
어쩌면 제가 모완을 1화부터 계속 읽었기에 이렇게 판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82화만 읽었다면 또 한 편의 트랜스혐오 텍스트가 나왔다며 “이 삐리리한”이라고 비판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이라면 1화부터 읽었고 모완이란 작품의 흐름을 대충은 짐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완자 작가는 자신의 무지를 통해 무지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누군가 어떤 낯선 이슈를 얘기할 때면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학부 <성과 사회>란 수업 조별 발표 자리에서, “저희 조는 트랜스젠더라는 (신기한)존재를 만났는데..” 운운할 수도 있죠. 혹은 “너네들 트랜스젠더 잘 모르지? 내가 어제 트랜스포머 아니 트랜스젠더를 만났는데 내가 가르쳐 줄게”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발언의 수위는 달라도 많은 경우 타인을 얘기할 때 이런 형식입니다. 말투만 조금 순화되었냐 아니냐의 차이지 내용에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그런 타자화 혹은 우아하지도 않은 혐오일 때가 많죠.
모완은 어떤가요? 조금만 세심하게 읽으면 완자 작가는 윤리적으로 그리기 위해 상당한 고민을 한 걸 짐직할 수 있습니다. 글에 나타난 문제적 표현을 잠시 덮어둘 수 있다면, 트랜스젠더 이슈에 접근하는 태도, 트랜스젠더 이슈를 얘기하려는 태도가 그러합니다. 자신이 안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자신에게 어떤 무지가 있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작가의 바이 범주가 만든 성찰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합니다.
완자 작가는 야부와 7년 정도 파트너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이 시간이라면 자신을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 편이 설명하기 더 편할테고 사람들이 더 쉽게 받아들이니까요. 완자 작가가 자신을 바이라고 밝혔음에도 모완이 동성애 웹툰으로 이해되는 걸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개별 관계에선 자신을 바이라고 얘기하면서 공적 자리에선 레즈비언이라고 밝히기도 했고요. 이것이 현재 바이 범주가 갖는 위치를 상징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제가 특강에서 얘기할 때, 동성애나 트랜스젠더는 그래도 참조할 대상이 있어서인지 고개라도 주억거리지만, 바이나 무성애 이슈에선 다들 어떻게 인식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분위기기도 하고요. 그렇기에 완자 작가는 자신을 바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럴 작가가 아니죠. 완자 작가는 자신이 바이란 점을 분명하게 밝혔고 바이 범주를 설명하기 위해 적잖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느 화에서 바이에 관한 오해를 설명한 적도 있는 듯하고요(다시 정주행을 하지 않고 쓰는 글의 문제;;). 자신을 바이로 설명하면서 완자 작가는 자신의 범주 및 삶과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겠죠. 바이가 아닌 거의 모든 사람,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상관 없이 끊임없이 자신의 범주를 설명해야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감수성과 성찰이 있을 테고요. 그렇기에 타인의 삶에 대해 감히 함부로 말할 수 없고 함부로 아는 척 얘기 할 수 없다는 걸 정말 잘 아는 듯하단 인상입니다. 이제 완자 작가가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얘기를 할 때 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웹에서 자료 좀 검색해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직접 만나서 듣고 그 얘기를 전하는 것, 그렇게 들은 얘기로 아는 척하기보다는 자신의 무지를 먼저 밝히며 무지를 통해 무지를 얘기하는 것이죠.
물론 저는 어떤 글을 비판할 땐 “야이 삐리리야”를 글쓰기 언어로 바꿔서 쓸 때도 있습니다. 이경이나 김정란의 글을 비판할 때 그렇습니다. 비트랜스젠더는 무조건 옹호하고 트랜스젠더는 비난부터하는 글에 저는 지금까지 적은 글쓰기 기준을 적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완자는 제가 판단하기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런 글에 “야이 삐리리야”라는 식의 비판을 할 순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 제가 모르는 이슈와 관련해서 글을 쓸 때 완자 작가 수준으로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며 글을 쓸 용기가 있느냐면 아니요, 제겐 그런 용기가 없습니다. 저는 완자 작가보다 잘 쓸 자신이 없습니다. 완자 작가보다 잘 할 수 있는 사람만 비판하라(“너희 중에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가 아닙니다. 그냥 저는 이런 판단을 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랬기에 트위터에 제 글이 유통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만약 둘 다 유통된다면, “모두에게 완자가. 82화 “트렌스젠더에 대하여”에 대하여”보다는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가 더 많이 유통되길 바랐습니다. 지금이라면, 앞의 두 글보다 지금 이 글이 더 많이 유통되길 바라고요. 하지만 글의 소비와 유통은 제가 판단하고 바랄 수 있는 게 아니죠. 제가 원한다고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도 않고요. 이를테면 지금까지 출판한 글 중에서 ‘다른 어떤 글보다 지금 이 글을 사람들이 더 많이 읽으면 좋겠어’라는 글이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읽어주는 글은 다른 글입니다. 제가 기대하는 글보다는 다른 글을 더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러니 그 글 말고 이 글을 읽어주세요, 이 글을 유통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건 제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 읽은 분이 판단할 사항이니까요. 제가 고민하는 부분과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은 다르단 뜻이겠지요. 그러니 지금까지 쓴 글은 당연하게도 저 한 사람의 사소한 주절거림에 불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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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알바하러 오고가는 지하철에서 넥서스7(7인치 태블릿)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생산성 최고인 넥서스7 만세!

이것저것 잡담: 읽은 거, SNS, 구글플러스, 모두에게 완자가(모완), 무한도전-노홍철

30년 전 가족구조를 분석한 글을 읽고 있는데 지금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글 같아요… 물론 세세한 부분은 다르지만요. 저작이 탁월한 걸까요 사회 변화가 더딘 걸까요? 둘 다겠죠?
주말 일정이 많이 바뀌었고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겼는데 그 시간엔 잠만 잤다는… 자면서 ‘아, 달다’했지만 아직 다 못 읽은 영문 100쪽 분량의 자료는 어쩔… 3월 말까지 초고를 완성해야 하는 원고도 있는데 그건 어떤 준비도 안 되고 있고… ㅠㅠㅠ 누가 제 시간 좀 관리해주세요.. ㅠㅠㅠ
3년 전인가 트위터를 그만두길 잘 했다고 중얼거렸습니다. 제 블로그에 쓴 글이 트위터의 일부에게 유통되었다는 얘길 들었거든요. 페이스북은 시작도 안 했는데 이것도 잘 했다 싶어요. 제가 쓴 글이 실시간으로 유통되는 모습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지 가늠이 안 되니까요(유통해주신 분께, 그리고 읽어주신 분께 민폐가 아니길 바라면서 아무려나 고맙습니다!). 구글리더 서비스 종료가 상징하듯 블로그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지만 그래도 전 변방의 무명 블로거라는 위치가 가장 좋아요. 🙂
ㄷ-1
수업 사이버 게시판에서 선생님이 댓글로 ‘여기에 좋아요가 없어서 아쉽네’라고 하셨는데 답글로 ‘전 +1이 없어서 아쉬워요’라고 했다지요. 크크크. 댓글달기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그 글이 좋다는 걸 표현하기 위해 +1 버튼을 이용하는데(구글계정만 있으면 활용할 수 있지요) +1 버튼이 없는 사이트에선 좀 아쉽더라고요. 그러니 퀴어 이슈에 관심 있는 분은 모두 구글플러스로 단결해요. 그럼 전 구글플러스를 중단할 수 있을 거예요! 후후.(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있을까요? 크.)
그러고 보면 구글플러스를 예상보다 오래 사용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피로감이 없어서인 듯합니다. 구플 사용 목적은 IT 관련 정보를 얻는 것이죠. 퀴어 이슈로 얘기하는 사람은 구플에 거의 없는 듯하고요. 영어로는 좀 있지만요. 그래서 제가 구플을 꽤 오래 사용하고 있는 듯해요. 아는 사람이 늘어나고 퀴어 이슈로 얘기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온갖 정보가 유통되기 시작하면 이번에도 트위터처럼 중단할까요?
ㄹ.
제 글이 트위터에서 좀 유통되었다는 얘길 듣고 ‘모두에게 완자가’의 인기 혹은 유명세를 실감했습니다. 웹툰에 달리는 댓글 개수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모완과 관련한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방문자가 는다는 건 모완의 힘이지요. 제 글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모완 관련 글을 썼다면 그 분 블로그 방문자가 늘었을 테고요. 퀴어 이슈에 관련 있거나 관심 있는 분들 중 모완을 좋아하건 싫어하건 어떤 식의 관심이 있다는 뜻이겠죠. 다음과 네이버에서 연재하는 웹툰 중 퀴어이슈를 다루는 만화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ㄹ-1.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에도 방문자가 늘긴 했습니다. 한 번은 신기해도 두 번은 그냥 그런가보다 해요. 어차피 며칠 지나면 평소로 돌아갈 테니까요. 아울러 방문자가 는다고 일요일마다 하는 화장실 대청소를 안 해도 된다거나 바람에게 밥을 안 줘도 된다거나 하는 거 아니잖아요. 흐흐.

ㅁ.
모완 82화와 관련한 글을 쓰며 비슷한 비중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 하지만 결국 지운 얘기는 바이 이슈였습니다. 83화까지 연재한 모완의 역사에선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할 부분이지만 정리가 잘 안 되어 삭제했지요. 쓰려고 한 얘기는 간단했어요. 바이 작가가 쓴 작품에서 바이의 위치가 모호하거나 비가시화되는 찰나를 말하고 싶었어요. 82화에 작가는 완자-야부 커플을 동성애 관계가 아니라 동성애자 관계로 설명했는데 이 지점이, 전 좀 당혹[적절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아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만…]스럽더라고요. ‘좀 다르게 설명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얕은 고민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이 부분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서너 줄을 쓰더라도 제대로 쓰려면 1화부터 정주행을 해야하는 문제가 생겨서… 아울러 퀴어 이슈를 논함에 있어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 많을 뿐만 아니라, 바이 이슈를 직접 논하고 계신 E님이나 C님도 계신데 변방의 무명 블로거에 불과한 제가 감히 어떻게 쓰겠어요… 후후.
어제 쓴 글에도 적었고 댓글에 답글을 쓰면서도 적었지만 모완과 관련해서 처음으로 쓴 글의 목적 중 하나는 트랜스젠더 서사를 좀 다양하게 만들면 좋겠다였어요. 모완에 나온 설명 방식이 옳다 그르다를 논하기 전에,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방식이 다양하면 좋겠다는 거죠. ‘나는 태어날 때부터’ 혹은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부터’라는 서사가 현재 대중 매체에서 다루는 거의 유일한 서사인데요. 모든 트랜스젠더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경험하는 건 아니죠.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기로 선택한 트랜스젠더라면 몸과의 관계를 전혀 다르게 구성할 수도 있고요.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서사를 구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를테면 제가 트랜스젠더 범주에 초점을 맞춰 생애사를 구성한다면, 20대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10대 시절 제 고민의 팔 할은 채식이었으니까요. 십대 시절 이차성징으로 몸과 겪은 갈등은 없었냐고요? 채식으로 가족과 겪은 갈등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물론 제게 채식과 트랜스젠더 이슈는 별개가 아니란 점에서 젠더 이슈를 얘기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채식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혹은 공부 안 하고 논다고 집에서 쫓겨난 기억? 크.
바빠도 무한도전은 봐야 했고 지난 토요일 방영분은 대박이었습니다. 방송 초반에 멤버들은 오늘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고 노홍철이 대답하려고 하자
정형돈: 커밍아웃하려고?
노홍철: 아직은… 아니, 아직은이 아니라…
대충 이런 대화를 하죠. 크크크.

전 무한도전 제작진과 출연진이 노홍철의 커밍아웃(그것이 무엇을 커밍아웃하는 것이건 상관없이)을 조금씩 준비시켜주고 있다는 혐의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일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만약 노홍철이 바이나 게이로 혹은 mtf 트랜스여성으로 커밍아웃을 한다면, 다른 프로그램에선 어떤 식으로건 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해도 무한도전에선 아무 상관이 없을 듯합니다. 아니, 노홍철이 커밍아웃을 한다면 무한도전에서 하겠죠.

‘모두에게 완자가’에 대해 어제 쓴 글에 덧붙여서[약간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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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딴소리.
어쩐 일인지 평소보다 방문자가 늘었습니다. 변방의 무명 블로그, [Run To 루인]에 평소엔 스무 분 가량 씩이나 들리셨는데(고맙습니다!) 어쩐 일인지 어젠 서른 분 가량 씩이나 들리셨습니다! 오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르는 게 속편하지요. 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요.

추정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검색로봇의 방문이 증가했거나(해킹 연습용이라면 트래픽 초과로 접속을 할 수 없었을 테니  해킹 연습용은 아닐 테고요) 텍스트큐브의 방문자 기록에 문제가 있거나겠지요. 텍스트큐브 자체의 방문자 기록과 구글 애날리틱스 방문자 기록 사이에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도 고민이긴 하죠.
아무려나 방문자의 앞자리 숫자가 달라져서 신기했다는… 후후.
(2005년부터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아직도 이런 일이 신기한 속물 블로거 루인입니다… 크.)
01
어제 쓴 글의 공개 시간을 기준으로 한 시간 이내에 오셨다면 좀 다른 글을 읽으셨을 듯합니다. 네, 서두에 쓴 글 일부를 들어냈습니다. 지금 공개하기엔 좀 더 정리해야겠다 싶어서요. 말줄임표는 글 일부를 덜어냈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한 표시입니다. 문단 연결이 어색한 상태라 죄송합니다.
(그렇다고 평소엔 잘 쓴 글을 공개했냐면 그것도 아니라 새삼 무슨 사과냐 싶지만요..;; )
02
어제 쓴 글에 적어야지 하고 못 적었는데요. 제 글이 ‘모완은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문제야’라는 식으로 독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럴 목적이 아닙니다. 저는 모완이 오래오래 연재되었으면 합니다. 82화의 트랜스젠더 이슈는 논쟁적이지만, ’80화 청소년 구독불가’나 ’69화 어쩌면'(엄마의 여고시절을 다시 해석하려고 했던 내용)은 정말 좋으니까요. 초기의 모완과 지금의 모완은 다르고 앞으로의 모완도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 82화에 비해 83화는 또 느낌이 다르고요.
아울러 82화가 비록 제겐 어떤 불편을 야기했다고 해도 네이버 웹툰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트랜스젠더 이슈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는 점에선 고맙기도 합니다. 일전에 경향신문 기사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문제를 야기할 거면 차라리 쓰지 않은 것이 좋다고 하겠지만, 모완은 좀 다른 맥락이니까요. 더 좋은 만화를 그려주길 바라는 애정이지 ‘역시 별로야, 이제 볼 필요도 없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논평을 하지도 않았겠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전 아니다 싶으면 아예 존재 자체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논평이라는 것 자체가 애정 없인 불가능한 일이고요.
03
저의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모완의 82화는 무지를 드러냄으로써 무지를 환기하려는 시도는 아니었을까 합니다. 작품에도 나와 있듯 작가는 자신이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알기 위해 참새 씨를 만나고 얘기를 나눴고요. 작품 속에도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라고 해서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아니라고 밝히고 있지요. 이런 무지를 드러내는 방법 중엔, ‘나도 잘 모르지만 너희도 잘 모르지?’라고 쓰며 무언가를 알려주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지만, 무지로 작품을 구성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전 모완이 후자의 전략을 취한 것은 아닐까라는 고민도 하고 있습니다. 과도한 해석일 수도 있지만, 모완의 지금까지 작품이 ‘너희들이 뭐라고 해도 내 갈 길을 가겠다’는 느낌이라는데서 가능성이 없진 않은 듯합니다.
04
어제 쓴 글은 연구소 태그를 붙였기에 연구소 입장일 수도 있지만(연구원 중 한 분의 지지의견이 있었습니다만) 더 정확하게는 저의 입장에 불과합니다. 어제 쓴 글은 저의 맥락에서 제가 느낀 감정을 쓴 글에 불과합니다. 모든 트랜스젠더의 감정은 아닙니다. 그럴리가요. 만약 제가 쓴 글을 모든 트랜스젠더의 입장으로 혹은 어떤 일반적/보편적 트랜스젠더의 비평으로 읽으신다면 그건 제가 가장 바라지 않은 방법입니다(‘… 읽으신다면 이곳을 폭파시켜야죠’라고 적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읽으셔도 이곳을 유지할 거라..;;; 크). 보편적/일반적 비트랜스젠더의 입장과 논평이 없듯 보편적/일반적 트랜스젠더의 입장과 논평도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요..
05
동성애와 관련해서, 양성애와 관련해서, 트랜스젠더와 관련해서 다양한 입장과 삶의 경험이 있듯, 모완이란 만화도 다양한 입장의 하나로 이해되면 좋겠습니다. 모완이 어떻게 모든 퀴어의 삶을 대변할 수 있겠어요. 퀴어 이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모완을 읽고 동성애를, 양성애를, 트랜스젠더를 모완에 나오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으니 ‘제대로’ 그려줬으면 한다는 바람은 비퀴어가 퀴어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이 아닐까 합니다. 이것은 모완의 잘못이 아니라 비이성애자-트랜스젠더를 단순하게 이해하려는 이성애-이원젠더 규범에 초점을 맞추 이 지점을 비판해야겠죠. 규범적 이성애-비트랜스젠더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만화 한 편 읽고 모든 이성애-비트랜스젠더는 그 만화와 같다라고 하진 않잖아요. 모완의 내용 중 문제적인 부분은 비판해야겠지만, 그 비판은 많은 퀴어 만화 중 한 편으로 위치짓는 방식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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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오랜 만에 댓글을 읽고 든 감상입니다. 신문기사의 댓글은 하앍하앍.. 아, 아니, 그냥 진중하게.. 아, 아니, 아무려나 읽고 캡쳐하는데;; 네이버 웹툰의 댓글은 평소에 안 읽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충 훑다보니 이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물론 댓글을 쓰신 분이 제 블로그에 들릴 가능성은 매우 낮겠지만요…
05-1
그럼에도 어떤 아쉬움이 있으시다면, 모 님께서 준비 중인 레즈비언 만화를 기대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우연한 기회는 아니지만 ‘우연한 기회’라고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 크) 현재 준비 중인 만화의 시놉시스를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소재에 모완과는 다른 입장에서 레즈비언의 삶을 다룰 듯합니다. 본격 공개되면 다시 소개할게요. 🙂
모 님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힘내시라고 쓴 글입니다!
아울러 김비 님의 자서전과 소설, 줄리 앤 피터스가 쓰고 정소연 님이 옮긴 <루나> 같은 작품을 읽으셔도 좋을 듯합니다. 모완을 통해 트랜스젠더 이슈가 논쟁이 되었다면 그냥 논쟁으로 끝나지 않고 관련 글을 읽어보는 것도 좋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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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 즈음 추가.
83화에서 또 다른 히트 구절이 몇 개 나왔지요.. 이를 테면 “누가 봐도 남자인 참새씨를” “그때는 누가 봐도 여자인 참새씨를”…
전 이런 표현이 딱 모완 작가의 맥락[수준이라고 적을까 하다가 ‘수준’이란 단어의 뉘앙스가 애매해서 ‘맥락’으로 바꿨습니다]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일일이 논평할 정도의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다는 느낌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며칠 지나 키워의 본성이 튀어나와 다다다다다 글을 쓸지도 모릅니다만…
최근 자료를 검색하다가 찾은 어느 책(2010년에 나왔음)에서 “동성연애자를 차별하는 표현”이라는 목차가 있더라고요. 83화는 딱 이 목차 같아요. 부연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 그 설명이 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랄까요.
일단 수업 준비를 하면서 논평을 더할지 말지 고민해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