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를 다시 상상하기] 일부

지난 10월 17일, 언니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열린세미나] 덮은 책도 다시 보자”에 참여해 발표를 하였습니다. 짧은 원고도 제출했고요. 원고에도 적었듯 총 세 개의 절 중에서 가장 긴 분량인 2절은 <남성성과 젠더>에 실린 글을 수정했고, 새롭게 추가한 내용은 1절과 3절 뿐입니다. 그 중 아예 처음 얘기한다 싶은 글은 3절 뿐.
전문은 언제나 그렇듯 writing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언니네트워크에서 제작한 별도의 편집판이 있지만 파일이 제게 없을 뿐만 아니라  제가 배포할 권한도 없어서, 제가 직접 편집한 판본으로 제 글만 올렸습니다. 뭐, 당연한 얘기기도 하고요.
 새롭게 추가한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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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7.수. 20:00-22:00 언니네트워크 열린세미나 @여성과 일 건물 지하1층 공간 ‘나비’
젠더를 다시 상상하기: 주민등록제도, 의료기술, 그리고 트랜스젠더 페미니즘
-루인(트랜스젠더/퀴어 연구활동가,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 운영위원, runtoruin@g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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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제도는 개인을 일평생 지배 규범적 젠더에 적합한 존재로 규제하는 일상 장치다. 주민등록제도에서 살고 있는 한, 다른 말로 당신의 출생이 신고되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젠더화된 존재며 법적으로, 의료기술적으로 보증된 존재다. 주민등록제도는 이 사회의 적법한 젠더 구성원임을 보증하는 (의료)문서다. 만약 어떤 누군가가 주민등록 상의 젠더를 바꾸고자 한다면 인우보증서를 제출해야 한다. 인우보증서는 주변 사람이, ‘이 사람은 진짜 트랜스젠더다’라고 확인해주는 서류다. 그런데 인우보증서의 역할은 단순히 트랜스젠더의 존재 확인이 아니다. 젠더 변경을 요청하는 개인으로 인해 인간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젠더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이원 젠더 질서, 젠더이원화된 관계는 인간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하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출생시 지정받은 젠더로 살며 맺은 젠더이원화된 관계에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때에만 신분 상의 젠더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요구하는 젠더 관계, 젠더 규범은 어떤 관계며 규범일까? 가급적 많은 사람의 젠더 보증서를 받아야 할 때 ‘우리’가 재현하고 수행할 수 있는 젠더는 어떤 모습일까? 트랜스젠더 개인의 어떤 욕망 및 행위와는 별개로 이런 구조적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젠더 규범, 젠더 관계는 특정한 방식에 제한된다. mtf라면 여성스러워야 하고 ftm이라면 남성스러워야 한다. 이것은 이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적절한 젠더, 적법한 젠더를 표지하고 공표하는 것과 같다. 여성이라면 지배 규범적 여성성을 재현/수행해야 하고 남성이라면 지배 규범적 남성성을 재현/수행해야 한다. 트랜스젠더의 주민등록 상 젠더 변경 이슈엔 젠더 규제와 관리, 젠더 규범화와 균질화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리하여 트랜스젠더의 주민등록 이슈는 정확하게 페미니즘 이슈다. 여성성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어떤 여성성만을 규범적인 것으로, 적절하고 적법한 것으로 구성하는지를 문제 삼고 이런 구조에 개입하는 것이 페미니즘의 역사기도 하다면 트랜스젠더의 성별정정 이슈는 필연적으로 페미니즘 이슈일 수밖에 없다. 트랜스젠더가 단지 사회적 소수자여서 페미니즘과 함께 할 수 있거나 함께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이슈의 많은 것이 그 자체로 페미니즘 이슈기에 그냥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