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법외자/젠더 무법자

어떤 분에겐 반가울 소식 하나 전합니다.
케이트 본스타인이라고 아시나요? 아마 트랜스젠더퀴어 이론에 관심이 있거나 젠더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트랜스젠더 이슈로 다양한 활동을 했고, 연극배우며 1990년대엔 트랜스/젠더 이론서, 교육서 등을 쓴 저자기도 합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트랜스젠더 이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케이트 본스타인의 글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얻고 많은 배움을 얻었을 거고요.
이런 케이트 본스타인이 처음 쓴 책은 이론적 자서전, 혹은 자전적 이론서입니다. <젠더 법외자> 혹은 <젠더 무법자>로 번역할 수 있는 책, Gender Outlaw: On Men, Women, and the Rest of Us는 본스타인이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삶과 자신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적절하고 절묘하게 엮은 책입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트랜스젠더 자서전을 출판하는 붐이 일었는데 본스타인의 책이 그 붐을 일으켰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삶과 이론이 절묘하게 엮이는 찰나며 삶이 얼마나 치열한 이론인지, 이론이 얼마나 감동적일 수 있는지를 증명한 책이기도 합니다.
저는 트랜스젠더 이론을 처음 공부하던 시기에 이 책을 읽었고 많은 위로를 받았고 배움을 얻었습니다. 제겐 정말 소중한 책 중 하나죠. 그래서 이 책을 한국의 다른 사람과도 나누고 싶었지만 쉽진 않았습니다. 여기저기 이 책을 번역하자는 얘기를 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쉽지 않았습니다. 아쉬웠지요.
바로 이 책이 한국에 번역 출간될 예정입니다. 믿기나요? 얼마 전, 이 책 번역과 관련한 계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판권 계약 및 옮긴이 계약 모두 맺었다고 하고요. 물론 제가 번역하진 않아요. 제가 욕심을 냈던 책이지만 전 다른 책을 번역하고 있거니와 제겐 단독으로 영어책을 번역할 능력이 없거든요. 저에 비하면 번역을 엄청 잘 하는 분이고, 트랜스젠더퀴어 이론도 공부하는 분이라고 합니다. 저도 그 이상은 잘 모르지만.. ^^; (이런 소식을 알게 된 계기는 따로 있는데 그건 나중에 다시..)
정말정말 기뻐요!
제 글로는 <젠더 법외자>가 어떤 글일지 가늠하기 힘드실 테니.. 모 님을 착취하여(고맙고 죄송합니다..ㅠㅠ) 몇 구절 옮겼습니다.
내 생각에 젠더는 S/M으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안전하고, 정상적이고, 합의한 것이어야 한다.

젠더는 안전하지 않다.
만일 내가 나의 젠더를 바꾼다면 살인, 자살 또는 내 잠재력의 절반이 사라지는 삶이라는 위협을 대면하게 된다.
만일 내가 젠더를 알리는 신호가 섞여 있는 몸으로 태어난다면, 나는 도살될 위험에 처한다- 조정되고, 절단된다.
젠더는 안전하지 않다.

그리고 젠더는 정상이 아니다.
무지개를 흑 아니면 백이라고 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모두가 단 두 개의 범주 중 하나에 맞아야만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인간을 억압하기 위해 여성으로 분류하고 칭송하기 위해 남성으로 분류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젠더는 정상이 아니다.

그리고 젠더는 합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태어나면 의사가 젠더를 지정한다. 그 과정은 국가에 의해 문서회되고, 법에 의해 시행되고, 교회에 의해 신성화되고, 미디어에 의해 사고 팔린다.
우리는 스스로의 젠더에 대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젠더를 질문하고, 가지고 놀고, 친구들, 애인들,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갈 수 없다.
젠더는 합의된 것이 아니다.

안전한 젠더는 비난이나 폭력의 위협 없이 무엇이든 누구이든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한 젠더는 어떤 방향이든 바라는 곳으로, 우리나 다른 누구의 건강에도 위험을 끼치지 않고 가는 것이다.
안전한 젠더는 패싱하라는 위협도,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일도, 숨여야 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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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계약 완료: 수잔 스트라이커, 트랜스젠더 역사

며칠 전, 드디어! 수잔 스트라이커(Susan Stryker)의 트랜스/젠더/퀴어 입문서인 <트랜스젠더 역사>Transgender History의 번역을 계약했습니다. 출판사는 이매진이고요. 지난 4월에 번역제안서를 보냈고 그때부터 긍정적으로 얘기가 오갔으니 정식 계약까지 6개월이 걸렸네요. 하지만 번역하겠다고 얘기한 시점부터는 얼추 2년이네요.

작년 초인가, 제작년 말인가 장애-퀴어 세미나에서 제이(인터섹스 활동가 셰릴 체이즈의 인터뷰 논문을 번역한 분) 님이 스트라이커 책 발제를 맡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정말 좋다는데 제이 님을 비롯한 다른 세미나 구성원이 모두 동의하여 본격 번역하기로 했죠. 이 과정에서 제이 님이 초벌, 제가 재벌을 담당했고요. 이유는 제이 님이 번역을 정말 잘 하기고 하고요, 제가 번역을 정말 못 하기도 해서입니다. 일단 제이 님은 당일치기로 번역을 해도 읽을 수 있는 문장으로 번역합니다. 헷갈리는 문장 거의 없고, 꽤나 수월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반면 제 영어 번역본을 읽은 모든 사람이 인정하지만, 제 영어번역본은 읽을 수 없는 글입니다. 제 한국어 문장보다 조금 더 심하달까요.. 아니, 이렇게 설명하면 부족하고, 제가 영어를 번역하면 그 문장을 읽을 수가 없어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제이 님과 제가 책을 반으로 나눠서 번역한다면, 저는 수월하게 2차 작업을 하겠지만 제이 님은 그냥 처음부터 새로 작업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아하하. 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그냥 처음부터 제이 님이 1차, 제가 2차를 담당했지요.
그리고 1차 번역본을 작년 중순에 받았습니다만.. 제가 게을러, 지지부진하게 작업을 진행하다가, 그러다보니 늦어져서 결국 올 초에야 출판사와 얘기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지요. 그리고 이런 저런 일정을 조율하다가 결국 최근 번역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니 내년 상반기엔 나오겠지요.. 네, 나와야지요.. ;ㅅ;
사실 출판을 염두에 둔 번역을 작정했을 때 여러 번 이곳에 떠들고 싶었지만(제가 인간이 가볍고 경박하여 막 아무 거나 떠들잖아요.. 하하. ;ㅅ; ) 자중하였습니다. 아무래도 계약이 되기 전엔 말하는 게 아니다 싶어서지요. 만약 작년에 떠들었다면 꽤나 민망할 뻔 했고요.
앞으로 또 다른 책을 번역한다면 그때도 공동번역이겠지만(단독으로 번역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 어느 쪽이건 첫 번째 책이 수잔 스트라이커라서 기뻐요! 헤헤헤.

잡담: 이매진 번역, 수잔 스트라이커

어쩌다보니 이매진에서 나온 번역서 두 권을 연달아 읽고 있다. 둘 다 번역이 괜찮다. 수월하게 읽을 수 있는, 꽤나 번역 잘 한 문장이다. 그런데.. 뭔가 미묘하게 번역이 비슷한 느낌이다. 옮긴이는 당연히 다르다. 편집자를 확인했다. 각 책마다 세 명의 편집자가 담당했는데 그 중 두 명이 겹친다. 아하.. 이것이 편집자의 힘인가.. 읽기 수월한 번역서를 만들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작업하다니 대단하다 싶다.
수잔 스트라이커의 <트랜스젠더 역사>를 어떤 연유로 다시 읽었다. 그 중…
공동체의 이름이 “퀴어”보다 “LGBT”로의 변화는 미국에서 성적 정체성 그리고 젠더 정체성 정치의 사회적 역사에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하고 있음을 표지했다.그것은 지배문화의 동일한 억압 구조에 대항하는 다른 집단에 의한 것이 아닌,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함이라는 자유주의적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더욱 급진적 개념의 연합, 저항, 그리고 도전에서 후퇴를 의미했고 때로는 트랜스젠더를 포함하는 시늉을 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몸짓을 취함에 지나지 않았다.
번역이 매끄럽진 않은데.. 이런 날선 비평이 좋다. 곱씹을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