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의미 있는 글: 주제를 중심으로

어떤 글이 내게 어떤 식으로 의미 있는지를 정리함은 곧 내가 그 정도로 아직 어리고 뭐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저 단행본이 여럿이고 단독저서도 여럿이고 그외 이런저런 출판물이 상당한 사람이라면 이런 정리를 안 하지 않을까? 뭐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정리도 하는 거지…
암튼 그럼 하던 것 마저하면… 즉 뻘블로깅 2탄!
루인.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 <젠더의 채널을 돌려라> 퀴어이론문화연구모임 WIG 기획. 수원: 사람생각, 2008. 209-249.
2006년에 초고를 쓰고 2008년 초에 출판한 “범주와 명명, 그리고 경계지대”는 내 주요 관심을 응축하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끊임없이 경계 분쟁, 범주 명명과 관련한 얘기를 하고 있고 가장 촉이 많이 가는 작업 중 하나다. 범주 논쟁과 관련해선 이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썼다. 이를 테면 석사학위논문도 여기에 해당하고, 올 초에 나온 여성범주 논쟁 글도 그렇다. 범주 논쟁은 나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란 이슈기도 하지만 규범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란 이슈기도 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 수록 범주 자체를 언급하지는 않으면서 범주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흐. ;;
루인. ““당신의 젠더를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페미니스트 트랜스 혹은 트랜스페미니즘, 초안.” <n[앤]> 2호 (2008) / 루인. ““당신의 젠더를 어떻게 부르면 될까요?”: 페미니스트 트랜스 혹은 트랜스페미니즘, 초안.” Run To 루인. Run To 루인, 2008.11.10. 웹. 2008.11.10. https://www.runtoruin.com/1360 (2008)
이 글은 트랜스(젠더)페미니즘을 본격 모색한 첫 번째 글이다. 지금까지 ‘트랜스페미니즘’이란 부제로 총 네 편의 글이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쓸 계획이다. 나는 단 한 번도 트랜스젠더 이슈와 페미니즘 이슈, 퀴어 이슈가 별개라고 고민한 적 없다. 적어도 나의 삶에선 그럴 수 없다. 그래서 트랜스페미니즘 글은 내 삶을 해명/설명하는 글이기도 하다. 어떤 의미에선 내가 쓴 모든 글이 트랜스페미니즘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는 특정 상황에서, 트랜스페미니즘을 모색하는 글이란 부제를 통해 관련 얘기를 떠들곤 한다. 이 구분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그나저나 트랜스페미니즘 선언문을 써야 할텐데.. 흠…
루인.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1969~1989” 문화연구 1.1 (2012): 244-278. 교보문고스콜라. 웹. 2012.06.07.
2009년 여름에서 가을, 막달레나의집 이태원드랍인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 이슈에 접근했다. 그리고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해 가을 초고가 나왔다. 이후 나는 이 글을 어떻게든 출판하려고 했지만 나의 게으름으로 늘 밀렸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창간하는 학술지에 투고하고 게재할 수 있었다. 물론 초고와 현재 출판본 사이엔 차이가 많다. 분량이 대폭 줄었고(초고를 60% 수준으로 수정한 게 현재 출판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얘기가 일부 누락되기도 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자료를 더 보강해야 했다. 아쉬움이 많은 글이란 뜻이다. 나중에 한국 트랜스젠더 역사를 쓴다면 대대적으로 수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저런 아쉬움에도, 한국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정리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나로선 무척 중요하다.
루인. “괴물을 발명하라: 프릭, 퀴어, 트랜스젠더, 화학적 거세 그리고 의료규범.” <성의 정치, 성의 권리> 한채윤 엮음. 서울: 자음과모음, 2012.
트랜스젠더 이슈와 장애 이슈를 엮고 싶어한다. 트랜스/젠더 이슈에서 의료기술은 매우 중요하다. 나는 19세기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지금 현재 이슈에도 촉이 간다. 이 모든 것을 엮을 수 있을까? “괴물을 발명하라”는 최초 의도가 무엇이었건 바로 이런 관심과 고민을 처음으로 엮은 글이다. 물론 많이 부족한 글이다. 좀 더 구조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야 했다. 그럼에도 트랜스젠더 인식론으로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어 좋았다. 앞으론 이런 식의 작업을 더 많이 하겠지…

내게 의미 있는 글: 출판 형식을 기준으로

지금까지 쓴 글 중에서 이 글은 정말 괜찮다 싶은 건 없다. 늘 부족하다. 그 부족함을 보충하려고 또 다른 글을 쓰지만 부족함의 반복일 뿐이다. 좀 더 내공을 쌓고 천천히 써야 했는데… 이런 아쉬움과는 별개로 내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글은 몇 편 있다.
일단 2006년 한겨레21에 게재한 “나를 증명할 길은 수술 뿐인가.” 루인이란 이름으로 처음 정식출판물에 출판한 글이다. 그 전에 루인이란 이름으로 블로깅이나 모임발간물에 글을 쓰긴 했다. 하지만 소위 등록된 출판사/언론사에 글을 실은 건 이것이 처음이다. 아울러 한때, 적잖은 분들이 검색하며 찾아준 글이기도 하고.
2006년 겨울 <여/성이론>에 게재한 “젠더를 둘러싼 경합들 gender dysphoria”은 소위 학술지 성격의 잡지에 처음으로 글을 실은 경우다. 글 자체는 별로라 나로선 출판 이후 한 번 읽었나? 너무 부끄러워서 다시는 못 읽는 글이지만 이 글을 계기로 <여/성이론>과 인연을 맺었으니… (물론 여이연과는 그 전부터 인연이 있었지만..)
2012년 봄 <문화연구>에 게재한 “캠프 트랜스: 이태원 지역 트랜스젠더의 역사 추적하기, 1960~1989”는 처음으로 익명의 심사자가 심사를 하는 학술지에서 출판한 글이다. 기말페이퍼나 학위논문을 제외하고, 출판을 위한 글은 그동안 한 번도 심사를 받지 않았다. 청탁받아 썼고 그래서 투고하면 그대로 출판되었다. 그래서 “캠프 트랜스”는 처음으로 심사를 받는다는 점에서 걱정도 많았다. 그리고 익명의 심사자가 심사하는 잡지, 소위 학술지에 처음 실린 글이 “캠프 트랜스”여서 기쁘기도 했다. 다른 주제도 아니고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다룬 글이니까.
2013년 여름 <여성학논집>에 게재한 “젠더, 인식, 그리고 젠더폭력: 트랜스(젠더) 페미니즘을 포색하기 위한 메모, 네 번째”는 소위 등재지에 출판한 글이다. 좀 웃긴 제도인데, 학제에 속한 연구자에겐 등재지에 글을 싣는 게 중요한 편이다. 나중에 연구재단에 연구지원을 하거나 할 때 기본 조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나면 퀴어락과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를 토대로 활동할 계획이다. 그러니 기존 학제에선 활동할 일은 별로 없겠지. 그럼에도 가능하다면 연구재단의 기금으로 퀴어 연구와 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등재지 게재는 이럴 때 필요하다. 딱 이 정도 용도? 이것 말고는 여타 잡지와 차이가 없다. 사실 더 의미있는 건 주제다. 내가 가장 많이 얘기하는 주제 중 하나인 트랜스(젠더)페미니즘을 다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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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말이 없으니 별의 별 걸 다 하는구나 싶은 포스팅.. 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