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타고남과 선택 논쟁에 붙여

고민의 출처가 있긴 한데요.. 관련 글을 연달아 쓰다보면 부담스럽기 해서 링크는 생략했습니다. 부담스럽다는 건, 어떤 논쟁이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논쟁이 인신공격으로 오독될 것이 부담스러운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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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는 타고난다고 말하는 순간, 이성애자 역시 타고난 범주가 된다. 이성애자가 타고난다고 말하는 순간, 이성애를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적 구조 역시 자연스러운 질서가 된다. 이성애가 규범성, 즉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는 순간, 비이성애실천을 향한 혐오 역시 당연한 것이 된다.
이성애자 역시 타고났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가 현재 사회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성애는 타고났고 그래서 자연스럽고 이성애자가 다수니까 다수를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건 당연하고 운운. 이때 할 수 있는 건 기껏해야 관용을 구하는 것 뿐이다. “전 착한 비이성애자니까 제게 뭐라고 하지 마세요. 전 이성애자인 당신과 다를 게 없거든요.”
타고남, 생득설 같은 건(그리하여 타고났느냐 선택하느냐로 양자택일하도록 하는 건) 비이성애-트랜스젠더의 삶을 정당화하는 언설이 아니라 이성애-비트랜스젠더의 삶을 규범화/자연화하는 언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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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을 쓰기 위한 아이디어 메모 성격입니다. 그래서 글의 연결이 거친 편입니다.

생득(타고남) vs 선택, 논쟁 메모

*말 그대로 논쟁적 지점이 있는 메모입니다.
트랜스젠더, 바이, 동성애자 등이 타고나느냐 선택이냐라는 논의 구도에 붙잡혀 있는 이상 다른 어떤 논의도 불가능하다. 즉, ‘생득 vs 선택’ 논쟁은 이성애규범적, 이성애중심적 사유체계지 트랜스젠더, 바이, 동성애 등의 맥락에서 사유하는 방식이 아니다. ‘생득 vs 선택’ 논쟁은 그리하여 기존 이성애-이원젠더 규범을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마치 트랜스젠더 등을 포용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쇼(show)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