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fis][영화] 대만 소녀 판이췬/8월 이야기

[대만 소녀 판이췬/8월 이야기] 2007.04.08. 21:00, 아트레온 1관 E-14

[대만 소녀 판이췬]
: 이 영화 때문에 안 볼까를 망설였는데, 그럭저럭 괜찮았다. 의외로 엄청나게 공감하는 지점도 있었고.

다큐멘터리 속에서, 가족들이 주인공에게 공부 열심히 하고 살도 빼라고 하면서 상당한 “관심”을 표하는데, 바로 이 지점이 남 얘기 같지가 않았다. 즉, 듣는 사람 입장에선 불필요한 간섭이고 신경을 긁는 일인데, 말하는 입장에선 “애정”의 표현이자 “관심”을 표현한 것이란 점. 다큐를 읽다가 대뜸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딴 관심 필요 없거든!

[8월 이야기]
: 추가 예매를 하며, 이 영화가 읽고 싶어서였다고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 즈음을 읽을 때, 울컥하며 울 뻔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있었던 일을 열거하며 내년에도 나를 기억할 거냐고, 얼음찜질을 해준 걸 기억할 거냐고, 부채 부쳐 준 걸 기억할 거냐고, 등등을 얘기하는데, [스파이더 릴리]와 겹치면서, 몸 아팠다. 왜냐면 상대방은 이런 말에도 별로 신경을 안 썼기 때문에.

과거의 시간을 직조하는 이 영화는, 옷을 만드는 알바를 하며, 옷을 만드는 과정과 기억을 직조하는 과정을 겹쳐서 풀어가는데, 그 솜씨가 일품이다. 또한 이 영화에는 여백이 많은데, 그 여백을 역시나 여백이 많은 음악으로 채워가고 있다. 그래서 정말 슬프지만 담담하게, 한편으론 애틋함으로 예쁘게 풀어가는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결혼식 장면)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지만, 이 영화 좋다.

참, 이 영화 은근한 퀴어영화다. A가 B를 좋아하면 B는 C를 좋아하고 C는 A를 좋아하는 구조.

[Wffis][영화] 이티비티티티 위원회

[이티비티티티 위원회] 2007.04.08. 18:00, 아트레온 1관 B-9

1. 이 시대에 이런 영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에 놀랐다. … 이 문장은 [300]을 평하며 쓴 구절이기도 한데, 맞다. 루인은 이 영화를 [300]과 비교하고 있다.

2. 뜨악했던 건, 이 영화가 페미니즘 혹은 레즈비언 페미니즘에 대한 지능형 안티인지, 안티 페미니즘인지, 페미니즘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비판인지를 모호하게 그리는 척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테면 결혼은 가부장제도의 억압도구이기에 무조건 반대한다는 논리는, 결혼이 인종이나 계급, 성정체성/성적 지향성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님을 무시해버린다. 결혼제도를 비판하는데 있어, 다른 맥락을 살리면서 비판하는 것과 싸잡아 비난하는 건 너무 다르다. 동성애자의 결혼 논쟁이 이성애제도에서 이성애 결혼과는 의미가 같을 수 없고 트랜스젠더의 결혼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니는데, 이 영화에서 결혼제도는 오직 한 가지의 의미만을 가지고, 그래서 모든 (이성애) 결혼은 억압제도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이런 이유로 이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인지 페미니즘을 빙자한 지능형 안티 영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 사이의 인종 관계는 마치 인종이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는 듯이 나타나고, 계급관계를 그리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ftm/트랜스남성은, 가장 소비하기 좋은/안전한 방식으로 나타날 뿐이다. 그래서, 영화가 끝났을 때, 지능형 안티거나 정말이지 성찰하지 않는 감독이라고 느꼈다.

3. 물론 일종의 퍼포먼스는 재밌긴 했다. 하지만 이걸로 무마하기엔 꽤나 실망스럽다.

[Wffis][영화] 스파이더 릴리

[스파이더 릴리] 2007.04.08. 14:00, 아트레온 2관 E-15

1. 영화를 읽다가, 이런 영화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마워, 라고 중얼거렸다. 이 영화가 있어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루인이 좋아하는,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코드들이 잔뜩 있는 이 영화는, 그 코드들을 기가 막히게 잘 직조하고 있다. 6월 즈음 개봉한다고 한다. 그때 또 읽을 거다. 올해 나온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다.

2.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구절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이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다가왔다. 다른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내가 당신의 생애 어느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는 걸, 그 작은 사실 하나를 기억해 달라는 바람. 그리고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열망.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3. 이 영화는 (나중에 읽은 [8월 이야기]와 함께) 기억, 특히나 몸에 세겨져 있지만 망각하고 혼란스럽게 떠도는 기억을 말하고 있다. 타투/문신으로 몸에 세겨서 현실로 남아 있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을 통해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망각하고. 깨어 있는 상태와 백일몽의 상태가 헷갈리고. 그러며 과거는 짐작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남아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내용이 바뀐다. 언제 어떤 식으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어서 과거는 미래보다 더 불확실하게 남아 있고, 결국 예측할 수밖에 없는 과거.

아냐, 아냐, 이렇게로만 설명할 수 없어. 영화를 읽는 내내, 짜부라질 것만 같은 느낌에 빠졌어. 이 영화는, 왠지 영화관이 아니라 혼자 있는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래도 또 영화관에서 볼 거야. 꼭 볼 거야.

이 영화를 읽으며 느낀 감정들은 그때 풀어 놓을 거야. 그동안은 몸 안에 간직해야지.

4. 몰랐는데, [드랙퀸 가무단]의 그 감독이라고 한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