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혹은 여기에 국가는 없다.

나는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국가나 정부가 아닌 다른 방식의 공동체로 이 세계가 조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지금 이땅이 국민국가 체제라면, 그리고 한국이 국민국가라면 국가는 국민국가의 역할을 해야 한다. 중요한 재난 사고에서 국가는 국민을 구하고 또 위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국가에서, 국민이 세금을 내고 이 땅의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댓가로 당연히 받아야 할 국가의 의무다. 국가/정부가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국가가 은혜를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국가의 기본 의무다. 국민의 기본 의무 이행은 국가의 기본 의무를 담보로 이행된다는 점에서 서로는 계약 관계다.
대형 사고가 났고 많은 목숨이 위험에 처했다. 그런데 국가/정부는 어떠했는가. 정부는 우왕좌왕했고, 대책본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중요한 혹은 결정적 순간에 긴급하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책임을 요구받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회피하며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 바빴다. 국민의 정당한 요구가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말을 하고서야 최소한의 일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런 대통령도 자신은 이 일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사람처럼, 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이 정부와 무관한 사람처럼 얘기를 했다. 정부는 반성해야 한다니, 그럼 너는 정부가 아니라 왕이냐?(http://goo.gl/Ww7N3u http://goo.gl/HUnYVJ)
사고에 따른 유족, 그리고 실종자 가족은 어떻게든 실종자가 돌아오길 바랐고 그에 따른 조치를 요구했지만 국가/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정부 관료를 보호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했고, 국민 혹은 시민과 대치하고 때때로 수색했다. 어떤 이들은 유족이나 실종자 가족 사이에 국가 전복 세력이 있다는 식으로 상황을 흐리기 바빴다. 사람을 구하길 바랐지만 정부/국가는 유족 및 실종자 가족과 대치 정국을 만들었고, 정부의 관료 혹은 공무원, 정치인은 부적절한 언행만 하기 바빴다.
이러고도 정부/국가인가? 이것이 (최소한 근대적이기라도 한)정부/국가인가? 사람의 목숨이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정부/국가의 이런 행태는 정부/국가의 기본 의무,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 이것은 정부/국가가 아니다. 이러고도 공권력을 행사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정당한 행위가 아니라 불법 행위다. 국민이나 시민에겐 적법을 요구하면서, 정작 국가/정부가 해야 할 최소한의 것도 하지 않는다면 이를 어떻게 정부라고 할 수 있고 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지금 행태는 정부는 정부이길 포기했고, 국가는 국가이길 포기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봉기라도 일으켜야 하는 것 아닐까? 도대체 왜 ‘그럼에도 법은 지켜야 한다’며 망설이는 것일까? 국가/정부는 최소한의 약속인 법을 지키지 않는데 왜 시민/국민은 ‘국가와의 암묵적 약속인 법’을 지켜야 하는가? 지금 정부/국가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포기했다면 남은 것은 봉기이며 새로운 정부 구성 아닐까? 정말 울분이 터져서 못 견디겠다.

울분, 국가의 의무

시간이 지날 수록 울화가 더 크게 차오른다.
나는 재난 상황에서 국민을 구조하는 등 적극 나서는 것, 체계적 움직임으로 실종자 가족이나 유족이 마음 상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국가/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위로 행위이자 애도 행위라고 믿는다. 물론 날씨 등의 상황에 따라 구조원이 적극 투입되지 못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총괄본부는 정확한 사실과 적절하고 신속한 판단으로 움직여야 한다. 구조작업자의 안전과 함께 사고 상황에 처한 사람을 신속하게 구하도록 적절하고 때론 과감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이것은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의무이자, 위로 행위다. 그런데 이런 게 없다. 구조 작업에서 책임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이들은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기 바빴고 책임을 회피하기만 바빴다. 이것이 국가인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도 하지 않는 게 국가인가. 대통령은 정부 탓을 하는 황당한 상황에서, 단 한 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 땅에 국가가, 정부가 존재하는가.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 공권력으로 국민을, 시민을 진압하는 집단은 있어도 국가는 없다.
최소한의 의무도 이행하지 않는 이 땅에서, 고인과 실종자와 그 가족과 주변 사람만 서럽다. 부디, 좋은 곳에 있기를, 그리고 다음 생이 있다면 부디 한국에선 태어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