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란 말의 심란함: 여성혐오, 트랜스혐오, 이성애주의 등이 얽힌 매우 위험한 발상

조두순 사건과 관련, 화학적 거세를 하자는 얘기를 아침 라디오에서 들었다. 여성호르몬을 통해 성욕을 감퇴시키면 재범율이 3% 수준이라나. 심란하다. 매우 간단하게 쓰는 단상 다섯 가지. 자세한 건 다음 주 특강에서 할 듯? 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글이 상당히 거칠고, 읽는 사람에 따라선 불편한 표현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

ㄱ. 화학적 거세를 하면 성폭력이 준다는 주장은 남성의 성욕과 성폭력 원인은 생물학적 필연이라고 가정하는 것. 남성의 성욕은 너무 강하고 어쩔 수 없어서 화학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남성의 성욕은 본능이니 어쩔 수 없고, 성폭력은 남성의 본성이다? 남성 성욕 신화의 결정판.

ㄴ. 화학적 거세는 여성호르몬을 조치하는 것. 이는 여성은 무성적이거나 여성호르몬이 상대적으로 많으면 성욕이 없으니 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주장과 다르지 않음. 모든 성폭력 가해자는 남성호르몬이 호르몬 비율상 더 많거나 여성호르몬이 비율상 더 적다는 의미일까? 여성성폭력가해자 뿐만 아니라 레즈비언 관계에서의 성폭력을 은폐하는 효과를 낳음. 더 정확하게는 이 세상엔 이성애 관계만 존재한다고 강변하는 격.

ㄷ. 성욕의 발생이란 측면, 더 정확하게 말해 발기란 측면에서, 모든 성행위는 남성형 성기의 발기 혹은 삽입욕망을 정상 성욕으로 가정하고 있음. 이것은 이성애 성관계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거나 남성들만의 성욕/성관계만을 가정하고 있음. 모든 남성이 삽입만을 욕망하는 건 아님. 아울러 흡입을 욕망하는 이 혹은 그런 남성은 성폭력 가해를 하지 않을까? 성폭력의 의미를 매우 협소하게 가정하며, 성기를 매개하지 않는 매우 많은 종류의 성폭력을 은폐함.

ㄹ. 여성호르몬 투여를 통한 남성의 성욕 감퇴, 성범죄예방이라면, mft/트랜스여성은 어떻게 되고, 이런 논의에서 뭐가 되는 거지? 의료적 조치 과정에서 성범죄예방과 mtf의 호르몬 조치가 겹치면서 매우 심란. mtf/트랜스여성은 성욕이 없다는 걸까? 아울러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는 성폭력 가해를 의료적 질병으로 이해하고, 이 과정에서 질병이나 문제를 치료하거나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호르몬 조치/화학적 거세를 사용하여 트랜스젠더의 의료적 조치를 질병치료로, 트랜스젠더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만듦. mtf/트랜스여성은 결국 화학적 거세를 당한 남성, 성욕을 잃어버린 남성, 여전히 남성이란 의미일까?

ㅁ. 이것저것 다 떠나서 젠더 권력이 팽배하고, 젠더 규범이 지배질서인 사회에서 화학적 거세가 ‘해결’하는 건 사실상 거의 없음. 결국 개인이 문제이지 사회제도, 문화적 규범은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것. 만사를 법과 규제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 나아가 이것이 섹슈얼리티, 다양한 성적 실천을 협소하게 규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