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집, 그리고: 임대인을 기억하며?

몇 주 전 윗집에서 쿵쿵 소리가 났다. 순간 임대인이 문을 두드리는 줄 알고 스트레스와 짜증이 밀려왔다. 또 무엇을 따지러 온 것일까? 아니, 또 무슨 얘기를 하러 온 것일까?

임대인과 임차인은 결코 연대할 수 없다고 믿는(나는 이들이 절대 연대할 수 없는 몇 안 되는 집단이라고 믿는다) 나로선 지금까지 임대인과 사이가 좋았던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공과금 및 월세를 밀려 낸 적 없음에도, 늘 조용하게 지냈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틀어졌거나 마지막에 꼭 안 좋은 일이 있었다.

이태원 집의 임대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태원은 트랜스젠더 연구의 일환으로 이주한 공간이었다. 물론 실제 연구는 안 하고 일 년에 한 번 트랜스젠더 업소 입구 사진을 찍은 것이 전부지만 그래도 내게 각별한 공간이다. 하지만 임대인과의 사이는 역대 최악이었다. 이층집에서 일층엔 임대인, 이층엔 임차인인 내가 살아서 생긴 문제가 아니었다.

크게 두 가지가 문제였다.

우선, 다른 사람 말은 절대 안 듣고 자기 할 얘기만 큰 목소리로 다른 사람을 하대하듯 말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자기 할 말이 있으면 사람을 불러선 자기 말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하는데, 그에 대해 내가 어떤 얘기를 하려고 하면 “아, 가만있어봐”라는 말을 하며 도통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각만 옳다는 듯했다. 하지만 이것은 약과였다. 이 정도면 그냥 말이 안 통하는 사람 정도로 여기면 될 문제였다.

가장 큰 문제는 그가 부정적 의미에서 기독교인이란 점이다. 처음 입주했을 땐 아무 말이 없었다. 2년 지나 재계약할 때부터 문제였다. 그는 내게 자신이 나가는 교회에 같이 나가자고 했다. 안 나가면 재계약 없다고, 방 재계약과 교회 나가는 것은 연동되는 문제라고 했다. 재계약의 조건이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냥 하는 얘기겠거니 했다. 아니었다. 그는 진지했다. 마주칠 때마다 그는 교회에 나가자고 했다. 싫어서, 나름 수를 쓴답시고, 친한 친구가 교회에 가는데 그 친구의 교회에 가겠다고 했다. 전도가 목적이라면 그 선에서 끝날 줄 알았다. 어리석었다. 내게 교회에 가자고 얘기하며 자신의 경력을 자랑할 때, 즉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의 모든 직원을 교회에 데려갔다고, 지금까지 자신의 집에 산 임차인 모두를 교회에 끌고 갔다고 했을 때(일요일 아침, 문을 두드러 깨운 뒤 자신의 차에 실어 교회로 데려갔다고 했다) 눈치를 채야 했다. 눈치를 못 챈 내가 어리석었다. 존재하지도 않는 친구의 교회에 가겠다고 했을 때,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반응했다. 하지만 며칠 뒤 다시 마주쳤을 때, 그는 그 이슈로 가족과 논의를 해봤는데(이것이 가족회의 안건이라고?) 나의 선택도 나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단, 자신이 내 친구와 함께 셋이서 교회에 가서 그 교회가 이단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교리반(?)에 등록시키겠다고 했다. 자기는 제대로 공부를 했기에 교회 모습만 봐도 이단인지 아닌지 딱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교리반 같은 데 등록해서 1년 정도 공부를 한 다음 그래도 교회가 별로라면 그땐 교회에 안 가도 된다고 했다. 난 그만두는데 강조점을 찍었지만 그는 그만두지 않을 거란 확신으로 한 얘기였다. 너무도 어이가 없어 나중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난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애초 그런 친구도 없거니와) 그와 마주치지 않도록 피해다녔다. 결국 일주일 뒤 그는 내게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임대인의 제안보단 일단은 그냥 일 년 정도 가볍게 교회에 구경이나 가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그러자 그는 언성을 있는대로 높이며, 그랬다간 마귀가 낀다며 15분 넘게 노발대발했다. 교회에 제대로 다녀야 인복, 재산복이 든다고 주장했다(그는 교회 다녀서 좋은 이유로 인맥이 생기고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작년 이 즈음, 나는 이사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몇몇에겐 이사갈 지역을 진지하게 상담했다. 그리고 임대인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집에 들어가는 길, 혹은 외출하는 길에 임대인이 마당에 나와 있으면 골목에서 서성거리며 임대인이 집에 들어가길 기다렸다. 불가피하게 임대인과 마주칠 때마다 그는 교회에 나가는 문제를 물었고 나는 얼버무리며 피했다. 그렇게 봄이 지나고 임대인은 교회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떠날 수 있는 기회만 생긴다면 언제든 이사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태원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었고 간신히 구축한 고양이 네트워크를 잘 유지하고 싶었지만 임대인를 피하며 지내야 하는 상황에선 눌러 사는 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윗집 사람이 내는 소리를 임대인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착각했을 때 상당한 짜증이 밀려왔다. 윗층 사람이 조심성 없이 걸어서 난 화가 아니었다. 이태원의 임대인이 떠올라서였다. 당장 찾아올 임대인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도 임대인 노이로제에 시달리다니… 어지간히 스트레스를 받았구나 싶었다.
+
이태원의 임대인이 교회 나가자는 소리를 하지 않기 시작한 건, 그가 자신의 행동이 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리석게도 그렇게 믿었다;;; 나중에야 알았는데, 내 보증금을 임대인이 사업하는 자식에게 빌려줬고 그래서 내가 지금 당장 방을 빼겠다고 했을 때 돈을 내줄 수 없어서였다. 믿음 운운하지만 돈 앞에 장사없구나 싶어 웃겼다. 그는 마지막까지 문제였는데, 이삿짐 기사는 30초도 안 되는 시간 이태원의 임대인과 마주친 다음, 욕을 욕을 하며 어떻게 저런 임대인과 살았냐고 내게 물었다(그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혹은 내가 무딘 거였을까?). 그리고 그는 마지막 인사를 할 때에도 교회 얘기를 했는데, 진심으로 내가 아는 모든 욕을 퍼붓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