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정의 사이

이곳에 방문하는 분은 ‘정의’란 단어를 들을 때 어떤 뜻을 가장 먼저 떠올리나요?
ㄱ. 정의. 正義. Justice.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ㄴ. 정의. 定義. Definition. 어떤 말이나 사물의 뜻을 명백히 밝혀 규정함. 또는 그 뜻.
#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온라인 판본.
언젠가 웹서핑을 하다가 ‘정의’란 단어를 읽고 ㄱ의 justice를 떠올리면 문과고 ㄴ의 definition을 떠올리면 이과라고 구분한 게시글을 읽은 적 있다. 이런 구분은 많다. “40-32÷2=?”란 시험문제에 초등학생이 “4!”라고 적었는데 이 답이 틀렸다고 답하면 문과, 맞다고 답하면 이과라고 구분하는 식의, 뭐, 그런 글이었다.
난 definition을 떠올린다. 당연하지. 학부 4년 동안 한 학기도 빼지 않고 배운 게 Definition(def.)인데. 수학과 수업은 definition으로 시작해서 definition이나 Q.E.D.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정의定義를 중시한다. 해당 수업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를 먼저 설명해야 이후 논의를 전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 딴 소린데, 이런 수업 방식은 내가 공부하고 글을 쓰는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런 영향에서인지 몰라도, 지금까지 내가 쓴 글에 ‘정의’란 단어를 썼다면 그 중 팔 할은 定義를 지칭한다. 아니, 내가 쓴 글에서 正義를 얘기한 적이 있나 싶다. 나는 거의 자동으로 정의를 定義로 사용하지만, 정의가 正義로 해석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걸 알기에 일부러 ‘정의’란 단어 옆에 한자 定義를 함께 표기하곤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正義와 定義는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둘 다 누가 어떤 맥락에서 주장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란 문장은 正義로 쓸 수도 있고 定義로 쓸 수도 있다. 正義 자체가 권력 관계의 산물이며, 권력 관계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다. ‘빵을 훔치면 벌금 100만 원’이라는 법적 正義는 모든 인간의 계급과 경제적 상황을 동등하게 둔다는 점에서 正義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특정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正義는 定義될 수밖에 없다. 맥락과 가치를 밑절미 삼는 定義에 따라 正義가 성립된다는 점에서 “누구를 위한 正義인가?”란 문장은 “누구를 위한 定義인가?”와 별로 다르지 않다.
학부에서 수학을 전공하면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이 이 지점이다. 정의는 맥락적이다. 그래서 정확하게 정의해야 한다. 🙂

피자가 채소라고…

“피자는 채소다” http://goo.gl/cydwy

상·하 의원들은 ‘피자는 채소’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피자를 만들 때 토마토 반죽이 들어간다. 미 농무부는 피자를 추방하기 위해 토마토 반죽이 최소 반 컵 이상 들어간 식품을 채소로 분류할 예정이었다. 보통 피자에는 그보다 훨씬 적은 양의 토마토 반죽이 필요하다. 이 경우 피자는 채소 대우를 받지 못한 채 학교 급식 품목에서 쫓겨나도록 돼 있었다. 의원들은 이번에 토마토 반죽이 두 숟가락 들어간 피자는 여전히 채소 대우를 받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저 내일부터 피자 먹으려고요. 피자는 채소래요.
채소의 정의가 이렇게 바뀌다니. 진정 신선하다. 피자가 채소면 피자에 들어가는 토핑도 모두 채소인 걸까?
이제 ‘피자는 고양이 전용 채식사료’라고 정의(definition)를 바꿔 바람에게 줘야겠어요… 아, 그러기엔 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구나..;; 이건 취소.
근데 정의(definition)를 바꿔 문제를 해결하는 건 수학자만 하는 짓인 줄 알았는데… 크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