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역의 문제

바오 닌의 소설, 『전쟁의 슬픔』 한국어판엔 저자의 한국어판 기념 서문이 실려 있다. 여러 내용이 있었지만 인상적인 구절은 하나였다. 바오 닌은 베트남어로 소설을 썼지만, 옮긴이는 프랑스어 번역본으로 한국어 번역을 했다. 바오 닌은 이 부분이 아쉽다고 적었다. 이 구절 하나로 상당히 많은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여기선 중역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자.

솔직하게 말해서, 나의 관심은 중역을 해서 내용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었다. 어쨌든 한국어로 옮긴 글을 읽는 입장에선 가독성 있는 문장이면 충분했다.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중역했을 때 내용이 얼마나 바뀌는지 궁금해도 확인할 길이 없기도 했다.;;;

근데 얼마 전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번역을 해야 한다거나 번역 감수를 해야 하는 상황 때문은 아니다. 누군가가 한국어로 옮긴 글을 재가공하는 과정에서 생긴 기회였다. 언어 변화는 대만어에서 영어, 영어에서 한국어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대만어: 啊你有孫子或孫女
영어: Do you have any grandchildren?
한국어: 혹시, 손주 있으세요?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긴 건 큰 문제가 없다. 전체 맥락 상, “혹시”란 구절이 들어가는 게 더 깔끔하고. 근데 대만어의 한자가 조금 달랐다. 대만어는 모르니 한자로만 대충 직역하면 “손자나 손녀 있으세요?” 정도? ‘손자나 손녀’가 ‘grandchildren’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옮긴 곳은 영화 제작사. 대만에선 손주*란 표현을 “손자나 손녀孫子或孫女”로 쓰는 걸까? 여기까진 큰 문제가 없다. 대답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대만어: 孫子 有
영어: Yes.
한국어: 그럼 있지.


대만어로는 “손자가 있다.” 즉, 한국의 주민등록체계로는 주민등록번호 1번이나 3번에 해당하는 이들이 있다는 뜻이다. 근데 영어로는 그냥 “있다.” 미묘하게 뜻이 바뀌었다. 대만어를 모르기에 단정할 수는 없다. 아울러 이 구절들이 해당 텍스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다. 사실 없어도 그만일 정도다. 그러니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개인적으론 중역할 때 의미가 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달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손주’는 ‘손자’의 잘못된 표기란다. 난 손주가 손자와 손녀 모두를 아우르는 표현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아니네. ;ㅅ; 그럼 영어에서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미묘하게 맞춘 건가? 결국 모든 개인은 ‘子’로 환원할 수 있는 의미일까? 뭐, 고민은 또 꼬리에 꼬리를 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