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적 슬픔, 젠더의 재생산: 장례식, 트랜스젠더, 그리고 감정의 정치

지난 8월, 여름엔 글을 쓰는 게 아니라고 말하던 당시에 투고한 원고가 출판되었습니다. 출판은 이미 두어 주 전에 되었지만 파일은 이제 나온 듯하여..

글 제목처럼 “규범적 슬픔, 젠더의 재생산: 장례식, 트랜스젠더, 그리고 감정의 정치”입니다. 장례식장에서 겪은 일을 트랜스젠더 맥락에서, 이성애-이원 젠더 규범을 재/생산하는 장례식을 감정의 정치로 독해한 글입니다. 좀 더 잘 쓰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젠 어쩔 수 없지요..
사실 현재 출판 판본으로 “1. 감정/정치”라고 짧게 쓴 부분은 뒤늦게 급히 추가했습니다. 감정과 관련한 논의를 정치적 이슈로 여기지 않는 인식이 만연한 편이라, 이 글의 논의를 맥락화해야겠다고 판단했거든요. 하지만 없는 게 더 좋다고 믿어요. 나중에 단행본으로 재출간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 부분은 삭제했으면 하고요.
암튼 뭔가 또 하나 시작했구나 싶습니다. 감정의 정치는 워낙 할 얘기가 많은 이슈라, 저도 이번 글을 ‘이 이슈로 앞으로 계속 고민하고 글을 쓰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기분으로 투고했고요.
관심 있으시면 언제나처럼 위의 “writing” 메뉴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잡담: 규범, 공부, 결과, 글

규범을 균열 내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규범에 내재하는 균열을 놓치는 건 곤란하다. 규범은 솔기 없이 단단한 것이 아니라 허술한 형태다. 규범은 혼종이다. 그래서 규범의 균열을 읽는 작업이 중요하다. 적어도 내겐 이런 작업이 내 삶에 숨통을 틔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알바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택배가 와 있었다. 주문한 게 없는데? 이런저런 생활비에 돈 나갈 일이 많아 책 지름을 못 하고 있다. 그리하여 택배를 받을 일이 거의 없다. 최근 무언가를 주문한 일도 없고. 그런데 뭐지? 주소를 확인하니 출판사였다. 4월 말 주로 지하철에서 쓴 원고가 이제 출판되었나보다. 소리 소문 없이 글이 나온 느낌이다. 글을 쓸 때만 해도 언제 나오나 싶었는데 나오고 보니 나오긴 나오는구나 싶다. 아울러 글을 쓸 당시만 해도 6월이 언제 오나 했는데 벌써 6월 중순이다. 오늘 오후에 하나 마무리하고 이제 한두 편만 더 쓰면 상반기 마감이다. (4월부터 6월까지 총 6편이라고 했는데… 7~8으로 수정해야.. ;ㅅ; 1월부터 기준으로 하면 오늘까지 8편을 썼구나.. 끄응…)
암튼 이렇게 잡지에 출판된 글을 보니, 그래도 좀 뿌듯하다. 그동안 뭔가 하긴 했는데 그 형태가 안 보여서 ‘나 지금 뭐하고 있나’싶을 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계속 바쁜 일상인데 그 결과는 확인할 수 없는 시간. 특히 글을 썼으면 지금까지 쓴 글 목록에 등록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 그냥 빈둥거리며 논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바쁘다고 흰소리만 한 것 같고. 그래서인지 책의 형태로 글이 나오니 조금은 뿌듯하다. 얼마나 잘 썼는지는 모르겠다. 지금은 어쨌거나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 좋다. 뭐, 이 정도의 자기만족이라도 있어야지… ;;;
그러고 보니 지난 6월 8일에 또 다른 글이 하나 출간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왜 소식이 없지? 2월 경 급하게 마무리한 글인데…;;; 물론 글 자체는 초고부터 완성까지 거의 10달 걸렸지만…
뭔가 계속 생산하고 있는데, 생산만 하고 있으니 깊이는 없고 다들 얄팍하구나.. 훌쩍..
과거 어떤 학자는 10년에 한 편, 책을 냈다. 근데 가만 고민하면 10년에 한 편이 아니라 10년에 걸쳐 한 권의 책을 쓴 것이다. 둘은 전혀 다른 작업이다. 나도 그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지금처럼 돌려막는 느낌으로 쓰지 않고 좀 진득하게 작업할 수 있을까? 역시나 박사학위 논문이 유일한 희망일까… 아아…
그래도 지금 상황은 내게 과분한 복이다. 지금 상황이 고마울 따름이다. 글을 요청하는 곳이 있고 읽어주는 분이 계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나의 위치

기말 페이퍼를 쓰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한 사실은, 내가 트랜스젠더를 얘기할 때 팔 할은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은/않는 mtf/트랜스여성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의 한계기도 하고 나의 강점이기도 하다. 이 사실을 확인하며 조금은 안도했다. 행여라도 내가 보편적 위치를 점하려고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남는다면, 현재 한국에 의료적 조치를 한 트랜스젠더(mtf건 ftm이건) 맥락에서 트랜스젠더 이론을 전개하는 논의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의료적 조치를 한 입장에서 꾸준히 논의를 전개하고 글을 생산하는 트랜스젠더가 있으면 좋겠다. 그의 목소리가 의료적 조치를 겪은 트랜스젠더를 가장 잘/제대로 재현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좀 더 다양한 경험이 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의료적 조치를 하지 않은/않는 트랜스젠더의 논의도 더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
… 결국 언제나 하는 얘기의 반복이다. 기존의 출판 형식이 블로그나 트위터보다 더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블로그에서 주로 글을 출판하지만, 그럼에도 기존 출판 형식으로 논의를 생산하는 트랜스젠더 이론가가 더 많이 등장하면 좋겠다. (이런 아쉬움에 어떤 사고를 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사실 내가 조금만 더 활달했다면, 사람 만나는 걸 조금만 더 좋아했다면, 학제에서 공부하고 있는 트랜스젠더와 트랜스젠더 이슈로 공부하고 있는 비/트랜스젠더의 네트워크를 만들었을 듯하다. 다른 형식의 공동체는 여럿 있으니 학제라는 맥락에서 어떤 식으로건 집단을 형성하고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