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단편영화: 레즈보포비아, 젠더퀴어의 데이트 대소동, 퀴어필링 A부터 Z, 데이문, 마주본 슬픔

어젠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퀴어 단편선>을 봤습니다. 평이 매우 안 좋다는 소문을 들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래도 직접 확인하는 게 가장 좋기에 현장에서 표를 끊어서 봤습니다. 다섯 편의 단편 모음입니다.
ㄱ. 레즈보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상황을 좀 아는 분이라면 익숙한 내용이고 아니라면 새로울 내용이랄까요. 헌법엔 동성애 차별을 금지하고 동성결혼이 적법하지만 여성간 연애 관계에 혐오가 엄청나고 살인이 일어나도 법적 조치가 거의 안 되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이슈인데 좀 아쉬운 내용이었습니다.
ㄴ. 젠더 퀴어의 데이트 대소동
정말 귀여운 작품입니다. 저는 낄낄거리면서 무척 재밌게 봤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범주나 몸을 기존의 인식과 다르게 설명하는 사람(트랜스젠더, 젠더퀴어, 바이 등)이라면, 감독이자 주인공이 데이트를 하고 싶음에도 자신의 몸이나 범주 때문에 갈등하고 망설이는 장면에서 엄청 공감할 듯합니다. 이 집단을 대상으로 공동체 상영하면 인기 짱일 듯? 흐흐흐. 어쩐지 영상을 소유하고 싶네요.
ㄷ. 퀴어 필링 A부터 Z
뭔가 참신하고 재밌었습니다. 정말로 A부터 Z까지 감정과 관련한 단어를 말하고 관련 설명을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는 공간이 특히 재밌었는데, 어지럽힌 침대에 앉아서 혼자 얘기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침대는 자신의 감정과 삶이 녹아있는 곳이란 점에서 감정을 설명하는 내용과 매우 잘 만난달까요. 그나저나 감독과 관객 모두 상당히 침대나 침대 아래 장식이 매우 지저분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봤을 땐 정말 잘 정돈되어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지저분하게 보이려고 깔끔하게 잘 배치했달까요. 이것이 또한 감정이겠지요.
ㄹ. 데이문
기대한 영화고 내용은 좋았습니다. 보통 바이가 등장인물로 나오면 레즈비언인 애인은 남자에게 끌리는 바이를 비난하고, 새로운 여자 애인을 만나면 전애인인 바이를 비난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정확하게 반대였습니다. 아울러 바이/양성애자란 존재가 분명 존재하는데도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는 현재 상황을 무척 잘 포착하고 있고요. 다만 배우의 연기는 정말이지… 오글오글… 조금 더 잘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ㅁ. 마주본 슬픔Angie
깔끔하게 만든 단편 영화. 앤지는 죽은 군인이고 실질적 등장인물은 앤지의 애인인 줄과 앤지의 어머니가 앤지의 죽음을 계기로 감정을 교류하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영화 초반에 저는… 에, 그러니까 음… 앤지의 어머니를 줄의 어머니로 착각하고선… 에… 줄과 앤지가 연애를 하다가 앤지가 줄의 어머니와 눈이 맞아서 줄과는 헤어졌고, 줄의 어머니와 앤지가 지내다가 어떤 어려움이 생긴 상황일까를 기대했습니다. 아하하.. 근데 이런 줄거리로 영화를 만들면 더 재밌을 듯하네요. 후후.\
전체적으로 괜찮고 재밌게 잘 봤습니다. 퀴어 감정이란 측면에서 다섯 편을 무척 잘 엮었고요.

질, 이성애 도전기; 혹은 심각한 혐오

어제의 거친 글에 이어서.
퀴어영화 혹은 LGBT 영화라는 포괄적 장르에 속하는 영화가 반드시 퀴어나 LGBT에게 우호적인 것은 아니며 때때로 강한 혐오를 포함할 수 있다. 단지 퀴어나 LGBT를 포함하는 영화란 뜻이 아니라 퀴어나 LGBT의 어느 중첩하는 범주에 속하는 이들을 긍정적으로 재현하는 영화인데 이것이 혐오 행위일 수 있다. 이 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느냐 아니냐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경험을 반영한다. 혹은 최소한 퀴어나 LGBT란 용어를 둘러싼 자신의 고민을 반영한다.
지난 일요일 밤에 본 영화 <질, 이성애 도전기>Heterosexual Jill은 어떤 사람에겐 가볍고 코미디 영화겠지만, 이 영화는 심각한 바이 혐오를 공공연히 전시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다음의 인식 수준을 공공연히 전시한다. ‘바이는 너네들끼리 살아, 레즈비언인 우리는 우리들끼리 살 테니까.’ ‘레즈비언은 자신의 범주를 견고하고 자연스럽게 구성하는 집단이야, 바이는 그렇지 않겠지만.’ ‘바이 여성은 비록 여성과 연애를 하고 싶어 한다고 해도 남성과 연애하고 싶어서 안달난 존재야, 또한 남성의 음경에 열광하지.’ 물론 스토리 전개 과정에서 강부치 제이미가 흔들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나는 그 찰나에 레즈비언 범주 자체를 뒤흔드는 성찰이 나오길 바랐다. 그래서 영화가 재현하는 바이 혐오가 매우 문제가 많음을 역설하길 기대했다. 하지만 영화는 레즈비언 범주를 매우 견고하고 변할 수 없는 것으로 사유한다. ‘레즈비언은 아무리 노력해도 레즈비언이다. 그리고 여성과 연애한 경험이 있지만 남성과 연애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전직레즈비언이며 이성애를 지향하는 존재다.’ 이것이 이 영화의 실질적 메시지다. 기분 더럽다. 도대체 어디가 재밌지? 아, 그래, 재밌는 장면이 딱 하나 있었다. 부치는 비슷한 스타일이라 다른 사람이 쉽게 구분 못 할 거라는 장면.
나는 커다란 스크린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퀴어영화 세션에서 퀴어와 LGBT를 혐오하는 영화를 봤다. 정확하게는 게이와 레즈비언은 긍정하고 다른 범주는 혐오하는 영화를 봤다. 도대체 왜?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매우 짧은 장면도 애매했다. 물론 내 기억에 그 장면을 뭐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아울러 영화의 인종 인식은 좀 당혹스럽다.
그래서 이미 예매한 다른 영화도 그냥 취소했다. 극장에 가서 볼 기분이 안든다. 물론 수요일에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 있지만 그건 표를 못 구해서 어떻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