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바람, 병원, 폭우

상당한 고층에 살고 있는데 어쩐 일인지 벌레가 들어왔습니다. 허억… 이 정도 높이면 안 들어오겠지 했는데 방충망엔 나방이 앉아 있고 집안에 들어온 귀뚜라미인지 곱등이인지 모를 괴생명체.. 덜덜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살고 있는데 방충망이 없었다면 벌레가 난입하는 상황이었겠네요.. 지난 번 이태원에 살 땐 방충망이 없어서 여름에도 창문을 제대로 못 열었거든요.. 지금 사는 집은 방충망이 있어서 조금 안심하고 살았는데 어째서.. 그리하여 잠들기 전 창문을 닫았습니다.

우연이겠지요. 날씨 확인을 안 했는데 새벽에 비가 내렸습니다. 폭우가 내렸죠. 아.. 이런!
이틀 전 밤, 바람에게 밥을 주지 않았습니다. 전에도 적었듯 매일 밤 밥을 새로 챙겨주는데 이틀 전 밤엔 안 줬습니다. 다음날 병원에 데려갈 예정이거든요. 중성화수술을 하기 위해선 병원 가기 전 12시간 동안 아무것도 주면 안 되는데, 이것이 습관이 되어 병원에 가기 전엔 밥을 안 주는 편입니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그 얘기를 바람에게 했기 때문인지 바람도 밥을 많이 찾진 않았습니다. 습관처럼 한 번 밥그릇을 두는 자리를 한 번 살피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배가 많이 고팠을 텐데도 밥 달라고 울진 않더라고요. 평소라면 8시 즈음부터 밥을 새로 달라고 울었을 텐데요… 그냥 그런가보다 하더라고요.
새벽 즈음 빗소리가 창문을 때리는 걸 들으면서 다시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다가 일기를 확인했습니다.. oTL.. 오늘 종일 비. 저녁에나 갤 예정.. 으헉… 혹시나 하고 일말을 기대를 걸며 조금 더 기다렸지만 비가 그칠 기미는 없었습니다. 흑.. 결국 병원에 가길 포기하고(밖에 나가는 것도 바람으로선 엄청 싫은 일인데 빗속에 병원이라니요…) 그냥 밥을 줬습니다. 의외로 많이 안 먹더라고요. 조금 먹더니 바로 잠을 자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고파서 잠을 못 잤나? ;;; 오히려 어제 저녁부터 열심히 먹기 시작하더라고요.
눈은 일단 현재는 양호합니다. 양호한 듯합니다. 똥도 모양이 괜찮고 오줌도 잘 누고 있고요. 특별히 아픈 것 같진 않지만 이것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건강검진도 할 겸 병원에 가야 하는데.. 흠… 이번 주 내내 비가 온다고 하니 결국 개강하고 가야겠네요..

불편해서 안 괜찮아.

01
추석, 서울은 물난리였고, 나는 서울에 없었다. 대신 동거묘들의 안부가 걱정이었다. 잘 살고 있을까?

자연재해도 계급이라고 중얼거렸다. 누구나 알고 있는 얘기다. 폭우의 피해는 반지하에 사는 이들,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네 사람들에게 일어났다. 광화문의 배수시설 운운하며 자연재해다, 인재다 논쟁인다. 하지만 배수시설 운운하지 않아도 이미 인재다. 살고 있는 지역, 주거공간의 조건이 계급인 사회에서 이것이 인재가 아니면 뭐가 인재겠는가.

02
가판대에서 정기구독하는 주간지에서 읽은 오래 전 기사. 그 주간지는 복지를 주요 의제로 삼고, 꾸준히 보도하고 있다. 아울러 복지운동을 하는 이들과 대담을 싣기도 했다(몇 달 전 기사다). 복지운동을 한다는 그들은, 예전엔 가족이 복지의 일부를 담당했지만 지금은 가족이 복지를 담당하지 않으니 국가와 제도가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했던가…

“이는 당시만 해도 시장과 가정이 나름대로 복지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할머니가 아이를 키우고, 병에 걸린 노인을 며느리가 간호하는 등 가족 내에서 보육·보건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지 않았나. 시장은 일자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가족은 개인화되었다.” http://goo.gl/edJR

속터지는 소리다.

최근엔 복지 확대를 진보를 자처하는 곳의 의제로 삼는 듯하다. 하지만 복지가 정말 진보의 의제일까? 만약 진보의 의제라면, 그 진보를 자처하는 곳에서 가정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궁금하고 의심스럽다. 복지 의제가 만약 다시 한 번 여성 범주에 속하는 이를 억압하고,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비규범적인 존재를 관리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면, 이럴 때 복지란 내게 무엇을 의미할까? 그리고 진보를 자처하는 곳의 진보와 내가 상상하는 진보(하지만 난 ‘진보’란 말을 안 좋아한다는..)가 다를 때, ‘다른’ 정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03
확실히 이번 정권의 최대 공적은 특권층, 기득권층의 특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 이전 정권에선 고위공직에 지명할 때, 비리가 있는 사람은 배제했기에 그 비리가 공식적으로 드러날 수 없었다. 고위공직에 지명할 사람의 도덕성 기준이 높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설적으로 특권과 비리를 은폐하며 특권층이 특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운 격이긴 하다. 하지만 이번 정권은 어지간한 비리는 신경도 안 쓰고 지명하다보니, 그동안 은폐된 특권과 비리가 드러났다. 이런 건, 이번 정권이 아니면 결코 못 할 일이다. 이 정권의 최대 업적이라면, 비리척결은 못 해도 비리와 특권 폭로는 했음을 꼽아야 한다. 이번 정권을 겪으며 교훈을 얻었다면, 기득권층이말로 MB 같은 인물에 반대표를 던져야 한다. 아니, 처음부터 MB 같은 인물이 후보에도 못 나오게 해야 한다. 그게 특권층, 기득권층이 사는 길이다.
😛
(갑갑한 건, 현 정권과는 다르다는 국민의정부나 참여정부도 특권층이나 기득권층의 비리와 특권을 제대로 못 다뤘다는 것.)

푸른 빛, 정전

번개가 우르르쾅쾅. 뒤늦게 등 뒤가 환했다는 걸 깨달았다. 밤에 처리해야 하는 일이 있어 망설이다 카페에 갔다. 워드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들려온 천둥번개 소리. 그리고 미리 찾아왔던 푸른 빛.

다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찍 泫牝에 갈 걸 그랬다고 구시렁거렸다.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을 땐, 차마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泫牝에서 멀지 않은 카페에 들어갔지만, 10분 정도의 거리가 아득한 거리같았다. 몇 번을 망설이다 서둘러 걸었다.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땐 옷이며 가방이 다 젖었다.

문을 열고 泫牝에 들어섰다. 스위치를 켜는데, 아, 이런. 불이 안 켜졌다. 천둥에 정전사태가 발생한 걸까. 이 더운 여름날 선풍기 없이 잠들어야 하는 걸까. 밖에선 간간히 푸른 빛이 번졌다. 그러고 보면 이 건물의 다른 집들도 모두 불이 꺼진 것 같다. 아닌가. 기억이 긴가민가하다. 아, 그래. 계단의 야간등은 켜진 것 같은데, 야간등은 별도의 전지를 사용하는 걸까. 옆 건물도 모두 불이 꺼진 거 같다. 이 일대가 모두 정전인 걸까. 근데 가로등엔 불이 들어왔던데. 근처 가게도 불이 환했는데. 가정집만 정전인 걸까. 옥상에서 살피니 대부분의 집이 불이 꺼졌지만 불이 켜진 집도 있다. 어떻게 된 걸까. 泫牝만 문제인 걸까. 천둥번개가 泫牝만 정전사태로 만든 걸까. 泫牝의 전기배선이 고장난 걸까. 며칠 동안 계속 전기가 안 들어오면 만나기 싫은 주인집을 찾아가야 하는 걸까. 주인과 마주치는 건 정말 싫은데, 다른 방법이 없는 걸까.

일단 하루는 그냥 지내기로 했다. 만약 번개로 이 일대가 정전이라면 수요일에도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으니 목요일 즈음에나 복구가 가능하겠지. 그렇담 내일도 어둠 속에서 선풍기 없이 잠들어야 하는 걸까. 소리 없는 번개가 참 많이 친다. 심심찮게 푸른 빛이 泫牝을 비춘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 씻고 라디오를 듣다가 잠들었다. 자면서도 걱정했다. 이러다 복구가 안 되면 이 여름을 어떻게 버텨야 하는 걸까. 걱정을 껴안고 잠으로 빠져들었다. 가끔씩 잠에서 깨기도 했다. 그래도 이렇게 비가 내리니 덥지는 않아 다행이야. 잠결에 몇 번 중얼거린 것 같기도 하다.

늦잠을 잤다. 라디오 알람을 들으며 깨어났다가 다시 잠든 기억이 난다. 벌써 7시가 넘었다. 이런, 이런. 서둘러 씻고 나갈 준비를 하다가, 두꺼비 집을 찾았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다. 방 안에 있다. 이제 5년 째 살고 있는데, 두꺼비 집을 찾은 건 처음이던가. 기억나지 않는다. 예전에도 두꺼비 집을 찾은 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두꺼비 집의 위치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같기도 하다. 기억이 헝클어진다.

두꺼비 집 뚜껑을 여니 차단상태다. 어제 천둥번개로 스위치가 자동으로 바뀌었나 보다. 조금 허탈했다. 갖은 걱정을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하다니. 불이 들어오고 선풍기도 잘 돌아간다. 잠을 설치게 했던 고민을 간단하게 혹은 허탈하게 해결하고 나선 泫牝을 나설 준비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