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fis][영화] 스파이더 릴리

[스파이더 릴리] 2007.04.08. 14:00, 아트레온 2관 E-15

1. 영화를 읽다가, 이런 영화를 읽을 수 있어서 고마워, 라고 중얼거렸다. 이 영화가 있어서 행복했고 고마웠다. 루인이 좋아하는,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코드들이 잔뜩 있는 이 영화는, 그 코드들을 기가 막히게 잘 직조하고 있다. 6월 즈음 개봉한다고 한다. 그때 또 읽을 거다. 올해 나온 최고의 영화 중 한 편으로 이 영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거다.

2. 영화 전반에 걸쳐 나오는 구절은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이 말이 너무도 절박하게 다가왔다. 다른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내가 당신의 생애 어느 한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는 걸, 그 작은 사실 하나를 기억해 달라는 바람. 그리고 여기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열망. 내가 여기 있다는 걸 기억해 줘요…

3. 이 영화는 (나중에 읽은 [8월 이야기]와 함께) 기억, 특히나 몸에 세겨져 있지만 망각하고 혼란스럽게 떠도는 기억을 말하고 있다. 타투/문신으로 몸에 세겨서 현실로 남아 있지만, 해리성 기억상실을 통해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망각하고. 깨어 있는 상태와 백일몽의 상태가 헷갈리고. 그러며 과거는 짐작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 남아 매 순간 다른 방식으로 내용이 바뀐다. 언제 어떤 식으로 불쑥 나타날지 알 수 없어서 과거는 미래보다 더 불확실하게 남아 있고, 결국 예측할 수밖에 없는 과거.

아냐, 아냐, 이렇게로만 설명할 수 없어. 영화를 읽는 내내, 짜부라질 것만 같은 느낌에 빠졌어. 이 영화는, 왠지 영화관이 아니라 혼자 있는 방에 웅크리고 앉아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 그래도 또 영화관에서 볼 거야. 꼭 볼 거야.

이 영화를 읽으며 느낀 감정들은 그때 풀어 놓을 거야. 그동안은 몸 안에 간직해야지.

4. 몰랐는데, [드랙퀸 가무단]의 그 감독이라고 한다. 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