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우에다치히로’ 초청 간담회가 열립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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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 프로젝트의 하나인 ‘트랜스젠더 삶의조각보 만들기’에서 준비한  
일본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우에다치히로’ 초청 간담회가 열립니다. 😀
1. 일본 티지 활동가에게 듣는 일본 티지 커뮤니티와 사회의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
2. 본인 소개와 활동에 대한 소개(티지차별금지법조례진정, 건강보험증상성별표기변경요구, 강연활동)와 이런 활동을 시작한 계기와 목적에 대한 이야기
일시 : 2013년 7월 31일 수요일 저녁 7:30분
장소 :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2호선 홍대입구역 9번출구 인근)
신청방법 : jogakbo1315@naver.com  
 
* 통역 지원됩니다!
[출처] [조각보] 일본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 ‘우에다치히로’ 초청 간담회가 열립니다. :D|작성자 KSCRC

유섹인 활동 끝

오늘로 유섹인 활동이 끝났습니다.

얘기는 7월 말에 했고, 대충 보름 전 공식 회의에서 얘기했습니다. 인수인계 등 후속 작업이 있어 오늘에야 끝났습니다. 유섹인을 발족할 때부터 함께 했고, 사무국 일을 하기도 했으니 유섹인 활동을 끝냈다는 제 말이 의외려나요? 농반진반으로 제가 차기 대표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 갑작스러운 소식이려나요? 전해 들은 말로는 저와 변쌤이 싸웠냐는 반응도 있었다네요. 흐흐. 그러지 않고선 제가 유섹인 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거라고 믿는 사람이 있는 거죠. 저와 유섹인의 관계가 그런 이미지로 유통되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활동을 쉬는 것도 아니고 단체를 떠나기로 한 이유는 별 거 아닙니다. 공부하려고요. 박사과정에 진학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공부도 해야하고 입학금도 벌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랜 시간 고민하다가 유섹인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근데 공부하려고 그만뒀다니 엄청난 이유네요.. 덜덜덜.)
앞으로 다른 활동도 줄여갈 계획입니다. 이것저것 줄이고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생활패턴을 만들 계획입니다. 이런 생활 패턴이 제겐 특별한 것 아닙니다. 석사 과정 때도 이랬습니다. 석사 2학기 때부터 지렁이 활동을 했지요. 지렁이 발족을 준비하고 이런 저런 일을 하고… 하지만 그때 전 오직 지렁이 내부의 일만 했습니다. 외부 활동은 거의 안 했습니다. 석사 수업을 거의 다 듣고 나서야 외부 활동을 시작했고, 활동 폭을 넓혔습니다. 그러니 이번 결정이 특별할 거 없습니다.
관건은 얼른 공부하는 몸으로 만드는 것이죠. 그 뿐입니다.

한 해를 살아가기: 회의, 트랜스젠더 운동, 추억하기.

01
어제 오후,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한 통 받고선 오늘 오전에 회의를 하나 잡았다. 가까운 곳이지만 가까이 산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회의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후, 밥을 먹고 나니 시간이 애매하다. 아카이브 일을 하러 가려니, 도착해서 후치를 꺼내면 알바를 하러 갈 준비를 해야 할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02
玄牝에 있는 물건들 중, 몇 가지를 제외하면 모두 10살은 먹은 거 같다. 玄牝에 있을 때마다 애용하는 음악재생기는 1997년 겨울에 산 거다. 카세트테이프 두 개를 재생할 수 있는 제품으로, 당시 가격은 무려 88,000원. 만 원 정도를 더 주면 반복재생 기능이 있는 제품을 살 수 있었지만, 만 원이 없었다. 그래서 A면이 다 돌아가면 테이프를 꺼내서 B면으로 바꿔야 한다. 얼추 12살인 이 기기. 재밌게도, 음악을 들을 때면 테이프를 재생할 때가 가장 정감있다. 뭔가 포근하다. 이제는 CD로, 아니 CD에서 mp3를 추출해서 mp3p로 듣는 일상이지만, 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때면 선명한 느낌은 없어도 따뜻한 느낌은 있다. 이건 모두 추억, 향수 때문이겠지.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현재를 감쌀테니, 이건 순전히 나의 추억, 기억, 경험때문이다. 가끔은 길에서 mp3p말고 테이프 재생기를 가지고 다니면 어떨까 하는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하하;;

근데 내겐 무려 20년은 된 거 같은 기기가 있다. ‘아하’라고 불렸던 휴대용 테이프 재생기. 처음부터 내건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던 걸 물려받았다. 테이프를 들으려면 소리가 늘어져서 힘들지만, 라디오를 듣는덴 지장이 없다. 이런 제품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골동품 취급할까? 신기해할까?

03
그래도 오래되기로는 지금 내가 사는 집, 玄牝이 가장 오래되었을 테다. 어쩌면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자려고 누워 있노라면 천장이, 벽이 앓는 소리도 들린다. 아침엔 벽이, 천장이 찌익, 찌직, 쿠웅, 하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기도 한다. 설마 자고 있는 사이에 무너지는 일은 없겠지? 하하.

04
어느 동네가 유서 깊지 않겠는가. 지금 내가 사는 동네만 역사와 이야기가 가득한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내겐 특별하다.

05
내가 처음으로 활동을 시작한 단체는 이제 형태를 바꿀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런 얘기는 나중에,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쓰기로 하자. 할 말이 너무 많지만 지금은 묻어두기로 하자. 기록은 다 남아 있을 테니까.

아울러 나는 이제 그 단체 소속으로 나를 소개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06
아침 회의는 그 단체에서 하고 싶었지만 못 했던 활동과 관련있다. 회의는 올해 사업으로 어떤 일을 기획하고 있는데 같이 회의를 했으면 한다는 거였다. 즉,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같이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고 해서 잡은 회의였다. 프로포절만 선정되면 정말 잘 할 단체고, 나 역시 어떻게든 같이 하겠다고 말하겠지?

기쁜 일이다. 정말로!

07
어쩌면 내가 바랐던 형태로 운동이 진행되고 있는 걸까? 그런데 내가 바란 형태란 건 어떤 거지?

08
용산과 이태원 지역을 중심으로 트랜스젠더의 역사를 홅으면, 트랜스젠더와 비트랜스가 구분되었던 적은 없는 듯하다. 한 동네 주민으로 살며 서로 돕고 싸우고 친목모임을 꾸리고 욕도 하면서… 그냥 세상 어느 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 이곳에도 있(었)다. 이런 역사, 그리고 현재 이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소위 말하는 정체성이라는 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체성이라는 범주 구분이 개인의 경험과 개인들 간의 친밀감을 단절내는 건 아닐는지. 저 사람과 이 사람은 다르다는 식의 구분짓기, 범주를 나눠 설명하는 방식이 결국 ‘경험’과 ‘공동체’를 논쟁과 싸움의 장으로 만드는 건 아닐는지.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정체성이라는 범주가, 집착할 수록 폭력적으로 변하는 건 확실한지도 모른다.
(오프라인으로도 만나는 사람이라면, 내가 이렇게 말한다음, “아님 말고”라는 말을 덧붙일 거란 걸 알겠지? 흐흐.)

09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건, 그런데 결국 따뜻했거나 아팠거나 어쨌거나 추억으로 각색된다는 의미겠지. 1997년 말에 산 기기도 용산과 이태원의 역사도 모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각색하는 이야기들이다. 어떤 식으로 각색할 것인가? 관건은 이것이지만, 이게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아무려나 올해의 나는 또 어떤 일을 하려고 아둥바둥할까? 생활비가 나오는 일, 생활비 정도는 아니지만 공과금에 보탤 수는 있는 정도의 활동비를 주는 일, 이런저런 돈을 주진 않아도 내가 좋아서 일단 하고 보는 일… 아니다. 결국 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다. 그리고 상대방은 언제나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려고 애써서 고마울 뿐이고. 위태롭지만, 위태롭다고 광고를 하니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주변에서도 챙겨준다.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올해는 또 어떻게 살아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