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을 달지 않음

*예전에 살던 블로그에 비슷한 글을 쓴 기억이 몸에 남아 있지만 조금은 다를 법한 내용.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건, 몇 해 전, 블로그 “열풍”이 불기 직전이었다. 우연히, 단순히 개인 홈피 대용 정도로 시작했다. 블로그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딱히 블로그에 대한 어떤 입장이나 개념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도 딱, 개인 홈피 대용 그것이었다.

당시 몇 달 정도 운영하다가 조용히 접었는데, 그 이유는 리플이었다. 견디기 힘들 만큼의 악플이라도 있었냐면 그렇진 않다.

블로그를 접은 후 새로 시작하기까지 1년 가까이 걸렸고 새로 시작한 블로그에 10달가량 살며, 모든 글에 리플 금지 설정을 했다. 리플이 너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처음 블로그에 살 땐, 다른 블로그와 관계 맺기가 조금은 부담스러웠기에(모르거나 낯선 사람과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편이다) 가려가며 블로그에 들어갔고, 조심스레 리플을 달았다. 그런 조심스러움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지고 리플을 다는 블로그는 조금은 편했기에 자주 들어가고 자주 리플을 달고 그랬다. 하지만 그 리플이 어떤 날엔 부담스러웠는데 리플을 다는 것이 일종의 의무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당시는 인터넷이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었고(지금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뭐, 어딘들 편하겠느냐 만은..) 그랬기에 새로운 글엔 의무처럼 리플을 달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지금도 없다곤 못한다). 바로 이 강박이 문제였다/이다. 리플이 의무가 되고 부담감으로 무겁게 누르면서, 블로그 자체를 떠나야지 했다. 블로깅이 즐거운 삶이 아니라 부담스런 의무라면 억지로 할 필요는 없잖아. 당시 만난 블로거들과의 관계가 끊긴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의무처럼 다는 리플은 자칫 상대에게도 불쾌감이 될 수 있다는 몸앓이에 결국 블로그를 그만두기로 했다.

그랬기에 일 년여 지난 후 다시 시작한 블로그엔 리플 자체를 달 수 없게 설정했다. 리플이 소통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부담감이 될 수도 있고, 루인에게 리플은 부담으로 다가왔기에 그냥 기능 자체를 없앤 것이다. 그러면서 생긴 버릇은 다른 블로그에도 글만 읽고 리플은 달지 않는 것이다.

물론 오프라인으로 만난, 이랑들의 블로그엔 가끔씩, 아주 가끔씩 리플을 달긴 한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가끔씩 일 뿐이다. 리플을 달지 않아도 오프라인에서 만날 수 있기에, 리플을 달지 않는다는 것이 그 블로그에 들리지 않았다거나 글을 읽지 않았다거나 관계가 소홀해졌다거나 등등의 의미는 아니기에.

이런 이유로 지금의 블로그에 살면서도 다른 블로그엔 리플을, 트랙백을 남기지 않고 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리플을 달기 시작하면 그것이 의무감으로 무겁게 짓누를 것만 같아서. 리플을 쓰거나 트랙백을 보내고 싶은 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글은 너무도 리플을 쓰고 싶어지지만, 그냥 참는 이유는, 첫 블로그의 기억이 아직도 무겁게 남아 있어서다.

뭐, 결론은 간단하다. 리플을 달지 않아도 봐 주세요~, 랄까-_-;;

[#M_ 덧.. | 오프.. |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으로 아는 블로거의 경우엔(오프라인으로 안다는 건, 오프라인에서 먼저 알고 그 사람의 블로그는 나중에 알게 되는데, 이때 블로거란 표현은 적절할까?), 만나면 관련 얘기를 하는 편이다. 글을 읽으며 하고 싶은 말이 떠오르면 몸에 저장했다가 하기도 하고 그냥 그 순간 떠올라 하기도 한다. 몸에 저장한 말을 할 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 로 하고 싶은 말을 몸에서 한참을 굴리는데, 그렇게 언어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즐겁다._M#]

#덧붙이면, 한 순간, 열심히 리플을 달다가 어느 순간 시드는 것 보다는 그냥 소리없이 꾸준히 글을 읽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핑계가;;;

두려움을 만나며

종종 어떤 문제에 대해 루인이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입장에 있는지를 ‘모르는’ 루인을 만나면, 두려워진다. 이 이슈에 어떻게 접근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건, 고민 없음, 아직도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듣지 못하고 있음이며 기존의 언어에 익숙함/안주함을 만나는 찰라 이기 때문이다.

이 두려움이 시작지점이다. 두려우니 덮어둘 것인가, 이 두려움을 앎으로 바꿀 것인가.

아직도 두려움 앞에서 아는 체 하며, 루인의 무지를 회피하고 싶음이 있지만(많지만) 이 두려움이 삶을 엮어가는 힘이란 걸 ‘안다.’ 이 힘으로 몸이 말하는 언어를 듣고 새로운 루인을 만난다.

그러니, 두렵지만, 매 순간, 두려움을 만나길 욕망한다.

당혹스럽지 않은 당혹스러움

[Run To 루인]에 어떤 경로로 들어오나 해서 리퍼리를 보다가 첫눈을 통해 누군가가 들어온 것을 보았다. 뭘까 하는 호기심에 눌러봤더니..

[#M_ 보기.. | 접기.. |

_M#]

헉;;;
추천블로그를 눌러 봤다. 그랬더니…

[#M_ 보기.. | 접기.. |

_M#]

헉;;;

루인이 모르는 곳에서 루인이 소비되고 있다는 건, 당혹스러운 일이다. 아니, 루인은 루인이 모르는 곳에서 루인이 소비되는 상황을 너무도 싫어한다. 이런 이유로 튀지 않음을 미덕으로 여긴다.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아서 잊혀질 것도 없는 상태. 루인이 모르는 곳에서 루인이 소비될 가능성 자체가 없는 상태.

하지만 이곳 인터넷이란 또 다른 현실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Run To 루인] 자체가 공개와 소통(/소비)을 위해 만든 곳이니까. 그렇지만 이런 모습을 만나면 묘하다. 일전에 구글에서 루인으로 검색하면 [Run To 루인]이 최상단에 위치했던 것과는 뭔가 다른 기분. 검색에서 제외되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것을 원하는 것도 아닌데. 경계에 서 있는 모호함을 인터넷에선 ‘해결’ 혹은 소통할 수 있을까? “노국대장공주”를 검색해서 들어오는 것과 (요즘 [Run To 루인] 검색어 1위가 “노국대장공주”다-_-;;) 이렇게 얼토당토 안 한 추천블로그는 느낌이 너무 다르다고.

(첫눈에서 재미삼아 루인으로 검색을 했더니 추천블로그가 70개가 나온다. 우훗. 뭐, 네이버에선 지금 현재 389명이 나오는데, 뭘. 이런 개성의 익명성이 좋다. 튀지만 튀지 않음.)